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62화 (62/403)

62. 그 남자가 어그로를 끄는 방법.-4-

식사를 끝내고 온 아이들에게 뒤늦게나마 방금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성공적인 관객 유치.

갑자기 등장한 루이스 셰프와 배도연 셰프.

그들과 나눈 대화 등등.

짧은 이야기가 끝에 다다르자, 의아한 표정을 지은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다 알겠는데, 아인슈타인이니 폰 노이만이니 하는 건 무슨 소리야?"

"나도 몰라."

그 사람 정신세계는 종종, 아니. 대체로 이해 못 할 때가 많다.

어느 한 분야의 정상에 오른 사람일수록 정신머리가 정상적이지는 않다는 낭설에 설득력을 실어주는 사람이다.

"그래도 뭐, 안 좋게 말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크게 걱정하진 않아도 될 것 같아."

반응도 꽤 괜찮았다. 그 아저씨는 마음에 안 들면 얼굴부터 속내가 드러나는 사람이다.

"이제 대충 알겠으니까 너도 얼른 밥이나 먹고 와. 여긴 우리가 볼게."

"그럴래? 안 그래도 배고팠거든. 그럼 여기 좀 잠깐 부탁할게."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일행에게 관객분들께 알려야 할 주의사항 등을 말해 준 뒤에야 나는 겨우 발을 뗄 수 있었다.

그나마도 무슨 일 생기면 꼭 전화부터 하라고 한 나를 애들이 억지로 떠나보낸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뭐 먹지."

안창민에게 맡겨놓았다가 돌려받은 카드. 학교에서 우리 밥 먹을 때나 현장에서 필요한 거 있으면 사라고 준 카드다. 덕분에 대회까지 나와서 배곯을 걱정은 안 해도 되니 감사할 따름이다.

라커룸에서 조리복 대신 교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바깥으로 나와 대회장 주변을 가볍게 한 바퀴.

바깥에도 여기저기 식당이 보이지만, 대회장 안에도 따로 푸드 코트가 있는 만큼 굳이 나가서 먹을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냥 안에서 먹지 뭐."

결국 다시 대회장 안으로 들어온 나는 푸드 코트를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결국 대충 아무 식당이나 골라 자리를 잡았다.

주문도 평범하게 비빔밥에 된장찌개 정도만 시켰다.

'…… 뭐라도 좀 더 시킬까.'

아침도 과일에 요구르트 정도라 살짝 부실했고, 한 일도 많아서 평소보다 조금 더 배가 고프다.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적당히 빨리 먹고 올라가서 애들이나 도와줘야지.'

주문한 지 얼마 안 되어 나온 비빔밥을 적당히 된장찌개 국물로 비벼 서둘러 입으로 넘겼다. 시장을 반찬 삼아 재빨리 음식을 털어 넣고, 마무리로 음료수 한 병을 사서 입가심을 했다.

"자, 그럼……."

이 정도면 충분히 먹었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팀원들과 자리를 교대한 지 30분이다. 벌써…… 라고 말하기는 애매한 시간이지만 그래도 팀장이 자리를 너무 오래 비우는 것도 좋지 않다.

"에게, 그것만 먹고 괜찮아요? 엄청 고생했을 텐데."

"응?"

그때였다. 내 옆자리에서 누군가 내게 그렇게 말한 것은.

누구인가 싶어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여자애 한 명이 보였다.

'누구지?'

딱 보아도 나보다 살짝 어려 보이는 여자 아이. 귀엽지만 낯선 얼굴이었다.

의아한 표정을 짓고 빤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 아이는 돈까스를 썰던 것을 멈추고는 말을 잇는다.

"방금 전시장 보고 왔거든요. 중앙 쪽 부스에 있었죠? 되게 잘 만들었던데요."

"아."

우연찮게 발이 엇갈린 관객이었나 보다. 나는 그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봐줘서 고맙습니다."

"편하게 말하셔도 돼요. 16살이거든요, 저. 오빠는 17살 맞죠? 심사위원 분들이랑 이야기하는 거 들었어요!"

만난 지 30초 만에 꽤나 서슴없는 호칭을 쓴다.

떨떠름한 표정이 얼굴 위로 지어지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저도 요리사가 꿈이거든요! 친척 중에 한 분이 요리사라 이것저것 많이 배우고 있어요! 이번 대회도 공부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와 본 건데, 오빠가 만든 것만 봐도 오길 잘한 것 같아요! 저도 오빠처럼 요리를 잘하게 되고 싶어요!"

"그, 그래?"

한 번 말문이 트이니 거의 둑이 터져 나오듯 쏟아지는 말에 나는 무심코 몸을 뒤로 뺐다. 이건 좀 귀찮은 타입이다. 그런 생각에 자리를 피할 방법을 찾다가, 벽에 걸린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미안하다. 팀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내가 말하고도 굉장히 어색한 연기였다. 아니, 사실이긴 하지만.

그런 내 변명에 속아 넘어가 주는 것인지 그 아이가 아쉽다며 울상을 짓는다.

"조금 더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할 일이 많을 테니 잡으면 안 되겠죠! 대회, 남은 시간도 열심히 하세요! 응원할게요!"

"응. 고맙다. 너도 힘내렴."

"넹!"

간단한 작별인사 후. 괜히 잡히지 않도록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러던 중, 가볍게 머릿속을 스치는 의문이 하나.

"…… 내 나이, 루이스 셰프한테만 말하지 않았나?"

배도연 셰프한테는 따로 말한 기억이 없다. 그럼 영어로 대화하는 걸 알아들었다는 뜻인데…….

'…… 뭐, 영어 좀 잘할 수 있지.'

그다지 고민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에 신경을 껐다. 일단 지금 중요한 건 대회. 이후에 있는 일정이라고는 심사와 시상식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예정되어 있던 전시 시간은 1시부터 5시까지, 약 네 시간.

우리들의 작품에 몰린 인파가 너무 많았던 탓에 소동이 좀 진정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된 휴식조차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지금은 30분 간격으로 멤버를 교체해가며 어떻게든 쉬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마침 쉬는 시간을 만끽하고 돌아온 백예은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다녀왔어~. 이제 혁이가 쉴 차례지?"

"아마? 야, 찬혁아! 너 쉬러 갈 차례 아냐?"

맞기는 하지만, 나는 그런 그들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나는 됐어. 어차피 전시 끝날 때까지 20분도 안 남았는데 뭐."

그렇게 말하고는 시계를 바라본다. 4시 반을 조금 넘긴 시간. 5시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는 나를 보며 안창민과 송지영이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그래도 조금만 쉬고 오는 게 낫지 않겠어?"

"시간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냥 푹 쉬고 와. 우리는 다 한 번씩 쉬고 왔는데 너만 한 번도 안 쉬었잖아."

나를 걱정하는 일행에게 웃으며 답했다.

"어차피 전시 시간 끝나면 바로 가져가서 심사위원들끼리 점수 종합하는 동안 싹 치워야 하는데, 그거 하려면 남아 있는 게 나아."

그것 말고도 뭐, 팀장이 있는 편이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애들에게 손을 저어 보였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아직 팔팔하다.

'그나저나…….'

슬슬 관객이 줄기 시작한 전시장. 아마 방금 시작했을 라이브 대회를 보러 간 것이겠지. 덕분에 여유가 좀 생겨서 전시장을 돌며 다른 팀들이 만든 작품을 살폈다.

'여긴 제법이고…… 저기는 그럭저럭. 오, 저건 좋다.'

나름 대회라는 것인지 평균적인 수준이 꽤 높다. 특히 전시는 교사들이 미리 레시피 등을 짜주거나 플레이팅을 아예 외우게 만들 때도 있기 때문에 조금 더 탈 학생적인 분위기가 짙은 작품들이 몇몇 있었다. 정찬고에 이르러서는 아예 기성 레시피였고.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애당초 나는 학생 탈을 쓴 프로 아닌가. 아무래도 속으로는 좀 반칙을 저지르고 있는 기분이 없잖아 있다.

그렇게 전시장을 한 바퀴를 돌아 우리 자리로 돌아가려던 그때, 누군가 내 앞길을 막아섰다. 조리복을 입은 남학생 두 명. 어디서 봤던가 싶어 얼굴을 살피다가, 이내 누군지 깨달음과 동시에 얼굴이 팍 찡그려졌다.

"정찬고 분들 아닙니까?"

아까 주방에서 진강태와 작게 실랑이를 벌일 때 그를 말리던 남학생들이었다. 전시가 잘 풀려서 좋았던 기분이 순식간에 곤두박질 쳤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고개를 푹 수그리고 내게 머리를 숙여 보였다.

"맞아. 그, 성심고 팀장인 류찬혁 맞지?"

"미안하단 말이 하고 싶어서."

"…… 예?"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당사자는 어디 가고 왜 애꿎은 사람들이 와서 나한테 사과를 하는 걸까? 내가 그것을 묻자 나오는 대답은 보다 더 가관이었다.

"…… 효민 선배 경기를 구경하러 갔다고요?"

"응……."

"허어……."

아까부터 효민 선배를 찾아 노래를 부르더니, 이 정도면 말이 안 나온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 난리를 치는 건지.

작게 한숨을 내쉰 내가 그들에게 말했다.

"됐어요. 그 사람 잘못을 왜 여러분이 사과합니까. 뭐 그 사람이 시켰어요?"

"아니, 그건 아닌데…… 그래도."

"그럼 가세요. 이따가 그 사람 오면 직접 와서 하라고 하든가요."

마음에 안 드는 행태에 혀를 찼다. 자기 잘못에 다른 이가 피해를 받는 것도 그렇지만, 특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말도 하나만 전해 주시죠."

"?"

의문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정찬고 사람들에게, 구겨질 대로 구겨진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전시용이라지만 다른 팀의 레시피를 함부로 보려고 한 것, 그 탓에 우리 팀원이랑 실랑이를 벌인 것, 괜히 딴 사람이 자기가 저지른 잘못으로 피해를 입게 된 것.

어느 것 하나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일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내 화를 돋우는 것이 있었다.

"주목해야 할 상대를 잘못 짚고 있다고요."

나는, 내 팀이 누구한테 무시당하는 꼴을 가장 싫어한다.

나를 바라보던 정찬고 학생들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흐음,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

잠시 후, 1차 점수 발표를 앞둔 정리시간.

자신의 팀원들을 통해 찬혁의 전언을 들은 진강태가 얕은 미소를 지었다.

"좋아. 알겠어. 나중에 내가 직접 가볼게."

자신을 대신해 굳이 듣지 않아도 될 핀잔을 듣게 만든 것은 미안한 일이었으나, 진강태는 찬혁의 말에는 수긍하지 않았다.

'주목해야 할 상대? 너야말로 착각을 하고 있다.'

이 대회에서 자신을 맞상대 할 수 있는 인물은 오로지 안효민 뿐. 아직까지도 변하지 않은 그 쓸데없는 자존심이 진강태의 눈을 흐리게 만들었다.

진실로 보아야 할 상대는 안효민이 아닌, 찬혁과 찬혁을 따르는 팀이라는 간단한 사실마저 분간해내지 못할 정도로.

그의 흐려진 눈동자가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향한다.

"어차피 그 녀석들도 곧 알게 되겠지. 자기들이 내 상대가 될 리가 없다는 걸."

이미 찬혁을 비롯한 다른 상대들의 작품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행동하는 진강태의 모습을 굳은 얼굴로 바라보는 그의 팀원들.

"……."

"……."

서로를 바라보며,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은 그들은 이내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마저 치우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곧 1차 점수 발표가 있을 시간.

진강태의 생각이 옳을지, 찬혁의 뜻이 옳을지.

그 모든 것이 정해질 시간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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