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44화 (44/403)

44. 상천만향회.-3-

마음에 들지 않는다.

중화요리 4000년 역사를 모르는 내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타국의 요리를 폄훼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자신의 나라에서 발전해온 요리문화에 자부심을 가지는 건 좋다.

다만,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문화에도 그만한 존중을 보여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호텔 하나의 총주방장이라는 사람이……

"후우……."

그만두자.

이렇게 불평해 봤자 뭔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학생 신분으로 배우는 게 싫다고 때려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무엇보다 배울 게 딱히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단 하루에 불과하대도 이 정도 규모의 중식 주방에서 현장 경험을 쌓는 건 결코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다.

우리를 위해 호텔 측에서 비워놓은 라커룸에서 조리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복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장백천 셰프와 이준 컨시어지가 우릴 맞았다.

『거 갈아입는 속도 한번 굼벵이처럼 느리군. 얼른 와서 서라.』

"기다렸습니다. 제 앞으로 모여주세요."

─빠득.

"쓰으읍……."

아니 근데 저 양반이 진짜.

제대로 알아들을 사람이 없다고 사사건건 한마디, 한마디가 거슬린다. 오죽하면 웃는 게 업무인 컨시어지 얼굴이 저렇게나 굳었을까.

"너 왜 아까부터 자꾸 그러냐? 입 헐기라도 했어?"

"아니, 별거 아니야. 괜찮아."

쯧, 벌써 몇 번이나 혀를 차며 쓴 숨을 들이켰는지.

철정이 녀석까지 이러는 걸 보면, 티를 너무 많이 냈나 보다.

나는 대충 고개를 휙휙 저으며 잡생각을 털어냈다. 그래, 어차피 반나절 정도 싫은 소리 듣는 거야 대단찮은 일이지. 업장에서 일주일 동안 소스 하나 제대로 못 만든다고 구박받던 걸 생각하면 차라리 안 들린다고 무시하면 될 일이다.

'맞아. 어차피 실습 중에 저 양반이랑 얼굴 맞대면 얼마나 맞대겠어.'

성격만 봐도 뻔하다. 어차피 실습 주관 같은 건 전부 부하들한테 맡기고 생색이나 내겠지. 분명 얼굴 볼 시간도 얼마 안 남았을 것이다.

『서둘러 이동해라. 이제부터 진짜 현장이란 걸 똑똑히 가르쳐줄 테니까.』

"이제 이동합시다. 지금부터 실제 현장에 대해 상세히 가르쳐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후, 참자. 참아.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을 막는다. 웃는 자에게 복이 온다.

평소 업장에서 짜증이 솟구칠 때마다 되새기던 격언을, 오늘도 다시 마음속에 새겼다.

***

"아무 쓸모도 없네."

"응? 뭐라고?"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쉽게도, 그런 내 예상은 이번에도 빗나가고 말았다.

현장 실습 참관 같은 건 금방 두고 가버릴 것이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장백천 셰프는 실습을 시작한 지 30분이 지나도록 어디에서 누가 다치는 일은 없는지, 준비는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살피고 둘러보며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존중은 없어도 자부심은 있다 그거구만.'

고객에게 대접할 음식만큼은 하나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주관하겠다는 태도다. 적어도 저 자부심의 반의반이라도 다른 요리를 존중할 줄 알았다면 정말 파랑새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를 텐데.

─탕탕!

내가 잠시 장백천 셰프를 곁눈질로 살피고 있을 때, 철과 철이 맞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내 귀를 찔러 들었다.

"자자, 집중하자."

"아, 옙. 신호균 선배님."

잠시 한눈을 팔고 있던 내 시선을 다시 잡아끄는 누군가.

우리는 현재 오후 개장을 준비하여 식재를 골라내거나 다듬는 중이었던 밑 준비 담당 주방에서 근무하는 현직 쿡들에게 약 1:4 정도의 비율로 달라붙어 조리하는 과정을 견학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를 비롯한 반 아이들 네 명을 담당하고 있는 쿡이 바로 이 사람. 올해로 호텔 경력 3년 차에 접어드는 신호균 쿡이다.

방금 났던 날카로운 쇳소리는 이 신호균 쿡이 커다란 중화요리용 프라이팬인 웍을 국자로 내리치는 소리였다. 집중하라는 뜻이다.

"흐음. 류찬혁이라고 했나? 설명은 잘 듣고 있는 거 맞지?"

"예, 선배님."

자신이 교육하는 중인데도 한눈을 팔고 있던 후배가 못마땅했던 것일까, 살짝 인상을 찌푸린 신호균 쿡이 국자를 잠시 내려놓더니 나를 향해 몸을 돌린다. 내 얼굴을 바라보는 그 얼굴에 질 나쁜 웃음이 서린 것이 보인다.

"잘 들었다면 학습 상태를 확인해 볼 겸 내가 몇 가지 질문해도 되겠지?"

"예."

"좋아. 그럼 먼저, 지금 내가 한 작업은 뭘까?"

"닭기름을 뽑아내는 작업입니다."

"맞다. 닭 껍질에서 닭기름을 뽑아내는 작업이지. 알려줬던 작업 순서는 기억해?"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번 말해 봐."

"예열하지 않은 웍에 벗겨낸 닭 껍질을 차곡차곡 올려준 뒤, 껍질이 타지 않을만한 적당한 세기로 불을 피워 가열합니다. 화구의 불 조절과 닭 껍질의 양에 따라 시간이 달라지지만, 알맞은 양의 닭 껍질을 적확한 세기의 불로 가열하였을 때, 약 1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웍 중심에 닭기름이 점점 고이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확인한 뒤, 불의 세기를 조금 더 올려 기름이 빠져나오는 것을 유도해 주고, 계유가 차올라 익어서 수축된 닭 껍질을 뒤덮을 정도가 되었을 때, 기름이 너무 높은 온도로 끓지 않게끔 온도를 조절하며 닭 껍질의 무게에 맞추어 계량한 파와 생강, 마늘 등의 향신채소를 기름에 잠기도록 넣은 뒤 튀기듯 끓여줍니다.

파와 생강에서 수분이 빠져나와 기포가 올라오지 않게 된다면 더 이상 진액이 빠져나오지 않는다는 의미이므로 그것들을 건져내고, 남은 닭 껍질도 기포가 점차 올라오지 않을 때까지 끓여서 건져낸 뒤 채와 면보를 사용해 불순물을 걸러내어 용기에 담아 보관합니다."

"…… 정확해. 잘 했다. 지금 말한 방법은 라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동물성 기름을 뽑아낼 때 언제든 활용할 수 있으니 명심해두면 좋아."

"감사합니다."

흥이 식었다는 듯 툭 뱉어내듯 말하는 그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인다.

잠깐 한눈 좀 팔았다고 망신을 주려는 속셈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먹은 짬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물론 한눈판 건 내 잘못이 맞다마는…….'

오히려 반대로 주눅이 든 신호균 쿡과, 방금 한 번 들은 것을 술술 읊는 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아이들에게 한 차례 어깨를 으쓱이며 눈짓으로 신호균 쿡을 가리킨다. 그것을 알아보고 흠칫거리며 다시 그를 바라보는 아이들. 이번에도 한눈팔다 걸리면 그냥은 안 넘어갈 것이다.

갑작스러운 문답 타임을 잘 넘겼다고 자찬하며 한숨 돌리는 그때였다.

『지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응? 아, 초, 총주방장님! 수고하십니다!"

『떠들지 말고 계속하게. 기껏 만든 기름에 침이 튀겨서 폐기하는 걸 보고 싶나?』

갑자기, 우리의 뒤편에서 소리를 내며 등장한 장백천 셰프. 양복 대신 편한 옷과 앞치마 등을 차려입은 이준 컨시어지가 그 옆을 따르고 있었다.

몇 차례 혀를 찬 장백천 셰프. 그가 이준 컨시어지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말한다.

『여기 있는 이 학생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잠시 도와주게.』

『예, 알겠습니다.』

'뭐야?'

갑자기 나타나서 또 왜 나를 걸고넘어지지.

그렇게 서로 중국말로 소곤거리던 두 사람이 내게 고개를 돌리더니, 이준 컨시어지가 의아한 표정을 지은 나를 똑바로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총주방장님께서 류찬혁 학생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괜찮을까요?"

"아, 예. 물론이죠.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내 입발린 립서비스를 이준 컨시어지를 통해 전해 들은 장백천 셰프의 얼굴에 웃음이 만개한다.

『하하핫! 소국의 학생이라 하여도 개안한 자에게는 대국의 기상이 보이는 법이로군! 마음에 들어.』

"…… 그렇게 말해 주니 자신을 아주 좋게 봐주는 것 같아 좋으시다고 하십니다."

"…… 아뇨, 뭘."

이쯤 되면 거의 말을 창조해내는 수준인데. 통역이 아니라 각본을 써도 성공할 사람이다.

어떻게든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정을 연기하며 대꾸했다. 다행이 저쪽도 이상함을 느끼진 못한 듯 뒤이어 연달아 말을 내뱉는다.

『그래, 지금 기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것 같은데, 맞나?』

"예. 닭기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 계유鷄油! 중화가 만들어낸 기름의 예술이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아하하……."

굉장히 자부심 가득한 눈빛이 부담스러워 헛웃음만 나올 지경이다.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백천 셰프는 이준 컨시어지를 통해 자기 하고 싶은 말만을 잔뜩 나열하는 중이었다.

『자네 같은 어린 학생이 잘 알지 모르겠네만 중화요리야말로 미식의 으뜸이지! 4000년의 역사로 쌓아 올려진 중국 대륙 전역의 산해진미를 그토록 풍부한 방식으로 조리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건 오직 중화뿐이야! 유럽의 요리 따위는 느끼하고 텁텁하거나, 생채소 따위를 생으로 씹어 먹는 저급한 요리 뿐. 진정으로 쇠에 혼을 담아 불이라는 마법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우리 대중화의 요리 외에는 그 어디에도 없다네!』

"대단하네요……."

『아무렴! 특히 중화는 쇠와 불의 마법 외에도 그 어느 나라보다 기름의 사용에 정통한 나라이지. 자네가 방금 말한 계유처럼 말이야.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물론 알고 있는 것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절로 대답이 나갔다.

"옛 중국 대륙의 낮은 수질 때문으로 압니다. 저급한 수질을 가진 물을 증류수로 만들어서 썼기에 아무런 향취가 없는 것이 요리를 만들 때 악재로 작용했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중화에서는 기름의 사용법이 크게 발달했다고…… 아."

『호오?』

아차, 생각 없이 너무 떠들었다.

괜히 말했다 싶어 서둘러 말을 끊은 나였지만, 이미 이준 컨시어지의 통역을 들어 버린 장백천 셰프의 안광은 뚫어지게 나를 향하고 있었다.

『자네, 이름이 뭐라고?』

"…… 류찬혁입니다."

『류찬혁. 자네, 전공은 따로 두고 있나?』

"아니요. 아직 1학년이라 전공은 따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굉장히 공부를 열심히 한 모양이군. 그런 것까지 알고 있다니 말이야.』

잠시 팔짱을 낀 채로 날 내려다보던 그가 이내 허허, 하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말게. 우리 중화의 문물을 최선을 다해 배우려는 자세가 기특해서 그럴 뿐이니. 내 단단히 기억해두지.』

"…… 감사합니다."

마치 자기가 대단한 선행을 베푼다는 듯 말하는 장백천 셰프였으나, 그때 내 머릿속에서는 그 옛날, 기억하기도 싫은 시절 있었던 일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 어쩌다 부대에 찾아왔던 투 스타가 내가 만든 간부식당 밥을 먹고, 그 이후로 주에 한 번은 꼭 우리 부대에 들리던 그 악몽 같은 기억이.

장군님 드실 걸 최선을 다해 만들자니 너무 자주 오시고, 일부러 못 만들자니 식사를 망친 스타의 노기를 사기 싫어 모두가 폭탄 돌리듯 그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리던 그 지랄 맞았던 시간.

결국 내가 팔려나가듯 파견을 나가는 걸로 마무리 됐었더랬지.

그나마 전역 날이 몇 달 안 남은 고참병일 때 그런 일이 생겨서 다행이었다, 그 이상 그런 생활을 이어나갔다면 분명 미쳐 버렸을 테니까.

그때와 지금 이 상황이, 묘한 기시감이 들어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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