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다.-2-
나현주와 그런 대화를 나눈 지 어언 이틀이 흐른 지금.
내가 내심 바라던 것과는 반대로 양희연의 감시…… 인지 관찰인지는 아직까지 끊이지 않고 있었다.
'대체 언제까지 저럴 셈인지.'
지금까지는 조금 참을 만했지만, 슬슬 참기가 힘들어지는 지경에 와 버렸다.
솔직히, 쟤를 기숙사 주방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던 거지만 쟤는 다른 사람이 요리하는 모습을 볼 때 특히 손에 더 많은 눈길을 주고는 한다. 오죽하면 시선을 느낀다는 게 무슨 기분인지 이제는 좀 알게 된 것 같을 정도다.
'꼭 내가 선생님이라도 된 것 같네.'
요리하는 모습을 단 한 장면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바라보는 그 시선은 한창 배우던 시절의 나와 닮은 것 같은 느낌도 들어 마냥 싫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굳이 볼 거라면 선생님들을 더 유심히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괜히 날 보지 말고.
"하아……."
"너 요즘 뭔가 한숨이 잦지 않냐?"
오늘은 아침 첫 교시부터 실습이 있는 날.
힘없이 소매를 걷어 고정한 교복 위로 조리복 상의를 걸친 채 작은 한숨을 뱉는 나를 보고는 김철정이 의아해했다.
딱히 대답할 건덕지도 없었기에 그냥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돌린다.
"별거 아냐. 잠을 좀 덜 잤더니 피곤해서 그래."
"그러게 내가 잠 좀 자라 했잖아. 뭐 하러 암막커튼까지 사서 붙이고 공부를 하냐."
"안 그럼 네가 못 자잖아."
"뭐, 그건 그렇긴 하다마는."
마저 잠기지 않은 단추를 채우며 목깃을 여민다. 몇 년 전부터 스카프에서 카라로 바뀌었다는데, 솔직히 스카프식을 주 업무복으로 사용했던 나로선 굉장히 편하고 좋았다.
'스카프 매는 게 조금 귀찮아야지.'
단추를 전부 채운 뒤, 책상에 미리 준비해놨던 앞치마와 노트, 칼 가방을 챙겨 들고 미적지근한 속도로 느릿느릿 옷을 갈아입는 중이던 철정이 녀석을 재촉했다.
"야, 얼른 입어. 수업 시작 5분 전이야. 나 먼저 간다?"
"알겠어. 좀만 기다려 봐. 입고 있잖아."
이건 조례를 늦게 끝낸 선생님 탓도 있지 않냐며 툴툴대는 철정의 불평을 한 귀로 흘리며, 오늘 있을 수업 메뉴를 떠올린다.
"초밥에다 차완무시茶碗蒸し라……."
이거 참. 오늘도 힘든 수업이 될 것 같다.
***
황대호. 나이는 30대 중반. 교사 중에서도 꽤 젊은 축에 속하는 이 선생님은 실습 수업 중에서도 일식 실습을 맡고 계시는 분이다.
큰 호랑이라는 아주 직관적인 이름을 가지신─본인이 첫 수업 때 알려주었다─이 선생님은 그 이름과는 달리 굉장히 유약한 인상의 선생님이시다.
학교를 오다가다 인사할 때마다 보이는 살짝 굽어진 등, 정면보다 살짝 아래를 향해 있는 시선, 조금 헝클어진 머리, 항상 들고 다니며 탐독하시는 교재와 조금 어눌한 말투 등등. 사석에서 만날 때에는 어딘가 잘 믿음이 가지 않는 분위기를 가지신 분.
하지만, 그런 선생님은 조리대 앞에 설 때마다 그 이름에 정말로 걸맞은 사람이 된다.
"오늘 초밥에 사용할 재료는 광어와 새우다."
조리모를 쓰는 대신 무색무취의 왁스를 사용하여 올백으로 깔끔하게 넘긴 머리.
마치 척추에 철근이라도 박힌 듯 일자로 올곧게 펴진 등과 넓은 어깨.
재료의 상태에 조금의 결점도 용납하지 않는 매처럼 날카로운 시선.
언제든 출수할 준비를 마치고 칼 손잡이를 움켜쥔 모습은 그야말로 사냥에 나서기 직전의 산군山君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연상케 할 정도의 변화. 저 정도면 거의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기억해둬라. 생선처럼 민감한 재료를 다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과감함과 정교함이다."
도마 위에 척 보기에도 신선하기 이를 데 없는 광어를 올린 황대호 선생님이 데바出刃를 들어 올리며 말한다.
과감함이라면 몰라도, 정교함이라는 단어와는 그렇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껍고 짧은 칼날. 하지만 선생님의 손은 상충된 두 단어를 하나로 섞었음에도 충분한 설득력을 주는 기술을 선보인다.
─쾅! 서걱! 까드득!
단 세 번.
데바의 아래칼날. 가장 두껍고 무거운 부분을 사용하여 단숨에 광어의 척추를 끊어내는 것으로 한 번.
데바의 중간칼날. 적당한 무게감을 가진 예리한 칼날로 머리와 몸통을 분리하는 것으로 두 번.
마지막으로, 데바의 칼끝. 뾰족하고 예리하나 손잡이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다루기 힘든 부분으로 내장을 끄집어내며, 내장을 감싼 막 안쪽으로 고인 피까지 함께 긁어내는 것으로 세 번.
본인의 말을 그대로 실천한 선생님의 손이, 이제는 숫제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세 장 뜨기三枚下ろし라고 불리는 방법으로 광어의 살을 발라내고.
깔끔하게 발라진 살에 붙은 갈비뼈를 제거하고.
치아이血合라 불리는 피가 모인 검붉은 부분을 기점으로 살을 위, 아래로 나눈 뒤.
각 살덩이 겉에 붙은 껍질까지 쉬지 않고 벗겨낸다.
'와오…….'
그야말로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완벽한 광어 손질이었다.
그럼에도 이 모든 작업을 마치는 데 걸린 시간이 고작 5분 남짓. 물론 중간중간 물로 광어에서 흘러나온 피를 깨끗이 닦아가며 했음에도 고작 그 정도뿐이 걸리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엔가와縁がわ. 지느러미살까지 조금의 손상도 없어야만 생선의 맛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 명심하도록."
─예.
"좋아. 그럼 조마다 한 명씩 나와서 생선을 받아가라. 오늘 수업은 생선을 빨리 손질해둘수록 일찍 끝낼 수 있으니 서둘러라."
거기까지 말한 선생님은 도마 위에 있던 생선살을 전부 한 쪽으로 몰아넣고는 언뜻 봐도 수십kg는 될 것 같은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를 단숨에 번쩍 들어 조리대 위로 올렸다.
"이제 앞으로 나와 가져가면 된다. 시간은…… 그래, 넉넉하게 재료 분배까지 합쳐서 15분 주마. 시작하자."
선생님의 말을 끝으로, 하나둘 앞으로 나서는 아이들. 나 또한 나름대로 조장 엇비슷한 위치에 있는지라 조원을 대표해 앞으로 나섰다.
***
"자, 다들 받아."
"오, 땡큐땡큐. 네 도마랑 접시는 우리가 세팅해놨어."
"고맙다. 자, 나현주. 이건 네 거."
"고마워."
"그리고…… 자, 양희연."
"…… 고마워."
"고마울 것까지야. 다들 서두르자. 10분하고 조금 남았다."
찬혁을 통해 나눠진 생선을 받아드는 조원 일행.
그중에서도 마지막 순서로 생선을 받아든 양희연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드디어.'
광어는 전국 횟집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인기 식재료 중 하나다.
그런 만큼 양희연, 그녀가 수업을 통해 가장 많이 다뤄보았던 생선 중 하나가 바로 이 광어였다.
그녀가 지금 영문 모를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과장을 좀 섞어서, 그녀는 이제 평균 크기의 광어라면 눈을 감고도 손질이 가능하니까.
'다른 거믄 내 몰라도, 광어 손질이면 이야기가 다르제.'
생선을 손질할 때, 숙련자와 초심자는 생선을 잡는 방법부터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숙련자가 언제 어느 때나 본인이 가장 손을 대기 쉬운 각도와 포즈로 생선을 위치시키는데 반해 초심자는 본인의 몸을 움직이는 등, 그 외에도 수많은 부분에서 본인의 노하우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절대적이다.
그리고, 희연은 그런 움직임 속에 감춰진 요소를 놓치지 않을 능력이 있었다.
'어디 함 해봐라. 내 두 눈 단디 뜨고 볼 테니께.'
의심으로 번뜩이는 양희연의 눈이, 다시금 찬혁의 손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
……
몇 분 뒤.
'…… 전혀 모르겠다.'
굳게 다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희연은 믿기지 않는 결과와 마주했다.
'분명 잘 헌다, 잘 허긴 혀는데……!'
찬혁의 손놀림은 놀라웠다.
다른 메뉴를 만들 때에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기백번은 광어를 다뤄본 사람처럼 생선을 손질하는 손에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일식을 배운 노마가 아인 것 같은디…….'
그러했다.
우선, 찬혁이 생선을 손질할 때 고른 도구부터가 일식만을 파고든 그녀와는 상이했으니까.
희연이 생선을 손질하기 위해 고른 것은 본인이 사비로 마련한 데바와 야나기보쵸柳包丁를 고른 것과는 달리, 찬혁이 집은 칼은 양식의 셰프 나이프와 피시 나이프였다.
셰프 나이프의 끝을 이용해 마치 지렛대가 생각나게 하는 움직임으로 광어의 척추를 끊어내고, 유연한 칼날을 가진 피시 나이프를 이용하여 척추 부분을 중심으로 날개가 펼쳐지듯 살을 발라내는 다섯 장 뜨기 기법을 사용해 살을 발라냈다.
방금 황대호가 시범으로 보여준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움직임.
꼭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처럼 살짝 과장된 기미가 있는 동작이었으나, 그 동작에 녹아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자연스러움 탓일까. 희연은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착각…… 이었던 기가…….'
설마 저렇게 다른 방식의 손질을 잘 하는 사람이 일식에까지 소질이 있지 않겠지 하는 무의식적인 믿음.
그것은 분명 여태껏 희연이 보아왔던 류찬혁이라는 인물에 대한 판단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으나 희연의 한풀 꺾인 의심은 그런 가능성에 자기도 모르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그 이후, 미림과 청주, 식초를 사용해 불린 다시마로 손질한 광어를 감싸 재울 때에도.
차완무시에 들어갈 육수와 부재료들을 다듬을 때에도.
희연은 찬혁에게서 그럴듯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참말로 착각이었나 삐네…….'
대부분의 재료 준비를 끝마치고, 마지막으로 새우에 꼬치를 꽂아 넣던 희연은 그야말로 참담하고 창피한 심정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의심이나, 언젠가 찬혁을 불러내어 다그쳤던 일까지.
과거의 행적들이 그녀 스스로를 괴롭혔다. 쥐구멍에라도 숨어들고 싶은 기분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빙시야, 대체 무신 생각으로 그랬노…….'
너무 큰 부끄러움에 볼이 불타는 듯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아마, 지금 자신의 얼굴을 보면 눈에 띄게 붉어져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런 심정이 배가 됐다.
─꾸우욱.
그 때문이었다.
익숙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은 것.
손에 쥐어진 재료들보다 다른 일에 집중이 쏠려 있던 것.
그리고, 마침 하고 있던 작업이 한 번 삐끗했다간 쉽게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일이라는 것.
그런 이유들이 한데 모여, 결국 일어날 필요 없던 작은 사고를 낳는다.
─푸욱!
"꺄앗!"
짧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양희연의 손에서 선홍색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
'이쯤 되면 성공한 것 같은데.'
묘하게 풀이 죽어 드디어 내게 향하던 시선을 거둔 희연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내 계책이 대충 들어맞았음을 확신했다.
'흐흐. 깜빡 속아 넘어갔을 거다.'
계책. 이라고는 해도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쓰지 않은 것뿐이다. 무엇을? 일식을 배울 때 익혔던 모든 기술들을.
물론 요리라는 것이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는 만큼, 한, 일, 중, 양을 완전히 떨어트려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지금 나는 일부러 도구까지 양식 것을 이용해가며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선생님 시선이 조금 거북하긴 한데…….'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황대호 선생님의 매서운 시선이 나를 향하는 느낌이었지만. 그건 뭐, 다음 수업 때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될 테니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희연의 의심을 떨쳐내고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성공적이지 않은가.
이유는 몰라도 볼이 붉어진 채 새우를 꼬치에 꽂아 넣는 모습을 보면, 당장 내게 씌워진 의심은 걷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 그런데.
'저거, 위험하지 않나.'
자신이 만지고 있는 재료에 제대로 눈길도 주지 않고 작업을 이어나가는 희연의 모습에 일말의 불안감을 느낀 그 순간.
─푸욱!
"꺄악!"
결국, 사건이 터져 버리고 말았다.
…… 아이고, 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