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61화 (61/403)

61. 그 남자가 어그로를 끄는 방법.-3-

『이, 이게 대체…… 』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입이 떡하니 벌어진 루이스가 저도 모르게 떨리는 손으로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어찌나 놀라웠는지, 한순간이나마 자신이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까맣게 잊게 만들 정도의 충격!

그의 눈앞에 있는 작품은 그를 떨게 만들기 충분한 힘을 갖고 있었다.

『이건…… 이 나라의 요리인가……?』

개인적인 사정 탓에 적지만 한식 공부를 한 적이 있는 루이스로서도 낯선 작품의 모습.

누르스름한 옅은 동색을 띈 철제 접시, 유기그릇에 정갈하게 담긴 스무 가지에 이르는 메뉴의 가짓수도 물론 놀라웠지만, 그것뿐이었다면 감탄은 했을지언정 이 정도로 경악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기그릇 중에서도 특히나 눈에 띄는 것.

둥글게 배치된 접시들의 가운데. 굴뚝이 달린 요상한 형태의 냄비, 신선로와 그 냄비에 달린 무언가의 형태가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신선로의 전후좌우. 사방에 자리 잡은 특이한 형상의 조형물들.

동쪽으로는 신선로의 몸을 휘감고 올라온 청록색 비늘이 가지런하게 늘어선 용.

서쪽으로는 냄비 끝 돌기에 가지런히 발을 모으고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흰 털의 호랑이.

북쪽으로는 마치 이제 막 냄비 안에서 기어 올라오는 듯 끝자락을 디딘 뱀 꼬리를 가진 거북이.

남쪽으로는 횃대에 서서 지금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것처럼 두 날개를 활짝 편 주홍빛 새.

그리고 마지막으로, 굴뚝에 똬리를 틀고 몸을 세워 매서운 눈빛으로 전방을 쏘아보는 황금빛 용까지!

선글라스를 벗고 거의 냄비에 충돌할 기세로 얼굴을 들이민 루이스는 그 모든 오브제가 다름 아닌 식재료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세상에 맙소사. 이게 다 푸드 아트라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온갖 특이한 문물을 두 눈으로 봐온 루이스였으나, 고작 청소년들이 벌이는 대회에서 이런 것을 볼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에게, 이 광경은 그야말로 머리를 쇠망치로 후려치는 것 같은 충격을 선사했다.

"우와……."

그리고 그것은 배도연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심사위원으로서 처음 성심고의 레시피 북을 받고 시간제한이 꽤 빡빡한 대회에서 수라상이라는 선택지를 고른 데에는 감탄과 우려를 표했으나, 실제로 본 작품은 그런 예상을 넘어서 경악하지 금치 못하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푸드 아트에만 신경이 팔려서 몰랐는데, 다른 메뉴들도 만듦새가 범상치 않아.'

한식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색 배합을 통해 흘러나오는 수려한 멋.

작은 재료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섬세함과 정갈함.

너무도 화려한 푸드 아트와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수려한 음식들의 대비가 이율배반적인 조화로움을 만들어낸다.

넋을 잃고 심사위원이란 입장마저 망각한 채 혼이 빠져라, 작품을 감상하던 두 사람은, 이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작품 주변을 훑었다.

자리에 남아 자신들이 만들 작품을 지키고 있을 참가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들의 눈이 같은 곳으로 모여든다.

그들의 반대쪽에서 큰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주의사항을 읊고 있던 류찬혁에게로.

***

"실례하겠습니다! 작품 보존을 위해 사진을 찍으실 때는 카메라의 플래시를 사용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플래시의 열로 작품에 손상이 갈 수 있습니다! 카메라의 플래시는 사용하지 말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체 이 소리만 몇 번째냐…….'

점심시간은 이미 지나가고 있었지만, 누군가 남아 전시품을 관리할 필요가 있었던 탓에 다른 아이들 먼저 밥이나 먹고 오라고 보낸 상황.

다음 날 일어나면 목이 쉬어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관객들에게 주의사항을 말해 주던 나는 이내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계획은 성공이네.'

부족한 주목도를 대체 어떻게 해야 충족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던 내가 내린 결론은 바로 이것이었다. 푸드 아트를 만드는 것.

'너무 오랜만에 해서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특기를 나름 잘 살린 편이겠지.

회귀 전, 연회주방에서 설탕, 얼음, 식자재를 가리지 않고 푸드 아트를 꾸미던 실력이 어디 가지는 않았다. 마지막 플레이팅 점검도 완벽했고, 아스픽 처리도 꼼꼼하게 했으니까.

그 증거로, 현재 우리 팀의 작품 앞에 모여든 인파는 적어도 맞은편에 있는 정찬고의 전시품에 결코 밀리지 않았다.

내가 만든 푸드 아트에 이끌린 관객이 이어서 자연스레 작품을 관람하게 만드는 것.

어느 한쪽에 너무 과하게 힘이 쏠리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다.

"와, 이거 엄청 잘 만들었다. 학생이 직접 만든 걸까?"

"에이, 아니겠지. 교사나 업체에서 만든 거 갖다 붙인 거 아냐?"

'거 실례되는 소릴.'

이건 100%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수제품이란 말이다. 애당초 그렇지 않았으면 장식도 못 했을 테고.

살짝 기분은 상했지만, 그래도 예쁘다, 멋지다 감탄을 해가며 사진을 찍는 데에 열중하는 모습이 보기 흡족하다.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툭툭 건드리는 것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

질문할 게 있는 관객인가 싶어 시선을 향한 그곳에는, 예상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서 있었다.

"루이스 셰프?"

바로 특별 초청 심사위원인 루이스 셰프와, 참가자용 서류에서 보았던 또 다른 심사위원인 여성 셰프였다.

내 어깨를 건든 것은 여성 셰프 쪽이었던 듯, 살짝 고개를 숙여 사과한 뒤 내게 질문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대회 심사위원인 배도연이라고 합니다. 성심고 팀장인 류찬혁 선수 맞으시죠?"

내가 가슴에 달고 있던 선수증을 힐끗 본 배도연 셰프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쪽에 계신 분은 특별 초청 심사위원을 맡고 계시는 루이스 셰프십니다. 소개는…… 아시는 것 같으니 하지 않아도 괜찮겠네요."

그 말에 수긍하니, 배도연 셰프는 루이스 셰프를 보며 영어로 나를 소개해 주었다.

『이 학생이 해당 작품을 만든 팀의 팀장인 류찬혁 선수에요.』

『안녕한가. 미스터 류. 난 루이스 하멜이네. 만나서 반갑네.』

배도연 셰프의 소개를 듣고 악수라도 하자는 것인지 솥뚜껑만 한 손을 내밀며 인사하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나도 영어로 답했다.

장백천 총주방장 같은 경우는 알아듣는다고 티를 내기에는 좀 애매한 상황이었으니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어도, 지금 그럴 필요는 없었으니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루이스 셰프. 류찬혁입니다.』

『호오, 꽤 영어가 유창하군.』

『요리사한테 중요한 건 의사소통이니까요.』

『맞는 말이야.』

작게 고개를 끄덕인 루이스 셰프의 손을 놓자, 이번에는 배도연 셰프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머, 회화도 요리 솜씨만큼 대단하네요, 류찬혁 선수."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요."

"? 예, 말씀하세요."

"이 조형물들, 어디서 가져온 건가요? 경우에 따라서는 규칙을 어겨서 실격처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네?"

갑작스런 발언에 깜짝 놀란 나를 보며 배도연 셰프가 말을 이었다.

"룰 북에 따르면 미리 신고하지 않은 장식품을 반입하거나 지급 받지 않은 식재료를 사용하여선 안 된다고 되어 있어요. 그리고 성심고 팀의 레시피 북을 봐도 저 장식들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네요.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깜짝이야. 난 또 뭐라고.'

아무래도 이 셰프는 이게 어디서 가져온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아쉽게도 틀린 말이었다. 나는 곧 깜짝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설명을 시작했다.

"저건 전부 지급 받은 식재료만 사용해서 제가 직접 만든 겁니다. 룰 북에서도 해당 사항에 위배되지 않는 레시피 변조는 인정된다고 알고 있는데요."

"예? 직접 만들었다고요? 정말인가요?"

"네. 주방 cctv를 확인해보셔도 좋아요."

이번에는 내가 아닌 배도연 셰프가 깜짝 놀랄 차례였다. 내 얼굴과 작품을 몇 차례나 번갈아 바라본 그녀가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고 말한다.

"사실이라면 분명 규칙 위반이 아니네요. 실례했습니다."

"아니에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애당초 학생이 만들기에는 난도가 너무 높은 조형이니까.

'나도 대체 몇 번을 때려치우고 싶었는지…….'

그래도 우승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죽어라 하니까 어떻게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의지의 힘이란 이리도 무서운 것이다.

고개를 숙이는 배도연 셰프에게 손을 저어 보이던 그때, 옆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던 루이스 셰프가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도 무슨 대화를 하는지 좀 알고 싶네만.』

『아. 죄송해요, 루이스 셰프.』

『아닐세. 그런데 대체 무슨 이야기를 들었기에 그렇게 놀란 건가?』

『이 작품, 류찬혁 선수가 직접 만든 거라고 하네요.』

『뭐라고?』

그 말을 들은 루이스 셰프가, 마치 방금 배도연 셰프가 보였던 행동을 흉내 내는 듯 작품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내게 성큼 다가섰다.

『이걸 네가 만든 거라고?』

『예. 그렇습니다.』

『자네 학생이라고 하지 않았나? 혹시 곧 졸업하는 고학년인가?』

『아니요. 17살인데요. 서양식으로 세면 16살이겠네요.』

『16살? 세상에. 동양인이라 어려 보이는 건 줄 알았는데 정말로 그냥 꼬마였군!』

묘하게 사람을 얕잡아 보는 말투에 배도연 셰프가 울상이 됐지만, 원래 이 사람 성격이 이렇다는 것은 알고 있는바. 이 정도면 꽤 좋게좋게 말한 편이다.

불신이 가득 깃든 표정을 지은 루이스 셰프가 거의 호통을 치듯 내게 말했다.

『믿을 수가 없구만! 류챤…… 챈…… 에잇! 이봐, 류! 그 말은 사실이겠지?』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었다. 회귀 전에도 항상 이름 발음이 어렵다고 성으로만 불렀더랬지. 무슨 중국인이나 일본인 부르는 것 같아서 싫어했지만, 결국 그것도 내 별명 중 하나가 되고 말했다.

'웃으면 안 된다. 웃으면 안 된다.'

스멀스멀 올라가는 입꼬리를 당기며, 이제는 숫제 씹어 먹을 기세로 내게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셰프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실입니다. 정 믿지 못하시겠다면 여기서 만든 방법을 전부 말해드릴 수도 있어요.』

『좋아. 어디 한 번 해보게.』

귀찮았지만, 하는 수 없었다. 이 셰프는 궁금한 건 절대 못 참는 성격인지라.

'적당히 설명해 주고 보내야지.'

『우선 설명하자면, 이건 예로부터 동아시아 지역에 널리 알려진 환상의 동물입니다. 대한민국 이전의 나라인 조선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동물이죠. 서양으로 치면…… 그리핀이나 유니콘처럼 일종의 심볼로 사용됐습니다.』

『오호.』

『사방에 있는 동물들은 동서남북. 방위를 지키는 동물이고, 가운데 금색 용은 왕을 상징하죠. 아무튼, 우선 이 동쪽에 있는 청록색 용부터 설명하자면, 이건 철사로 만든 뼈대 위에 마름모꼴로 잘라 식용색소를 탄 젤라틴 용액으로 아스픽 처리한 피망 껍질을 설탕 시럽을 접착제로 써서 붙여 만든 겁니다.

발톱은 전복의 이빨. 꼬리는 생선 지느러미. 머리는 새우 머리 위로 피망을 붙여 만든 거죠.』

『잠깐만. 그럼 저 비늘들을 다 일일이 손으로 붙인 거라고?』

『맞습니다.』

『용케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했군.』

'이런 미친놈을 봤나.'싶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셰프. 아쉽게도 반박할 말이 없었다. 나도 하면서 미치는 줄 알았으니까.

이후로도 내 설명이 이어졌다.

뼈대 위에 하얗게 만든 천엽을 가죽처럼 둘러 김으로 무늬를 표현한 백호.

등껍질은 자연산 전복의 껍데기, 발과 머리는 버섯, 몸통은 찜통에서 찐 밀가루 반죽. 마지막으로 철사에 검은 식용 색소를 섞은 아스픽 용액을 두껍게 코팅하여 조형한 뱀 꼬리를 붙인 현무.

비린내가 나지 않게끔 청주를 넣은 물로 데친 새우에서 벗겨낸 껍질과 꼬리지느러미를 설탕 시럽으로 붙여 풍성한 깃털로 바꾼 주작.

마지막으로 투명 아크릴 봉을 기둥 삼아 오로지 금박과 설탕공예만을 사용해 만든 황룡까지.

그 모든 설명을 들은 루이스 셰프와 배도연 셰프가 질린 표정을 짓는다.

"……그걸 세 시간 만에 만들었다고요?"

"다른 메뉴 만드는 시간도 있었으니까 실질적으로는 두 시간 정도 걸렸죠. 나중엔 팀원들이 도와줘서 생각보다 빨리 끝냈습니다."

"세상에……."

말도 안 된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배도연 셰프와 그 옆에서 아무 말도 없이 빤히 나를 바라보는 루이스 셰프.

이내 몸을 돌린 루이스 셰프가 가슴 주머니에 꽂아두었던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서는 배도연 셰프에게 말했다.

『어이, 배 셰프. 이만 가지.』

『에, 예?』

『더 이상 볼 필요가 없어졌소.』

『무슨 말씀이세요?』

그 발언에 당황스런 기색을 내비치는 배도연 셰프의 외침에, 그가 대꾸했다.

『아인슈타인과 폰 노이만이 봐야 할 작품은 이것 말고는 없어 보이니, 적당히 다른 작품들 구경이나 하고 가서 쉽시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는 듯, 루이스 셰프가 갈라지는 인파 사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 잠시만요! 아. 류찬혁 선수. 설명 감사합니다.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그럼 이만!"

배도연 셰프 또한 그런 루이스 셰프를 놓칠 수 없다는 듯 간단한 인사와 함께 자리에서 떠나갔다.

거 참. 올 때는 산이 다가오는 것처럼 오더니 갈 때는 바람처럼 사라지는 양반이다.

'아인슈타인? 폰 노이만? 대체 뭔 소리야?'

알 수 없는 소리를 남기고 떠나는 루이스 셰프의 뒷모습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내 옆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 어디서 얼굴 어디서 본 적 없어?"

"넌 대회까지 보러 온 놈이 어떻게 루이스 셰프를 몰라보냐?"

"뭐? 저 사람 루이스 셰프였어?!"

"어. 근데 쟤 루이스 셰프가 되게 칭찬하는 것 같던데? 다른 심사위원도 그렇고."

"못 들었냐? 저걸 직접 만들었다고 하잖아. 칭찬 안 받는 게 이상하지."

점점 귀로 들려오는 루이스 셰프와 나에 대한 이야기들에 당황한 내가 뒤통수를 긁적일 때. 또 다른 누군가가 내 어깨를 두들겼다.

이번에는 또 누구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팀원들이 있었다.

"야, 무슨 일이야?"

그런 안창민의 물음에, 나는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야, 요리랑 상대성 이론의 상관관계가 뭘까?"

"……뭐?"

내 대답에, 팀원들은 더더욱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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