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오래 익히면 맛이 없다. 너는 아니다.-1-
호텔 상천에서의 현장 학습이 끝난 지도 어언 1주가 지난 오늘.
나는 오늘따라 묘하게 내게 향하는 시선들을 느끼며 점심시간을 맞고 있었다.
"…… 뭐지?"
"왜?"
"아니, 뭔가…… 이쪽 보는 애들이 많지 않아?"
"응?"
식판을 들고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자리에 앉는 모습을 이상하게 본 철정이의 물음에 그렇게 답하자, 철정 또한 주변을 둘러본다.
'쟤가 그……?'
'아, 그 올튜브에…….'
─속닥속닥……
"진짜네……."
"그치?"
아무리 다시 살펴도 기분 탓이 아니었다. 핸드폰을 꺼내 들고 화면과 이쪽을 번갈아 보면서 무어라 속닥거리는 몇몇 학생들.
"……."
'야, 야, 이쪽 본다……!'
'눈깔아, 빨리……!'
뭔가 싶어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시선을 향하자마자, 재빨리 손에 든 핸드폰으로 고개를 박는 아이들. 그런 날 보고 철정이 녀석이 내 앞으로 손을 뻗어 내 얼굴을 가린다.
"야 인상 풀어. 좀 볼 수도 있지 그거 갖고 무슨 애들을 죽일 것처럼 보냐."
"뭐? 뭔 소리야. 그냥 왜 저러나 싶어서 본 건데."
"…… 너는 거울 좀 들고 다녀라."
"학교에서 화장할 것도 아니고 무슨."
내 앞을 가린 손을 밀어내며 적당히 무시하기로 마음먹고 수저를 든다. 오늘 메뉴도 풍성하다. 손가락 한마디쯤은 될법한 두툼한 돈까스로 만든 돈까스마요덮밥에 계란국. 오늘도 포식하겠다.
"마, 찾았다. 아들 요 있네."
그때, 우리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대충 사투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시피, 그 목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양희연이었다. 거기에 더해 항상 세트로 붙어 다니는 나현주까지.
"왔냐."
"어."
별 긴 대꾸도 없이 맞은편 자리에 앉는 두 녀석. 실습은 같은 조에서 하더라도 밥은 따로 먹던 우리였지만, 현장 학습을 다녀오고 묘한 동지애가 싹튼 것인지 요즘은 밥도 같이 먹는다.
"눈까리는 왜 그로코롬 가려 쌌는데?"
"얘가 다른 애들 노려봐서."
"아따 마, 니는 눈 좀 착하게 뜨고 다니라 안 캤나."
"아 뭐."
"봐라봐라. 저 마 또 미간에 골 생긴다."
양희연의 핀트 나간 타박에 나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미간을 문지른다. 얘는 목소리도 자기 엄마랑 비슷해서 괜히 헷갈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봐라. 좀 푸니까 낫제?"
"그러게."
"밥이나 먹어."
눈을 가늘게 뜨고 실실 웃으며 나현주에게 거 보라는 듯 말하는 녀석. 요즘 양희연은 점점 서슴없이 사투리를 쓰는 일이 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편한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을 구분한다고 해야 할까. 수업 때에는 표준어를, 그냥 우리끼리 대화를 나눌 때에는 사투리를 섞어 쓴다.
'대하기 편해졌다는 건지.'
나쁜 일은 아니다. 아니지만, 그 대신 묘하게 장난기가 늘었다. 이것도 성 셰프와 비슷하다면 비슷한 점이다.
"근데 다른 아는 와 노려본 긴데?"
"노려본 적 없다고. 그냥 계속 이쪽 힐끔거리길래 뭔가 싶어서 본 거야."
"힐끔댄다꼬? 니를? 와?"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나도 모르겠는 것을 묻지 말아주었음 한다.
뭘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별수 없다는 심정으로 숟가락을 들어 한입 크기로 잘 썰린 뜨끈뜨끈한 돈까스와 마요네즈 소스, 그리고 달짝지근한 간장 양념이 쳐진 밥을 슥슥 비빈다.
마찬가지로 뜨끈뜨끈한 밥과 섞이며 살짝 벗겨진 튀김옷 사이로 흘러나오는 고소한 기름의 향과 돼지고기 특유의 육향. 부드럽게 익은 고기를 숟가락으로 살짝 누르니, 튀어나올 듯 새어나온 육즙이 마요네즈와 데리야끼 소스로 번들번들하게 코팅된 밥알들 사이로 스며든다.
"오늘도 때깔 좋네."
먹기도 전에 눈이 먼저 즐거워지는 광경에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잠시.
그대로 덮밥을 듬뿍 퍼서 입에 넣으려던 그 순간, 이번에는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의 식사를 방해한다.
"우와, 올튜브 스타 류찬혁 씨가 여기 계셨네!"
"…… 또 뭐야."
밥 좀 먹자 좀.
오늘도 과도한 텐션으로 옆자리를 차지해오는 백예은의 등장이었다. 덤으로 요즘 들어 대회반 활동으로 점점 친근감이 생기기 시작한 안창민까지. 저 둘이 웬일로 같이 등장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나저나 올튜브 스타는 또 무슨 소리냐.
"웬 올튜브?"
"뭐야, 몰랐어? 애들 다 너 보고 있어서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아하단 표정으로 설명을 요구하니, 백예은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 자기 핸드폰을 날 향해 내밀며 화면을 보여줬다.
"뭐야 이거?"
"자자, 이 영상 제목 한 번 봐봐."
백예은의 재촉에 화면에 시선을 향한다.
<인당 30만원 뷔페에서 메뉴 하나만 먹는 여자가 있다?> 라는 흔한 어그로성 제목과 <인생 원픽 음식 찾았습니다.> 라고 굵은 글씨로 강조된 섬네일. 그리고 그 아래 달린 <인기 급상승 동영상 10위> 태그.
"얼른."
"알았어."
얼른 봐보라는 듯 손을 흔드는 녀석에게 맞장구를 쳐주며 재생 버튼을 탭했다. 어느 새 다른 녀석들도 식판까지 두고 핸드폰 앞으로 모여들어 있었다.
이윽고 시작되는 영상.
약 10분 정도의 재생시간을 가진 영상의 시작은 전날, 현장 학습 때 보았던 방송인인 나유나유의 인사로 시작되었다.
"여기 호텔 상천 입구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그런 그녀 주변으로 보이는 특이한 형태의 조형물. 눈에 익은 그 형태는 다름 아닌 호텔 상천 특유의 궁궐 모양의 입구였다. 그것을 눈치챈 철정과 현주의 말에,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안창민이 그 뒤를 이어 말했다.
"아, 나 이 사람 알아. 볶음밥 부스에 있을 때 봤어."
그러고 보면 안창민도 조수로 뽑혀서 볶음밥 부스에서 업무를 도왔다 했던가. 내 코가 석자라 난 못 봤지만.
그렇게 우리가 수다를 떨 동안, 영상의 주인공은 뷔페장에 입장하여 준비된 메뉴들을 촬영하는 중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만든 요리들이 영상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과 그리움을 느끼기도 잠시, 바이저우를 게 눈 감추듯 단숨에 먹어치운 나유나유는 이윽고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사방을 둘러보더니, 이윽고 다음 목표를 발견한 듯 화면을 멈췄다.
'아, 이 다음은 알 것 같은데.'
역시, 화면은 정확히 나와 내가 있던 면 부스에 걸린 현판에서 멈춰 있었다.
"응? 뭐꼬 이거. 니 아이가?"
"어. 나 맞아."
그 뒤에 이어진 영상은 내가 아는 그대로였다.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받아가 방송조차 잊고 영상을 기준으로 장장 10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멘트 하나 없이 무려 서른 그릇에 달하는 딴딴멘을 먹고, 줄서고, 먹고, 줄서고, 그러다가 부스 너머에 있는 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찍으면서 환호하고, 먹고 줄서고의 반복이었다.
"…… 와."
모두가 말을 잃은 와중, 나현주만이 그런 탄성을 내뱉었다.
"탄수화물만 저렇게 많이 먹으면 안 되는데."
"아니, 그거에 놀라지 말라고."
무심코 딴죽이 나왔다.
"아무튼, 대충 무슨 일인지는 알겠네. 이거 때문에 얼굴이 팔린 거구만."
"그렇지. 이게 인기 동영상 순위 올라온 지 이틀 정도 됐으니까…… 아마 꽤?"
"나 참."
이게 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지. 영상 찍어도 된다고 말한 건 나였으니 뭐라 할 말도 없고.
절로 인상을 찌푸린 나에게 백예은은 영상 아래 달린 작성자 코멘트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 사람 말로는 수익금을 배분해드리고 싶다고 꼭 연락 줬으면 좋겠다는데?"
"뭐?"
돈? 돈을 준다고?
나의 금전욕을 자극하는 문구에 순간 눈이 돌아갔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돈이야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귀찮은 일을 사서 할 생각은 없으니까.
'좀 나중이면 몰라도.'
…… 조금 더 정산금이 쌓인 다음이라면, 괜찮을 것 같기도……?
남몰래 그런 속물적인 생각을 하며, 한참 미뤄졌던 식사를 다시 시작한다.
한입 가득 넣은 돈까스마요덮밥은, 식어서 이상한 식감이 되어 있었다. 맛은 있었지만.
***
"오늘 수업은 수비드에 관한 간단한 실습을 진행해 볼 예정입니다. 아마 오늘은 실습보다는 이론에 관한 교육이 주가 될 것 같네요."
그렇게 내 올튜브 스타 등단에 관한 농담을 반찬 삼아 점심을 해치우고 실습실로 온 우리를 맞이한 박예휘 선생님이 그런 말을 꺼내 들었다.
선생님의 시연을 따라 분배된 닭가슴살을 재빠르게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 허브 등으로 마리네이드하여 진공 포장한 우리.
선생님은 그 닭가슴살에 유성 매직으로 이름을 표기하더니, 잉크가 적당히 마르자 그것을 그대로 한창 돌아가며 물을 데우고 있는 수비드 머신 안으로 밀어 넣었다.
"수비드SOUS VIDE. 이 말은 원래 비닐용기 안에 식품을 진공 포장하는 포장 기법을 일컫는 말입니다만, 요식업계에서는 조금 말이 다르게 쓰이죠.
요식업계에서 말하는 수비드란 식재를 진공 포장하여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환경에서 익혀주는 기법을 말합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이 기계도 현재 63도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온도에서 장시간 식재를 익혀주는 거죠."
그렇게 말하고 수비드 머신의 계기판을 우리를 향해 돌리는 선생님. 다시 수비드 머신을 조리대 한쪽으로 정리한 선생님이 말을 잇는다.
"자, 그럼 여기서 한 가지 문제입니다. 과연 이 정도 온도에서 식재가 익을 수 있을까요? 대답해 볼 사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려운 문제기는 하지.'
보통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익힌다'는 것은, 높은 온도로 예열한 프라이팬이나 직화, 혹은 끓는 물에 삶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여 익히는 것일 테니까.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때 손을 번쩍 드는 한 사람. 누구인가 하고 보니, 생각 외로 손을 든 이는 다른 이도 아닌 나현주였다.
그런 그녀를 선생님이 지목하자, 나현주는 자신의 답을 술술 읊기 시작했다.
"익습니다."
"단호하네요. 이유는요?"
"육류를 구성하는 단백질의 변성 시작온도는 대부분 60도 이하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변성 시작온도 이상의 온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장시간 조리 시 단백질은 비교적 저온에서도 익을 수 있습니다."
"정답입니다. 잘 알고 있네요."
작게 손뼉을 치며 나현주를 칭찬하는 선생님. 하지만 나현주의 표정은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인다.
'아마 저것도 꽤 쑥스러워 하는 걸 텐데.'
이후, 선생님은 우리에게 수비드 기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수비드 조리로 얻을 수 있는 이득, 하지만 그에 대비하는 리스크들.
간단명료하게 장, 단점을 나눠 설명한 선생님이 한껏 집중하고 있는 학생들을 둘러보고는 말을 잇는다.
"오늘은 실습을 하는 대신, 이렇게 이론에 대한 상세한 교육을 하는 이유가 있어요."
미소를 지어 보이는 선생님. 그 모습에 학생들은 불안감을 느꼈다. 저 선생님이 이유 없이 웃을 때에는 보통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해왔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그런 학생들에게 폭탄선언을 터트리고 말았다.
"1학기 과제는 수비드 조리에 대한 조별과제입니다. 닭가슴살이 익는 동안 자유 시간을 드릴 테니, 4인조를 만들어 조장이 명단을 제출하세요."
"…… 하아."
내 이럴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