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9화 (39/403)

39. 신고식.-5-

─파각!

쇠숟가락으로 굳은 시럽을 깨부수는 둔탁한 소리가 넓은 실습실에 메아리친다.

그 뒤를 이어 여러 사람이 다 함께 같은 행동을 연달아 반복하자, 그 소리가 겹치고 겹쳐 리듬감을 낳는다.

그것은 어떻게 들으면 오케스트라 합주의 시작을 알리는 팀파니의 고풍스런 음색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들으면 거친 연주를 예고하는 밴드의 경쾌한 드럼 소리 같기도 하다.

때려서 소리를 낸다는 악기라는 것 외에는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대조적인 두 악기.

크렘브륄레 또한 그렇다. 이 요리는 말하자면 대조를 즐기는 음식이다.

찬 커스타드크림과 뜨겁게 지진 설탕.

비할 데 없이 부드러운 식감과 씹는 순간 마치 달고나처럼 입속에서 부서지는 파삭함.

불길에 끓어오르는 설탕 속에 녹아든 어른스런 쓴맛과 생크림이 주는 포근한 달콤함.

같은 한 접시에 담겨 있는 수많은 대조, 대비.

그 모든 것들을 유심히 비교해가며 느끼는 것이 이 요리를 먹는 참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 는 뭐, 맛있는 거 먹는 데 방법이 따로 있겠어.'

물론 어렵게 먹어야 더욱 훌륭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요리도 있지만, 굳이 그렇게 머리를 써가면서 먹지 않아도 요리란 그 자체를 느끼며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예술이다.

그 증거로, 보아라. 저렇게 서로 웃고 떠들며 먹는 이들의 얼굴은 그런 고민 없이도 충분히 행복해 보이는 웃음을 짓고 있지 않은가.

"이게 크렘브륄레구나. 책이랑 인터넷으로만 봤지 실물은 처음이야."

"나도 만들어보는 건 오랜만이야. 예전에 몇 번 연습한 게 다라서."

"하긴, 굳이 연습용으로 만들 만큼 과정이 어려운 메뉴도 아니니까."

숟가락 끝으로 굳은 시럽을 톡톡 잘게 깨나가며 백예은이 신기하다는 투로 말한다.

맛은 있지만, 굳이 연습용으로 재료를 사 날라서 만들기에는 그렇게 어려운 조리과정도 없는 메뉴인지라……

나름 양식전공인 윤재 형도 내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도 엄청 맛있다. 특히 이 고구마, 되게 식감이 신기해. 꼭 과자 같아."

큼지막한 덩치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남학생, 여준기가 크림을 한입 가득 입으로 퍼 넣으며 말했다.

흠흠. 제법 혀가 뛰어난 녀석이로다. 그럼 어디, 나도 먹어볼까.

'오. 잘 됐다.'

일부러 수분기가 아예 빠져나갈 때까지 볶아 바삭할 정도로 만든 다음, 수분이 다시 들어가지 못하도록 물엿으로 코팅한 고구마가, 크게 떠올린 크림을 씹을 때마다 크런치초콜릿처럼 바삭바삭한 식감을 입안 가득 터트린다.

세심하게 만든 퍼즐이 마치 하나처럼 맞아 들어간 것 같은 이 기분. 정확히 내가 설계한 그대로 만들어진 일품이다.

"고구마랑 시럽에 살짝 그을린 부분은 쌉쌀한데, 그걸 크림이 한 번에 감싸니까 달콤한 카라멜 향기만 남아서…… 되게 신기해. 그리고 맛있어!"

좋다, 좋아. 좀 더 맛을 칭찬하라 이거야.

"그런데 이 맛…… 아까 녹이기 전에 색도 그렇고. 그냥 설탕은 아닌 것 같은데."

드디어 내 레시피에 숨겨진 비밀에 의문을 품는 이가 나타났으니, 다름 아닌 안창민, 그 녀석이었다.

안창민은 크림과 아직 섞이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굳은 시럽을 작게 떼어내서는, 그것을 눈앞까지 들이대고 살피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색이 안정되어 있어. 혼자 튈 만큼 색이 과하게 든 곳도 없고……."

"어때, 좀 알 것 같아?"

"…… 기다려 봐. 알아서 맞춰볼 테니까."

장난스런 기색을 담아 재촉하듯 묻자, 녀석은 한창 재미있게 읽고 있던 추리소설의 스포일러를 당할 뻔했다는 듯이 얼굴을 팍 찡그렸다.

뭐냐. 이 녀석하고는 미래에서도 별다른 접점이 없었지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던 모습과는 달리 보기보다 애 같은 일면도 있구나 싶었다.

"색을 보면 그냥 설탕은 아니고, 그렇다고 황설탕을 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중얼중얼 중얼중얼. 끊임없는 혼잣말과 함께 정답을 추론해나가는 녀석. 이내 손의 열기로 살짝 녹아들 만큼 시간을 들여 유심히 시럽 결정을 살피던 녀석은, 이내 그것을 입에 넣고 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마침내 알았다는 듯 안창민이 목소리를 높인다.

"아, 알았다. 미리 한 번 녹여서 시럽으로 만든 설탕을 다시 굳힌 거지?"

"오. 정답."

"역시!"

한 건 해냈다는 듯 당찬 표정을 짓는 안창민의 모습을 바라보는 내 얼굴에 짓궂은 미소가 걸린다.

"이 아니야."

"뭐?"

"아까웠어. 되게 정답에 가까웠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다시 아까처럼 얼굴이 찌그러진 그 모습에 실소가 새어 나왔다. 갑자기 장난기가 든 탓이다. 미안하게 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꼭 퀴즈 프로그램에서 오답이 나온 뒤에 버저를 누르는 것처럼 효민 선배가 끼어들어 온다.

"흑설탕. 흑설탕을 방금 창민이 네가 말한 대로 처리해서 쓴 거야."

"뭐? 진짜?"

"맞았어. 역시 선배님. 정답입니다. 대단하시네요."

이미 모든 비밀을 눈치챘다는 듯 의문문조차 아닌 효민 선배의 발언. 이 말이 사실이냐는 듯 나를 돌아보는 안창민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하겠지만 저게 정답이다.

선배는 그런 내 말에 오히려 자기가 놀랐다는 듯 대견하단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너야말로. 설마 잘 어울리는 재료들끼리 엮어 쓰는 방법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어."

"우와."

날카로운 지적에 무심코 탄성이 튀어나왔다.

"어떻게?"

"아무렴. 이래 봬도 성심고 대회반 예비 부장이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설명을 하실 수 있구나 해서. 다른 사람 요리는 설명 잘 하시네요?"

"야!"

내 급발진에 성질을 내는 효민 선배의 대노에 윤재 형이 웃는다.

더 건드렸다간 큰코다칠 것 같아 손을 내저으며 진정시킨다.

"농담이었어요, 농담. 진짜 놀라서 그래요."

"…… 흠흠. 이번엔 봐줄 테니까, 되도록 그런 장난은 하지 마렴."

"옙."

"아무튼, 참견은 여기까지 하고, 남은 설명은 직접 할래?"

"예. 그럴게요."

우리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호기심 어린 시선을 내비치는 다른 학생들을 둘러본 선배의 양보에, 나는 기꺼이 마이크를 받아들였다.

"음, 우선 방금 말씀하신 대로 굳은 시럽의 정체는 흑설탕을 한 번 녹여서 굳힌 다음 다시 가루로 만든 분말입니다."

"나 질문~."

"예, 말씀하세요, 백예은 학생."

"선생님 흉내 뭐야!"

쓸데없이 그럴듯해서 괜히 더 웃긴다며 큭큭댄 백예은이 다시 말을 잇는다.

"왜 굳이 그렇게 귀찮게 한 거야? 그냥 흑설탕 그대로 뿌려서 써도 됐잖아?"

"좋은 질문입니다. 백예은 학생에게 점수 10점 드릴게요."

"이번엔 수련회 조교야?"

"하하, 뭐, 설명하자면 별거 없어. 그렇게 한 차례 시럽이 됐었던 설탕은 다시 시럽으로 녹는 게 훨씬 빠르거든. 그러니 시간 소모를 줄이면서 혹시라도 설탕이 타 버리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지."

"오오."

짧게 박수를 치며 감탄사를 흘리는 백예은. 그녀가 뒤로 물러나자 이번에는 안창민이 나선다.

"그럼 백설탕이 아니라 일부러 흑설탕을 쓴 이유는?"

"아, 그건 아까 효민 선배가 말했던 어울리는 재료를 사용한 거야."

"어울리는 재료?"

무슨 뜻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안창민.

"흑설탕이 일반 백설탕이랑 뭐가 다른지는 알지?"

"당연하지. 백설탕보다 당밀 함유량이 훨씬 높은 설탕이잖아. 네가 쓴 건 정제 흑설탕이고."

"맞아. 그럼 그 흑설탕의 특징은?"

"당밀이 많이 함유돼서 색이 검고, 일반 설탕보다 덜 달아. 대신 특유의 풍미가 있지."

"정확해."

굉장히 대답이 빠르다. 보통 아주 외우고 다닐 일은 없는 것인데, 공부를 많이 한 티가 난다.

"내 크렘브륄레에는 물엿으로 코팅한 고구마가 들어갔어. 덕분에 특이한 식감을 연출했지만, 그 대신 일반적인 크렘브륄레를 만들 때처럼 일반 백설탕을 쓰면 단맛이 지나치게 과해지거든."

"아! 그래서 단맛이 덜한 흑설탕을……!"

"그리고 하나 더."

"또?"

아직 무언가 더 남았다는 것이 놀랍다는 듯, 눈을 휘둥그렇게 뜨는 안창민에게 설명을 이어나간다.

"흑설탕에 첨가된 당밀은 고구마의 단맛과 아주 궁합이 잘 맞아. 알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전통주 같은 경우에는 고구마랑 당밀을 이용해서 빚는 술도 있을 정도니까. 그게 바로 어울리는 재료라는 거지."

"……."

"……."

그것으로 설명을 마치고 작게 날숨.

잠시 뜸을 들이는 와중임에도 누구의 말도 들려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여, 문득 고개를 드니 같은 1학년들이 할 말을 잃은 시선으로 날 바라본다.

그리고, 잠시 후.

─짝. 짝.

─짝짝짝짝!

누군가의 짧은 마른 박수를 시작으로, 연달아 부딪히기 시작하는 일행의 손뼉.

맞닿는 손바닥의 갈채 소리가 금세 하나가 되어 실습실을 메운다.

"어……."

요리인 인생 수십 년. 그럼에도 누군가가 내 눈앞에서 요리를 먹고 박수를 쳐준 경험은 전날 가족들과의 스테이크 파티 이후 처음이었다.

그 탓에, 제대로 된 감사 인사가 잘 떠오르질 않았다.

"고맙…… 습니다?"

일단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마주 감사를 전한다.

그러자 박수 소리는 한층 거세지고, 내가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사이 박수가 잦아드는 것과 동시에, 이제 마지막이라는 듯 효민 선배가 나서서 입을 연다.

"그럼 마지막 질문. 이 메뉴를 만들기로 결정 한 이유를 들려줘."

이번에는 꽤 쉬운 질문이었다.

나는 내가 고민했던 사항들을 빠짐없이 전달했다.

일행들이 식사한 시간. 먼저 먹었던 메뉴. 일행들이 조리에 앞서 선택한 재료 등.

내가 한입 요리가 아닌 디저트를 고른 이유. 그중에서도 크렘브륄레를 택한 이유를.

"…… 좋아, 정했다."

"예?"

그런 내 말을 듣고, 효민 선배가 팔짱을 끼고서는 두 눈을 빛낸다.

뜬금없이 그 입에서 나온 말에 선배를 뚫어져라 쳐다보자, 선배 또한 마찬가지로 내 눈을 마주 보며 내게 고한다.

"내가 있잖아, 사실 우리 할아버지, 그러니까 교장 선생님한테 받은 심부름이 하나 있단 말이지?"

"뭔가요, 그게."

말은 그렇게 했어도 궁금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딱히 궁금하고 싶지 않았다는 게 맞는 표현일까.

요즘 들어 생각하지만, 나는 돌아온 뒤부터 자꾸 눈에 띄는 건지 묘하게 얽히는 일이 많다. 물론 내가 평범한 학생은 결단코 아니라지만, 그런 상황을 찾아서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도 이상하게 그런 처지가 된다고 할까.

지금 내 기분이 딱 그랬다.

뭔가, 뭔가 느낌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배는 나를 향해 어깨를 활짝 펴 보이며 당당하게 선언했다.

"올해 7월 있을 2020년 서울시 배 U─20 전국요리경연대회, 1학년 팀장은…… 너야! 찬혁 후배!"

"…… 예?"

내 턱이,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제멋대로 관절이 빠져 버린 듯 아래로 축 늘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뭐라고요?

제가요?

갑자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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