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24화 (24/403)

24. 2차 시험.-7-

옛날부터 그래왔다.

요리사로서 그 어느 때 보다 가장 떨리는 순간.

거세게 불꽃을 뿜어내는 화구 앞에서 냄비를 다룰 때도 아닌.

200도로 끓는 기름에 재료를 넣을 때도 아닌.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다룰 때도 아닌.

이 한순간.

─달그락.

"평가 부탁드립니다."

고객에게 내가 만든 음식을 내놓는 이 순간이, 내 삶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살 떨리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요리사가 언제고 두려워하고, 숭상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요리를 먹어주는 자들이니까.

평가가, 시작되었다.

***

자신들 앞에 놓인 접시의 자태에, 세 명의 심사위원들은 하나같이 감탄을 흘렸다.

"허허……."

"이것 참."

"흠……."

깊은 빛을 숨긴 칠흑색의 직사각형 접시가 그 위에 담긴 까르보나라의 누르스름한 하얀빛과 대비된다.

까르보나라를 뒤덮듯 뿌려진 치즈들은, 마치 밤하늘 아래의 눈 덮인 언덕 같았다.

그리고, 그에 더하여……

"이건 뭔가요?"

"아, 그거요."

안영길의 손가락이 접시 한 구석에 놓인 샛노란색 덩어리를 가리켰다.

반투명한 빛깔을 드러내 보인 마치 젤리 같기도, 혹은 어란 같기도 한 그 덩어리는, 납작한 원기둥 같은 모양의 생김새에 더해 접시, 그리고 요리의 색채와 맞물려 꼭 밤하늘에 뜬 보름달을 연상케 하였다.

내심 이 접시에 담긴 스타일링에 감탄하는 심사위원들이었으나, 찬혁은 아직 끝이 아니라는 듯 심사위원석에 올라간 접시 위에 손을 뻗었다.

"뭐 하는 건가?"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이 연출은 고객 앞에서 해야 진짜 마무리가 되거든요."

갑자기 그들이 유심히 지켜보던 노란 덩어리를 집어가는 찬혁의 행동에 차운배가 기함했다. 마치 잘 완성된 한 접시를 스스로 망치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영길은 찬혁의 행동이 아닌, 그가 내뱉은 말에 신경을 빼앗겼다.

'연출?'

연출. 연출이라……

요리는 예술이다.

진부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것은 진실이기도 하다.

정물화처럼 움직이지 않는, 정지된 그 모습 그 자체로 아름다운 요리가 있는가 하면, 그와는 달리 마치 연극이나 영화를 보듯 먹는 자의 눈앞에서 그 모습을 자유롭게 바꿔가며 즐길 수 있는 요리도 있는 법.

안영길은 이 어린 나이에 벌써 요리의 스타일링과 연출에까지 눈길을 주는 넓은 시야에 감탄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넓이에 연연하여 깊이를 잃지는 않았을지…….'

그런 교장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찬혁은 어느새 그라인더에 노란 덩어리를 넣고 까르보나라 위에서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한 바퀴, 두 바퀴. 그라인더의 손잡이가 원을 그려 제자리로 돌아올 때마다, 까르보나라 위로 노란 가루들이 떨어져 내린다. 그 유려한 몸짓에 홀린 듯 그 광경을 바라보던 심사위원들은, 이제 됐다는 듯 그라인더를 거둬들이고 입을 연 찬혁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완성입니다. 맛있게 드셔주세요."

마무리로 그라인더로 간 노란 덩어리를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두는 찬혁.

동그란 모양의 그라인더에 갈린 노란 덩어리는 크게 한 입 베어 물린 것 마냥 움푹 파여 있었는데, 재미있게도 그 모양새가 보름달이 초승달로 변한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허어, 이럴 수가."

놀랍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는 차운배. 고작 학생이 만든 음식에 괜한 호들갑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안영길과 박예휘는 그런 차운배의 심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

파스타의 열기로 살짝 녹아든 치즈 위로 골고루 뿌려진 노란색 가루.

휘영청 빛나는 초승달이 기운 밤하늘, 눈 쌓인 언덕 위로 노란 들국화가 온 천지에 빼곡하게 피어난 듯한 착시를 그들에게 선사한다.

'이걸 계산했다고?'

당장의 맛이나 노란 덩어리의 정체 등은 둘째 치더라도, 이 정도로 음식을 꾸밀 수 있다니. 고등학생답지 않은, 아니. 어지간한 셰프 못지않은 연출력이었다.

'연출력…… 연출. 연출이라.'

과연. 자신의 입으로 그런 수식어를 붙일 만도 했다. 안영길은 작게나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꼭 한 폭의 그림 같군요. 아름다워요, 손을 대는 걸 삼가고 싶어질 정도로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드셔주실 거죠?"

"하하하. 아무렴요."

안영길의 찬사에 깊게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그를 마주 보며 발랄하게 묻는 찬혁.

털털한 웃음으로 그 질문에 답한 안영길은 집게를 들어 까르보나라를 덜어갔다.

"면은 페투치니fettuccini로 만들었군요."

"네. 그래야 좀 더 면이 소스를 머금어서……."

"거기까지."

"예?"

자신이 만든 요리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려던 찬혁의 말을 막은 안영길이, 웃음을 보인다.

"정성을 다해 만든 요리에 숨겨진 비밀을 전부 요리사에게 물어보는 건 실례겠지요. 그리고……."

"그리고?"

"저희가 직접 먹으며 알아맞히는 편이, 서로에게 있어서 더 즐거운 일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안영길의 묘한 장난기가 섞인 말에, 찬혁 또한 밝은 웃음으로 화답한다.

"…… 아무렴요!"

"그렇지요? 그럼, 잘 먹도록 할게요."

심사위원들이 다 함께 수저를 들었다.

***

"흠."

심사위원들은 음식을 입에 넣기에 앞서 덜어낸 요리를 면밀히 살폈다.

소스의 농도부터 시작하여 소스의 색, 면의 생김새, 재료들 사이의 전체적인 조화 등등.

이 접시에 들어간 재료들이 요리라는 형태의 덩어리를 잘 이루었는지를 보는 것이다.

'치즈에 가려져서 몰랐는데, 생각보다 소스가 더 노랗다. 노른자만을 쓴 건가?'

박예휘가 면을 조금씩 헤집을 때마다, 요리에 숨겨진 베일이 하나씩 벗겨진다.

'이 꾸덕함…… 흰자를 같이 쓰면 쉽게 나오지 않는 농도다. 노른자와 치즈만을 사용한 게 맞는 것 같고…….'

눈으로 보는 것 다음에는, 포크에 묻은 소스만을 입에 넣는다.

'음. 치즈는 그라나 파다노.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보다 맛이 약한 치즈인데…… 굳이 이걸 쓴 이유가 있겠지. 마늘로 느끼한 맛을 제어하려 한 시도가 돋보인다. 훌륭해.'

마음속 채점지에 의문부호와 함께 동그라미를 하나.

휘젓는 것을 멈춘 박예휘가, 이번에는 고명과 면, 소스를 함께 포크에 둘러 입에 넣었다.

……

……

─달각, 달각.

"음?"

문득 이상함을 느낀 박예휘가 포크로 자신의 접시를 긁었다.

'왜 안 집히지?'

시식하고 평가를 해봐야 하는데.

그런 생각으로 접시에 시선을 떨구니, 어찌 된 일일까. 분명 음식이 담겼던 흔적은 있는데 접시 위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뭐야?'

갑자기 일어난 불가사의한 사태에 당황하기도 잠시. 우선 심사를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다시 작은 집게를 들어 요리가 담긴 접시에 뻗는다.

"어라?"

"흠?"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그런데 이상하다. 자신이 뻗은 집게는 하나인데, 접시 앞에는 어느새 세 개나 되는 집게가 모여 있었다. 의아한 눈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안영길과 차운배 또한 박예휘처럼 불가사의한 표정을 짓고 서로에게 눈길을 보내는 중이었다.

"""아."""

그리고 깨달았다.

서로의 입가에 살짝 묻은 누런 소스의 흔적.

자신들은 이미, 이 요리를 입에 담았다는 것을.

***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극히 짧은 한순간이나마 먹었다는 것조차 잊게 할 만큼 충격적인 맛이라니.

"대체……."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차운배는, 마치 세뇌라도 된 것 마냥 집게로 까르보나라를 덜기 시작했다. 안영길과 박예휘 또한 정신을 다잡고 마찬가지로 음식을 덜어온다.

─후룩. 우물우물…….

그리고 다시 단번에 입안으로 그것을 털어 넣는 교사들.

이번에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맛을 음미하더니, 몇 차례 덜어서 먹기를 반복한다.

어느새 텅 비어 버린 찬혁의 접시.

교사들은 그제야 만족한 듯, 아니면 포기한 듯 조심스런 동작으로 식기를 내려놓았다.

"류찬혁 학생."

"예?"

말문을 잃은 교사들을 대신하여, 안영길이 입을 연다.

"아주 훌륭한 일품을 만들어줬어요."

"감사합니다."

근엄한 표정으로 칭찬을 건네는 교장에게 찬혁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교장은 아직 할 말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 말을 잇기 시작했다.

"우선 궁금한 것 몇 개를 물어보도록 하죠. 먼저 면이에요."

"예."

"아주 잘 완성된 면이었어요. 훌륭한 찰기와 면 자체에 배인 간……. 그냥 밀가루와 계란을 반죽한 게 다가 아니더군요. 면과 소스, 둘 다 흰자를 배제하고 노른자만을 사용한 건 알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지 못할 맛이 숨어 있어요."

"……."

"특히 후추의 향이 기억에 남는군요. 반죽에 후추를 넣고 숙성하면 어느 정도 향이 손실되는 건 피할 수 없을 텐데, 찬혁 학생이 만든 요리는 싱싱한 후추 향이 잘 살아 있더군요. 방법이 뭐죠?"

안영길의 의문에 대답할 말을 고르던 찬혁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한 번 늘린 반죽을 반으로 잘라서 그사이에 후추를 넣고 겹친 다음 제면기로 다시 압착 해 준 거예요. 노른자와 물을 섞어 만든 계란물을 접착제 대신 써서요."

"아, 과연. 면을 씹을 때마다 풍미를 느낄 수 있던 이유는 그 덕분이군요. 반죽 속에 숨어 끓는 물과 기름의 온도를 적당한 수준으로만 받아 익은 덕분에 타지도 않고 후추 향이 죽지 않았어요. 아주 영리하군요."

"감사합니다."

감사를 표하는 찬혁. 하지만 안영길의 눈에서는 아직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번거로운 방식을 사용한 이유가 있나요? 그냥 요리 위에 후추를 뿌려서 먹어도 괜찮았을 텐데요."

싱싱한 후추 향을 살리고 싶었다면, 그냥 완성된 요리 위에 뿌리면 그만이었을 텐데.

그 의문에 찬혁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렇게 만들면 제가 바란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요."

"이미지요?"

"눈이 듬성듬성 녹은 것처럼 보이면 보기 흉하잖아요?"

그 말에 안영길은 이제야 알았다는 듯 깊은 웃음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자세한 답변 감사해요."

"그럼 이번엔 내가 질문하마."

"예."

이번에는 박예휘의 차례였다.

"네가 이 요리에 마지막 가니쉬로 곁들인 그것. 노른자 절임이구나. 맞지?"

"예. 맞습니다. 소금이랑 설탕을 1:1 비율로 섞은 것에 최대한 신선한 노른자를 묻어서 사흘간 숙성시켜서 사용했습니다."

"덕분에 치즈 맛에 눌릴 뻔했던 미묘한 노른자의 고소함이 잘 살았어. 파르미지아노 대신 그라나 파다노를 쓴 건, 그 미묘한 맛의 균형에서 계란에게 좀 더 무게를 실어주기 위함이었던 것 같고."

"정확하세요."

요리에 숨겨진 비밀을 술술 풀어내는 박예휘의 평가에 찬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예휘는 작게 미소를 짓고는, 이번에는 남아 있던 노른자 절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직 숨겨진 게 조금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잠깐 살펴봐도 될까?"

"그럼요."

찬혁이 접시를 들어 교사들 가까이에 놓자, 박예휘가 노른자 절임을 손으로 집어 들어 눈 가까이 가져와 살폈다.

"…… 아, 과연. 향을 맡으니 알겠구나."

"와……."

'고작 몇 초 살폈다고 그걸 눈치채네…….'

눈으로 보고 향을 맡는 단순한 동작을 몇 차례 반복한 박예휘가 궁금증이 해결됐다는 표정을 짓자, 찬혁은 살짝 질린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넛맥. 노른자를 절일 때 노른자 겉에 넛맥을 얇게 뿌려서 절인 거야. 노른자 특유의 비린 맛을 소량의 넛맥으로 억눌러 아주 절묘하게 계란 맛을 살릴 수 있었어."

"이번에도, 정확하십니다."

다 들켜 버렸다며 쓰게 웃는 찬혁에게 박예휘가 웃는 낯을 보인다.

"나도 아직 죽지는 않았단다. 메뉴를 구상하는 것에 고심한 흔적이 엿보이는구나. 덕분에 맛있게 먹었다. 고맙다."

"감사합니다."

서로를 칭찬하는 사제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안영길이,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난 것을 보고 끼어들었다.

"저도 아주 맛있게 먹었어요. 접시를 갖고 자리로 돌아가도록 하세요."

"예. 맛있게 드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야말로,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줘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대회반 2차 입부 시험.

평가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가는 류찬혁의 손에는, 빈 접시만이 들려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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