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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요리고 고인물-26화 (26/403)

26. 집으로.-1-

사람의 인생은 별것 아닌 일 하나가 큰 영향을 미치는 때가 있다.

이를테면 가슴 아프게 헤어진 첫사랑이 그럴 테고.

또 이를테면 운수가 더럽던 하루. 딱 한 번의 따스한 손길이 그럴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런 하루가 있었더랬다.

중학생이 되고서도 어언 2년이 넘게 지나 3학년 초반에 들어섰을 때.

나는 꽤 삐뚤어진 생활을 보냈다.

그 나잇대 애들이 누군들 그러지 않겠냐마는, 그런 모두가 그랬듯 나 또한 사정이 있었다.

내 가정은 그렇게 유복한 가정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가난한 쪽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내가 기억도 나지 않을 시절에 큰 사고를 당하셨다.

4살배기였던 나와 이제 막 눈을 뜰까말까 하던 젖먹이 여동생, 그리고 어머니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아버지는 그렇게 우리를 떠났다.

물론 그다음 이야기는 흔하고 흔한 이야기다.

홀몸으로 가정을 책임지셔야 했던 어머니.

어머니가 집을 비웠을 때 여동생을 돌봐야 했던 나.

그나마 아버지의 보험금으로 당장 세 식구가 배를 곯지는 않았다.

하지만 풍족한 삶 같은 건 꿈속의 이야기였고, 나는 추레한 모습을 좀처럼 고칠 수 없었다.

초등학생 때는 거지라며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매번 날 더럽다고 놀리는 무리들.

그런 녀석들에게 지고 싶지 않아 일부러 거칠게 행동했다.

공부는 제대로 안 하고, 시비 거는 녀석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쌈박질하기 일쑤.

그러다 보니 저절로 학급에서 고립되었고, 결국 별다른 친구 하나 만들지 못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때도 그런 생활은 마찬가지였다.

같은 초등학교에서 올라온 녀석들은 물론이고 다른 초등학교에서 온 주먹 좀 쓴다는 놈들과도 곧잘 다퉜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2학년에 올라서니, 어느새 내 주변엔 나 같은 놈들만 잔뜩 모여 있었다.

아무한테나 시비를 걸고,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녀석들.

그때는 그런 녀석들이야말로 나와 평생 같이할 친구들이라 믿었다.

나 몰래 모여 내 뒷담을 까던 녀석들을 보지 못했더라면.

"야, 그 거지 새끼 깡 좀 있다고 살짝 잘 대해 줬더니 너무 친구처럼 굴지 않냐?"

"내 말이. 우리가 자기랑 같은 수준인 줄 아나 봐."

"요즘 너무 질척거리던데, 언제 적당히 조진 다음에 손 털어 버릴까?"

"그럴까? 그게 낫겠다."

그렇게 큭큭 거리며 웃는 패거리들의 얼굴을 봤을 때, 속에서 열불이 터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어떻게 너희가 나보고 그렇게 말할 수 있냐.

당장 가서 그렇게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발이 움직이질 않았다.

살면서 처음 사귄 친구였다. 아니, 친구라고 믿었다.

무어라 형용키 힘든 허탈감이 쇳덩이처럼 온몸을 짓눌렀다.

"…… 시발."

결국, 발을 돌렸다.

내일 어떤 얼굴로 저 녀석들과 만나야 할지, 그런 생각이나 하는 내가 우스웠다.

사실 그때엔, 내가 욕을 먹었다는 사실보다는, 첫 친구들을 잃는 것이 더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조심스레,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자리를 뜨려고 했다.

"너네 그 새끼 엄마 본 적 있냐?"

그 말이 들리지만 않았더라면.

"아니, 본 적 없는데. 왜?"

"아, 나 저번에 운동회 때 본 적 있는 것 같아. 왜 그 다 구멍 난 옷 입고 다니던 아줌마."

"솔직히 신기하지 않냐. 어떻게 자식새끼고 애미고 다 그렇게 거지꼴이 잘 어울릴까?"

"아 인정. 솔직히 반박 불가다."

거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대화의 전부였다.

그때, 이미 나는 있는 힘껏 욕을 내지르며 그놈들에게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

결론을 말하자면, 중과부적이라는 말로 대신하고 싶다.

다행히 싸우는 소리를 듣고 경찰에 신고해 준 누구 덕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그놈들이고 나고 서로 멍 좀 들고, 코피 살짝 나는 정도에 그쳤다.

경찰서에 가는 건 피할 수 없었지만.

전화를 받고 일도 내던진 채 헐레벌떡 뛰어온 어머니의 모습은 굉장히 추레했다.

신발도 다 헤졌고, 옷도 후줄근하기 짝이 없었다.

뒤이어 도착한 다른 애들의 부모님들과는 달리, 누가 봐도 거지꼴이라 하기 충분한 모습이었다.

부끄러웠다.

그 후에도 대단한 반전 같은 건 없었다.

녀석들은 미리 입을 맞춰 "원래 친하게 지냈었는데 쟤가 갑자기 먼저 주먹질을 해왔다."라며 날 몰아세웠다.

그 말을 들은 어른들은, 내가 무어라 반론할 새도 없이 나를 다그쳤다.

왜 그랬느냐, 애를 이렇게 다치게 하면 쓰냐, 이게 다 어미가 자식새끼를 잘못 가르쳐서 그런 것이다. 등등.

뭐, 티비 틀면 흔하게 나오는 대사들.

그런 말들에 어머니는 그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란 말을 반복하며 허리를 연거푸 굽혔다.

잠시 뒤. 사건이 대충 훈방 조치로 마무리되고, 큰 다툼 없이 경찰서를 나서게 됐다.

학교를 통해 봉사시간을 채우는 정도의 벌을 받게 될 것이란 말도 들었다.

그렇게 경찰서를 나오는 길.

나는 괜한 부끄러움에 어머니를 볼 수 없었다.

무엇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는지는, 솔직히 잘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내게, 어머니가 작게 말했다.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외침이 목젖 끝까지 올라왔다.

차라리 혼내지 그러느냐, 왜 그런 놈들한테 고개를 숙이고 그러냐, 내가 왜 싸운 줄은 아느냐.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말할 자격이, 내게 없는 것 같았으니까.

"얘, 찬혁아!"

결국, 나는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여러 가지 것들로부터.

가난한 집안, 또래 애들의 멸시, 주변의 시선.

그리고 나 자신의 한심함으로부터.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려 얼마나 달렸을까.

가로등만이 자리를 지키는 인적 드문 골목길.

빛들 사이로 그림자가 드리운 벽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시발……."

눈물이 나왔다.

우리를 두고 갔다는 아버지란 사람이 미웠다.

매번 남한테 굽힐 줄만 아는 어머니가 미웠다.

매일같이 시끄럽게 굴며 잠을 방해하는 여동생이 미웠다.

사람 사정도 모르고 남을 깔보기만 하는 녀석들이 미웠다.

그리고, 이렇게 주저앉아 세상에 불평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는 내가 미웠다.

─캉!

주변에 집힌 돌멩이를 들어 홧김에 내던졌다.

철문에 맞은 것일까,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튕겨나가는 돌멩이.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는, 무릎을 세워 고개를 파묻었다.

그때였다.

"꼬마야. 왜 거기서 그러고 있니?"

세상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

─쿵. 쿵.

"야, 일어나."

"뭐야……?"

한창 잘 자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머리맡을 두들기며 날 깨우는 소리.

어딘가 낯선 목소리에 좀처럼 떠지지 않는 눈을 비벼가며 간신히 선명해진 시야가 그 정체를 밝혀냈다.

"주아……? 너 왜 그렇게 어려졌냐……?"

기억 속에 남은 어린 시절과 똑같은 모습으로 내 머리맡을 툭툭 노크하듯 두들기는 여동생, 류주아.

잠결에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주아는 이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냐는 듯 이상한 걸 보는 눈빛으로 날 내려다본다.

"……? 무슨 소리야. 잠 덜 깼어? 빨리 나와. 엄마가 밥 먹으래."

"어, 어. 아……."

"진짜 잠 덜 깼나 보네. 얼른 정신 차리고 나와. 밥 식어."

"어. 갈게."

그러곤 세게 문을 닫고 나가 버리는 녀석.

나는 잠에 취해 얼떨떨한 머리를 어떻게든 굴리며 지금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아, 맞다."

집에 왔었지, 나.

***

대회반 시험이 있던 주의 금요일.

당장 해야 할 일들을 깔끔하게 끝마친 나는, 사감 선생님께 예고했던 대로 주말 동안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와서 처음으로 어머니와 여동생의 얼굴을 다시 볼 생각에 너무 들뜬 나머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다, 결국 밤을 아예 넘겨 버리고 아침 첫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게 내가 아침부터 점심이 될 때까지 잠만 자면서 방에 널브러져 있던 이유다. 여하튼……

"어머, 눈가에 기미 진 것 좀 봐. 괜찮니? 돌아와서도 계속 잠만 자더니."

"아, 예에. 괜찮아요."

"웬 존댓말. 엄마 얘 진짜 이상해. 학교 가서 이상한 거 주워 먹은 거 아냐?"

"너는 오빠한테 얘가 뭐니 얘가? 오빠가 네 친구야? 똑바로 부르렴."

"눼에에─"

"말꼬리 늘이지 말고! 하여튼……."

밥상에 둘러앉아 쉴 새도 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굉장히 어색하면서도 그리운 감각이 몸을 습격했다.

이런 대화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싶다가, 중학생 시절에는 항상 어둡던 가정 내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밝아진 것도 내가 성공적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였다는 걸 깨달으니, 새삼 예전의 자신이 상당히 못 써먹을 놈이었다는 게 느껴졌다.

속이 쓰려오는 감각을 웃음으로 넘기며, 최대한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끔 두 사람의 말다툼을 말린다.

"괜찮아요. 그냥 놔두세요. 철들면 어련히 고치겠죠."

"……."

"……."

대충 그렇게 말하며 오랜만에 먹는 어머니가 해준 밥을 허겁지겁 입안으로 넘기다가, 내 피부 위로 찌릿찌릿 꽂히는 것 같은 시선에 밥그릇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드니, 두 사람이 나를 굉장히 수상하단 눈길로 째려보는 것이 아닌가.

"너 혹시 어디 아프니?"

"예?"

"아 엄마. 얘 진짜 이상하다니까? 평소 같았으면 바로 주먹부터 날아왔는데!"

사람을 무슨 가정폭력범처럼 말하지 마라. 그건 꿀밤이었다.

어머니도 그렇다. 오랜만에 그리운 얼굴을 보게 되어 정말 기쁜 마음에 넓은 아량을 보였던 건데, 꼭 더위 먹은 거 아니냐는 눈길로 날 보는 건 그만둬줬으면 한다.

"저 괜찮다니까요. 밥 식어요. 얼른 드세요."

"그래. 네가 괜찮다면야 뭐……."

"아닌데…… 얘 진짜 이상한데……."

아직까지도 의심을 버리지 못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주아 녀석.

'내가 대체 지한테 뭘 어쨌다고.'

물론 원래 이 시절에는 어린 마음에 냉장고에 있던 쟤 아이스크림도 멋대로 빼먹고, 꿀밤도 종종 쥐어박고, 말다툼도 얼굴만 마주치면 하루가 멀다고 했지만……

'그건 자기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내 알바비로 챙겨주는 용돈은 잘도 꿀꺽 삼키면서, 자기는 내가 사놓은 과자 같은 거 계속 갖다 먹었던 주제에. 오빠는 지 생일 꼬박꼬박 챙겨줬는데 난 쟤한테 생일선물 받은 기억도 몇 번 없다.

속으로 불평을 잔뜩 쌓으며 홧김에 밥을 잔뜩 퍼 씹어 넘기다가, 실수로 사레가 들렸다.

"컥! 케흑, 콜록!"

"어머머, 괜찮니!? 자 여기 물 마셔라."

어머니가 재빨리 챙겨준 물로 간신히 얹힌 걸 넘길 수 있었다.

입가에 흐른 물을 휴지를 뽑아 닦아내고 있는 나를 어머니가 타박한다.

"아무도 안 뺏어가니까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렴. 얘는 밥 급하게 먹는 건 아빠를 닮아서…… 아."

순간 싸해지는 분위기.

왜 이러나 싶다가, 아차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 시절 나는 아버지를 언급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일종의 역린 같은 거였으니까.

나는 이 어색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어떻게든 돌리기 위해 아무 말이나 되는 대로 내뱉었다.

"아니, 엄마 밥이 너무 맛있어서 빨리 먹다 걸린 거예요. 별거 아니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어, 어…… 그럼 다행이다."

어머니도 주아도, 다들 정말 이상하단 표정을 짓는 모습에 서둘러 화제를 돌린다.

"그나저나 엄마 오늘 휴일이라면서요. 오후에는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어요?"

"나? 나 보다는 찬혁이 넌 어디 가고 싶은 곳 없니?"

"저야 매 주말이 쉬는 날인데요 뭐. 엄마는 쉬는 날도 자주 없는데 이럴 때 좋은 데 좀 다녀봐야죠.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어요?"

"…… 말만이라도 고맙다."

가냘픈 웃음을 지으며 내게 감사를 전하는 어머니를 보고 뒤통수를 긁적인다.

돌아오기 전에는, 툭하면 외지에서 일만 하며 생활하느라 생활비 넉넉하게 챙겨드리는 것 말고는 효도다운 효도 한 번 못해 봤다.

그나마도 돌아온 다음에는 거지꼴이 됐었고.

아들이 금의환향도 아니고 외국에서 빨간줄이 그일 뻔했으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을까.

'지금부터라도, 착실하게 효도해야지.'

그런 맹세를,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는 나였다.

"…… 얘 진짜 미쳤나 봐. 무엇이지? 드디어 돌아 버린 것인가? 이 행동거지는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너는 입 다물어라.

그리고 인터넷 방송도 좀 끊길 바란다. 동생아. 안 그러면 진짜 쥐어박을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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