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황새가 뱁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휜다.-1-
어느새 6월이 온 지도 어언 보름이 지났다.
파릇파릇한 이파리가 무성하게 나무를 감싸고, 점점 햇볕이 열을 더해가는 시기. 곧 찾아올 여름을 예고라도 하듯이 묘하게 늘어난 습도와 점점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벌레가 신경 쓰이는 요즘.
허나 그런 초여름의 날씨에도, 그들이 선 이곳은 당장 초복이라도 온 것 마냥 가열 차기 그지없었다.
"여! 생채랑 나물 예상시간!"
"3분, 아니. 2분 안에 끝나!"
"송! 찌개랑 국!"
"찌개 3분! 지단은 나왔어!"
"좋아. 안! 생선구이랑 너비아니는?"
"둘 다 끝. 조림도 5분 안에 끝나."
"오케이. 백! 신선로 세팅 어떻게 돼가?"
"끝났어! 밥도 조금만 뜸 들이면 끝나!"
이름을 부를 시간도 아까워 성씨만을 불러가며 조리에 몰두할 정도로 시간에 쫓기는 상황. 시루에서 쪄지고 있는 떡이 익을 시간을 계산하며, 각 조리대에 필요한 재료를 슬쩍 살피는 것으로 산출한 찬혁이 재료가 부족하지 않게끔 준비해 준다.
온 주방에서 피어오르는 불꽃.
도무지 멈출 생각을 않는 칼질 소리.
그에 더해 각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끊임없는 소통까지.
20평 남짓한 공간이 고작 다섯 명이 내는 소음으로 가득 차오른다.
그런 와중에도 그들을 쫓는 무언가는 멈추지 않았다.
실습실의 벽에 달린 커다란 디지털 시계와 살짝 떨어진 거리에서도 훤히 보이게끔 만들어진 커다란 타이머를 계속해서 힐끔거리는 찬혁.
그런 찬혁이 이내 타이머에 표시된 남은 시간을 보고는 크게 외친다.
"5분!"
처음부터 대답을 바랐던 것이 아닌 듯, 아무도 그 말에 답하지 않음에도 찬혁은 자신이 하는 일에 열중했다.
'이제 재료는 부족할 타이밍이 아니야. 나도 내 것만 마무리하면 된다.'
증기가 멎은 시루 속에서 한창 뜸을 들이던 떡과, 디저트로 나갈 다과들을 그릇에 담아 준비하는 찬혁. 이제는 손에 얼핏 잔상이 보일 정도의 속도를 자랑하는 그였으나, 시간은 자비 없이 자신의 걸음을 계속할 뿐이다.
타이머에 남은 시간이 줄어든다.
4분.
3분.
2분.
그리고…….
"1분! 각 팀원 보고!"
마지막 1분. 심지가 몽땅 타들어 가기 직전의 촛불이 가장 밝은 것처럼. 마지막 마무리까지 순식간에 끝낸 학생들에게서 하나 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끝!"
"나도 끝났어!"
각자가 만든 음식을 뒤쪽에 준비된 반상으로 옮기는 학생들.
재빠른 발걸음에도 손에 들린 음식에는 잔물결조차 일지 않는다. 이들이 얼마나 이런 행동을 반복 숙달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윽고 타이머의 초시계가 0에 다다르기 직전, 먹는 것이 꺼려질 정도로 아름답게 장식된 떡과 다과들이 담긴 사기 접시가 고급스런 옻칠 반상 옆으로 조심스레 놓여졌다.
직후, 시간이 다 됐음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삐삐삐삐! 삐삐삐삐!
시계가 내는 위협적인 소음 앞에 온몸이 돌이 된 듯 굳어 버린 아이들.
그런 일행 사이에서, 이내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 해치웠나?"
"풉!"
여준기의 뜬금없는 헛소리였지만, 그것이 나름 통했는지 그 옆에서 나란히 굳어 있던 송지영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 작은 웃음이 마치 둑을 무너뜨린 첫 번째 물줄기라도 된 듯, 아이들은 소리 합쳐 환호성을 내질렀다.
"됐다! 성공이다!"
"으쌰아!!"
"아, 이번에는 실수 안 해서 다행이다아아……!"
실습실이 떠나가라 괴성을 지르는 아이들을 보며 찬혁은 그들의 앞에 있는 조리대를 바라보았다. 어딜 보아도 겉으로는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12첩 반상이 그곳에 있었다.
***
"와, 이걸 성공할 줄이야."
"뭐예요. 그럼 선배는 성공 못 할 줄 알았어요?"
"……
"…… 알았어요. 누나."
"옳지."
우리들의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뒤, 조리하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우리를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안효민 선배에게 불려온 나는 그런 선배의 옆에 앉아 팀장과 부장으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튼, 내 대답을 들려주자면. 맞아, 난 성공 못 할 줄 알았어."
"되게 당당하시네요. 후배들이 뭐가 됩니까."
"우리도 저걸 성공한 건 1학기 방학 직전이었단 말이야. 그때도 선배들이 대회반 역대 최고 기록이라면서 얼마나 놀랐는데, 그 타이틀을 1년 만에 반납한 내 기분을 알겠니?"
"더 대단한 기록도 많으시면서 그런 것까지 탐을 내십니까."
"탐을 내는 게 아니야! 자존심 문제라고."
"아, 예."
대견함과 질투가 8:2 정도의 비율로 섞인 오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선배에게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저것'이라고 부르는 것은, 방금 우리가 했던 연습을 일컫는 말이었다.
말하자면 2차 신고식이라고 할까, 모의고사라고 할까.
어떤 분야든 좋으니, 한 나라의 풀코스에 범접하는 메뉴를 1학년 다섯이서 한 시간 이내에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방금 했던 행위의 정체다.
대회를 치를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최상급의 퀄리티를 최대한 빨리 뽑아내는 것. 이 모의고사는 대회에 앞서 실력을 갈고닦기 위한 일종의 연습법이었다.
이게 은근히 효과도 좋고 편하다 보니 일종의 전례 행사로 굳어진 것이라며, 참고로 3학년의 기록은 2학기 중반. 자기들의 기록은 1학기 최 후반이라고 자랑하던 선배의 모습이 되살아났다. 그나마도 방금 우리가 기록을 깨 버렸지만.
'그야 뭐, 쟤들 데리고 그렇게 오래 걸리기도 힘들지.'
나는 요즘 1학년 팀의 팀장으로 1학년 애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천재라고 불리는 인종들의 대단함을 하나둘 깨달아가고 있었다.
'학습 속도가 장난 없네.'
흔히 천재를 지칭하는 말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근데, 저 앞에 있는 애들 중 그 천재라는 말의 범위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이든,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었다. 송지영과 여준기만 해도 회귀 전의 나보다도 월등한 수준의 재능을 갖고 있었고, 안창민과 백예은에 이르러서는 내가 다 놀라울 지경이었다.
'나도 경력이 되니까 알겠어.'
내가 30년 동안 이룩한 경지. 분명 나도 남들 못지않게, 아니. 남들의 서너 배는 노력하며 쌓아온 시간을 저 두 녀석은 매서운 속도로 추격해오고 있었다.
'한식 쪽은 오히려 당장 나보다 나을지도 몰라.'
경력을 쌓은 기간이 있는 중, 일, 양식에서는 결코 뒤처지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한식이란 분야만큼은 그런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았다.
그래서 방금 연습 때도 가장 난도 높은 메뉴를 다른 두 명보다 조금 더 많이 부담하게 분배한 것인데, 저 둘은 당연하다는 듯 성공해 버렸다.
'학기 초까지만 해도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저 둘의 괴물 같은 성장세에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천재라는 건 굉장하네…….
"어머, 그렇게 생각하니?"
내 혼잣말이 너무 컸던 것일까, 아니면 서로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던 탓일까.
놀랍다는 듯 대꾸한 선배에게 고개를 돌리자, 선배는 흑요석처럼 반짝이는 새까만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괜히 거북해진 나는 잘못 들었다는 듯 답했다.
"예?"
"나는, 찬혁이도 충분히 천재라고 생각하는데?"
"제가요?"
"그럼. 내가 왜 널 팀장으로 뽑았겠니? 그럴만하니까 뽑은 거지."
"아하하…….
무언가 확신하며 말하는 선배의 말에 나는 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선배가 보는 나의 천재성이란, 일종의 만들어진 가짜다.
남들보다 배가 넘는 시간을 모종의 이유로 얻은 끝에 만들어진 속임수. 쌓인 시간에서 나온 경험을 재능으로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그 증거로, 선배가 내게 말해 주는 나의 재능이란 그러한 것이었다.
"식재료에 대한 이해도나, 어지러운 주방에서 팀원들을 다루는 솜씨만 봐도 내 눈에 보이는 너는 대단한 천재야."
"……
결국, 그것도 전부 경험에서 태어난 산물이지 않은가. 내가 쌓은 시간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저 찬란한 재능들에 비하면 빛이 바래는 것도 사실이다.
침묵에 빠진 내게, 선배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단한 건, 분명 완성에 가까운 네가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는 거고."
"성장이요?"
이건 또 예상하지 못한 발언이었다.
"사람마다 가진 역량을 계산해서 부과할 짐을 그 자리에서 도출하고, 그러면서도 자기가 맡은 일에선 손을 늦추지 않지. 대회반 시간마다 가장 늦게까지 남아 연습하는 것도 너고, 거기에 더해 대회에 관한 정보도 틈틈이 수집해가면서 팀장의 역할을 다하고 있잖니?"
"……
"정말 무서운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않는 사람이야.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 사람은 보고만 있어도 든든해지는 법이지."
요컨대, 하며 짧게 숨을 들이마신 선배가 나를 향해 미소 짓는다.
"노력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천재! 그러니까 너는 천재인 거야!"
"…… 뭡니까, 그게."
어딘가 지리멸렬한 결론에 얼떨결에 그렇게 대답했다.
자신도 뭔가 말의 구조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는지 이마에 땀방울을 매달고 횡설수설하기 시작한 선배를 진정시켰다. 대충 무슨 뜻인지는 이해했으니까.
"으흠흠, 좋아. 앞으로도 그렇게 가슴 펴고 당당하게 있도록 해. 팀장이잖니."
"예. 충고 감사합니다."
몇 차례 헛기침으로 어색함을 무마한 선배가, 이내 조금 더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 그런데 찬혁아. 혹시 눈치챘을지 모르겠는데."
"?"
"네 팀원 중에서 문제가 있는 애가 하나 있어. 누군지 알겠어?"
그 말을 들은 나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몰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확히 알고 있어 쉬이 대답하는 것을 망설인 것이다.
잠시 말을 고르던 나는, 이내 그 물음에 순순히 답했다.
"예, 알고 있어요."
"그래. 그렇구나."
"…… 알아서 해볼게요."
"그러렴. 믿고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잠시 실습실 바닥을 헤매던 시선이, 이내 저희끼리 모여 있는 1학년 아이들에게 향했다. 그들 사이에서, 유독 밝은 웃음을 짓고 있는 한 인물.
'백예은, 저 녀석…….
백예은에게로.
***
내가 백예은에게 이상함을 느낀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백예은이 만드는 요리 때문이었다.
대회반에서 연습을 할 때, 백예은이 만든 요리에서 작은 실수를 발견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한 달 전부터였나.'
그쯤부터 백예은의 실수가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실수라고 해도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고기 등을 익힐 때 조금 더 오버쿡을 한다거나, 간이 살짝 안 맞는다거나. 요리하다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이제까지 본 백예은은 그런 걸로 실수를 할 녀석이 아니야.'
회귀 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입학식 이후로 봐온 백예은의 실력에 대한 나의 평가다.
굉장히 주관적이지만, 적어도 요리인의 솜씨를 제대로 측정해내지 못할 내가 아니다.
당장 오늘만 해도 밥을 익히는 시간을 잘못 조절하여 밥이 질어졌고, 신선로에 이르러선 정석적인 색 배합 비율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뭔가 문제가 있어.'
그리고 중요한 대회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약 한 달.
더 이상 시간을 미룰 순 없었다. 작금의 문제가 더 몸집을 불리기 전에 해결해야만 했다.
지금도 가면을 쓰고 있을 저 녀석에게서 문제를 끄집어내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아 머리가 아파왔다.
'골치 아픈 녀석이야, 정말로.'
그런 주제에 실력 하나는 확실하단 것이, 내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