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63화 (63/403)

63. 그 곰이 대회를 끝내는 방법.─1─

이윽고 모든 작품의 정리가 끝난 전시장.

아까까지만 해도 총천연색으로 빛나던 작품들과 그런 작품을 곱게 비춰주던 조명들이 마치 한여름 밤의 꿈 마냥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전시장은 그 화려함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청결함이라는 이름의 황량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우리들은 조리모를 벗은 조리복 차림으로 그런 전시장에 불려나왔다. 각 팀마다 옹기종기 모여 떠들썩한 와중 신기하다는 듯 여준기가 말했다.

"와. 언제 부스까지 다 치웠대."

아무래도 전시한 작품의 가짓수가 꽤 만만치 않았던 만큼, 치울 것도 상당했던 탓에 설거지를 도맡느라 고생한 티를 팍팍 내며 어깨를 돌리는 여준기.

통통하던 녀석이 이 반나절 새에 홀쭉해진 것 같은 착각에 살짝 웃으며 대꾸했다.

"너야말로 언제 그렇게 살이 빠졌냐."

"어, 진짜? 안 그래도 요즘 먹는 거 조절하고 있었거든."

"웃기시네. 쟤 방금 자기 혼자 메뉴 세 개 시키고 우리가 하나 먹을 동안 그걸 다 해치우더라."

"아 좀!"

옆에서 끼어든 송지영의 양심선언에 울분을 터트리는 여준기와 그것을 보며 웃는 일행.

'다들 긴장을 좀 덜어내려는 거겠지.'

나는 살짝 가늘어진 눈초리로 곧 심사위원이 들어올 테이블을 살폈다.

곧 있어 시작될 1차 점수 공개.

아무리 이의신청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심사위원들도 녹록하지는 않다. 자기들이 어떤 이유로 어떻게 채점했는지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확실한 근거를 가진 사람들이다.

'보통 이의제기는 십중팔구 반려되니까…….'

즉, 1차 점수를 최종 점수로 보는 것이 좋다는 것.

요컨대 이 자리는 점수가 아닌 수상자를 공표하는 자리라고 보는 것이 옳다는 뜻이다.

다른 아이들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일부러 저러는 것이겠지. 자기들은 태연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아직 한껏 긴장하고 있다.

그런 일행의 모습에 작은 웃음을 흘리고는 입을 열었다.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마. 잘 될 거야."

내 말을 어떻게 알아들었는지는 몰라도, 그제야 다들 조금 조용해졌다.

'애들은 이쯤 하면 됐고…….'

고개를 돌려 재빨리 주변을 훑었다.

긴장하고 있던 건 우리만이 아닌 듯 다른 팀들도 꽤나 소란스러워 보였다. 하긴, 이 업계에서 조금이라도 대우를 받으려면 수상 이력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건 여기 나올 학생이라면 모를 리 없는 사실일 테니, 자연스레 절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묘하게 여유로워 보이는 팀이 하나 눈에 띈다.

진강태. 저 녀석이 이끄는 정찬고 팀이다.

'아마 속으로는 이미 우승한 기분인 것 같은데…….'

그렇게 쉽게 기뻐하게 놔둘 순 없지. 저 여유로운 낯짝에 찬물을 끼얹어줄 생각에 벌써 기분이 고조됐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까, 이내 전시장의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주최측 운영위원이 들어와 우리를 향해 외쳤다.

"참가자 여러분! 곧 심사위원을 통한 1차 점수 발표가 있겠습니다. 자리에 착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 지금부터 시작이다.'

딱 대라. 진강태. 그 콧대를 아주 으깨줄 테니까.

***

운영위원의 공지가 있은 지 몇 분.

의자에 앉은 참가자들의 시선 속, 열린 문 저편으로부터 다섯 명의 심사위원이 나란히 줄을 맞춰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참가자들. 그들 대부분의 화제는 다름 아닌 오늘 대회의 특별 심사위원 자격으로 초청된 루이스에게 쏠려 있었다.

"와, 근데 진짜 저 셰프는 여기 왜 온 걸까?"

"그러게. 난 저 사람 한국에 있는 것도 신기해."

"그래도 혹시 아냐? 저 사람이 호평했다는 기사 한 줄만 실려도 어지간한 업장에서는 프리패스일걸?"

"그게 말처럼 쉽냐. 루이스 셰프 방송 나오는 거 못 봤어? 조금만 못해도 바로 들이박잖아."

"하긴…… 되게 깐깐하지."

"하아…… 아무래도 좋으니까 점수 좀 잘 줬으면 좋겠다."

하나하나 자리를 채워 앉는 심사위원들을 보며 찬혁 또한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루이스 셰프 쯤 되는 양반이…….'

아까 작품을 설명하며 직접 대면했을 때에는 내심 놀라 깊게 신경 쓰지 못했던 그 사실에 의문을 품은 찬혁이었으나, 결국 그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기도 잠시, 심사위원이 전원 착석하자 어디선가 단상과 이동형 스크린, 빔 프로젝터를 들고 온 운영위원들이 기구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세팅이 끝나자, 심사위원 중 가장 끝 좌석에 앉아 있던 배도윤이 일어서 단상에 섰다.

"안녕하세요. 참가자 여러분. 저는 이번 대회의 심사위원을 맡은 배도윤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그녀의 목소리.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한다는 것일까. 전시가 한창 진행 중일 때 들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사무적인 목소리에 몇몇 참가자들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배도연 본인은 그런 일에 아랑곳 않는다는 듯 평탄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지금부터 1차 점수 발표가 있겠습니다. 점수는 총 세 번에 걸쳐서 발표되며, 첫 번째는 관객 투표 점수. 두 번째는 심사위원 점수. 세 번째는 그 둘을 비율에 맞춰 합산한 점수가 발표될 예정입니다. 질문 있으신 분 계십니까?"

전달해야 할 사항만을 간단히 이야기하는 배도연. 잠시 말을 끊은 그녀가 무감정한 눈초리로 참가자들을 살폈으나, 그 물음에 손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확인을 마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은 없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럼 관객 투표 점수입니다. 관객 투표는 입장권의 티켓 번호가 확인 된 여러분의 부스마다 배정된 QR코드를 통하여 협회 홈페이지에서 1인당 1점의 점수를 부과할 수 있습니다. 여러 부스에 투표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한 부스의 중복 투표는 불가능합니다. 이의 사항이 있으실 경우 언제든 참가자 본인의 핸드폰을 통하여 시간대 별 투표 현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빔 프로젝터와 무선으로 연결된 노트북을 통하여 직접 확인 방법을 시연해 보인 배도연이 물을 한 모금 들이키고는, 발표를 개시했다.

발표는 참가자들의 상상보다도 훨씬 무감각하고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다. 오죽하면 그 분위기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해 안색이 좋지 못한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어느 의미 인생이 걸린 채점이니까.'

찬혁은 그런 심사위원들의 태도에 나름 납득하고 있었다.

이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들인 연습시간 뿐만이 아니라, 이 대회에서 수상을 통해 챙길 수 있는 명예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당장 이력서에 적힐 수상경력 한 줄이 여타 부차적인 사항을 찍어 누를 수 있는 명함이 될 수도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지석고등학교 팀. 41표. 영천고등학교 팀. 44표."

배도연의 입을 통해 한마디 말이 나올 때마다 희비가 엇갈린다.

어느 한 곳에서는 탄식이, 어느 한 곳에서는 탄성이.

배도연이 발표하는 순서를 묵묵히 듣던 찬혁은, 이윽고 그 순서가 낮은 점수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찬혁아. 이거 아무래도……."

"어. 네 생각이 맞는 것 같다."

성심고의 팀원들도 마찬가지로 그 사실을 알아챈 듯 그렇게 질문해오자, 찬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그렇게 서로 의견을 나누는 와중에도 점수 발표는 이어졌다.

100점, 150점, 200점. 어느새 300점을 향해 달려가는 점수.

그리고, 그때가 되도록 성심고의 이름은 배도연의 입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찬혁은 주먹을 굳게 쥐었다.

'됐다.'

정찬고의 레시피를 보고 급하게 궤도를 바꿔 급조한 계획이긴 했으나, 찬혁의 노림수는 훌륭하게 맞아 들어갔다.

실제로 찬혁이 전시회 때 미관이 훌륭하다고 평가한 팀들의 이름은 이미 거진 다 나온 상황. 그 말은 즉, 관객들은 그 팀들보다 찬혁의 팀에 더 많은 한 표를 행사했다는 것이었으니까.

투표 점수가 300점을 넘어서고, 어느새 전시에 참여한 30개의 팀 중 단 두 팀이 남았다. 다름 아닌 찬혁의 팀인 성심고와 진강태의 팀인 정찬고였다.

찬혁은 식은땀을 흘리며 두 손을 모아 쥐고 정찬고 팀이 앉아 있는 자리를 향해 눈을 돌렸다. 진강태. 그는 아직도 여유가 넘친다는 듯 팔짱을 낀 채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 후, 적막에 빠진 전시장 사방으로 한 팀의 이름이 뻗어 나간다.

"정찬고. 350점."

'좋았어!'

그것은 바로 정찬고, 그들의 이름이었다.

찬혁의 시야가 진강태의 거만한 얼굴이 한껏 찡그려지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어떠냐.'

한껏 통쾌하다며 크게 웃어주지 못하는 것이, 찬혁의 유일한 불만거리였다.

직후, 성심고가 관객 400명 중 90%인 360명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 발표 됐을 때에는, 그 웃음마저 참지 못했지만 말이다.

***

"그래도 아직 방심하진 말자. 심사위원 점수가 남았어."

내가 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1차 목표였던 주목도를 끄는 계획. 그것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점수만을 보면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니었다.

"관객 점수는 2할밖에 적용되지 않아. 그렇게 보면 정찬고 점수는 70점. 우리 점수는 72점이다. 고작 2점 차이야."

심사위원 점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인당 10점. 총 50점 중 저들이 우리보다 3점 이상 앞선다면 허무한 역전패를 당하는 것이다.

'아마 저쪽도 그걸 아니까 저렇게 날을 세우고 있는 거겠지.'

방금 슬쩍 확인한 진강태의 상태를 떠올리며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아무래도 이제야 우리가 좀 제대로 보이는 것 같은데, 너무 늦었어.'

아마 급격한 계획 수정이 아니었다면 결과는 반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팀의 전략서라고도 할 수 있는 레시피 북을 사죄의 표시라며 그냥 넘겨 버렸을 때부터, 저 녀석은 이미 우리를 제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얘들한테는 아직 방심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사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하거든.'

3점 차이? 어림도 없다, 요 녀석아.

아무런 변경이 없던 레시피도 진강태의 팀이 만들 것에 전혀 꿇리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팀원들은 더 고달파진 조리 과정 속에서도 원래 계획했던 것 이상의 퀄리티를 뽑아내 주었다.

관객 점수로도, 심사위원 점수로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그 말은 즉.

"정찬고. 42점."

우리의 우승은, 확정적이라는 뜻이다.

"성심고. 46점. 이상입니다."

"으아아아아!"

"됐다! 우승이야!"

배도연 셰프의 입에서 마지막 순서로 나온 우리 팀의 이름에, 도저히 억누르지 못한 팀원들의 함성이 대회장 전체를 떨리게 할 기세로 울려 퍼졌다.

나조차도 환한 웃음을 감히 숨기지 못할 그때, 사건은 일어났다.

─콰당!

"말도 안 돼!"

진강태. 의자를 거의 부술 기세로 박차고 일어난 녀석이 심사위원을 향해 소리쳤다.

"인정 못 합니다! 어째서 제 점수가 그것밖에 안 됩니까?!

숫제 악을 질러가며 자신의 점수의 반박하는 그에게 배도연 셰프가 싸늘한 목소리로 답했다.

"정숙하세요. 진강태 선수. 이의가 있다면 최종 점수 발표 이후에 받겠습니다."

"이익……!"

배도연 셰프의 냉철한 반응에 이를 악문 진강태. 더이상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쉬이 자리에 앉으려 들지도 않는 그의 모습에 셰프가 작게 한숨을 뱉었다.

"다시 말하겠습니다. 진강태 선수……!"

『어이, 잠깐 기다리지.』

『셰프?』

경고를 줄 목적인지,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다시 말을 이으려던 그녀를 루이스 셰프가 막아섰다. 배도연 셰프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루이스 셰프는 삿대질로 그녀의 마이크를 가리키고는, 다시 자신을 향해 손짓한다. 마이크를 달라는 뜻이다.

『잠시만요, 셰프. 이건 저희가…… 』

『됐으니까 얼른 주게. 저 꼬마가 아까 내가 말했던 그 팀 아닌가? 그럼 점수를 그렇게 먹은 건 나 때문이잖나. 내가 설명하지. 통역 좀 부탁합세.』

『…… 예. 알겠습니다.』

루이스 셰프의 강권에 하는 수 없다는 듯 배도연 셰프가 그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루이스 셰프의 알 수 없는 단어 선정에 의문을 품었다.

'루이스 셰프 탓? 무슨 소리지?'

그 의문을 해소할 틈도 없이, 마이크를 손에 쥔 루이스 셰프는 기다렸다는 듯 진강태를 향해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넉살 좋게 말을 건넸다.

『이봐, 거기 애송아.』

"……."

'오.'

꽤 도발적인 단어를 초장부터 박아버리는 모습이 너무 내 기억 속 그의 모습과 똑같아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난 네게 5점을 줬다.』

─빠득!

진강태의 이마에 족히 5미터는 될 거리를 두고도 훤히 보일 정도로 선명하게 핏대가 선다.

하지만 그런 그를 향한 루이스 셰프의 표정에서는 여전히 너털웃음이 멎지 않는다.

그 광경이 꼭. 고양이가 곰을 향해 털을 세우는 모습 같아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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