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다.-5-
대체 무슨 조화를 부린 것일까.
척 보기에도 어디 모난 곳 하나 없는 초밥들의 대열에 나는 무심코 할 말을 잃었다.
손 조금 다친 건 별것도 아니라는 것일까. 내게 자랑하듯 떡하니 초밥접시를 내보인 양희연이 턱을 잔뜩 내밀며 웃음을 짓는다. 과연, 자랑스러울 만한 솜씨인 것은 인정하는 바다.
'그나저나 어떻게 한 거지?'
설마하니 거즈가 붙은 손으로 초밥을 만졌을 리도 없는 노릇이다.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위생적으로 좋지 않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경에 눈을 빼앗기기도 잠시.
조리대 사이를 지나다니며 슬슬 완성한 학생이 없는지 살펴보던 선생님이 양희연의 뒤로 다가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눈치채지 못한 양희연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줬지만, 녀석은 그런 내 신호를 눈치채지 못하고 아직도 입가 가득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다.
"벌써 완성한 거냐?"
"히익!?"
하여간.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선생님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양희연. 그 반응에 오히려 선생님이 더 놀란 것 같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는 희연에게 선생님이 떨떠름한 얼굴로 다시 묻는다.
"뭐냐?"
"아, 그게……."
"거 참. 다 끝낸 건 맞지?"
"에, 예!"
"한번 보자."
쭈뼛거리며 몇 발짝 물러서는 양희연의 자리를 차지하는 선생님. 날카로운 눈빛이 조리대 위를 훑는다.
"흠……."
"왜, 왜 그러세요……?"
조리대와 음식들을 살피던 선생님의 눈동자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눈에 띄게 목소리를 떠는 양희연. 하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 선생님의 시선은 양희연의 왼팔에 머물렀다.
"물어보고 싶은 건 많다만…… 나중에 하마. 시식해도 될까?"
"아, 예! 그럼요!"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희연의 대답을 듣자마자 지체없이 그녀가 만든 초밥으로 손을 뻗는 선생님. 기다렸다는 듯 재빠른 반응이었다.
"어디……."
"……."
젓가락으로 집은 광어초밥을 이 방향, 저 방향 가리지 않고 요모조모를 뜯어보던 선생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오호라."
이유 모를 웃음을 짓기도 잠깐. 시선을 다시 양희연의 상처로 보낸 선생님이 가볍게 끄덕인다.
"꽤 머리를 굴렸구나. 거 참."
"헤헤헤……."
뒷통수를 긁적이며 헛웃음을 짓는 희연. 선생님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한 표정으로 돌려주고는, 이내 들고 있던 초밥을 입으로 넣었다.
"음."
짧은 신음과 함께 입에 넣은 초밥을 꿀꺽 삼킨 그는 새우초밥에 이어 차완무시까지 빼놓지 않고 먹는 것으로 시식을 마무리했다.
"맛있었다."
"감사합니다."
짧은 단평이었지만, 그 얼굴에 띈 기분 좋은 미소는 그가 나름 만족했다는 증거였다.
'확실히, 내가 봐도 잘 만든 초밥이었지.'
하지만 이상하긴 했다. 한 손을 다쳤는데 나보다 빨리 완성하다니? 자화자찬처럼 들릴지는 몰라도 손 빠른 것 하나는 누구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그런 생각을 문득 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궁금하다는 듯 희연에게 질문을 건넸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만든 이유가 뭔지 물어도 될까? 확실히 제법 생각을 한 티가 난다만, 내가 보여준 시연과는 꽤 다른 방법을 썼던데."
'다른 방법?'
그 짧은 문장에 대한 의문을 채 품기도 전에, 양희연이 곧장 대꾸했다.
"그게 옳은 것 같아서요."
"옳은 것 같다?"
"다쳤다는 이유로 모처럼 준비된 재료를 형편없게 쓰는 건, 제 자신한테도, 그리고 제 요리를 먹어줄 사람들에게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의. 예의라."
잠시 그 단어를 입에서 굴리던 선생님이 되묻는다.
"무엇에 대한 예의지?"
"신뢰요."
"신뢰?"
"누군가가 만든 음식을 먹는다는 건, 그만한 신뢰가 필요한 거잖아요?"
곁눈질로 내게 시선을 보낸 희연이, 짧게 미소를 보내왔다.
"그 신뢰에 대해 제 나름의 예의를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가르쳐주신 대로 만들지 못한 건 죄송해요."
"아니, 아니다. 교사로서는 어떨지 모르겠다만, 그래. 개인적으로는 칭찬을 해주고 싶어. 맛있게 먹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푹 숙이며 감사를 전하는 모습에 황대호 선생님이 작게 웃었다가, 아직 할 말이 남았다는 듯 "다만." 이라며 말을 덧붙였다. 의아함에 물든 표정을 지은 희연이 몸을 일으킨다.
"다음에는."
"??"
"다음에는 네가 만든 니기리握り스시가 먹어보고 싶구나. 아마 이번 학기에는 더 이상 초밥을 만들 기회가 없긴 하겠지만."
'니기리 스시? 설마?'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양희연의 조리대 옆, 싱크대에 고개를 돌렸다.
싱크대 안에는 무언가를 감싸고 있던 것 같은 흔적이 남은 랩과, 하얗고 길쭉한 테린용 틀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하코はこ스시!'
영악한 녀석. 어쩐지 빠르다 싶더라니!
초밥을 만드는 조리법은 전통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니기리 스시. 우리말로 풀어쓰면 쥐어서 만드는 초밥. 초밥 하면 흔히 떠오르는 맨손으로 밥과 생선을 쥐어가며 만드는 조리법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코 스시. 오사카 지방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조리법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고 보면 성 셰프의 친가는 오사카에 있다고 했던가.'
우리말로 풀어쓰면 상자에 넣어 만드는 초밥. 네모난 틀에 재료를 넣은 뒤 뚜껑을 덮어 누름돌 등을 이용해서 잘 눌러주어 모양을 빚어내는 조리법.
보통 전통적인 초밥이라 하면 다들 전자의 방법을 이용하여 만드는 초밥을 더 많이 떠올리겠지만, 사실보다 더 오래된 조리법은 이 하코 스시다.
물론 그 원형이 되는 또 다른 조리법이 있긴 하지만, 거기까지 올라가면 오늘날 우리가 먹는 초밥과는 거의 동떨어진 물건이 되는지라 설명은 여기서 줄이겠다.
'원래는 숙성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절인 생선을 이용해서 만드는 걸 텐데.'
그런 하코 스시를 니기리 스시에 사용하는 생선으로 만들다니. 용케도 저런 생각을 했구나 싶다.
'게다가 일부러 원형 테린틀을 써서 네모난 모양이 아니라 타원형으로 만들 줄이야.'
덕분에 알아채는 것도 늦었다. 다시 보면 저 특유의 딱 맞아떨어지는 단면이 하코 스시가 아니면 안 나오는 것인데 말이다.
하여튼 양희연. 역시 한 솜씨 하는 녀석이다.
그런 생각을 담아 녀석의 접시를 바라보고 있자니, 손이 놀고 있는 나를 발견한 선생님이 다음 타자로 날 지목해왔다.
"류찬혁. 다음 심사는 너다."
"옙!"
양희연이 만든 거에 꽤 만족하신 것 같은데, 아직 긴장 풀면 안 됩니다. 선생님.
'나도 만만치 않을 테니까.'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 접시를 세팅하기도 잠시.
이윽고, 내 앞에 자리를 잡은 황대호 선생님의 눈길이 내 접시를 쓸어내렸다.
***
'이건…….'
황대호가 찬혁의 접시를 눈앞에 두고 가장 먼저 눈여겨본 것은 초밥의 모양새였다.
어디서 꺼내온 것인지 모를 고풍스런 초밥 접시 위에 올라가 있는 초밥의 개수는 총 여덟.
광어 넷. 새우 넷. 말로만 들으면 평범할 것 같은 접시. 하지만 이 접시에는 아까 그가 먹었던 희연의 접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이점이 있었다.
'같은 초밥이 없다니.'
똑같은 생선. 똑같은 새우로 만든 초밥이 각각 네 개씩인데, 그중에서 똑같이 생긴 초밥이 없다는 것. 모순된 소리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보면 그렇지 않았다.
'조리법을 전부 다르게 처리했어.'
광어부터 살펴보자면 평범하게 생선살을 잘라내어 밥 위에 얹은 기본적인 초밥 하나.
생선살에 길게 여러 겹의 칼집을 낸 초밥 하나.
스끼비끼梳き引き를 하지 않은 특이한 초밥 하나.
마지막으로 다른 부위보다 폭이 좁은 지느러미 살을 얇게 저며서 밥 위에 펼쳐 올린 초밥까지.
'생선 하나로 네 가지 종류의 초밥을?'
모양새도 딱 좋은 부채꼴 모양. 초밥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이라고 불리는 모양새였다.
더 이상 살펴보는 것은 무의미할 터. 황대호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초밥에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아, 잠시만요."
"? 왜 그러지?"
자신을 멈춰 세우는 찬혁을 의문스런 눈으로 쳐다보자, 찬혁은 접시 왼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쪽부터 순서대로 드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어."
순서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말이 찬혁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황대호는 깜짝 놀랐다. 본래 초밥을 먹을 때 지켜야 할 순서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텐데, 1학년이 그것을 지적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혹시 일식을 배운 경험이 있는 거냐?"
"아…… 아니요. 그냥 책으로 좀 본 게 다에요."
"…… 그래?"
영 믿기지 않는 말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신상을 털 것도 아니고.
황대호는 의구심이 깃든 눈을 거두고, 다시 접시에 시선을 집중했다.
'왼쪽부터라…….'
그럼 가장 처음은 평범한 것부터.
─우물우물……
'흐음. 나쁘지 않아.'
처음 씹을 때부터 느낌이 왔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이 단품만 보면 지금 당장 나가서 적당한 초밥집에 직원으로 써달라고 해도 당장에 받아줄 정도의 맛이었다.
훌륭한 균형감. 밥과 생선이 따로 놀지 않고, 서로 알맞은 양으로 맞춰져 있었다. 더군다나 밥과 생선도 평범하지 않다.
'밥 속에 있는 공기량도 적당하고, 생선은 가쿠기리かくぎり해서 식감을 다양화했어.'
꽤 숙련된 솜씨라는 것이 여실히 느껴지는 일품. 일식을 따로 배워본 적이 없다는 게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런 걸로 거짓말할 이유는 없으니, 아마 정말일지도 모르겠군.'
더군다나 대회반 소속이니, 천재가 아닐 리 없다.
"어디, 다음은……."
첫 번째 초밥은 코스의 식욕을 돋워주는 애피타이저로서 손색이 없는 맛이었다. 그 때문일까, 황대호의 손이 자연스럽게 다음 초밥으로 이동한다.
다음 차례는 칼집을 넣은 초밥. 이번에도 두말할 것 없이 단번에 그것을 입에 넣는다.
"음!"
'결 반대 방향으로 세심하게 칼집을 넣었구나. 굉장히 부드러워.'
방금 것과는 달리, 쫄깃함보다는 결을 일일이 끊어놓아 부드러움이 더욱 부각 되는 맛.
특히 붓을 이용하여 생선 위로 발라놓은 간장이 칼집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조화로움을 낳고 있었다.
"다음."
한껏 돋아난 식욕이 떨어질세라, 그가 서둘러 다음 초밥에 손을 뻗는다.
'이번에는…… 윽, 이건가.'
사실, 그의 눈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언뜻 손이 갈 것 같지 않던 초밥. 비늘만을 벗겨냈을 뿐, 겉의 껍질이 제대로 제거되어 있지 않은 광어의 모습에 잠시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건……!'
허나, 그 거부감은 황대호가 그 초밥을 입가로 가져오자마자 마치 뙤약볕에 눈이 녹아내리듯 사라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히비끼! 히비끼를 했구나!"
"예? 그게 뭐예요?"
생선 껍질만이 바삭하게 구워져 나오는 농후한 기름의 향!
그것이 그의 마음에 붙은 식욕이란 이름의 불에 말 그대로 기름을 뿌리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침샘이 자극받는 와중에도 그는 놀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아니, 자기가 쓴 기법 이름도 모르면서 이 정도 작품을 만들었다고?'
물론 그것은 아직 희연을 의식하고 있는 찬혁의 연기였으나, 그런 사정을 황대호가 알 리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렇게 경악하기도 잠시, 그는 이내 그의 손에 쥐어진 초밥에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선을 빼앗다 못해 머리채를 잡고 돌려 버리는 것 같은 인력!
황대호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헙!"
산뜻하고 부드러웠던 앞의 두 초밥은 잽에 불과했다.
묵직한 기름 맛을 품은 광어 히비끼 초밥이 그의 뇌리를 뒤흔든다. 생각지도 못했던 조리법이 낳은 맛과 식감. 그야말로 의식의 빈틈을 노린 맹렬한 라이트 훅!
순식간에 띵해진 머리를 세차게 저어 어떻게든 제정신을 차리려 노력했으나, 이미 그의 손은 다음 초밥으로 향하고 있었다.
감히 다른 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탄력을 가진 지느러미살을 이용한 초밥.
일부러 익히지 않은 신선한 새우 살을 사용한 생새우 초밥.
황대호가 시범을 보였던 조리법 그대로 조리한 데친 새우 초밥.
데치는 대신 소금에 묻어 구운 새우 소금구이 초밥.
마지막으로는 새우 내장과 데친 껍질, 생새우 살을 통째로 갈아내어 볶은 새우 오보로 초밥까지!
거기까지 먹어치웠을 때. 황대호의 정신은 이미 과도한 맛의 폭풍에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적당한 초밥집……? 말도 안 돼! 이 실력이면 자기 가게를 차리는 게 나아!'
충격에 빠진 눈으로 이미 텅텅 비어 버린 접시를 내려다보는 그에게, 찬혁이 준비한 최후의 일격이 당도한다.
"자, 선생님. 마지막 코스입니다."
"차완…… 무시?"
그것은 바로 막걸리잔 정도의 크기를 가진 두꺼운 사기잔에 담긴 차완무시.
이제와서 평범한 차완무시가 코스의 마지막이라는 것에 약한 실망감을 느낄 찰나였다.
찬혁이, 잠시 안심했던 그의 심부에 비수를 꽂아 넣는다.
"차완무시 아래에 초밥용 밥을 깔아서, 일종의 덮밥 스타일 계란 초밥을 만들어봤어요."
"…… 이리 다오."
더 이상. 도망갈 길은 황대호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 채점지에, 간단한 한 줄 평이 아로새겨졌다.
류찬혁. 금일의 자체평가.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