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다.-3-
가장 먼저 희연의 비명에 반응한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안 그래도 불안해서 보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고가 터져 버리고 말았으니까.
"야! 김철정! 키친타월 길게 뜯어놔!"
"어, 어!"
"나현주! 아직 안 쓴 행주 깨끗한 거 있지? 물에 적셔줘, 얼른!"
"아, 응!"
"양희연, 손 내놔!"
철정이 녀석에게는 임시 붕대 대용으로 쓸 키친타월을. 나현주에게는 피를 닦아낼 행주를 적셔두라고 말한 뒤 맞은편에 있는 양희연에게 재빨리 달려가 손목을 잡았다.
─꽈악!
"아야……!"
"참아. 압박해서 피 안 통하게 해야 하니까."
약한 소리를 내며 손을 빼려는 양희연의 움직임을 힘으로 막으며 손을 살폈다.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느껴진다. 이제 막 상처가 난 것 치고는 유혈이 많다.
"쓰읍……."
"찬혁아, 여기!"
"아, 땡큐."
철정이와 현주가 전해 준 키친타월과 행주를 조리대의 깨끗한 곳에 올려둔 뒤, 양희연을 싱크대 앞으로 끌고왔다.
"아플 거다. 참아."
"모, 모라 카……! 아야야!"
"입 다물어. 혀 깨문다."
너무 수압이 강하게 나오지 않도록 수도꼭지를 조금만 돌린다. 졸졸졸 새어나오는 물에 양희연의 손을 가져다 대자 굳게 잡은 손목에서 펄쩍 뛰는 그녀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조용히 하고 들어. 피 씻어내고 지혈해야 하니까 참고 있어라."
"……!"
그나마 말귀를 알아먹을 정신은 있는 것일까, 꾹 다물린 입으로 소리 없는 신음을 흘리는 양희연. 눈을 돌리지 않아도 나를 쏘아보는 양희연의 시선이 훤히 보이는 듯하다.
"이 정도면 됐다. 행주로 닦을 거다. 쓰라릴 거야."
손목 안쪽을 꽉 잡아 지혈했기 때문일까, 흘러나오는 피의 양이 적어진 덕분에 물에 씻겨나간 핏물 사이로 상처 자국이 엿보인다.
옆에 잠시 놔두었던 행주로 파운데이션을 바르듯 톡톡 쳐주며 남은 물기와 피를 같이 닦아내니, 피가 빠져 하얗게 질린 손바닥 위로 선명하게 아로새겨진 상처가 드러났다.
'이거…….'
엄지와 검지 사이. 마치 톱에 베인 것 같은 거친 상처. 예상했던 모습이 아니다. 재빨리 눈을 돌려 양희연의 자리를 돌아본 나는 이내 이런 상처를 낸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꼬치가 부러진 거구나.'
도마 위에 널브러진 새우의 몸을 뚫고 나온 대나무 꼬치.
어떻게 된 건지 중간 부분이 부러진 꼬치의 절단면이 뾰족하게 돋아나 있었다.
'부러진 꼬치 단면이 손바닥을 찢은 건가.'
이 정도면 차라리 다행이다. 꼬치에 손을 꿰뚫린 것 보다야 훨씬 낫지. 상처 자체도 크기만 클 뿐, 출혈량에 비하면 그렇게 큰 상처가 아니었다.
내심 크게 안심의 한숨을 토해낸 나는 서둘러 응급처치를 이어나갔다.
"양희연. 이쪽 잡아."
"어, 어……."
길게 늘려 뜯어낸 키친타월을 몇 차례 접어 붕대 같은 모양으로 만든 뒤, 한쪽 끝을 양희연의 반대쪽 손에 쥐어준다. 그리고 상처 위로 강하게 압박해서 빙빙 둘러 고정해주면 끝. 키친타월을 겹쳐주면 생각보다 쉽게 뜯어지지 않고, 다른 휴지나 화장지보다 먼지도 훨씬 덜하니 위생적이다.
"무슨 일이냐."
갑작스런 소란에 웅성거리던 아이들을 진정시킨 선생님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런 선생님에게 양희연의 손을 보여드렸다.
"새우에 꼬치를 꽂다가 꼬치가 부러져서 베인 것 같아요."
"…… 응급처치는 잘 했구나. 상처는?"
"그렇게 깊지 않았어요. 제가 데리고 양호실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아직 살짝 피가 배어 나오는 양희연의 손. 그나마도 내가 아직 손목을 붙잡고 있어서 이 정도다. 상처가 깊지는 않아도, 길게 베인 데다가 상처가 거칠게 난 탓에 출혈이 비교적 심한 것이다.
선생님은 그런 희연의 손바닥을 잠시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이곤 박수를 치며 주변을 환기시켰다.
"지금부터 10분 동안 쉬는 시간이다. 자리를 비우기 전에 조리대 정리해두고 움직이는 것 잊지 마라."
그런 선생님의 말에 이구동성으로 답하는 아이들. 우리에게 쏠려 있던 시선이 흩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고개를 돌려 현주와 철정에게 말을 건넸다.
"미안한데 자리 정리 좀 부탁해도 될까? 우리 양호실 좀 다녀올게."
"어. 알아서 해놓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빨리 가봐."
"고맙다. 야, 가자."
"……."
흔쾌히 승낙해 준 철정과 고개를 끄덕이는 나현주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손목을 그대로 붙잡은 상태로 실습실을 나서는 우리.
내게 손목을 붙잡힌 채 힘없이 끌려 나오는 희연의 입은, 굳게 다물려 열릴 줄을 몰랐다.
***
잠시 후. 1층에 있는 양호실에 도착한 나는 노크를 하고는 문을 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알싸한 알코올 냄새가 풍기는 양호실 안. 누구의 대답도 들려오지 않아 이상하다 생각하며 안쪽을 둘러본다.
"아."
보건교사 이경림이라는 명패가 올라간 테이블 위, '외출 중입니다. 용건이 있다면 아래 번호로 연락하세요.'라고 적힌 탁상 달력이 우리를 맞이한다.
"나가셨나보네……."
하는 수 없지. 대충 알아서 하는 수밖에.
나란히 놓여 있는 의자 둘을 발견한 나는 양희연을 자리에 앉힌 뒤, 구급약과 도구들이 들어 있는 카트를 끌고 와서 그 앞에 마주 보고 앉았다.
"……."
양희연은 그때까지도 아무 말도 없이 내게서 시선을 돌리고 있을 뿐이었다.
두 손을 무릎에 얹은 채, 내가 꽉 붙잡고 있던 탓에 붉은 자국이 남은 손목을 어루만지는 모습이 퍽 처량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자기가 실수해서 다친 걸 응급처치 하다 그런 건데.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라는 것도 있고. 뭐, 아무튼. 아주 미안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나도 당황해서 힘 조절이 잘 안 되기도 했고.
"손, 줘봐."
"…… 풉!"
내 말에 천천히 고개를 돌리던 양희연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려다 입을 앙 다문다.
그야 그럴 만도 하다. 지금 내 눈에는 한쪽 눈에만 걸치는 돋보기가 걸려 있어 이상한 몰골일 테니까.
"웃지 마. 웃기는 건 알겠는데. 여기 있던 거 쓴 거야."
"왜, 그런 걸 낀 거야."
"필요해서 그렇다. 필요해서. 그리고 그냥 하던 대로 말하지 그러냐."
"…… 남이사."
"그래, 너 좋을 대로 해라."
또 이상한 말투를 쓰는 녀석에게 대충 대꾸한 뒤, 카트에서 핀셋과 소독약, 거즈 등을 꺼내 쓰기 편하게끔 세팅했다.
"얼른 손 내놔. 흉 진다. 쉬는 시간도 얼마 없어."
"……."
내 거듭된 재촉에 그제야 손을 내미는 녀석.
날 향해 펼친 왼손바닥에 둘둘 말린 키친타월에 피가 배어 있다.
조심스런 손길로 그것을 풀어내자, 꽉 눌려 약하게 마비되어 있던 신경이 자극된 듯 얕은 신음을 흘리는 양희연. 나는 그것을 한 귀로 흘리며 마저 키친타월을 걷어냈다.
"쓰읍……!"
"손바닥 오므리지 말고 쫙 펴. 가시 박혔나 확인해야 돼."
다행히 출혈은 어느 정도 잡힌 모양인지, 더 이상 피가 흘러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러진 꼬치가 손바닥을 베고 지나갈 때 혹시라도 잔여물을 남기진 않았는지 꼼꼼히 손바닥을 살필 필요가 있었다.
"봐라, 역시. 좀 따끔할 거야. 아프면 말해."
아니나 다를까 상처 사이에 틀어박힌 작은 가시가 눈에 들어온다.
돋보기를 쓴 건 이것 때문이다.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 가시를 핀셋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집자, 녀석이 아프다고 난리를 쳤다.
"아야, 아야! 마, 아프다꼬!"
"아, 아프면 말하랬지 누가 들어준대? 계속 말 해. 말만 해."
"야 니, 아야얏!"
잔뜩 성이 나서 대꾸하려던 녀석의 입을 가시를 뽑아내는 걸로 막는다.
다행히 그렇게 가시가 많이 박혀 있지는 않았다. 남은 것도 자그마한 것 한두 개 정도다.
가시를 한 가닥 뽑을 때마다 움찔움찔 떠는 양희연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피식 실소가 나온다.
"음…… 된 것 같은데. 이제 안 보여."
돋보기를 통해 상처를 샅샅이 살펴도 더 이상 보이는 가시는 없었다. 소독하고 거즈 정도만 감아주면 충분할 것 같다.
솜에 빨간약을 적셔 상처 위를 톡톡 쳐가며 약을 바르고, 가루 연고를 뿌린 뒤 그 위를 긴 거즈로 덮고 테이핑으로 마무리. 특별히 움직이기 쉬운 각도로 테이프를 붙여줬으니 크게 불편하진 않을 것이다.
"오케이. 불편한 곳은 없나 살짝살짝 움직여봐. 너무 크게 움직이지 말고."
돋보기를 벗으며 그렇게 말하자, 양희연은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인상을 살짝 쓴 것이 아주 아프지 않은 건 않아 보였지만, 참을 만은 한 것 같다.
"…… 미안해."
"미안할 건 없고."
여전히 시선을 내게서 돌려가며 감사인사를 하는 양희연.
그래, 좀 나아진 것 같아 보이는 건 다행이다.
절로 나오는 한숨을 참지 않고 내뱉은 나는, 손을 조금씩 쪼물닥 거리는 녀석에게 충고 삼아 말을 건넸다.
"야, 양희연."
"…… 왜?"
이 난리통이 난 것이 자기 실수 탓이라는 건 알고 있는지, 살짝 쭈그러진 목소리로 대답하는 그녀에게 질문한다.
"너 말이야. 요리사한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냐."
"뭐야, 갑자기. 무슨 대단한 소리를 하려고?"
"잔말 말고 대답해 봐. 네 생각대로."
내 다그침에 살짝 움찔거리며 몸을 삐고는, 양희연이 대답했다.
"뭐, 요리 잘 만드는 거겠지."
"그래, 그것도 중요한 건 맞지. 하지만 말이야."
아쉽게도 내 생각은 살짝 다르다.
"요리사한테 중요한 건 신뢰야. 내가 만든 걸 믿고 먹어줄 사람이 있느냐. 그게 중요한 거지."
"……."
"그리고 요리사에게 있어서 자기 몸을 잘 간수하는 것도 그 신뢰를 지키는 방법중 하나다. 밥 먹으러 온 사람들이 갑자기 뜬금없이 네가 다쳤다고 식사 시간을 망치면, 처음에는 걱정해 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신뢰에 금을 만드는 거야, 그리고 그 작은 금 하나가 공들여 쌓은 믿음이라는 탑을 무너트릴 수도 있는 거고."
땅바닥만 바라보고 있는 양희연. 그런 녀석에게 카트에서 꺼낸 대형 반창고 몇 개를 넘기면서 말을 잠시 끊자, 고개를 들어 나를 마주 본다.
"그리고 또 하나. 신뢰라는 건 너랑 고객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라 같이 일하고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생기는 거야.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괜히 실수해서 또 다치지 말고. 잘 하잖아, 너. 그치?
그러니까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거야. 요리도, 다른 것도."
자기 눈앞에 들이민 반창고를 멍하니 바라보던 양희연.
머뭇거리는 손짓으로 간신히 그것을 받아든 그녀는 잠시 그 반창고를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작은 미소가 띤 얼굴을 내게 향했다.
"고맙데이."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금세 부끄럽다는 듯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내리깔았지만.
"그래. 고마운 건 알고 있나 보네."
그런 양희연을 바라보는 내 얼굴에도, 마찬가지로 옅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
치료를 얼추 마치고 실습실로 돌아가는 길.
희연은 자신보다 앞서 걷는 찬혁의 등을 바라보며 방금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신뢰…….'
그 단어가, 꼭 여태껏 찬혁을 의심의 눈길로 바라본 자신을 타박하는 것 같았다.
다시 생각할수록 묘하게 부끄러워지는 기분이었다.
"……."
허리춤에 걸린 앞치마의 주머니 속. 혹여라 접힐까 고이 모셔진 반창고를 만지작거리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