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3화 (33/403)

33.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다.-4-

잠시 후.

실습실로 돌아온 우리를 가장 먼저 맞아준 것은 다름 아닌 갈 곳을 잃고 문 앞을 방황하던 황대호 선생님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아! 그래, 상처는 어땠니?!"

조리대에서 멀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인지. 눈꼬리가 잔뜩 내려간 선생님이 호들갑을 떨며 내 어깨를 붙잡는다.

'이 정도면 이중인격 아닌가.'

정말로 생긴 것만 빼면, 아니. 굽은 자세와 표정 탓에 생김새조차 다른 사람으로 보일 지경인 선생님은 이제 거의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 선생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몸을 살짝 빼며 양희연을 보여주곤 답한다.

"괜찮았어요. 보니까 꼬치 부러진 거에 베인 탓에 피가 좀 많이 나와서 그렇지 상처 자체는 별로 크지 않더라고요. 치료도 잘 해놨어요."

"그, 그래? 다행이다……! 그래도 희연이는 하교 후에 병원에 꼭 들려보렴. 담임 선생님 통해서 영수증 제출하면 학교에서 병원비 공제도 해주니까 빼먹지 말고."

"아, 예……."

그 이후로도 속사포처럼 '요리할 땐 항상 조심해야 한다', '크게 다친 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다' 등등 이런저런 충고를 쏟아내던 선생님이 때마침 울린 핸드폰의 벨소리에 말을 끊었다.

'슬슬 귀가 아파질 참이었는데…….'

고개를 돌려 희연을 바라보니, 자기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살짝 질렸다는 눈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 벌써 쉬는 시간이 끝났네. 어서 들어가자. 나머지 과정도 얼른 마무리하고 끝내버려야지."

"옙. 야, 얼른 가자."

"응."

문을 열며 길을 양보하는 선생님의 친절에 우리는 혹시라도 다시 잔소리를 시작하실까 재빨리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잰걸음으로 원래 자리로 돌아온 우리를 깔끔한 조리대가 반긴다. 남은 두 사람이 잘 정리해 준 덕분이리라.

"왔냐? 상처는?"

"다행히 그렇게 크진 않았어. 자리 정리해 줘서 고맙다."

"뭐 별거라고. 아무튼 다행이네."

김철정의 말에 대꾸하며 적당히 손을 씻고 자리를 잡았다. 양희연도 마찬가지로 나현주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자리에 섰지만, 아마 저 손으로는 차완무시라면 몰라도 초밥은 하기 힘들 것이다. 양손을 써야만 하는 작업이니까.

'일수법 같은 걸 쓴다면야 몰라도.'

만화에서나 나오는 한 손으로만 초밥을 쥐는 기법의 이름이지만, 여태껏 살면서 정말로 그런 기술을 쓰는 셰프는 본 기억이 없다.

'하라면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아마 제대로 된 초밥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기도 잠시, 선생님도 다시 조리대로 올라가는 것이 이제 슬슬 수업이 다시 시작될 기미가 보였다.

"후……."

사고가 있긴 했지만, 이제 다시 집중해야 할 시간.

아이들의 시선이 조리대에 선 황대호 선생님에게 향한다.

이윽고, 정적이 내려앉은 실습실 안. 선생님이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수업이 재개되었다.

***

'생각해 보면 되게 오랜만이네.'

순식간에 끝나 버린 선생님의 시연.

청주와 미림, 식초로 불린 다시마로 감싸 숙성한 광어 겉에 뭍은 끈적거리는 액체를 키친타월로 조심스레 닦아내며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호텔에서는 보통 양식만 했었으니까…… 일식을 한 건 직접 해먹을 때 빼고 없었나.'

애당초 프랑스 호텔에서 일식을 주문해 먹을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차라리 파리에 일식집을 차린다면 또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은 요리에 집중할 시간이다.

광어 표면에 뭍은 이 액체는 다시마에서 우러나온 감칠맛의 잔여물 같은 것이다. 닦아내기는 번거롭지만, 이 액체가 이렇게 많이 나왔다는 것은 말하자면 다시마 속에 있는 감칠맛 성분이 그만큼 잘 뽑혀 나왔다는 증거. 요컨대……

"숙성이 잘 됐다는 소리지."

수분은 적당량 빠져나가고, 그 덕에 더욱 탄탄해진 살의 질감. 더더욱 쫄깃한 맛이 살아났을 광어의 하얗고 투명한 살을 보고 있으면 벌써 입에 침이 고이는 것이 느껴진다.

'이대로 회 쳐서 먹어도 끝내줄 텐데.'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이 회를 활어회. 즉, 수조에서 꺼내자마자 회를 떠서 먹는 방식을 선호하지만, 초밥을 만들 때에는 한 차례 전용 숙성지에 말아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 숙성한 숙성회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왜 귀찮게 활어회가 아닌 숙성회를 사용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일체감.'

활어를 바로 떠서 초밥용 횟감으로 사용하면 살 자체에 과다하게 함유된 수분기가 초밥의 간을 옅게 만들고 만다.

그에 반해 숙성회는 그런 문제가 없다.

숙성을 거쳐 수분이 빠져나간 회는 특유의 쫄깃함과 농축된 감칠맛을 갖게 된다. 숙성을 거쳐 비린 맛이 날아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래야만이 회와 밥이 서로를 방해하는 것이 아닌, 서로를 상호 보완해나가며 언뜻 보면 단순한 초밥이라는 요리를 완성해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정도로 숙성이 되려면 적어도 건조하고 저온인 환경에서 며칠에 달하는 시간을 정성을 들여야 할 필요가 있지만. 물론 아주 정성껏.

'지금 하는 건 일종의 편법이지.'

다시마 절이기를 하는 것은 시간을 절약하는 목적도 있다.

다시마는 회에 감칠맛을 주고, 청주는 비린 맛을 제거한다. 미림은 속에 함유된 당분에 의한 삼투압으로 생선의 세포 깊숙이 감춰진 수분을 바깥으로 끄집어내고, 마지막으로 식초 특유의 단백질을 굳히는 성분을 통해 횟감을 단단하게 만들어 식감을 쫄깃하게 만든다.

그렇게 원래는 숙성으로 발생해야 하는 과정이 단시간에 일어나도록 만드는 것. 이게 바로 다시마 숙성의 진가다.

'솔직히 말해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숙성하는 편을 선호하기는 하지만…….'

물론 이것 또한 엄연한 조리법 중 하나. 게다가 보통 숙성보다 이렇게 다시마에 숙성된 횟감을 더욱 선호하는 고객도 있으니, 두 숙성법 사이의 우열을 나누기란 요원한 일이다.

"좋아, 이제 준비는 끝."

그렇게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자니, 어느새 내 조리대는 초밥을 쥐기 위한 공간으로 완성되어 있었다.

숙성시킨 뒤 회를 떠서 도마 한쪽으로 정리해둔 광어,

꼬치에 꽂은 뒤 육수와 간장, 식초를 넣은 물에 삶아 손질한 새우.

다시마, 소금, 설탕, 식초를 끓여 만든 초대리가 골고루 스며들어 있는 밥.

그 비싸다는 자연산 고추냉이를 껍질 채 갈아낸 와사비.

마지막으로 밥과 비슷한 온도로 데운 물에 소량의 식초를 섞은 물까지.

"하하."

꼭 초밥 장인이라도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특히 어디서 찾아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현주가 가져온 이 나무 재질의 초밥접시가 더더욱 그런 인상에 박차를 가한다.

'어디 보자, 양희연은…….'

드디어 자기 요리에 제대로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인지 한 손에는 야나기보초柳包丁를, 거즈가 붙은 다른 손으로는 광어를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정신을 쏟고 있는 양희연의 모습.

이제 시선을 신경 쓸 필요는 없어진 것 같다.

그렇다면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도 없겠지.

자, 오랜만에 초밥이나 한번 제대로 쥐어보자.

***

초밥. 식초를 뜻하는 스す. 밥을 뜻하는 시し. 합쳐서 스시すし.

초대리를 섞은 밥을 쥐어 그 위에 생선, 유부, 김, 계란 등을 올려 만드는 이 요리는 만드는 법 자체는 단순하기가 이를 데 없다.

적당한 양의 밥을 적당한 세기로 쥐어, 적당한 크기로 만들고, 적당하게 숙성시켜 자른 회 위에 적당한 양의 와사비를 얹어, 다시 적당한 힘으로 둘을 합치고 적당한 모양을 만드는 것.

적당함. 적당함. 온통 적당함 투성이.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 한 번의 적당함을 위해 수년의 노력을 거듭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언젠가 말했듯이. 만들기 간단해 보이는 요리일수록 숙련자와 초심자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법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초밥을 쥐어본 경험이 많은 건 아니지만…….'

70년 인생을 초밥에 매진한 장인조차 스스로 완벽한 초밥을 쥐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 분이 계시는데 하물며 나는 어떻겠는가.

'그래도 기본기 정도라면 충분히 배웠다고.'

가장 처음 할 것은 식초를 탄 더운물로 손을 적셔주는 것이다. 초밥을 쥘 때는 맨손이 기본. 하지만 맨손으로 밥을 만지면 달라붙기 마련이다.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일종의 막을 만드는 것.

다만 너무 많은 양의 물을 묻히면 초밥의 맛에 영향이 갈 수도 있기에 얼마나 물을 묻히는지는 항상 자신의 감각에 따라 조절해야 한다. 이것을 얼마나 정확하게 조절하느냐가 초밥 맛을 좌우하는 관건이 된다.

식초 물로 손을 코팅한 다음에는 밥을 쥘 차례다.

초대리를 머금은 꼬들꼬들한 밥알을 비눗방울을 쥐듯 움켜쥔다.

오른손 안에서 구르는 10g가량의 밥의 감촉. 그것을 너무 강하지도 않게, 하지만 너무 약하지도 않게 한 덩이가 되도록 뭉쳐주는 과정.

초밥의 모양새는 이 과정에서 팔 할 정도는 정해진다고 봐도 좋다. 그만큼 중요한 작업이라는 뜻이다.

─조물조물

'느낌 괜찮은데.'

음, 오늘 내 손은 감각이 살아 있다. 밥알 하나하나가 일일이 분간되는 것 같은 느낌. 손안에 쥐어진 밥이 점점 동글동글하게 모양을 잡아간다.

그다음에는 밥을 딱 덮을 크기로 살짝 도톰하게 잘라낸 회에 와사비를 살짝 발라준 뒤, 이 두 재료를 하나로 합친다.

'오랜만인데…… 몇 수 정도에 되려나.'

검지와 엄지로 밥의 옆면을 살짝 눌러 뼈대를 세우고, 그다음은 회 위를 검지와 중지로 눌러 구조를 단단히 잡아준다. 이것이 일수一手.

이것을 180도 돌려 다시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면, 그것이 이수二手.

초밥의 선도는 조리사의 손에 쥐어져 있는 시간에 반비례한다. 즉, 손을 적게 대면서도 완벽한 모양을 잡는 것. 그것이 이상적인 초밥을 쥐는 방법이다.

손에 주는 힘은 몇 수를 하든 일정하게. 덜 뭉쳐서 밥알이 멋대로 풀린다거나, 혹은 너무 강하게 쥐어서 밥알 사이사이 들어찬 공기를 전부 빼 버리지 않도록.

"흐음……."

일곱 수. 괜찮은 기록이다.

초밥과 회는 가장 이상적인 모양이라 불리는 부채꼴을 이루고 있고, 스스로 쥐어본바, 밥알 사이사이 들어찬 공기는 먹는 이에게 충분한 식감과 함께 녹아드는 것 같은 부드러움을 선사하겠지.

'하지만…….'

이걸로 만족하기에는 많이 아쉽다.

진짜 숙련자는 못해도 다섯 수 안에 초밥 하나를 쥔다.

과거의 내 평균치는 약 삼 수. 그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 더 감각을 되돌릴 필요가 있다.

다시 밥과 회를 집어 뭉치고.

다시 도전하고.

다시. 다시. 또다시.

마침내 준비했던 밥과 새우와 회를 대부분 소모할 동안, 어찌저찌 4수까지는 줄일 수 있었다.

'조금 더 하면 될 것 같긴 한데.'

그렇지만 준비한 재료도 이제 거의 동이 난 상황.

슬슬 끝내야 할 때다.

모양새가 특히 잘 나온 광어초밥과 새우초밥을 각각 네 개씩 골라내어 초밥접시에 비스듬하게 올리니 나름 모양새가 나온다.

'나머지는 아침밥으로 빼놔야지. 그나저나 유자 같은 게 있으면 제스트로 올려봤을 텐데.'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조원들의 모습을 살피는 나.

'철정이랑 현주는 좀 헤매고 있나.'

둘 다 일식은 따로 배우지 않았을 텐데, 그런 것 치고는 그럭저럭 볼만하게 만들고 있다. 진도가 살짝 지지부진하기는 해도 저게 어딘가. 수십 개를 쥐어도 모양이 안 나오는 녀석도 있는 판국에 저 정도면 아주 준수하다.

'그럼, 양희연은…… 어?'

그렇게 조금 더 고개를 돌리던 나는, 이윽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맨손으로 만드는 것이 기본인 초밥. 손이 다쳐 초밥을 쥐기 어려울 것이 분명할 양희연의 조리대에는, 마치 기계로 뽑아낸 듯 일사불란한 크기와 모양을 갖춘 초밥 세트가 나란히 늘어서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히힛."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 그런 희연을 멍하니 바라보자, 이내 나와 눈을 마주친 양희연이 어떠냐는 듯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자신감으로 가득 찬 득의양양한 표정.

"허."

아까보다는 훨씬 낫다는 대답 대신, 그런 감탄만이 입 바깥으로 새어 나온다.

과연, 호부 아래 견자 없다더니, 양희연. 저 녀석 또한 훌륭한 호랭이 새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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