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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요리고 고인물-23화 (23/403)

23. 2차 시험.-6-

주방은 각 주방마다 맡은 역할에 따라 여러 가지 수식어가 앞에 붙는다.

샐러드처럼 불을 쓰지 않는 요리를 담당하는 콜드 키친.

내가 몸을 담았던 단체 연회를 전담하는 연회 주방.

식사 때 나갈 빵과 쿠키, 케잌 같은 디저트를 맡는 베이커리 키친 등등.

그런 수많은 분류의 주방을 대부분 경험해 보았던 나였으나, 내가 평생 살면서 단 한 번도 서지 못한 주방이 있다.

실력이 모자라서? 그건 아니다. 내가 싫어해서? 그것도 딱히 아니다.

이유는 하나였다. 오너들이 내가 그 주방에 서는 걸 반대했으니까. 심지어는 성 셰프마저.

내가 그곳에 서는 걸 반대할 때 성 셰프가 외치던 말이 생각난다.

"마. 찬혁이 니가 그기 서믄 손님들 밥 묵다 체한다 안 카나. 나가 그 위 직급으로 바로 승진시켜줄 테니까네, 그짝은 다른 아한테 맡기라."

솔직히 충격이었다. 내가 뭐 어떻다고.

그 주방의 이름은 바로 라이브 키친. 고객과 요리사가 바로 눈앞에서 소통하며 고객은 요리사가 요리하는 모습을, 요리사는 고객이 식사하시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주방의 한 종류이다. 성 셰프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해 심통이 난 내 미간을 꼬집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 억울하믄 요리할 때 표정관리 하는 법 좀 배우라. 생긴 건 말끔하이 잘생긴 아가 와 이리 칼만 잡으믄 오만상을 쓰노? 니 그라고 다니믄 주름 빨리 생긴다."

손으로 얼굴을 비벼 표정을 푸는 루틴도 그 권유로 배운 것이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도움이 됐다. 적어도 파리에서 내 표정 갖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 사실 보고 피해 다닌 걸 수도 있겠다마는.'

개인주의적 사상이 강한 곳이지 않은가.

아무튼,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다름이 아니었다.

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누군가 집중해서 지켜보는 걸 어색해하는 이유에 대한, 짧은 변명에 불과하다.

***

"저 학생은 분명……."

"아십니까?"

찬혁이 제면기로 면을 늘리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던 안영길 교장이 꺼낸 말에 차운배 교감이 물었다. 안영길은 그 질문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자소서와 중학교 담임교사의 추천장이 인상 깊은 학생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름이 분명 류…… 아, 그래요. 류찬혁. 맞지요?"

"예, 맞습니다. 확실히, 인상적이긴 했죠."

교장이 꺼낸 화제에 박예휘 또한 수긍한다.

"1학년, 2학년 때 생활상이나 성적은 엉망이었는데, 3학년이 되자마자 내용물이 뒤바뀐 것처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더군요."

"아아, 그러고 보니 이야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그게 저 학생이었군요."

박예휘의 간단한 설명에 이제야 생각났다는 것처럼 차운배가 손뼉을 치며 답했다.

하지만, 안영길은 아직 자신의 의문을 다 풀지 못했다는 듯 말을 잇는다.

"헌데 참 이상하네요?"

"예? 어떤 게 말입니까?"

"저 학생이요. 입학시험과 면접이 있던 날에 분명 저도 심사에 참여했습니다만……."

안영길이 미심쩍은 시선을 찬혁에게 향했다.

"저 학생이 원래 저렇게나 실력이 훌륭했었나요? 나쁘지 않았던 건 사실이나 저렇게 수준이 높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제면기로 반죽을 늘리는 언뜻 보면 단순한 과정.

하지만 그 속에 얼마나 많은 노하우가 곁들여져 있는지는 직접 해보지 않은 이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반죽이 제면기의 롤러 사이로 말려들어가는 속도에 맞추어 찢어지거나 잘못 끼이지 않게끔 적절한 위치로 축을 옮겨 다니는 동작.

다른 곳에 눌어붙지 않도록 굴렁쇠처럼 면을 굴리는 와중에도 밀가루를 덧발라주는 손놀림.

끝에 이르러선 손의 감각만으로 두께를 가늠하고 반죽의 두께가 다른 부분을 정확히 짚어 잘라내기까지.

안영길의 기억에 남은 류찬혁이라는 학생은 저런 솜씨를 가진 자가 아니었다.

노력해서, 연습해서 그런 거 아니겠냐고?

아니, 저건 1, 2년 노력한다고 나오는 태가 아니다. 적어도 5년 이상을 이 업계에서 종사한 사람이나 저런 자연스러운 제면이 가능할 터다.

"허어, 저 학생은 요리를 배운 지 이제 반년이 조금 넘은 것으로 압니다만……."

"저게요? 그렇다면 저 아인 굉장한 천재로군요."

입학시험 현장에는 참석하지 않은 차운배가 감탄을 흘렸다. 하지만 안영길과 박예휘는 그 말에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아니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수준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제가 보기에는 다른 아이들 따라가기도 급급할 것 같았죠."

"예? 그럼 대체 어찌 저런……."

"일단은."

차운배와 박예휘의 의구심 섞인 대화를 안영길이 끊어낸다.

대화가 끊긴 두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지만, 안영길의 시선은 아직도 한 곳에 고정된 상태였다.

"일단은 지켜봅시다. 요리사는 결과로 말하는 법이니까요."

이제 막 제면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조리를 시작한 찬혁에게로.

***

"잘 나왔네."

제면기의 구성품은 민짜 밀대 역할을 하는 롤러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면을 정확한 굵기로 재단해 주는 커팅 롤러 또한 제면기의 구성품.

그 커팅 롤러를 통과하여 나오는 면을 둥그런 막대로 들어 간이 건조대에 걸친다.

모양새가 마치 빨랫줄에 빨래를 촘촘하게 걸어둔 것 같다.

내가 일련의 과정을 하는 동안, 화구에 올려둔 냄비 속 물은 열을 잔뜩 받아 팔팔 끓어오르고 있었다.

거세게 기포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불을 작게 줄여 과도한 증발을 막음과 동시에 온도를 유지시킨다.

밀가루가 잔뜩 뿌려진 조리대를 깔끔하게 닦아내고, 방금 한쪽으로 치워두었던 칼과 도마의 자리를 제면기와 바꿔준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요리를 시작할 차례다.

"우선은 이거."

가장 먼저 재료들 사이에서 꺼낸 것은 관찰레Guanciale라는 햄이다.

로마 시대부터 그 제조법이 전승되어온 이 햄은 돼지의 볼살, 혹은 턱살을 염장하고 발효하여 만드는 전통적인 식재료 중 하나다.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재료인데.'

이 학교는 이런 재료를 당연하다는 것처럼 공수해온다. 성심고의 저력을 느끼는 부분이다.

─서걱, 서걱.

살짝 딱딱한 관찰레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내어 그 일부를 한 입. 음, 훌륭한 맛이다. 염장육이라는 말만 들으면 굉장히 짤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과하게 짜지는 않다. 오히려 삼투압 효과로 인해 수분기가 빠져나간 돼지고기 특유의 풍부한 지방질이 굉장한 감칠맛을 선사한다.

'꽤 상등품이잖아, 이거.'

아주 좋다.

입가에 저절로 맺히는 미소와 함께 기름을 두르지 않고 예열한 프라이팬 위로 잘 썰어놓은 관찰레를 겹치지 않게끔 올린다.

─치이이이익.

불은 살짝 약한 불로.

예열은 됐지만, 과하게 가열되지는 않은 팬에서 듣기 좋은 기름 끓는 소리와 함께 관찰레가 익어간다. 이렇게 중불 정도의 온도에서 지긋이 구워주니, 안에 꽁꽁 숨어 있던 기름이 마치 샘물이 샘솟듯 프라이팬을 흥건하게 채워나간다.

이것이 관찰레라는 식재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기름을 어떻게 뽑아내어 사용하느냐 하는 것. 이 배어 나온 기름에 소량의 마늘을 넣어 과한 느끼함을 잡아준다.

'원래 까르보나라에는 마늘이 안 들어가지만.'

한국인 입맛에 맞추려면 마늘이 최고다.

어차피 요리란 가장 주관적이면서도 가장 객관적인 것.

이 세상의 미식이란, 대부분 한 명의 주관에서 출발하여 다수의 객관에 도달한 것들이니까.

관찰레에서 나온 기름 속으로 마늘의 액기스가 녹아드는 것을 확인한 뒤, 간이 건조대에 걸어두었던 면을 끓는 물에 넣는다. 이런 생면은 마트 등에서 보는 건면과는 달리 굉장히 빨리 익는다. 끓는 물에서 1~2분에 더해 프라이팬으로 살짝 더 볶아주면 충분히 익을 것이다.

"슬슬 꺼낼까."

머릿속 타이머에 맞추어 순식간에 익기 시작한 면을 꺼내 면수와 함께 프라이팬으로 옮긴다. 면을 넣기 전에 과하게 배어 나온 관찰레의 돼지기름을 키친타월을 사용해서 양을 조절해 주니, 딱 알맞은 비율로 물과 기름이 섞이기 시작했다.

면이 프라이팬에서 마저 익어갈 동안, 계란 노른자와 그라인더를 이용해서 갈아놓은 치즈를 잘 섞어 까르보나라 소스를 만든다. 그리고 화구의 불을 끄고 면을 휘저으며 살짝 식히는 과정에 들어갔다.

'여기서 바로 소스를 넣으면 계란이 익어서 계란 볶음이 돼 버리니까.'

계란이 아주 익어서 굳어 버리지는 않는 온도로.

하지만 너무 안 익어서 비리지도 않는 온도로.

그 중간 지점을 정확하게 잡아채는 것이 까르보나라를 만들 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지금.'

소스를 면 위로 골고루 붓고, 프라이팬의 잔열을 이용하여 이리저리 휘저어가며 소스를 면에 전체적으로 코팅해 주면……!

"완성이다."

반듯한 직사각형 모양 접시에 잘 말은 까르보나라를 사선으로 올린 뒤, 치즈와 바질로 장식해 준다. 마지막으로……

─딸칵.

"이것만 곁들이면 끝이지."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통.

그 통의 뚜껑을 열어 속에 가득 담겨 있던 소금과 설탕을 파헤치자, 마치 하얀 백사장을 뚫고 떠오른 보름달처럼 샛노란빛을 품은 둥근 덩어리가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제출하겠습니다."

─달그락.

한 명의 학생이 심사위원석 테이블에 자신이 만든 요리가 담긴 접시를 올렸다.

노르스름한 소스 위를 하얀 치즈가 마치 함박눈처럼 덮은 파스타. 까르보나라였다.

그것을 본 박예휘가 학생의 이름을 부른다.

"그래. 네가…… 아, 조진형 학생? 메뉴는 까르보나라. 맞지?"

"네."

"가장 먼저 제출한 건 너구나. 잘 했다."

"감사합니다."

심사위원들 앞에 까르보나라를 내놓은 주인공은 찬혁이 아닌 조진형이었다,

공교롭게도 그와 찬혁의 메뉴가 겹친 것이다.

박예휘의 칭찬에 깊게 머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한 진형이 머리를 들자, 심사위원인 교사들도 자신들의 앞에 놓인 식기를 들어 올렸다.

"그럼 심사를 시작해 볼까요."

"예. 교장 선생님."

먼저 볼 것은 외관.

진정으로 맛있는 음식은 눈으로 먼저 먹는 법이라 하였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 않은가.

"흐음……."

교장이 옅게 숨을 내뱉으며 접시를 살폈다.

중앙 부분만 살짝 깊게 파인 원형의 접시 안에 원뿔 모양으로 말린 면.

그 위에 함박눈처럼 갈아 내린 치즈.

그리고 그 주변을 장식한 초록빛의 바질과 새빨간 토마토가 하얀 설원에 알알이 박혀 악센트를 주고 있다.

훌륭한 플레이팅. 과연 대회반에 입부 하겠다는 자신감이 엿보이는 한 접시. 하지만……

"음. 좋아요. 그럼 어디……."

접시를 돌려가며 전체적인 모양새를 확인한 교사들은, 집게를 사용해 각자의 접시로 음식을 덜어갔다.

'농도는 괜찮고.'

뻘에서 낙지를 뽑아낼 때 붙어오는 진흙처럼 꾸덕한 소스가 면과 함께 끌려 나온다.

이렇게 면에 소스가 잘 묻어야만 파스타의 일체감이 흐트러지지 않는 법. 작게 고개를 끄덕인 교사들은 포크로 면과 고명들을 하나로 휘감아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꿀꺽.

몇 번이나 씹었다고 음식을 곧장 삼켜 버린 교사들.

긴장한 자세로 평가를 기다리는 조진형에게 식기를 접시 위에 내려놓은 안영길이 말했다.

"…… 됐습니다. 접시를 들고 자리로 돌아가도록 하세요. 조진형 학생."

"그, 죄송한데…… 평가는요……?"

살짝 냉담한 교장의 태도에 조심스레 질문을 건넨 조진형이었으나, 교사들은 그런 그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본인들의 채점지에 점수를 적으며 답했다.

"평가는 모든 심사가 끝난 뒤에 한꺼번에 공개할 예정이니, 지금은 자리로 돌아가세요."

"아, 예……."

어딘지 모르게 싸늘한 분위기에 주눅이 든 조진형이 접시를 들고 등을 돌렸다.

그렇게 조진형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이번에는 다른 학생이 손을 들며 외친다.

"선생님. 제출하겠습니다."

류찬혁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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