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45화 (45/403)

45. 상천만향회.-4-

호텔 상천에는 주방이 총 세 곳 있다.

첫 번째는 식기 주방이다.

이미 주방으로 부르기도 애매한 곳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곳은 이 상천만향회에 있어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역할을 한다. 고객들이 사용한 식기, 여타 주방에서 사용한 주방도구 등을 설거지하여 다시 필요한 곳으로 재배치하는 일을 도맡아 하기 때문이다.

보통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쿡이나, 혹은 설거지만 하러 온 전문 인력들이다.

두 번째는 밑 준비 주방이다.

방금 우리가 견학했던 주방이며, 말 그대로 각 식재료를 밑 준비하는 일을 도맡는다. 식자재를 필요한 모양에 맞춰 썰어두거나, 아까 계유를 만든 것처럼 고추기름, 파기름, 양파기름, 마늘기름, 돼지기름 등등. 기름을 뽑아두기도 하며 소스를 대량으로 제조하기도 한다.

주어진 업무 탓에 필연적으로 이 주방의 노동 강도는 굉장히 높고, 그 때문에 이 주방에 배치된 인원도 다른 주방들에 비하면 굉장히 많다. 이것은 준비시간이 길지만, 요리를 완성할 때에는 순식간에 완성 시키는 중식의 특성 탓도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

그리고 마지막은 바로 이곳. 메인 주방이다.

두 시간가량의 오전 실습을 마친 우리는, 이내 호텔 측에서 제공해 준 도시락─굉장히 맛있었다. 심지어 추가도 마음껏 해도 좋다는 말에 백예은은 혼자 세 개를 먹었다.─으로 점심을 때우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 우리는, 이내 장백천 셰프와 이준 컨시어지의 인도를 따라 마지막 주방인 메인 주방에 발을 디뎠다.(두 시간 가량의 오전 실습을 마친 우리는, 호텔 측에서 제공해준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웠다.

'굉장히 맛있었지.'

마음껏 추가해도 좋다는 말에 백예은은 혼자 세 개를 먹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우리는, 이내 장백천 셰프와 이준 컨시어지의 인도를 따라 마지막 주방인 메인 주방에 발을 디뎠다.)

『자, 이곳이 바로 중화의 진수가 모여 있는 곳이지. 물론 본토의 설비에 비하면 손색이 없진 않겠지만 이 정도 설비는 본토 말고는 본 적이 없을 정도야. 스스로가 이런 설비를 가진 주방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나.』

중뽕이 과다하게 들어간 저 셰프가 그렇게 말할 정도로, 지하에 마련된 주방은 엄청난 설비로 무장하고 있었다.

수십 평은 되어 보일 법한 공간에 가득 늘어선 화구들과 그 옆에 빼곡하게 자리 잡은 각종 조미료. 호텔 외벽 쪽에 붙어 한창 불이 오르고 있는 두 개의 화덕. 한두 개로는 모자라다는 듯 십여 개는 되어 보이는 환풍구, 대형 오븐, 엄청난 넓이를 자랑하는 테이블, 그리고 선반 가득히 있는 온갖 기계들까지!

'와, 저거 페달식 화력조절 화구 아닌가?'

심지어 그런 것 중 무엇 하나 최신식이 아닌 것이 없었다. 이 시절에 이런 설비를 가진 주방이 실존했을 줄이야. 다른 것 이전에 이 주방에 발렸을 자금이 얼마인지 예측되기에 놀라울 지경이다.

『이 주방에서는 밑 준비 주방에서 준비한 식자재와 양념, 그리고 메인 주방 자체적으로 준비한 재료 등을 사용해 마무리 단계의 조리를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조리가 끝난 음식은 벽에 달린 사물용 대형 엘리베이터를 통해 뷔페장의 보조 주방으로 운반되지.』

그렇게 말한 장백천 셰프가 가리킨 곳을 보니, 과연 대형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은 커다란 크기의 문이 달린 엘리베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이 주방에는 화구 하나마다 그 자리를 담당하는 주사厨师가 한 명씩 있다. 그들이 전채, 고기, 생선, 후식 등을 합쳐 총 80종류에 달하는 음식을 고객에게 대접하지. 자네들은 그 셰프들의 보조를 맡아 견학 및 실습을 하면 되지만……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그래. 마침 나쁘지 않군. 기왕 이렇게 된 것, 어린 후학들에게 대륙의 기상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겠어.』

"총주방장님?"

'뭐야?'

우리에게 설명을 하다 말고 갑자기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한 장백천 셰프. 통역을 하던 이준 컨시어지도 갑자기 돌발행동을 보이는 그를 보고 당황스런 기색을 내비쳤다. 그 모습에 나 또한 괜히 불안감이 치솟았다. 또 무엇을 할 생각인지……

선반 한구석에 있던 주방 직원용 무전기를 챙겨 들고 무어라 말하기 시작한 장백천 셰프. 상대편이 통역이 필요 없는 사람인 듯, 이내 그쪽에서도 답변이 돌아온다.

수많은 사람이 보내는 의문이 가득 담긴 시선을 받으며 자리로 돌아온 장백천 셰프가 한껏 웃음 띈 얼굴로 우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들은 운이 아주 좋아! 좀처럼 주방에 서지 않는 내가 만드는 우리 만향회의 자랑을 맛볼 수 있게 됐으니 말이야!』

─기이이이잉.

그 영문 모를 발언에 일행이 고개를 갸웃거릴 그때. 갑자기 울려 퍼진 커다란 기계음.

일행의 시선을 돌린 소리의 진원지에는, 방금 장백천 셰프가 언급했던 대형 엘리베이터가 불을 반짝이고 있었다. 커다란 기계음의 정체는 엘리베이터의 작동음이었다.

『오, 빠르군. 역시 이 나라 주사들의 속도 하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감탄스럽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장백천 셰프. 그런 그가 걸음을 옮겨 직접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는, 그곳에서 무언가가 잔뜩 들어 있는 큼지막한 박스를 꺼내왔다.

『지금부터 자네들에게 보여줄 것은, 우리 광동의, 아니. 중화 제일의 요리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대단한 요리다. 부디 두 눈 똑똑히 뜨고 보길 바라네.』

그렇게 말하며 박스를 열어젖힌 그의 손에, 커다란 무언가가 붙잡혀 나온다.

연분홍빛 색채의 가죽으로 덮인 네발 달린 짐승.

"새끼돼지?"

그것은 바로, 두터운 비닐팩에 진공포장 된 한 마리의 새끼돼지였다.

'광동…… 새끼돼지…… 아, 그거구나.'

박스 속에서 하나둘 나오는 재료들을 보며, 나는 이내 장백천 셰프가 무슨 메뉴를 만들 예정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카오루주烤乳猪! 지금부터 그 조리과정을 보여주마.』

카오루주. 광동식새끼통돼지구이. 바로 그것이었다.

***

새끼돼지를 비롯한 갖은 재료들을 빠짐없이 꺼내든 장백천 셰프가 입을 열었다.

『카오루주란 광동에서 전통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요리다. 조리법 중에서도 가장 단순한 굽기. 하지만 카오루주에 담긴 굽는다는 조리법의 철학은 감히 그 단어 하나만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것이지.』

이준 컨시어지가 통역을 따라가기도 벅차할 정도로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는 그. 그럼에도 그 손에 들린 커다란 중식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확하기 이를 데 없는 손놀림을 통하여 순식간에 새끼돼지 한 마리를 해체하고 있었다.

목에 칼집을 내어 잡내를 유발하는 피를 깔끔하게 빼낸 새끼돼지의 배를 중식도의 칼날 끝부분으로 내장에 상처를 만들지 않게끔 깊이를 조절하여 단숨에 갈라낸다.

턱부터 항문까지. 단숨에 뱃가죽을 절개하고, 그 속에 가려져 있던 식도를 포함한 내장을 한 손으로 뽑아내며 제거한 장백천 셰프가 말한다.

『이 카오루주의 원형은 서주 시절, 파오툰炮豚이라 불린 요리라고 알려져 있다. 만한전석에도 포함되었던 이 요리가 발전하여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고 하지. 청나라 때 중화 미식의 금자탑이라 일컬어지는 만한전석 108좌의 일석을 차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어린 후학들은 아직 모를 수도 있겠지만, 이번 기회로 깨우침을 얻길 바란다.』

순식간에 내장과 피막이 제거된 새끼돼지. 하지만 장백천 셰프는 아직 끝이 아니라는 듯 다시 한번 거침없이 칼을 놀린다.

─쾅! 쾅!

가장 먼저 중식도의 손잡이 쪽 칼날로 새끼돼지의 턱을 내리찍는 그.

그 단호한 칼질에 속수무책으로 뼈를 내준 새끼돼지의 머리통은 눈 깜짝할 새 반쪽이 나고 말았다.

'역시, 저게 바로 중식도지.'

다른 국가에 비해 특이할 정도로 하나의 칼만을 이용해 조리하는 중화. 이것은 그들이 무식해서가 아니라, 중식도란 칼 하나만으로 그 모든 복잡한 과정을 해낼 수 있다는 자부심에서 기인한다.

칼날이 얇은 끝부분으로는 섬세한 칼놀림을.

칼날이 두꺼운 손잡이 쪽 부분으로는 호쾌한 칼질을.

손으로 쥐면 뭉개질 만큼 부드러운 두부부터, 사람 힘으로는 어쩌기 힘든 두터운 뼈까지 중식도 하나로 충분히 다룰 수 있다는 자부심.

장백천 세프는 그 자부심의 근거를 우리에게 여봐란듯 똑똑히 선보이고 있었다.

머리뼈부터 시작하여 척추까지.

아무리 새끼돼지의 뼈가 연약하고 무르다고는 하여도 한 번의 실수조차 없이 깔끔하게 그것을 이등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에 더해 뼈만을 가르고 그 아래에 있는 가죽에는 흠집 하나 내지 않은 솜씨는 놀랍기 그지없었다.

'…… 입만 살아 있는 사람은 아니었네.'

하긴, 실력이 없다면 저 자리에는 설 수 없었을 테니까.

깔끔하게 해체가 끝난 돼지의 배에 오향염五香盐과 주후장柱候醬을 골고루 발라낸 뒤, 그것을 이지창처럼 생긴 꼬치에 꽂아 물에 불린 각목으로 단단하게 고정시키고는 손을 씻는다.

『이것으로 기본적인 준비는 끝이다.』

─짝짝짝짝!

학생들의 박수가 거세게 울려 퍼졌다. 그럴 만도 하다. 지금 그 칼솜씨는 그야말로 묘기가 따로 없었으니까. 새끼돼지 한 마리를 해체하고 양념해서 꼬치에 꽂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 10분가량. 대단한 속도였다.

『하하핫! 후학들이 보는 눈이 있군!』

장백천 셰프는 그런 우리의 박수에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기도 잠시, 갑자기 그가 이준 컨시어지를 손짓으로 부르더니, 무어라 속삭이기 시작한다.

『예?』

무슨 말을 했길래 그러는 것인지, 깜짝 놀라는 이준 컨시어지. 하지만 이어지는 셰프의 말에 하는 수 없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가 우리에게 장백천 셰프의 말을 전한다.

"아, 잠시 주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의아한 눈길을 향하는 학생들, 그런 그들을 보며 이준 컨시어지가 말을 이었다.

"총주방장님께서 학생 여러분들 중 조수 역할을 맡아 함께 조리해 보고 싶은 분이 계시냐고 물으시는군요. 혹시 지원하고 싶으신 분?"

그 말이 끝나자마자 웅성거리기 시작한 일행들, 하지만 누구 하나 쉬이 손을 들려 하지 않는다. 아마 방금 그 광경에 위축된 탓이겠지.

'나야 뭐, 귀찮기도 하고.'

전통 카오루주 조리를 가까이서 볼 기회는 분명 흔치 않겠지만, 그래도 더 이상 저 양반 눈에 찍히는 건 사절이다.

좀처럼 누구 하나 나서지 않자, 입을 다물고 있던 이준 컨시어지가 말했다.

"지원자가 없다면, 총주방장님께서 직접 선출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 그의 발언에 순식간에 침묵에 빠지는 일행. 사람 말소리로 시끄럽던 주방이 단숨에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로 가득 차오른다.

…… 뭐지, 갑자기 뭔가 불안해졌다.

묘하게 긴장감이 흐르는 적막함 속에서, 장백천 셰프의 손이 천천히 올라간다. 이윽고, 곧게 펼친 검지로 어느 한 곳을 가리키는 셰프의 손. 팔을 뻗은 그의 입이 열린다.

『류찬혁. 이리 오게.』

"류찬혁 학생. 총주방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아, 역시.

불안한 느낌은 틀린 적이 없다니까.

***

『자, 이거 받게.』

"예."

나를 뽑아낸 장백천 셰프는 액체가 가득 담긴 커다란 통과 무언가를 뿌리기거나 퍼내기 쉬운 각도로 꺾인 중식용 국자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 통에 담긴 것은 탕슈이糖水네. 그걸 내가 말할 때마다 돼지 껍질 위에 골고루 뿌려주면 되네. 이보게, 이준 컨시어지. 매번 통역을 통해 말하면 타이밍이 안 맞으니 내가 말하는 구호에 맞춰 뿌리라고 전해 주게.』

"예, 알겠습니다."

그 말을 통역해 준 이준 컨시어지에게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내 손에 들린 통을 바라봤다.

'흐음, 탕슈이라. 맥아당이랑 물을 비율을 맞춰 잘 섞은 거였지, 아마?'

액체에 잘 섞인 당분이, 껍질이 구워지면 구워질수록 그 위를 두껍게 코팅하며 반짝이는 윤택을 줄 것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도 참 잘 만들어진 요리다.

이쯤 되면 준비가 끝났다 여긴 것인지, 장백천 셰프가 한 차례 펄펄 끓는 물을 끼얹어 팽팽하게 만든 새끼돼지의 껍데기 위로 땅콩기름을 듬뿍 발랐다. 이제 굽겠다는 신호다.

『자, 시작하마.』

"예, 장백천 사부."

뛰어난 품질의 숯이 타오르며 향기로운 숯 향과 더없는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 뜨거운 불가마 속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준비를 끝마친 새끼돼지가 용감히 얼굴을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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