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0화 (30/403)

30.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다.-1-

짧은 휴식을 만끽할 수 있었던 주말을 뒤로하고, 다시 찾아온 월요일.

마치 식곤증처럼 온몸을 짓누르는 느낌에 절로 몸이 나른해진다. 꼭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적신 수건을 꽁꽁 둘러 싸매고 있는 기분이다.

"쓰읍, 이 나이에 월요병이라니."

월요병에 나이는 상관없던가. 아무튼.

"너도 그럴 때가 있구나."

"내가 무슨 기계냐. 가끔은 이럴 때도 있는 거지."

"아니, 네가 아침부터 늘어져 있는 걸 보는 건 처음이다 싶어서."

철정이 녀석은 그런 나를 신기하다는 듯 보고는 자기도 책상에 턱을 괴었다.

"하긴, 사람이 그럴 때도 있는 거지."

시시하긴.

자기도 지친다는 듯 늘어진 철정이까지 빨랫줄에 걸린 빨래 모임에 합류했다. 그런 우리의 책상 위로 지는 기다란 그림자가 하나.

"응?"

안 그래도 눈이 좀 따가웠는데, 고마운 마음에 누구인가 싶어 고개를 드니 낯익은 얼굴이 우릴 반긴다.

"안녕."

"어, 안녕."

"좋은 아침."

나현주. 그녀가 웬일로 아침 인사까지 하러 우리 앞에 행차하신 것이다.

변함없는 무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현주에게 책상에 팔베개를 한 채 고개만 돌려 손을 흔든다.

'그나저나 얘는 왜 온 거래.'

인사한 손을 내리곤 딱딱하게 굳어 있는 나현주. 아무 말도 없는 것이 그냥 두면 선생님이 들어오실 때까지 이러고 있겠다 싶어 말을 건넨다.

"인사만 하러 온 건 아니겠고, 무슨 일로 온 거야?"

"……."

"말을 좀 해봐라……."

내 질문에도 묵묵부답 망부석처럼 자리를 지키는 나현주의 모습에 살짝 골치가 아파올 찰나. 그녀가 조심스레 검지로 한 곳을 가리킨다. 책상 그림자에 가려져 있는 것이 누군가로부터 손을 감추는 모양새다.

"뭐야?"

검지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린다. 그러자……

"아."

나와 눈이 마주친 누군가, 양희연의 고개가 휙 돌아간다.

과연. 대충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다.

"양희연 때문에 그래?"

"……."

"뭐야, 너 저번에 불려 나가더니 진짜 싸웠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 나현주를 보고 김철정이 깜짝 놀라 물었다. 괜한 억측이다. 추궁을 받긴 했지만, 싸운 건 아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냐."

"그럼 뭔데."

저번에 있던 양희연과의 대화 후, 양희연은 노골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이 많아졌다. 교과목 수업 시간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실습 시간에는 거의 항상 시선을 느낀다. 첫 실습 이후 항상 같은 조로 수업을 들으니 모른 척 하기도 쉽지만은 않다.

"그냥, 그런 게 좀 있어."

특히 일식 수업 때면 정도가 더하다. 거의 뚫어져라 내 손을 바라보고 있는 일이 잦은 것이다. 고작 한주 밖에 되지 않았지만, 결코 기분 탓이 아니었다.

'대충 이유는 알겠지만…….'

아직 의심이 덜 풀린 거겠지. 그렇다고 그렇게 사람을 감시하는 것처럼 살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현주도 그런 양희연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내게 저런 행동의 이유를 물어보러 온 듯하다.

"카레 때문. 맞지?"

네가 예상한 거 전부 틀렸어.

"어, 뭐야. 알고 있었어?"

깜짝 놀란 나를 보며 나현주가 끄덕였다.

"카레 만들었던 날, 희연이가 먹어보곤 깜짝 놀라더라고. 희연이 어머니가 만든 거랑 똑같은 맛이 났다면서."

"아아."

말하는 걸 들으니 정말 티 나게 놀랐나 보네.

'하긴, 요리인이라면 안 놀라는 게 이상하지.'

원래 요리라는 건 설령 같은 요리라 하더라도 요리하는 사람의 숫자만큼 다른 맛이 난다. 하다못해 그 흔한 라면 하나 끓이는 것조차 열 명에게 물으면 열 명이 다 다른 방식으로 라면을 끓일 정도니, 그 과정이 복잡한 요리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맛이라는 게 어지간해서는 나올 수가 없다.

'아마 실습 시간에 날 보는 것도 그것 때문일 거고…….'

요리를 하는 사람의 버릇이라는 게 있다.

방금 말한 라면을 예로 든다면, 면과 스프를 넣는 순서부터 시작해서 물이 끓어오른 다음 재료를 넣는 사람, 끓기 전에 재료를 다 넣고 끓이는 사람, 계란을 풀어서 넣는 사람, 넣은 다음 푸는 사람. 그 외 기타 등등.

그런 조리의 순서부터 시작하여 요리하다 국자 등을 잠시 놔둘 때 어떻게 놔두느냐, 계란을 풀 때는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 튀김 등을 할 때에는 기름 온도를 어떤 식으로 확인하느냐 등등 사람마다 가지각색의 버릇을 갖게 된다. 일종의 개성인 것이다.

다만 어딘가에서 요리를 같이 배웠다거나, 아니면 같이 오랜 시간 근무했다거나 하는 사람의 경우, 같은 습관이 묻어 나오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사장님과 나, 혹은 성 셰프와 나 사이에는 서로 엇비슷한 습관을 갖고 있기도 하니까.

'좀 더 정확히 하자면 내가 그 사람들을 닮은 거지.'

특히 일식을 정식적으로 배운 건 성 셰프 가게가 처음이었던지라 더욱 그런 면이 없잖아 있다.

'이거 생각할수록 조금 쫄리는데.'

아마 양희연이 본인의 어머니가 가진 모든 습관을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지만, 혹시라도 나와 성 셰프 사이에서 겹치는 습관 같은 게 있단 걸 눈치챈다면 그나마 좀 돌려놓은 의심이 더 강해질 것이다.

"…… 하아. 별거 아니었어. 쟤도 조만간 그만두겠지. 괜찮아."

"…… 괜찮은 거 맞지?"

걱정스런 기색이 섞인 눈길로 나와 양희연을 번갈아 바라보는 나현주. 정말 싸운 건 아닌지 불안한 걸까. 나는 옅은 미소를 보이며 그런 나현주를 안심시켰다.

"괜찮대도. 너무 걱정하지 마."

"응."

"아 맞다."

"?"

"네가 준 소고기 가족이랑 같이 맛있게 먹었다. 다들 좋아하더라고."

"…… 그건, 네가 도와준 보답이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지금 신경 안 써도 된다고 네 입으로 말했지?

"봐봐. 그러니까 하는 소리야. 난 카레 만드는 거 도와준 값으로 고기까지 받은 거니까, 너도 이미 사례한 일 갖고 너무 신경 안 써도 괜찮아."

"아……."

잠시 입을 벌리고 나현주의 기준으로 어벙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조금 홀가분해진 몸짓으로 돌아갔다.

그래, 그거면 됐다. 사람 살다 귀찮은 일이 아예 없을 순 없는 거니까.

"그나저나, 다른 귀찮은 일은 또 어떻게 처리한다……."

자그마한 혼잣말이 내 뒤통수를 바라보는 양희연의 시선을 피해 품속으로 숨어들었다.

***

그날, 그런 대화가 있은 뒤부터 희연은 줄곧 찬혁을 관찰해왔다.

찬혁의 생각과는 달리, 희연은 아직 누군가의 습관이 무엇인지, 어떤 버릇을 가졌는지까지 알아낼 능력은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다른 사람을 살펴 정보를 얻어내는 데에도 그만한 경험은 필요한 것이니까.

다만, 작은 문제가 있다면. 그건 바로 희연이 비교적 오랜 시간 그녀의 어머니에게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역시 뭔가 이상해…….'

희연이 이제까지 찬혁을 살피며 관찰한 결과, 희연이 가장 먼저 가진 의구심은 다름 아닌 찬혁의 이상성에 대한 것이었다.

찬혁은, 이제까지 실습수업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레시피를 본 적이 없다.

'말이 안 된다 안 카나.'

여태껏 있었던 수업 시간은 입학식 첫날을 제외하고 9번. 첫 주는 선생님들의 자기소개와 수업 일정 알림, 그리고 기본적인 실력을 알아보기 위한 시간을 가졌었기에, 실제로 음식을 만든 것은 저번 주가 처음이었다.

또한 각 수업마다 한 번의 수업 때 만드는 메뉴의 가짓수는 두 개씩. 시간이 많이 드는 것과 비교적 짧게 만들 수 있는 요리를 2교시의 수업 시간 동안 만드는 것이다. 자격증 시험을 대비한 수업방식이다.

그중 찬혁은 월요일 실습을 대회반 시험 탓에 빠졌으니까……

'그라믄 요까지 만든 요리가 적게 잡아도 여덟 가지인데…….'

그 어떤 사람이라도 처음 보는 메뉴를 만들 때에는 조금이라도 레시피를 보면서 조리를 한다. 설령 요리하는 걸 딱 한 번 보는 걸로 외워 버리는 천재가 있다 하더라도 하다못해 배부된 레시피를 한 번 정도는 보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한 번도, 참말로 눈 한 번 안 주고 요리하네.'

그 모든 메뉴를 만드는 동안 찬혁은 마치 그것들 전부를 이미 수십, 수백 번은 만들어 본 사람처럼 굉장히 익숙한 손놀림으로 음식을 만들어왔다. 조리 순서를 헷갈린 적도, 재료의 처리 방법을 헷갈린 적도 없다.

그것은, 적지 않은 시간을 그녀의 어머니에게 사사 받은 희연의 눈으로 볼 때에는 더없이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카레라는 계기를 통해 찬혁에게 눈길을 줬지만, 지금은 그런 찬혁의 이상한 행태가 그녀의 눈길을 잡아끄는 요인이 되었다.

물론 이제 고작해야 2주가 지난 시점. 조금 더 관찰하지 않으면 확신할 수 없는 이야기이긴 하다. 막말로 찬혁이 배웠던 요리가 요 한 주 동안 몰려서 나왔던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빙시도 아이고…….'

자신이 말하고도 멍청한 생각이란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막연한 논리 말고는 찬혁의 지금 모습을 설명할 방법이 딱히 보이지 않았다.

문득, 이번 주말 그녀의 어머니와 나눴던 통화가 그녀의 뇌리를 스친다.

***

서울 쪽에 친가가 있는 현주와는 달리 부산에 적을 둔 희연은 좀처럼 긴 연휴가 아니면 감히 집에 다녀올 엄두를 낼 수가 없다.

그렇기에 그날도 현주가 집에 돌아간 기숙사에 홀로 남아 있던 희연은, 쓸쓸함을 버티지 못하고─본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오늘도 핸드폰으로 어머니의 쉬는 시간에 맞추어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특히 좋아하는 트로트─엔카演歌와 비슷한 맛이 있어서 좋단다─가 십 초 가량 흘러나오고, 직후 성미설의 경쾌한 목소리가 뒤를 잇는다.

─여보세요?

"아, 엄마야. 내다."

─맞나! 우리 딸 잘 있고? 밥은 묵었나?

"알아서 묵었다. 엄마는?"

─걱정 마라, 내는 일이 밥집인디 못 묵었을라고.

"말은 그라고 하믄서 맨날 배달에 인스턴트 아이가. 그런 것 좀 그마 묵어라.

─아이고 마, 알았다, 알았어. 귀에 딱지 않겠다.

묘하게 서로 반대된 것 같은 서로간의 안부인사를 끝내고, 시시콜콜한 화제로 대화를 나누던 중. 양희연이 새로운 화제를 꺼내 들었다. 찬혁에 대한 것이었다.

"엄마. 엄마 혹시 류찬혁이라고 아나?"

─류찬혁? 그게 누군데?

"그, 내랑 같은 반 아가 하나 있는데……."

─근데?

"그게…… 아니, 아이다 아무것도."

─뭔데? 말을 했음 끝까지 하지, 와 시시하게 그라는데?

미설의 재촉에도 희연은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여기서 처음 본 애가 엄마랑 똑같은 카레를 만든다고? 말해도 별 믿음이 가진 않는 소리겠지.

괜히 이야길 꺼냈다고 생각하며 말을 얼버무리는 희연이었지만 미설이 그런 희연의 말꼬리를 놓칠 수 없다는 듯 붙잡았다.

─뭐꼬? 혹시 머스마가? 맞나? 머스마 맞아?

"아, 아이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기도 하다 했던가.

좀처럼 그녀가 보여주지 않는 격한 반응에 미설이 웃음을 터트린다.

─아하하, 머스마 맞네! 하이고 마, 니는 바다 건너 있을 짝에도 머스마 이야기 한 번을 안 하더니, 이 엄마야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나? 아이고, 우리 딸래미 시집은 다 갔네 싶었다!

"그런 거 아니라꼬! …… 하아, 됐다, 이만 끊는다카이, 또 담에 전화할게."

─마, 가스나야! 단디 얘기해 봐라, 그 머스마가 누구─

"끊는데이!"

─삑!

"후우……."

핸드폰에 뜬 붉은 통화 종료 버튼을 꾸욱 누르고는, 누워 있던 침대 머리맡에 대충 던졌다.

거친 움직임에 흐트러져 눈가를 간질이는 머리칼을 한쪽으로 훑어내고는 크게 한숨을 뱉는다.

괜히 전화를 걸어 벌집을 들쑤신 기분.

앞으로 전화할 때마다 무슨 소리를 들을지 벌써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엄마도 모르는 게 맞는 것 같은디. 대체 가는 뭐하는 아길래…….'

류찬혁. 그 이름이 희연의 마음을 더욱 크게 어지럽혔다.

***

희연은 생각했다.

어쩌면 자기 의심은 쓰잘데기없는 것이었고, 찬혁은 그냥 평범하게……? 요리를 잘하는 걸 수도 있다. 마냥 거짓말로 치부했던 절대미각인지 뭔지도 사실일지도 모른다.

추측이고 뭐고, 전부 틀렸었던 걸지도 모르는 일이다.

애당초 자신의 어머니가 만든 카레와 똑같은 카레를 만들었다고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있지 않을까 엮은 것부터 생각이 짧았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하기에는 아직 명확한 확신이라는 것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면, 이번 주에 그 의심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일 모레 수요일. 일식 수업 메뉴는─'

초밥. 가진 기술을 감히 숨길 방법이 없는, 일식에서도 가히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메뉴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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