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47화 (47/403)

47. 상천만향회.-6-

'그럼, 뭘 만들어볼까…….'

요리사에게 있어 요리란 고뇌의 연속이다.

먹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재료를 사용할지, 어떤 조리법을 이용할지, 소모하는 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만듦새는 어떻게 할 것인지, 플레이팅과 연출에는 어떻게 공을 들일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만들고 싶은 요리는 무엇인지.

그런 고뇌와 고민 속에서 태어나는 요리야말로, 진정한 일품이라 불릴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내가 저 장백천 셰프라는 사람에게 대접할 수 있는 요리는 무엇일까.

'맛있기만 해선 안 돼.'

맛있는 건 당연한 거다. 그 당연함을 지키기가 참 어렵다는 게 문제일 뿐.

지금 필요한 건 저 셰프에게 한 방 먹여주는 것.

그냥 맛있다는 말만 듣고 끝낼 수는 없다. 무언가, 큰 충격을 전달할 요리. 내게는 그것이 필요했다.

그 순간, 하나의 이미지가 머리를 스친다.

"정했다."

중화야말로 세계제일의 미식이라 그거지?

좋다, 그렇다면 이쪽도 중화로 혀를 만족시켜드려야지. 다만……

'내 방식대로 만든 중화로 말이지.'

***

머릿속으로 메뉴 구상을 끝낸 찬혁은, 이내 필요한 재료를 정리한 뒤 장백천에게 말했다.

"무전기를 잠시 사용할 수 있을까요? 필요한 재료 목록을 전달하고 싶은데요."

『알겠네. 그쪽에는 미리 내용을 전달해뒀으니, 무전을 받는 주사에게 말하면 곧바로 올 걸세.』

"감사합니다."

공손하게 두 손으로 무전기를 받아들고 멀찍이 떨어져 등까지 돌린 채 무전기로 무어라 달싹이는 찬혁을 보며, 장백천은 그 나름대로 감탄하고 있었다.

'벌써 구상은 끝냈다 그건가?'

면 요리를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물어본 지 고작 3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저렇게 술술 필요한 재료를 읊는 것을 보아, 이미 찬혁의 머릿속에서는 모든 조리 과정이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겠지.

그 사실을 단박에 눈치챈 장백천은 웃음기 띈 얼굴로 만족한 듯 끄덕였다.

'기술뿐만 아니라 머리 돌아가는 속도도 범상치 않아.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군.'

장백천이 그렇게 자신의 안목을 자화자찬하고 있을 때, 요청한 재료를 올려 보냈다는 무전과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를 동시에 들은 찬혁이 움직였다.

─우우우웅!

'오, 빨라.'

과연 1류 호텔의 크루 다운 속도라고 해야 할까, 전달과 행동 사이의 타임랙이 짧다 못해 없는 수준이었다.

메인 주방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요란한 엘리베이터의 알림 소리. 서둘러 엘리베이터로 다가간 찬혁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재료를 하나씩 빼내기 시작한다.

소분되어 올라온 찰진 수타면, 땅콩기름, 계유, 각종 향신채소, 향신료, 백주白酒, 즈마장.

재료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카트 위로 옮기는 찬혁의 모습을 본 장백천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는다.

'호오, 딴딴미엔担担面을 만들 생각이로군.'

고작 꺼내진 재료만을 살피고, 단숨에 찬혁이 만들려는 요리가 무엇인지 눈치챈 그가 웃었다.

'나름 잘 생각했어.'

딴딴미엔이란 오랜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중국 전통의 면 요리이다.

전통적인 요리라고 하여 어려운 요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딴딴미엔의 원류는 바로 노동자들이 새참 등으로 즐겨 먹던 요리였다.

보따리상이 기다란 봉에 두 개의 들통을 걸어 메고担 다니며 들통 하나에는 면을, 하나에는 소스를 담아 즉석에서 국수와 소스를 비벼서 팔았기 때문에 딴딴미엔.

쉽게 말하자면, 딴딴미엔이란 단순한 비빔국수였다.

'확실히 빨리 만들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야. 하지만…….'

이 자신이 만족할 만한 면 요리를 만들라 했는데, 고작 딴딴미엔을 들고 오다니?

'볼만한 건 어엿한 중화요리라는 점 뿐이군.'

어수룩한 파스타 따위나 들고 왔다면 손도 대지 않았을 테니, 어찌 보면 합당한 선택이었다. 허나 이미 장백천의 기대치는 더 이상 볼 것도 없다고 생각할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김이 팍 샜다는 듯 가늘어진 눈으로 찬혁을 살피던 그때, 장백천의 눈에 밥공기만한 크기의 그릇 안에 수북이 쌓여 있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 뭐지?'

그가 방금 만든 카오루주보다 훨씬 짙은 갈색빛깔을 가진 작달막한 덩어리들. 살짝 먼 거리 탓에 제대로 알아보기 힘든 그 덩어리에, 수그러들었던 그의 호기심이 점점 그의 마음속에서 덩치를 불려 나갔다.

'이거다.'

그리고 그런 정체불명의 재료를 꺼내든 찬혁의 얼굴은, 마치 수풀 속에 숨어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리는 저격수의 그것처럼 날카로운 안광을 빛내고 있었다.

'이게 바로 내가 먹여줄 한 방이야.'

찬혁이, 입꼬리를 길게 찢는다.

***

앞서 말했듯이, 딴딴미엔의 조리법은 아주 간단하다.

즈마장, 노두유, 설탕을 비율에 맞춰 섞어준 뒤, 그 위에 삶은 면을 얹고 매콤하게 볶은 돼지고기, 절인 야채 다짐, 다진 땅콩 등을 고명으로 얹어 먹는 아주 단순한 요리.

'하지만 고작 그걸로 끝나면 재미가 없지.'

물론, 내가 만들 것은 그런 판에 박힌 딴딴미엔이 아니다.

장백천 셰프에게 한 방 거세게 먹여줄 수 있는, 나만의 딴딴미엔. 나만의 중화. 지금부터 내가 만들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시작은 단순하다. 땅콩기름과 계유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웍에 넣고 빨갛게 물든 건고추와 함께 끓여낸다.

고춧가루로 뽑아내는 라유와는 살짝 다른 방법이지만, 이렇게 라유를 뽑아내면 고춧가루의 풋내가 섞이지 않으면서도 고추씨앗에 함유된 매운맛과 껍질의 붉은빛을 극한까지 뽑아낸 고품질의 라유를 뽑아낼 수 있다.

'물론, 재료비가 조금 더 들어가긴 하지만…….'

지금 내가 재료비 걱정할 처지인가. 애당초 내 가게도 아닌데. 뭣보다 지금 나는 다른 곳에서 원가를 엄청나게 절감했단 말이다.

속으로 살짝 큭큭 거리며 안 그래도 재빠르게 움직이던 손에 더욱 속도를 붙인다.

적당한 불에서 뭉근하게 끓어오른 라유를 적당한 그릇에 담아 산초 등의 향신료와 잘 섞어준 뒤, 웍을 깨끗하게 닦아내고 적당히 다진 짜사이榨菜를 웍에 넣어 수분이 빠질 정도로만 볶아준다.

고명으로 사용할 땅콩을 적당히 다져 이것도 볶아준 뒤 그릇으로.

그리고 그다음이 바로, 나의 비밀병기가 나설 차례다.

"흐흐."

짙은 갈색빛깔의 덩어리들을 잘게 잘라, 고온의 기름으로 짧게 겉만을 데치듯 튀겨준다. 이미 이 녀석들은 익어도 한참이나 익은 녀석들인지라, 온기를 살짝 되찾을 정도로만 열을 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즈마장과 노두유, 흑초, 설탕, 고추기름을 섞은 양념을 한 차례 바짝 끓인 뒤, 이것에 방금 살짝 튀겼던 내 비밀병기를 넣어 버무리고, 이것을 잘 삶은 수타면 위에 고명과 함께 얹어 장식해 주면……!

"완성됐습니다. 드셔보시죠."

특제 딴딴미엔, 완성이다!

***

『이건…… 』

검붉은 양념이 골고루 코팅된 정체 모를 무언가를 볶은 돼지고기 대신으로 사용한 딴딴미엔을 눈앞에 둔 장백천이 침음성을 흘렸다.

조리과정을 빠짐없이 봤지만, 도통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육류라는 것은 알겠지만…….'

한 차례 튀긴 뒤, 그것을 한 번 끓인 양념으로 버무린 것을 보아 돼지고기를 대신할 육류라는 것은 확실했다. 다만, 그럼에도 맛을 예상할 수가 없다.

『좋아, 잘 먹겠네.』

'어쩔 수 없지. 이럴 때는 먹어보는 수밖에.'

요리사는 눈으로만 판단하지 않는 법. 진정한 판단은 혀가 내리는 것이다.

한 손으로는 딴딴미엔을, 한 손으로는 젓가락을 집어 든 그가 면과 고명을 비비기 시작한다.

비비면 비빌수록 고명에 묻은 양념의 색으로 물들어가는 잘 삶아진 수타면. 그 면에 감도는 광택만 보아도 이것이 얼마나 쫄깃할지 단번에 상상되어 저도 모르게 침이 넘어갔다.

─꿀꺽!

'그리고, 이 향!'

코를 톡 쏘는 매콤한 향! 가까이 가져다 대면 향이 혀를 찔러 드는 것 같은 이 폭력적 향취! 마와 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아냈음을 확신하게 하는 이 사천 특유의 향은 그에게 향수마저 불러일으킬 지경이었다.

장백천은 더 이상 그 유혹을 참을 겨를이 없었다.

그 자신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민첩하게 움직인 젓가락이, 단숨에 면의 3분의 1 이상을 집어 그의 입으로 옮겨 넣는다!

『으음!』

이것이다! 사천의 마라! 단번에 그의 신경계를 지배하고, 뇌리마저 검붉은 색채로 덧칠하는 것 같은 저림과 고통! 눈가에 쨍하게 눈물이 맺혀오는 매콤함! 하지만 그의 젓가락은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이미 낭떠러지로 한 발을 디딘 사람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듯, 그는 맛의 나락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으니까!

─후루룩!

듬뿍 집어낸 면이 다시 한번 그의 입을 지나, 식도를 타고 위로 도달한다.

─바삭!

면을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이를 튕겨낼 것 같은 탄력! 그에 더해, 돼지고기를 대신하고 있던 정체모를 고기 고명의 터무니없는 바삭함!

한 차례 튀겨진 고기 고명의 표면에 스며든 딴딴미엔의 소스가 선사하는 새콤, 달콤, 매콤, 짭잘함, 고소함이라는 다섯 가지 맛에 더해진 식감이 장백천의 의식을 더더욱 앗아갔다.

─쨍!

『악마적이야……!』

단숨에 그릇 하나를 동낸 장백천이, 뜨거운 땀을 뻘뻘 흘리며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마음에 드셨나요?"

『말이라고 하나? 자네, 대체 어떻게……?!』

넋을 놓기 직전인 그에게 건네진 찬혁의 질문에, 장백천은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려다 말을 멈췄다.

'체통을 지켜야 해.'

까마득하게 어린 후학들과 부하들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저지선이었다.

『흐, 흐흠! 맛이 좋더구나. 아주 훌륭한 딴딴미엔이었어.』

"감사합니다."

정작 체통을 보여야 할 찬혁은, 이마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그의 모습에 웃음을 참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장백천이 찬혁에게 질문을 건넴과 동시에, 두 사람의 문답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류찬혁 후배. 자네 정말 중식 전공이 아닌가?』

"예."

『그런데 그렇게 훌륭한 전통 딴딴미엔을 만들었다고?』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 공부."

『따로 배우는 사부도 없고?』

"학교에서 중식을 가르치시는 선생님 말고는……."

『독학…… 그렇단 말이지.』

잠시 곰곰이 홀로 고민에 빠진 장백천이, 이윽고 말을 이었다.

『자네가 돼지고기 대신 넣은 고기 고명. 그건 닭이더구만. 그것도 아주 바삭하게 튀긴 닭 껍질.』

"예. 맞습니다."

『닭 껍질을 그렇게 바삭하게 튀기려면 시간이 모자랐을 텐데, 어떻게 한 건가?』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찬혁이 웃는다.

"계유에요. 계유를 만들고 남은 닭 껍질을 썼죠."

『계유! 오호라, 그런 방법이 있었군!』

장장 30분에 달하는 시간 동안 기름으로 튀겨진 닭 껍질. 내부에 있는 수분이란 수분이 모조리 빠져나간 그 기름의 잔여물에 불과한 그것은, 찬혁이 그랬듯이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서는 그 어떤 고기보다도 확실하게 소스를 빨아들이는 최고급 고명이 될 수도 있다.

『실失에서 득得을 본 게구만. 대단한 발상이야!』

"아뇨, 뭘요."

사실 이것은 찬혁이 닭 껍질을 버리기가 아까워 사용법을 찾다가, 볶음밥 등의 볶음 요리에 잘게 자른 닭 껍질을 첨가하는 등의 생활적인 실험을 통해 알아낸 것이었다.

그에 더해, 소스를 만들 때는 계유와 땅콩기름을 배합하여 뽑아낸 라유를 사용한 덕분에 고명과 기름의 맛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 또한 맛을 더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런 설명을 들으며 감탄을 금치 못하는 장백천을 향해, 찬혁이 이어 말한다.

"그리고 소스를 면 아래에 깔아놓는 대신, 한국에서 즐겨 먹는 양념치킨처럼 튀긴 닭 껍질과 잘 버무려서 이용해 봤습니다. 말하자면 한국적인 양식과 중식의 융합이죠. 퓨전요리라고 해도 되겠네요."

『퓨전요리…… 라고?』

퓨전요리. 그것은 장백천이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였다.

이미 스스로 완전한 중화에 타국의 문화를 더할 필요는 없다고, 지금껏 굳게 믿어 왔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이것은……

"요리에 이름을 붙이자면…… 아, 쓰촨쨔찌피딴딴미엔四川炸鸡皮担担面─사천식 닭껍질튀김딴딴면─정도겠네요."

『쓰촨쨔찌피딴딴미엔…… 』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훌륭한 요리였네.』

"감사합니다."

이 요리는, 자신의 뜻을 꺾어도 괜찮을 만한 힘이 있다는 것을.

"그럼, 이 면 요리는 합격인가요?"

자신만만한 웃음을 얼굴 가득 지은 찬혁의 질문.

아니, 이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확답을 받아내겠다는 태도에 가까웠다.

그런 찬혁의 말에 잠시 말을 고르던 장백천이, 장고長考 끝에 입을 연다.

『아니, 불합격일세. 자네를 조수로 쓰겠다는 말은 없었던 것으로 하지.』

"…… 예?"

놀라움으로 부릅떠지는 찬혁의 두 눈. 마치 '그럼 방금까지 그렇게 맛있게 먹은 건 다 뭐냐?'라고 묻는 듯한 시선에, 장백천이 말을 잇는다.

『이 쓰촨쨔찌피딴딴미엔은 당장 가게에서 팔기에는 준비할게 너무 많아. 계유를 만들고 남은 닭 껍질도 부족할 테니까.』

"…… 그 말씀은?"

『내가 밑준비 주방에 당장 이야기하지. 지금 바로 계유를 더 만들어서 튀긴 닭 껍질을 더 준비하라고 말이야. 류찬혁 후배. 자네는 조수가 아닌, 주사로서 면 주방에 서게 될 걸세.』

놀랍다는 표정을 지은 찬혁. 그 눈을 마주본 장백천은 이리 말했다.

『쓰촨쨔찌피딴딴미엔. 일일 한정 판매로 하세나. 책임지고 고객들에게 대접하게. 할 수 있겠지, 류찬혁 주사?』

이윽고, 자신 또한 두 눈에 진중한 빛을 품은 찬혁이, 힘차게 대답했다.

"예, 총주방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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