69. 기말고사-3-
"근디…… 이게 다가?"
희연은 찬혁이 만든 나폴리탄 오므라이스 스파게티를 보고는, 이내 살짝 김이 식어 버리고 말았다. 물론 처음 보았을 때는 그 비주얼에 꽤 혹하기는 했지만, 아래에 나폴리탄 스파게티가 깔려있다는 것을 빼고는 오므라이스 하면 딱 생각나는 연출까지 가미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야 뭐, 나름 참신하고, 때깔도 잘 뽑히긴 했는디…….'
"고작해야 밥 없는 오므라이스에 나폴리탄 스파게티 섞은 거 아니냐고?"
"……."
마치 희연의 속내를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 같은 찬혁의 말에 정곡을 찔린 희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든 사람에게 대놓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무례하단 것은 그녀도 충분히 알고 있었으나, 그녀 또한 요리사를 진지하게 꿈꾸고 있는 사람. 다른 것은 몰라도 요리에 대한 것은 괜히 얼버무리고 싶지 않았다.
찬혁은 그런 희연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는 듯 말했다.
"확실히,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고작해야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오므라이스의 밥 대신 넣은 요리.
특히 일본에서 자란 기간이 긴 희연에게 있어서, 일본에서 만들어진 경양식인 나폴리탄 스파게티와 오므라이스라는 두 소재는 너무나도 흔하게 봐온 음식들이었기에 진부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도 다 계산했지.'
회귀 전 그녀의 어머니 아래에서 수학한 찬혁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혁이 오므라이스와 나폴리탄 스파게티라는 요리를 소재로 정한 이유는 다름 아닌 그런 감상을 정면에서 부숴주기 위함이었다.
"자자, 아무튼 한 번 먹어 봐. 먹어 보면 알 거야.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찬혁이 포크와 스푼을 챙겨주며 자신을 재촉하자, 희연은 그 기세에 이기지 못한 척 얌전히 말에 따랐다.
─꿀꺽.
'말은 그렇게 하긴 했어도…….'
전혀 모르는 맛보다 아는 맛이 더 무서운 법.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비주얼을 자랑하는 오믈렛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 희연이, 들어 올린 포크를 조심스럽게 오믈렛 위로 가져갔다.
─쑤욱
"와."
부드러움. 아니, 부드러움을 넘어선 무언가.
민들레가 흐드러지게 피어오른 봄 언덕 같은 계란을 가른 양희연이 느낀 첫 감상이었다.
포크를 통해 전해지는 액체와 고체 사이의 무언가를 꿰뚫는 촉감을 지나, 얼기설기 모인 스파게티 사이로 탱탱한 소시지를 찌르는 감각을 여과 없이 느낀 그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퍽 만족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하며 찬혁이 그녀를 닦달한다.
"얼른. 츄라이, 츄라이."
"뭐라카노."
10대는커녕 요즘 3, 40대도 하지 않을 쌈마이한 대사 선택에 살풋 웃음을 지은 양희연이 소스에 흠뻑 젖은 오믈렛과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한 번에 말아 입에 넣은 그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
'…… 뭐꼬 이거.'
정색을 했다거나, 화가 난 것이 아니다.
전신의 모든 감각이, 오로지 지금 입에 들어온 이 요리의 맛을 느끼기 위해 표정을 지을 여유마저 앗아간 결과였을 뿐.
혀와 뇌 사이에 직결된 '맛'을 느끼기 위한 신경 전부가, 단순하고 진부하게만 보이던 이 음식을 맛보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것 같은 감각.
마치 파도에 낯짝을 정면으로 강타당한 듯한 현기증을 고개를 저어 간신히 털어낸 양희연이 놀란 눈으로 찬혁을 돌아봤다.
"어때. 보기보다 대단하지?"
"마, 니, 대체."
찬혁은 어찌나 놀랐는지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희연을 웃는 낯으로 바라보며, 더 먹으라고 손짓했다.
희연은 결국 그 재촉을 거부하지 못하고 계속 포크를 놀렸고, 10분가량이 지났을 무렵에는 이미 빈 접시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그녀의 명예를 위해 첨언하건대,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은 지 채 3시간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
─덜그럭, 덜그럭. 쏴아아아─
"……."
"……."
양희연의 시식…… 이라기보다는, 식사가 끝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먹은 그릇을 치우고, 사용한 냄비며 도마, 칼 같은 조리도구를 정리할 때까지도 묵묵히 침묵을 지키는 양희연 덕분에 괜히 나까지 말을 꺼내기 힘들어졌다.
방금 먹은 요리에 대한 고민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마른 행주로 접시의 물기를 닦으면서도, 녀석의 두 눈은 접시가 아닌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 제대로 초점이 잡히지 않은 상태.
그렇게 나는 설거지를, 양희연은 물기를 제거하기도 잠시. 이제야 생각의 정리가 끝난 듯 저쪽에서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신기하네."
"응?"
"방금 니가 맹글은 거 말이다. 신기하다고."
굳은 얼굴로 닦던 접시를 물이 튀지 않게끔 싱크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몰아놓은 양희연이 나를 돌아봤다.
"내도 되게 자주 묵었던 메뉴인디, 내가 묵던 거하고 비교하믄 완전 달라진 것 같기도 혀고, 익숙한 것 같기도 한……."
마침내 행주마저 손에서 놓은 양희연은, 방금 먹은 요리를 다시금 되새기는 듯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궁합이 새빠지게 잘 맞았던 게 제일로 신기하다. 꼭……."
오므라이스랑 나폴리탄 스파게티라는 나누어진 요리가 아니라, 처음부터 이렇게 먹으라고 만들어진 것처럼. 그렇게 말한 녀석이 내게 정말 궁금하다는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이런 거 만들 생각은 어떻게 한 기가?"
"음…… 내 천재성?"
"하이고 마 빙시야 지랄하고 자빠졌다."
별 한심한 놈 다 보겠다는 눈빛에 살짝 기가 죽는다. 농담 한 번 해본 건데, 유머감각이 부족한 녀석이다.
헛기침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대충 넘기고 말을 이었다.
"아까 점심 먹을 때 내가 한 말 기억해?"
"점심? 뭐, 창작 레시피는 대강 섞거나 살짝 고치기만 해도 된다 캤었나."
"어, 그거."
"니 말대로 될 거믄 요리사가 왜 있는데? 다 대충 이거저거 비비가 무어뿌리면 장땡인디."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타박하는 양희연을 보며 작게 웃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였으니까.
"그 기준점을 정하기 위해서 있는 거지. 봐봐, 오므라이스랑 나폴리탄 스파게티. 내가 왜 이 두 메뉴를 골랐을까?"
"음…… 공통점?"
"오."
과연, 센스가 좋은 녀석이다. 바로 정답이 나와 버렸다.
"정답이야. 공통점. 그럼 그 둘의 공통점이란?"
"와 선생님들처럼 말하는진 모르겠는디. 아무튼, 음…… 글쎄다. 경양식이라는 것 정도?"
"그것도 있긴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 두 요리가 앞서 말한 사례 중 가장 성공한 메뉴라는 거지."
"나폴리탄 스파게티는 그냥 파스타에 소스 대신 케첩을 넣은 게 전부고, 오므라이스는 오믈렛이랑 볶음밥을 합친 요리잖아. 너도 일본에서 오래 살았으니 잘 알지?"
"뭐, 그야……."
"내가 한 것도 그거랑 마찬가지야.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볶을 때 케첩을 덜 넣는 대신 오므라이스 소스를 조금 섞어 넣어서 오믈렛과 어우러지도록 맛의 중간점을 찾아준 거지. 두 요리 다 케첩을 맛의 기본 베이스로 삼고 있으니까, 가장 맛이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지점이 어딘지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거든."
"호."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호를 외치는가.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했다.
"이제 알았지? 이런 흔하디 흔한 요리끼리 섞은 게 다여도 머리만 잘 굴려주면 충분히 새로운 요리가 될 수도 있다는 거."
애당초 세상에 완벽히 새로운 요리는 없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불을 발견한 인류가 수렵한 동, 식물을 불에 구워 먹은 그날부터, 이렇게 하면 더 맛있지 않을까? 저렇게 해보면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자그마한 발상들이 하나둘 모여 진화한 모습이 바로 오늘날의 요리이며,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나갈 테니까.
"설명이 좀 장황하긴 했는데, 요는 그거야. 심플 이즈 베스트. 너무 복잡한 것부터 생각하려고 하면 쉬운 것도 생각이 안 나. 우선 나한테 가능한 것부터.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알지?"
마지막 설거지한 냄비를 넘기며 그렇게 말하자, 양희연도 조금은 이해하기 시작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냄비를 받았다.
'도움이 되면 다행인데 말이지.'
뭐, 양희연 솜씨 정도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안 그래도 잘 하는 녀석인 만큼, 이 정도의 힌트만 있어도 알아서 답을 찾으리라 믿는다.
…….
잠시 후, 주방 정리를 마무리한 뒤 슬슬 방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쯤. 사용한 앞치마를 접고 있던 내 옆으로 다가온 양희연이 갑작스레 말했다.
"고마워."
"응?"
"시험기간이라 바쁠 텐데 나와 줘서 고맙다고."
"됐어. 밥도 사줬는데. 어때, 밥값으로는 충분하지?"
내 딴에는 농담이랍시고 던진 말이었는데, 녀석은 턱까지 괴어가며 깊게 생각에 빠지더니 이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아니, 좀 모자라다 안 카나."
"아직도? 대체 사람을 얼마나 빨아 먹으려는 거야."
나름 중요한 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는 대로 가르쳐준 것 같은데.
절로 허탈한 표정을 짓는 나를 보며 양희연이 웃었다.
"아니, 니가 모자라단 게 아이다. 내한테 잔돈이 남아서 문제지."
"엉?"
"다음에는 좀 좋은 데 좀 알아봐라. 딸내미 데리고 햄버거가 뭐꼬 햄버거가. 내 간데이."
자기 할 말만을 남기고 문 너머로 휙 떠나간 양희연의 잔상을 눈으로 좇다가 나도 모르게 투덜댔다.
"거, 무슨 칼 꼽힌 해적도 아니고."
탈출 속도 한 번 참 빠르다 싶다가도, 주방 정리는 깔끔하게 끝마치고 갔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이번에는 나 혼자 독박 쓸 일은 없어 보여 다행이란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
그리하여 찾아온 기말고사 기간.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내가 우려했던 것보다는 훨씬 나은 점수를 받았다.
대회에서 수상하여 반쯤 자동으로 여타 모든 실기 시험을 프리패스한 덕에 생긴 여유 시간을 전부 교과목에 투자한 결과였다.
'…… 사실 절대적인 시간만 놓고 보면 차라리 실기 시험을 치는 게 공부할 시간은 더 많았겠지만 말이지.'
애당초 머릿속에 넘쳐나는 것이 레시피니, 시험을 대비해서 실기 연습을 할 필요도 없었을 테고.
필기를 아주 잘 보았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그래도 평균 점수가 이 정도라면 제법 등차가 높을 것이다.
'영어 덕에 평균 점수를 확 올린 게 꽤 컸어.'
단 1학기 만에 중학교 과정부터 현재 진도까지 따라잡는 것은 역시 조금 무리가 있었지만. 최선은 다했으니 아쉬워할 이유는 없다. 지금은 가장 중요한 실습 과목이 전부 만점이라는 것에 의의를 두자.
'굳이 대회가 아니었어도 어차피 만점인 건 마찬가지였겠지만.'
아무튼, 이로써 1학기의 마지막 이벤트였던 기말고사도 끝.
분명 반년이나 되는 시간일 텐데, 과거로 돌아왔다는 갑작스런 사태에 적응하면서 대회도 나가랴, 공부도 하랴. 이래저래 바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인지 묘하게 시간이 빨리 지나간 느낌이다.
'젊으면 하루가 짧고 1년이 길고, 늙으면 하루가 길고 1년이 짧다던데.'
그 고사를 떠올리면 몸은 젊어졌어도 영혼은 그대로라는 것이 실감 된다.
시험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하늘은 청명하고, 태양은 뜨거우며, 가로수는 푸르니.
바야흐로 방학을 두 주 앞둔 뜨거운 여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