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48화 (48/403)

48. 상천만향회.-7-

─치이이익!

─화르륵!

맹렬하게 피어오르는 불꽃!

뜨겁게 튀어 오르는 기름방울!

화구에 올라간 웍은 요리 하나가 나갈 때마다 쉴 새 없이 다음 재료를 집어삼켰고, 나 또한 눈코 뜰 새도 없이 손을 움직였다.

"67번, 68번, 69번! 67, 68, 69번 음식 나왔습니다!"

"류찬혁 쿡, 추가 주문이요!"

"알겠습니다!"

내 앞에 세워진 투명한 아크릴판.

주방과 홀을 나누는 그 판 너머로, 끝없이 길게 늘어선 인파들.

이 수많은 사람이, 다름이 아닌 내가 만든 딴딴미엔을 먹기 위해 주문할 차례를 기다리는 고객들의 줄이었다.

"뷔페에서 입장객도 아니고 부스 하나에 웨이팅이 걸리는 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고?!"

"시끄러워! 소리칠 시간에 손을 움직여!"

"아, 옙! 죄송합니다, 선배!"

내 옆에서 요리에 고명으로 올라갈 땅콩과 짜사이를 죽어라 볶아내는 중인 신호균 쿡과, 그런 그를 타박하며 닭 껍질을 썰어 튀기는 작업과 라유를 뽑아내는 작업을 동시에 해내는 중인 고창석 쿡. 나와 한 번씩 같이 조를 해봤다는 이유로 여기까지 불려 온 두 사람의 외침이 면 주방 안을 메아리친다.

"선배님들! 닭 껍질이랑 땅콩 볶음 떨어졌어요!"

"알겠다!"

"여기!"

내 외침에 막 새단장을 끝마친 재료들을 재빨리 내 옆의 재료통에 넣어주는 두 사람.

그것을 확인하고는 거침없이 계량한 소스 재료들을 웍으로 옮긴 뒤, 다시 한번 화구에 불을 당긴다.

─화르륵!

"오오!"

"와아!"

─찰칵! 찰칵!

숫제 폭탄이 터지는 모양새로 솟아오르는 불꽃!

일부러 살짝 쇼맨십을 섞어 화려하게 불꽃이 솟아오르도록 화력을 조절하니 그 광경을 아크릴판 바깥에서 바라보고 있던 고객들 사이에서 환성이 튀어나오며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진다.

"류찬혁 후배. 아주 여유가 넘치지?"

"아하하, 죄송합니다."

짠 눈으로 핀잔을 주는 고창석 쿡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자, 그는 순식간에 장난스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좋네. 중화에는 그런 맛이 있어야지. 더 해봐. 손님들 아주 까무러치시게."

"옙!"

"대신 다치지 말고, 적당히. 알지?"

"예!"

'…… 좋다.'

서로 오가는 정겨운 대화.

이렇게 바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현장이란 얼마나 축복받은 곳인지.

조금만 바빠져도 고성, 고함이 끊이질 않는 주방도 있는 반면, 이런 곳도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70번부터 75번까지! 70번부터 75번까지 음식 나왔습니다!"

"예!"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손은 멈추지 않고 기계적으로 음식을 만들어낸다. 지나간 주문이 적힌 주문지를 단숨에 쓸어내어 버리지만, 빈자리가 무색해질 만큼 많은 주문지가 다시금 자리를 채워나간다.

그 모습을 잠시 공허한 눈으로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주문이 많은 건 좋아해야 할 일이지, 싫어할 일이 아니다. 지금은 오로지 최선을 다해 요리를 할 때다!

…… 하지만, 그렇게 굳게 각오를 다지는 중에도,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왜 이렇게 된 거지?'라는 생각이 떠날 줄을 몰랐다.

이야기는 약 한 시간 전으로 돌아간다.

***

"자, 키하, 키하, 시청자 여러분! 오늘은 미리 예고했던 대로, 부모님 결혼기념일 선물로 무지 비싼 뷔페 식사권을 주면 어떻게 될까 컨텐츠! 다들 많이 기대했죠?"

─아ㅋㅋ 다음 달 어버이날 선물 몰아서 준다는 불효녀 방송이 여긴가요?

─올하!

─올하!

─벌써 올하각 잡죠? 역겹죠?

"아 뭔 소리야! 무슨 올하각을 잡아!…… 올튜브 편집 영상은 내일 모레 올라갈 예정이니까 꼭 봐야 된다?"

─돈미새on

─자본주의가 낳은 효도;

"너희 자꾸 그러는데, 어디서 집행검 냄새 안 나니?"

─다 키보드에서 손 떼!

─아 ㄹㅇㅋㅋ만 치라고ㅋㅋㅋ

─ㄹㅇㅋㅋ

3시 10분 전. 상천만향회 입장 가능 시간까지 10분가량 남은 시각.

한 여성이 호텔 상천의 입구에서 셀카봉을 들고 핸드폰을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자, 핸드폰의 화면 위로 읽기도 힘들 만큼 빠른 속도로 불특정 다수의 채팅이 올라온다.

짐작한 대로, 이 여성. 이유나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인터넷 방송인이었다. 그것도 어언 3년차에 다다른 나름대로 중소기업 정도의 시청자를 보유한 경력 있는 방송인.

나유나유라는 방송명을 쓰는 그녀가 오늘 이곳, 뷔페 상천만향회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올하각…… 이 아니라, 부모님 결혼기념일 때문이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방송을 시작한 지도 어언 3년. 나름 오랜 시간을 시청자들과 동고동락하며 힘겹게 커리어를 쌓아 온 그녀로서도 인당 30만 원을 넘게 호가하는 고급 뷔페에서의 식사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녀는 감내할 수 있었다.

'올하각 조회수로 꿀을…… 아니, 평생 한 번뿐인 부모님 30주년 결혼기념일인데, 돈을 아낄쏘냐.'

어린 시절부터 묘한 짠돌이 근성 탓에 시청자들과 주변 인터넷 방송인 동료들에게는 바닷속 맷돌 취급을 받는 그녀였지만, 그런 그녀라도 이런 좋은 날에는 과감하게 지를 줄 아는 여자였다.

'후…….'

하지만, 지금도 폰의 알림창 위로 보이는 은행 앱 아이콘과, 그것을 펼치면 나올 마이너스 100만원+a가 찍힌 인출 알람은 마음을 서글프게 만드는 데에는 충분한 힘을 갖고 있었지만.

'어쩌겠어. 그래도 여긴 돈값 못 한다는 소리는 아무도 안 하는 곳이니까.'

기왕 온 것. 아주 뷔페 기둥을 뽑아 버리고 말리라.

이유나는 그럴 자신이 충분히 있었다. 원래는 여캠 겜방으로 방송을 시작했던 그녀였으나, 사실 그녀가 유명세를 타고 중소기업으로까지 날아오를 수 있던 진짜 이유는 다른 분야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먹방.

어지간한 먹방 방송인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식성이 대단한 그녀는, 종종 먹방 방송인들도 실패한 도전 메뉴를 파는 음식집을 여러 차례 격파한 전적을 가진 대단한 위장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녀는 아직 모를 미래의 일이지만, 백예은이 한창 올튜브의 쿡먹방으로 전성기를 이룰 시절 우연히 푸드 파이트 대회에서 만난 두 사람의 결승전 맞대결은 약 2천만가량의 조회수를 자랑할 정도였으니, 그 위상을 알만하다고 할 수 있겠다.

"자, 입장 가능 시간까지 이제 1분 남았네요! 보여드릴 순 없지만, 부모님들도 되게 기대하고 계세요!"

─아니죠? 제일 기대하는 거 자기죠? 오늘 기둥 뽑으러 가겠다고 말한 거 클립 세 번 따이고 정신 못 차리죠?

─부모님 기념일 챙겨드리는 것보다 먹는 게 더 기대되는 불효녀 누구야!

─자기만 뷔페 가서 혼밥 하기 싫으니까 부모님 핑계 대고 있죠? 구라 컷!

"아, 아니라고! 그러는 너네는 부모님 생신이나 챙겨드린 적 있냐?! 나는 순수하다고!"

─와 여기서 남 부모님을 걸고넘어진다고? 인성 실화?

─아, 잠깐. 뼈 맞았음.

─엄마…… 미안해…… 아빠…… 죄송해요……

─아 그럼 너만 예약 취소해서 순수하다는 거 증명해 보라고ㅋㅋ.

"그, 취, 취소하면 그건 노쇼잖아? 에이, 사람이 어떻게 그래."

─아니죠? 호텔 상천 예약 취소하면 바로 당일에 밀린 예약 자리 받으려고 대기하는 사람 백 명은 있죠?

─당장 자리 비었다고 투숙객 중 아무나 오라고 하면 한 자리 놓고 싸움 날 건데ㅋㅋ

"아무튼! 어느새 벌써 입장 시간이 됐어요, 여러분! 자, 얼른 들어갑시다!"

─아ㅋㅋ 말 돌리는 거 역겹네ㅋㅋ

─더 하면 밴행검 나온다. 다들 ㄹㅇㅋㅋ만 쳐라.

─ㄹㅇㅋㅋ

─ㄹㅇㅋㅋ

이유나가 시청자들과 작은 실랑이를 벌이기도 잠시.

중국의 궁궐을 본떠 만든 특이한 모양새의 현관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상천만향회의 홀에 들어선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와…… 여러분 이거 보여요?"

─와…… 개쩐다……

─이게 인당 30짜리 뷔페…… 돈 줄만 하네.

벽 한쪽이 뻥 뚫린 것 마냥 틀도 없이 통짜로 박힌 거대한 유리창.

그 유리창 너머에서 마치 한 폭 그림처럼 실내를 비추는 은은한 태양광과, 그 자연의 조명이 주는 풍치를 방해하지 않을 만큼의 은은한 빛으로 햇볕이 닿지 않는 구석구석을 밝히는 샹들리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게 다 뭐야……?!"

음식.

어마어마한 종류의, 음식.

약 30미터는 되어 보이는 호화로운 상아색 테이블 위로 끝없이 펼쳐진, 막 만들어졌다고 자랑하는 듯 모락모락 김을 피워 올리는 수십 종류는 가뿐할 음식의 도열!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그녀를 맞이하는 웨이터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유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카메라의 방향을 음식 쪽으로 향했다.

"여러분, 저거 보여요? 멘보샤, 꿔바로우, 탕수육, 청초육사, 카오루주, 베이징덕, 샤오롱바오……! 와, 저게 다 먹을 거예요!"

─진짜 먹을 거 보자마자 눈 돌아간 거 봐ㅋㅋㅋㅋㅋ

─근데 ㄹㅇ 쩔기는 개 쩐다. 저 고급 요리를 무한정 먹을 수 있는 뷔페라고? 이러니까 그렇게 비싸지;;

─그 와중에 듣도 보도 못한 음식들 이름 다 아는 거 무엇?

자리로 안내하며 식사 시 주의 사항을 설명하는 웨이터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자리를 잡은 이유나와 그녀의 가족들. 자리에 핸드백과 외투 등을 대충 내팽개친 이유나는 잠시 기다려보라는 부모님의 제지조차 무시한 채 잰걸음으로 음식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봤음? 얘 지금 진짜 눈 돌아갔다니까? 어머니 부르는 거 생까는 거 보셈ㅋㅋㅋㅋㅋ

─아ㅋㅋㅋㅋ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하러 온 부모님 딸 어디 감?

그런 시청자들의 최선을 다한 비꼼에도 아랑곳 않고, 이유나는 30미터나 되는 테이블 주변을 뱅글뱅글 돌며 거의 사랑에 빠진 것 같은 시선으로 음식들을 하나하나 카메라에 비추고 있었다.

"와, 이거 봐요. 칠리 새우가 머리는 붙어 있고 몸통 껍질만 벗겼잖아. 이게 얼마나 귀찮은 건지 알아요? 그리고 이거이거. 칠리소스에 들어간 토마토랑 양파 다진 거. 시판 소스로는 절대 이 비주얼이 안 나와요. 와…… 미쳐따."

─ㅗㅜㅑ. 푸드 포르노;;

─아ㅋㅋㅋ 방금 점심 먹었는데 왜 배고파지냐ㅋㅋㅋㅋ

─요리도 못하면서 그런 건 어떻게 암?

"제가 또 지식이 제법 돼요. 손이 안 따라가서 그렇지."

한참을 돌아다니며 감탄, 또 감탄하던 그녀가, 이제야 결심했다는 듯 수저와 작은 그릇을 하나 집어 들고 핸드폰을 향해 말한다.

"예전에 중식 셰프한테 들은 건데, 중식 애피타이저는 꼭 이거를 먹어야 된대요. 바이저우粥. 이게 그냥 흰죽인데, 중국에서는 가장 주된 아침 식사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신나게 떠들며 바이저우를 들고 자리로 돌아간 이유나는, 이내 그 뜨거운 죽을 말 그대로 식은 죽 먹듯이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녀는 키위치 시청자들 사이에서 대식가로도 유명하지만, 그만큼 빨리 먹는 속식速食가로도 이름을 떨치는 인물이었다.

"…… 와, 미쳤어. 진짜 미쳤어. 여러분. 이게 영상으로는 그냥 죽처럼 보일 텐데 그냥 물 넣고 끓인 죽이 아니에요. 뭔가 대단한 육수로 끓인 죽이야. 감칠맛이 말이 안 돼. 대체 어떻게 만든 거지?"

─아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아냐고ㅋㅋㅋㅋ

─기만방송 컷! 독식방송 컷!

─??? : 그래서 안 볼 거야? 이렇게 맛있는 게 많은데?

─아…… 소외감 느낀다. 방송인이 이렇게 시청자 소외시켜도 됨?

화면 바깥을 향해 온갖 불평을 쏟아내는 시청자들. 하지만 이유나의 이목은 이미 채팅창을 떠난 지 오래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다음 목표를 찾아 홀을 샅샅이 훑는다.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조사를 되게 많이 했거든요? 상천만향회 여기가 면 요리가 그렇게 죽여준대요. 그날 만든 수타면만 써서 그 자리에서 바로 웍질해서 만든다는 거야."

─와, 엄마 말도 씹더니 이제 시청자 말도 씹음. 이게 프로 방송인?

─아ㅋㅋ 원래 서순 반대 아니냐고ㅋㅋㅋㅋ

그러던 와중, 그녀의 눈이 다음 타겟을 포착했다.

"응? 여러분, 저거 뭘까요?"

─이제 와서 신경 쓰는 척 역겹다ㅋㅋ

─보자. 성심조리고 학생 특제. 오늘 한정 일일 판매…… 사천식 닭껍질튀김딴딴면?

그것은 바로, 찬혁이 자리한 면 주방 부스의 아크릴판 위에 걸린 현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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