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56화 (56/403)

56. 황새가 뱁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휜다.-2-

백예은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며 시간을 보낸 지도 나름 시간이 흘렀다.

흐트러진 모습을 결코 남들에게 보이려 하지 않는 저 녀석의 속내를 어떻게 바깥으로 꺼내야 할까 이래저래 고민을 해봤지만, 좀처럼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흐음…… "

솔직히 몇 번이나 고민해 봤다. 굳이 저 상태에서 건드릴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자잘한 실수 정도야 내 선에서 어떻게 커버가 가능한 수준이고, 사실 별로 큰일도 아닌 걸 해결하겠답시고 나서는 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 망설이기도 했다.

'예전에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었고.'

수 쉐프가 된 지 얼마 안 되던 시절. 승진을 했다는 기쁨에 무심코 흥분하여 부하들 사정에 너무 사사건건 참견했던 적이 있다.

물론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 때도 많았지만 방금 말했다시피 긁어 부스럼을 만든 적도 있었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의 개인적인 사정에 너무 파고들었다든지 하는 일이다.

한 번은 뭔가 이상한 짓을 하는 녀석을 불러서 따졌더니 이놈이 브레이크 타임 동안 마약을 빨고 왔던 것이 아닌가.

'그때는 정말 위험했지…… '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르며 대들던 녀석이 대뜸 칼갈이 봉을 들고 덤벼서 싸움이 벌어졌다. 그나마 열심히 운동을 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다른 부하들이 그 녀석을 말리기 전에 내가 다쳤을 수도 있었다.

'당연히 당일에 바로 해고됐지만…… '

지금 백예은이 떠안고 있는 문제가 그 정도로 무거울 리는 없을 테고, 과한 관심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으니 한발 물러서서 지켜보자, 그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려 했는데 말이지…… '

"야, 이거…… "

아무래도 그렇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너, 이거 뭐냐."

"그, 미안해. 실수했어……."

헤픈 웃음을 짓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백예은의 앞에는 오늘 연습 메뉴 중 하나였던 전복죽이 놓여 있었다.

적절하게 볶은 전복 내장을 딱 알맞은 비율로 끓여야 맑은 연두색 섞인 회백색이 나오는 전복죽. 그런데 내 앞에 있는 전복죽의 색은 회백색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칙칙하고 진한 녹색이었다.

"……."

정성을 다해 볶고 오랜 시간 끓여야 하는 전복죽이 만들기 어려운 메뉴는 맞다. 심지어 백예은이 만들던 메뉴는 이것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니 작은 실수가 나와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색이 잘못 나왔다는 건 내장과 쌀, 물의 비율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내장을 볶아서 색을 빼는 기본적인 과정을 똑바로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씁……."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머리에 피가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였더라. 회귀 전, 부하 녀석 한 놈이 실수로 내가 4시간을 공들여 만든 설탕공예 장식을 옮기다 떨어트려 산산조각이 난 것을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봤을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저도 모르게 스산해진 목소리가,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야, 백예은."

"으, 응?"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따라와 봐."

더이상 얼굴을 마주 보고 있어 봐야 좋은 소리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았기에, 나는 바로 등을 돌려 실습실을 빠져나왔다.

"후우……."

아무래도 오늘이 칼춤을 춰야 할 날인 듯 싶었다.

***

"쟤 갑자기 왜 저래?"

"모르겠는데……."

찬혁이 떠난 실습실에 남은 아이들이 서로 작게 웅성거렸다. 아이들이라고 해봐야 여준기와 송지영뿐이었지만.

"……."

안창민은 찬혁이 저러는 이유를 얼핏 눈치채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백예은이 만든 전복죽으로 향했다가, 이윽고 그것을 만든 본인을 향한다.

"으음……."

백예은은 그녀대로 이유를 아는 것인지, 짧게 숨을 내쉬고는 조리대를 정리한 뒤 찬혁을 따라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사실, 백예은은 자신의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 더 갈 것도 없이 한 달 전 찬혁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그때부터.

"……."

시작은 별것 아닌 한 통의 편지였다.

다름 아닌 백예은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보낸 짧은 편지. 그녀의 집에서 자주 사용하는 고급 편지지에는 「안영길 선생님께서 네 칭찬을 하시더구나. 잘 하고 있다고 들었다. 대회 준비 열심히 하려무나.」라는 짧은 글귀만이 적혀 있었다. 어찌나 짧은지 편지지 값이 아까울 정도였다.

문제는 안영길을 통해 유민하에게 백예은의 근황이 알려졌다는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인 유민하 여사는 전통 한식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유명인사다. 그리고 이 학교의 교장인 안영길은 말할 필요도 없는 궁중요리의 전문가. 이 둘 사이에 교류가 전혀 없다면 그게 이상한 것이겠지.

'일부러 집에 연락할 때도 학교 이야기는 많이 안 했는데…….'

애당초 그녀가 이 학교에 온 이유는 자신에게 너무 과하게 쏠린 어머니의 관심을 최대한 돌려놓기 위해서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최대한 쥐 죽은 듯 다니다 졸업할 예정이었는데, 찬혁에게 시선이 쏠린 나머지 너무 눈에 띄게 행동하고 말았다고 자신을 탓했다.

요즘 실수가 잦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여기서 더 이목이 집중된다면 다시 과거에 겪었던 일들이 재현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함과 두려움. 그것이 그녀의 집중을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마침내 조리대 정리를 끝마치고 작게 한숨을 내뱉은 백예은이 걸음을 옮긴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가자, 복도에 서서 창문 바깥을 내다보고 있던 찬혁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팔짱을 낀 채 한쪽 손을 올려 얼굴을 주물거리던 찬혁을 백예은이 작게 부른다.

"저기…… 나 왔는데."

"어, 그래."

백예은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찬혁을 보고 살짝 놀랐다.

'화난 건 줄 알았는데.'

그런 그녀의 생각과는 반대로, 찬혁은 평소처럼 침착하고 기복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찬혁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턱짓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자."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앞서 걸어가는 찬혁의 모습에 당황한 백예은이 서둘러 뒤를 쫓는다. 보폭의 차이 탓인지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하는 두 사람.

이윽고 중앙계단 근처에 있는 대회반 전용 휴게실 앞에 멈춰선 찬혁이 문을 열며 백예은에게 손짓했다.

"들어가 있어 봐. 자판기에서 마실 것 좀 뽑아올게."

"아, 응."

순순히 그 말에 따라 휴게실 안에서 잠시 앉아 있자, 이윽고 두 손에 음료를 쥐고 들어온 찬혁이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자, 받아."

"고마워."

백예은은 별생각 없이 찬혁이 건네준 음료를 받았다가, 그 캔에 적힌 상표를 보고 내심 깜짝 놀랐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엄청나게 호불호가 갈리는 코코넛 맛 음료수. 그녀가 좋아하는 음료였다.

"내가 이거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응? 그냥 내 취향대로 아무거나 뽑아온 건데?"

"아."

그렇게 말하는 찬혁의 손에는 블랙이라는 걸 자랑이라도 하는 듯 새까만 색의 에스프레소 캔커피가 들려 있었다. 예은은 그것을 보고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회귀 전에 그녀가 즐겨 마시던 음료수를 알고 있던 찬혁이 고르고 골라 뽑아온 것이었지만.

잠시 말없이 서로 음료수만 홀짝거리던 두 사람.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찬혁 쪽이었다.

"야."

"응?"

"그럴 거면 대회반 그만두지 그러냐."

그들 사이에, 아까보다 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

잠깐의 침묵 뒤, 마시던 음료수를 조심스레 책상에 내려놓은 백예은이 내게 물었다.

"혁아, 그…… 혹시, 화났어?"

"화났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났어. 꽤."

"그래……? 미안, 자꾸 실수만 해서……."

"아니, 그거 말고."

"응?"

요리 까짓거. 하다 보면 실수 좀 할 수 있다. 업장에서는 하루에 셀 수도 없는 실수가 일어난다. 그걸 해결하는 게 리더가 할 일이고.

내가 화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내가 화난 건 네가 실수를 해서가 아니야. 진지하게 요리에 임하지 않는 것 때문이지."

"……."

"벌써 한 달이다. 네가 그러는 거."

대회를 앞두고 거의 매일같이 대회반에서 연습을 한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알아서 나아지겠지 싶어 보고만 있었는데, 집중력이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떨어지고 있으니 이렇게 따로 불러내기까지 한 것이다.

"아마 무슨 사정이 있다는 건 알겠어. 당연히 그렇겠지. 사람이 별것도 아닌 일로 한 달씩이나 넋이 빠져 있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럴 거면 맨날 웃고 있지만 말고 뭐라고 말이라도 하란 말이다. 잠시 연습을 쉬고 마음 정리를 할 시간 정도는 충분히 있으니까."

"…… 그치만, 다른 애들도 빠지지 않고 연습하고 있잖아. 멋대로 빠져서 발목을 잡을 수는 없으니까……."

"발목을 잡다니, 누가? 네가?"

웅얼거리며 대답하는 백예은의 모습에 작게 코웃음을 쳤다.

"다른 애들이랑 속도 맞추려고 그 난리를 쳤으면서 농담도 잘 한다. 지금 이대로 당장 대회에 나가도 아무 문제 없을 거란 건 네가 더 잘 알잖아. 팀장 하면서 이제껏 내가 뭘 한 것 같아? 내가 그렇게 옹이눈은 아니야."

"……."

"네 문제를 말도 못 하겠고, 혼자 해결하지도 못할 것 같으면 그냥 내일 연습부터는 나오지 말고 쉬고 있어. 차라리 그 시간 동안 너랑 다른 애들 진도를 맞추는 게 효율적일 테니까."

'…… 말이 좀 심했나. 누가 보면 괴롭히는 줄 알겠네.'

대답 없이 고개를 푹 수그린 백예은을 보며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이번에 1학년 팀이 신청한 종목은 전시였고, 그때 내놓을 메뉴는 한식으로 결정된 상황. 그리고 나를 포함한 1학년들 중에서 한식만을 한정했을 때 솜씨가 가장 뛰어난 건 백예은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그런 자신의 실력에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그건 내 입장에서 보기에 굉장히 사치스러운 행동이었다. 어째서 자신의 찬란한 재능을 굳이 가리려 든단 말인가.

'서로 공감하지 못할 일이긴 하지.'

가진 자의 고충. 없는 자의 괴로움.

가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이용해서 정상을 노리는 나.

당장 주변을 속여가면서 그 자리를 지키려는 백예은.

'회귀 전에 봤던 이 녀석은, 조금 달랐는데 말이지.'

그때가 차라리 나았다. 그 시절의 백예은은 적어도 자기 재능을 숨기지 않고 만천하에 뽐내는 길을 택했으니까.

'사람 대하는 건 똑같은데, 그거 하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구만.'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커피를 홀짝이는 동안 말을 고르고 있던 백예은이 작게 달싹이던 입을 열었다.

"그게, 그…… 별거 아니야. 부모님이 대회 때 보러 오신다고 해서 잘 할 수 있을지 조금 긴장하고 있었거든."

"……."

'거짓말이네. 반 정도는.'

시선을 피하는 것만 봐도 대충 알 수 있었다.

문득, 회귀 전 백예은이 방송을 통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부모님의 기대를 너무 충족하는 것도 힘들다는 말. 시청자들은 기만 좀 그만 하라며 웃고 넘어갔지만, 혹시 지금 상황과 관련이 있는 말은 아닐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만…하는 수 없지.'

제대로 다 말하진 않더라도 이 정도라도 들은 게 어디인가. 그나마 처음부터 쎈 말을 던져서 멘탈을 흔든 덕분에 이거라도 건졌다.

작게 한숨을 쉬고는 녀석의 말에 대답한다.

"팀이 아주 우습게 보이지?"

"응?"

"네가 못해도 우리가 멱살 잡고 우승시켜줄 테니까 그런 걱정 할 필요 없단 뜻이야."

백예은은 그 대답을 듣고 어벙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거리다, 이내 실실 웃었다. 웃으라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아까랑 말이 조금 다르지 않아? 내가 제일 잘 한다며."

"요즘 너 하는 거 보면 멱살 찢어질 각오 정도는 하는 게 나아 보여서."

"그건 싫은데."

"그럼 알아서 적당히 못 하든가. 가자, 너 우승시키려면 조금이라도 더 연습해야겠어."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속이 빈 캔을 적당히 구겨 쓰레기통에 넣었다. 잠시 그대로 의자에 앉아 있던 백예은도 나를 따라 일어섰다.

'아까보다는 표정이 펴졌네.'

훨씬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은 백예은이 내가 준 음료를 흔들며 말했다.

"이거, 잘 마셨어."

나도 똑같이 웃으며 대답한다.

"비싸더라. 나중에 1500원 갚아."

그 말에 미소를 짓고 있던 백예은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나는 사주겠다고 한 적 없다. 사람 사이에 돈 계산은 철저해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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