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68화 (68/403)

68. 기말고사.-2-

토요일 아침.

어제저녁, 나는 밤늦게 받은 양희연의 톡에 긍정 의사를 보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밥도 사주겠다는데 뭐.'

이 근방 물가가 그렇게 비싼 건 아니어도 굳이 사주겠다는 사람 말을 싫다고 거절할 건 없다.

아주 공짜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한테 밥까지 먹여가면서 부탁하고 싶은 게 무엇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겸사겸사 나중에 또 필요할지도 모를 야식 재료 거리나 살까 해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

"보자, 얘는 어디쯤 왔으려나."

그렇게 조금 걸어서 도착한 곳은 예전에 조별과제 회의를 하러 모였던 카페였다. 오기도 쉽고, 서로 잘 아는 곳이기에 이곳을 골랐다.

카페에 자리를 잡은 다음에 연락이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내 눈이 살짝 커졌다. 우연히도 마침 2층에서 내려온 양희연과 눈이 마주친 탓이었다.

"어."

"아."

서로 눈이 마주치자마자 놀란 소리부터 내는 우리. 저번에 여기서 만났을 때와 딱 반대되는 구도였다. 서로 말도 없이 보고 있기도 잠시. 발걸음을 옮겨 내 앞으로 다가온 양희연이 내게 말했다.

"왔네?"

"너는 왔으면 연락을 좀 해라. 톡은 어따 팔아먹었어?"

"하이고, 그라는 니는? 벌써 건망증이 도졌나."

아무래도 저번에 만났을 때가 생각난 건 자기도 마찬가지인 듯, 나와 상황극이라도 하자는 것처럼 구는 양희연에게 나도 말을 맞춰주자, 녀석은 무어가 그리 재밌는지 킬킬댔다.

잠시 후. 서로 주문한 음료를 나란히 들고 자리로 돌아간 우리.

양희연은 무엇이 그리 급한 것인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내게 말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음, 말해봐라. 오늘은 내가 쏠게."

"왜 그리 서둘러. 커피 마실 시간 정도는 주라."

점심도 안 먹고 나오긴 했어도 아직 그렇게 배가 고프지는 않다. 애당초 뭘 먹을까 생각하고 나온 것도 아니고.

저번에도 시켰던 에스프레소를 조금씩 홀짝이는 나를 잔뜩 찡그린 얼굴로 보는 양희연. 나는 그 시선을 못 본 척 시꺼먼 커피를 천천히 음미하며 목으로 넘긴다.

음료를 홀짝이는 소리만이 작게 오가는 침묵 속. 슬슬 됐겠지 싶어 양희연에게 질문을 건넸다.

"그래서, 오늘은 왜 부른 거야?"

"……."

잠시 빨대를 문 채 말을 고르던 양희연이 똑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말을 얼버무린다.

"으음…… 뭐, 그리 대단한 건 또 아인데……."

아직 할 말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듯 보이는 모습. 살짝 한숨을 내쉰 나는 아직 잔에 남아 있던 에스프레소를 들이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아함이 깃든 양희연의 시선이 그런 나를 따른다.

'어차피 여기서 앉아만 있어 봐야 시간만 허비할 것 같고…….'

생각을 정리하기가 어렵다면, 일단 한 번 머리를 비워서 정리할 공간을 주는 게 낫겠지.

빈 커피잔을 챙겨 들고 아직도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는 양희연에게 말했다.

"가자, 밥 먹으러."

머리를 쉬게 하려면, 식사 후 오는 식곤증만 한 것이 또 없는 법이다.

***

"진짜 이거면 되나? 쪼매 비싼 데 가도 되는데."

잠시 후 내가 양희연을 끌고 도착한 곳은 바로 방금 있던 카페와 가까이 있던 평범한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였다.

양희연은 내 선택이 불만인 듯 투덜댔으나, 그게 햄버거가 싫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말한 대로 좀 더 나은 음식을 사주고픈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나도 웃으며 대꾸했다.

"인마, 학생이 돈이 어디 있다고 비싼 거 타령이냐. 난 여기면 됐는데. 뭐, 따로 먹고 싶은 거 있어?"

"그건 아인데……."

"그럼 그냥 먹어. 아, 난 라지맥 세트로."

"…… 그래, 알았다."

결국, 먼저 포기하기로 했는지, 지갑을 꺼내든 양희연이 카운터로 가 계산을 마쳤다.

"라지맥 세트 하나, 베이컨토마토치즈버거 세트에 음료는 밀크셰이크. 주문 맞으신가요?"

"네."

"예, 알겠습니다. 곧 나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카운터 점원이 말한 대로, 유명 프랜차이즈답게 주문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나온 햄버거 두 세트를 챙겨 든 우리는 곧 적당히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당장 손님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지만, 뭔가 중요한 이야기라면 조용한 편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인석에 서로를 마주 보고 앉은 나와 양희연 사이에 묘하게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씁, 이런 분위기 좀 별론데."

근데 아무래도 양희연 녀석은 먼저 말할 생각도 없는 것 같으니, 결국 내가 먼저 총대를 메기로 마음먹었다.

'우선은 좀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

"적당히 먹는 데엔 햄버거만 한 게 없다니까. 너는 햄버거 좋아하냐?"

"내는 뭐…… 그럭저럭?"

"진짜? 나는 콜라 대신 밀크셰이크 시키는 거 보고 햄버거 되게 좋아하는 줄 알았어."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바라보는 양희연. 나는 그런 양희연의 자리에 놓인 밀크셰이크를 감자튀김을 집어 먹던 손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너 혹시 햄버거 프랜차이즈 중에 가장 먼저 프랜차이즈라는 마케팅을 구사한 곳이 어딘지 알아?"

"어…… 아니. 어딘데?"

"여기야, 여기."

"진짜?"

놀랍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는 양희연. 뭐, 사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처음 운영한 건 사실 다른 곳이긴 하지만, 원본이 되는 레스토랑의 개업일만 따지면 이곳이 햄버거 프랜차이즈의 원조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사실 여기는 패스트푸드라는 개념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더 유명하지만.'

이제야 침묵을 깨고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은 양희연이 몸을 앞으로 내민다. 대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바디 시그널. 성공적인 대화 유도였다.

"근데 그게 밀크셰이크랑 뭔 상관인데?"

"사실 말이지, 이 가게가 초기에는 햄버거랑 밀크셰이크를 파는 가게였거든."

"콜라가 아니라?"

"어.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한 계기도 밀크셰이크 때문이었어."

"맞나."

점점 더 흥미를 보이기 시작하는 양희연의 반응에 맞추어 언젠가 배웠던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업소에 대한 이야기가 입에서 술술 쏟아져 나왔다.

창업자 형제와 프랜차이즈화를 제창한 인물 간의 불화나, 레스토랑을 단순한 음식을 사고파는 사업으로 그치지 않고 토지산업과도 매칭 하여 프랜차이즈를 발전시킨 일화 등등.

종국에는 감자튀김을 밀크셰이크에 찍어 먹는 방식이 굉장히 메이저하다는 말에 이르러선 양희연도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식사 중간중간 말을 좀 많이 섞다 보니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소비했지만, 양희연의 얼굴에선 불만스런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긴, 이 이야기는 요리사에게는 꽤 흥미로운 주제이니까.

그렇게 적당히 분위기가 풀린 것을 느낀 나는, 이내 줄곧 속에 담아두었던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래서, 오늘 부른 건 기말고사 때문이지?"

"아."

어느새 버거를 다 먹고, 방금 내가 알려줬던 방법대로 얼마 안 남은 감자튀김을 밀크셰이크에 찍어 먹어보던 양희연이 입을 벌린 채로 굳었다.

그 모습에 살짝 웃은 나는, 이내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양희연을 향해 말을 이었다.

"이 시기에 사람 불러서 할 말이 더 뭐가 있겠냐. 뭐, 레시피 짜는 게 힘들어서 그런 거야?"

"음…… 뭐, 들켰음 하는 수 없네. 맞다. 쪼매 골치가 아파가."

한 입 베어 문 감자튀김을 내려놓고 지참하고 있던 물티슈를 꺼내 손을 닦는 양희연. 나는 그런 녀석에게 괜한 짓을 한다며 타박했다.

"그럼 그냥 도와달라고 하지 그랬어. 뭘 밥까지 사주고 그러냐."

"마냥 도움만 받기도 좀 뭐하다 아이가."

"마음은 고마운데…… 아무튼, 뭘 도와주면 되는데?"

"혹시, 팁 하나만 알려줄 수 있나?"

"팁?"

"기말고사 창작 레시피 말이다. 다른 건 모르겠어도 양식이 잘 안 돼가…… 내가 아는 아 중에 양식 제일 잘 하는 건 니니께. 그런 거 만드는 팁 같은 거 혹시 없나 싶어 부른 기다."

"아."

'난 또 뭐라고.'

생각보다 간단한 요구에 고개를 갸웃했으나 금방 납득이 갔다. 창작 레시피라는 걸 처음 접하는 애들이 종종 하는 고민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 요리를 체계적으로 잘 배운 애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다.

'나도 저랬었지.'

시험의 의도는 결코 학생보고 '이 세상에 없던 레시피를 만들어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음…… 창작 레시피는 적당한 레시피 몇 개만 잘 섞을 수 있어도 중박 이상은 치는 거긴 한데……."

그 사실을 어떻게 전달해야 잘 알아들을까 고민하다가, 이내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

'백문이불여일견이지.'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나은 법.

그 고사성어를 그대로 활용할 시간이다.

"야, 들어가자."

"응?"

"보여줄게. 레시피 만드는 팁."

"?"

의아한 표정을 짓는 양희연을 보며 말을 이었다.

"밥값은 해야지."

원래 받은 은혜는 확실하게 갚는 주의다. 아, 근데 그 전에 장은 좀 보고 들어가자.

***

마트에서 소화를 겸한 쇼핑 후,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김철정의 인사에 건성으로 답하며 지금 막 사 온 재료를 냉장고 속에 넣은 뒤, 다시 챙길 것만 챙겨서 주방으로 내려왔다.

기숙사 정문에서 헤어졌던 양희연 또한 짐이 없던 덕분인지 나보다 한발 앞서 주방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준비성 철저하게 조리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내가 챙겨온 재료를 하나둘 조리대에 올리자 양희연이 이게 다 뭐냐는 듯 나를 바라본다.

"별거 없어. 그냥 적당히 시연만 해줄 테니까 보고 있어 봐."

양희연을 한 발짝 뒤로 물린 뒤 재료를 확인한다.

오일, 소시지, 양파, 파프리카, 파스타, 계란, 케첩, 버터, 밀가루 외 기타 등등.

'재료는 오케이.'

그럼 이제 요리를 시작할 차례.

먼저 준비할 것은 소스다.

프라이팬에 약불로 열을 가하여 버터 한 덩어리를 잘 녹여준 뒤, 그것에 밀가루를 볶아 루를 만든다. 색은 진한 갈색이 될 때까지. 색은 변해도 타지는 않게끔 불을 조절해 주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색 좋고.'

잘 볶아진 브라운 루에 물과 케첩, 우스터소스, 설탕을 비율에 맞게 넣어 한소끔 끓여준 뒤, 식초를 살짝 넣어 약한 산미를 더해 주면 소스는 간단하게 완성된다.

"오므라이스 소스?"

"정답."

너무 정석 그 자체인 레시피인 탓일까, 양희연이 특유의 눈썰미로 단숨에 그 소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순식간에 묘하게 불신 섞인 표정을 지어 보이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살짝 웃었다.

'아직 실망하기는 많이 이르지.'

녀석을 깜짝 놀라게 해주려면 지금부터 조금 바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앞서 화구에 올려놓은 끓는 물에 면을 넣어 엉겨 붙지 않도록 잘 저어준 뒤, 미리 세척 한 파프리카, 양파, 양송이 등을 비롯한 채소와 소세지를 엇비슷한 크기로 썰어준다.

계란 네 개 정도를 한 그릇에 담아, 잘 풀리게끔 젓고 약하게 소금으로 간.

"아!"

양희연은 그제야 내가 준비하고 있는 요리의 정체를 어렴풋이 깨달은 듯 탄성을 내질렀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녀석인데, 모를 리가 없지.'

마침 요리도 슬슬 완성되기 직전. 되도록 녀석이 받은 충격이 해소되기 전에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 속도를 더한다.

프라이팬 두 개를 한꺼번에 불에 올려 양쪽을 동시에 조리하기 시작했다.

한쪽에는 방금 썰어둔 채소와 소세지를 넣어 센 불로 단숨에 볶아주고, 한쪽은 적당히 약한 불로 바로 다음 요리를 할 수 있게끔 달군다.

─치이이이익!

프라이팬에서 수분을 튀기며 고소한 향을 풍기기 시작하는 채소와 소세지. 그 위로 삶은 스파게티를 넣은 뒤 케첩을 넣고 잘 볶아주면……!

'나폴리탄 스파게티, 완성!'

요리 하나는 끝났지만, 내 진짜 요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에 올려두었던 프라이팬이 적당한 온도로 달궈진 것을 확인한 뒤, 방금 그릇에 풀어두었던 계란을 투입!

─치이이이이익!

프라이팬의 열기로 순식간에 익기 시작하는 계란물을 열심히 휘저어 조그마한 응어리들을 만든 뒤, 다른 곳보다 먼저 익은 끝부분을 젓가락으로 접어 손목 스냅을 이용해 럭비공 모양으로 만든다.

─톡! 톡!

언뜻 보면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양식 조리사 자격증 시험의 실기 메뉴로도 사용될 만큼 제법 난도가 있는 요리. 오믈렛이 바로 내가 만드는 두 번째 요리였다.

손목을 살짝살짝 튕겨줄 때마다 반듯한 럭비공 모양이 되어가는 오믈렛. 마침내 완벽한 모양으로 완성된 오믈렛을 조심스레 뒤집개로 들어 앞서 완성한 나폴리탄 스파게티 위에 얹는다.

'여기가 바로 이 요리의 백미지.'

드디어 요리의 마무리 단계.

오믈렛을 얹은 나폴리탄 스파게티가 담긴 접시를 양희연 앞에 내려놓고, 손에 든 칼을 이용해 오믈렛의 정 가운데를 반으로 가른다.

"와아……."

나비로 변태하는 번데기의 우화가 이러할까. 봄을 맞아 개화하는 꽃봉오리가 이러할까.

중력을 거스르지 않고 칼집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오믈렛 속에서, 마치 금덩어리가 흘러내리듯 터져 나오는 내용물을 두 눈으로 목격한 양희연이 탄성을 흘린다.

'이게 바로 진짜 오믈렛이지.'

본토에서는 완전히 익어 버린 오믈렛은 오믈렛으로 쳐주지도 않는다. 딱 이 수준으로 익혀야 계란의 비린 맛을 없애면서도, 부드럽고 크리미한 맛을 완전히 살린 제대로 된 오믈렛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끝으로, 다시 한번 살짝 끓여서 온기를 준 소스를 한 국자 떠서 오믈렛 위로 부어주면……!

"나폴리탄 오므라이스 스파게티, 완성이다. 한 번 먹어 봐."

이게 바로, 내가 양희연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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