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22화 (22/403)

22. 2차 시험.-5-

'이런…….'

실수였다.

아무리 기합이 들어갔다지만,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은 것 같다.

다른 애도 아니고, 백예은이 이 정도로 나오는 걸 보면 꽤 대단한 꼴을 하고 있었던 것이겠지.

'안 그래도 인상 나쁘다는 말 많이 들었는데.'

자신으로선 그 말들에 이해도, 납득도, 동감도 할 수 없었다.

거울 앞에서 본 자신은, 그래. 아주 잘생겼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래도 꾸준한 헬스와 고2 때 들어 유전자빨을 제대로 받아 몰라보게 자라난 훤칠한 키가 꽤 봐줄 만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여동생도 몸만 보면 왜 여친이 없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말했을 정도니까.

…… 뭐, 100년의 사랑도 오빠 화난 얼굴 한 번만 보면 그 자리에서 깨질 거라며 악담을 쏟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렇다는 거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슬슬 오실 때가 됐는데.'

수업 종은 방금 막 울린 상황.

그 소릴 듣고 옆에서 계속해서 조잘대던 백예은이 자리로 돌아간 것은 아주 반가운 일이었다.

안 그래도 점점 귀가 아파지던 참이었으니까.

그 끊이지 않고 입을 움직이는 체력에 내심 감탄하고 있을 찰나. 앞문이 열리며 사람 여럿이 줄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교장, 교감, 담임선생님. 저렇게 셋이 심사위원인가?'

미리 준비된 긴 테이블 앞에서 교장을 중심으로 나란히 선 세 명의 교사들.

저 셋의 주방 경력을 합치면 거의 100년에 근접하는 것으로 안다.

특히 교장과 교감 선생님. 흔한 말로 공사가 다망하신 저분들이 굳이 행차하셨다는 건 이 시험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겠지.

학생들이 자리에 전부 있는 것을 확인한 뒤, 교장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먼저 인사를 해야겠군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교장을 맡은 안영길이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살짝 마른 풍채에 걸친 살짝 품이 큰 양복과 까만 뿔테 안경이 인상적인 교장 선생님의 인사.

낮고 잔잔한 목소리와 인자한 말투. 항상 은은한 미소가 깔려 있는 인상이 시골집 할아버지를 떠오르게 하는 분이셨다.

교장 선생님이 짧게 목례를 해오자, 우리도 다 함께 입을 맞춰 인사를 드리며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잠시 후, 서로가 다시 고개를 들어 얼굴을 맞댄다.

"이 자리에 함께한 차운배 교감 선생님, 박예휘 선생님과 함께 여러분의 요리 심사를 맡게 됐어요. 감히 누굴 심사하기엔 경력이 미천하지만, 좋게 생각해 주었으면 합니다."

첫인상에 어울리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씀하신 교장 선생님이었으나, 나로서는 전혀 웃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옛 왕실의 수라를 책임진 대령숙수의 혈통으로 태어나, 10대 때부터 요식업에 투신해 지금의 나이가 될 때까지 경력만 40년 이상. 조선 궁중요리를 대중에 알린 전통 한식의 아버지라고 불리시는 분.

저분이 미천하면 우리는 바위 밑에 낀 이끼만도 못할 거다.

게다가 교장 선생님이 너무 대단해서 그렇지, 그 후광에 가려진 교감 선생님이나 박예휘 선생님 또한 경력으로 비빌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서도 손가락에 꼽는 분들이다.

'후우…….'

저런 사람들한테 평가를 받아야 한단 말이지?

'2학기 때는 다른 선생님들이 왔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이걸로 좋다. 대회반의 이름값이 아깝지 않은 심사위원 인선이다.

'이 셋에게 인정받는다면…….'

그건 곧 세계의 인정이나 마찬가지.

이 세 사람에게 극찬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적어도 이 학교 어디가 됐든 프리패스가 가능한 명함이 되어줄 것이다.

─삑삑삑. 삑삑삑.

교장 선생님의 싸구려 전자 손목시계에서 알람소리가 흘러나온다.

"아, 이제 시간이 됐네요. 여기 모인 여러분께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겠죠."

선생님. 아니, 심사위원 일행이 실습실 가장 앞에 마련된 테이블 뒤로 가서 자리를 잡는다.

"제한시간 60분. 메뉴. 계란으로 만든 요리. 제출 시간은 자유롭게 해도 좋아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두꺼운 뿔테안경 저편에 가려진 눈동자가 예리한 빛을 발했다.

"전원. 조리 시작."

"조리 시작!"

─삑!삑!삑!

낡은 전자시계의 거친 알람음을 청신호 삼은 박예휘 선생님의 후창이, 우리가 펼칠 레이스의 시작을 알렸다.

***

"어떻게 생각하나요?"

"예?"

"차 선생님과 박 선생님이 보기에 합격할 것 같은 학생 말이에요. 누구일 것 같나요?"

신호와 함께 하나둘 신청한 재료를 받고 자리로 돌아가 조리를 시작하는 학생들을 보며 꺼낸 교장의 질문.

갑작스레 자신들에게 던져진 그 질문에 차운배는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아직 수업하는 것도 살펴본 적이 없는데…….'

하지만 그 또한 교장만큼은 아니어도, 바로 그 아랫선에 다다른 경력을 가진 요리인.

은퇴하기는 하였으나 다른 이의 행동거지만 대충 살펴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우선은……."

잠시 말꼬리를 늘린 차운배의 시선이 이내 가장 앞자리. 침착한 표정으로 볼 안의 무언가를 거품기로 뒤섞고 있던 학생. 안창민에게 향한다.

"저 안창민이라는 학생. 저 친구는 확실히 다른 학생들과는 태가 다르군요."

교사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마음인 건지, 아니면 그냥 일찍 왔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줄에 자리를 잡은 학생 중에서도 안창민에게는 그의 시선을 빼앗는 무언가가 있었다.

"확실히, 차 선생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교장 또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행하는 사람들을 볼 때, 얼핏 보기만 해도 남들과는 달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10년차 용접공이 쇠를 이어 붙일 때.

예를 들어 장인 대장장이가 달군 쇠에 망치를 내리치며 두들길 때.

예를 들어 축구 프로 선수가 거침없는 드리블로 공을 몰고 갈 때.

단순하게 재료를 써는 동작 하나. 그걸 담아내는 동작 하나. 그런 자잘한 것들에서 보이는 능숙함과 자연스러움이 한곳으로 모였을 때, 남들과는 다른 동작의 흐름이 생긴다. 그것을 속된 말로 태라고 하는 것이다.

"흐음……."

박예휘가 눈을 가늘게 떴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더 자세하게 보기 위함이었다.

'이번 신입생들은 전체적으로 수준이 괜찮은걸.'

그의 반에서 나온 안창민이나 백예은, 그리고 류찬혁 만이 아니다.

다들 충분히 연습 하고 온 것인지 어리바리하게 구는 학생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실력 차이가 나는 학생들이 있어.'

특히 그의 반에서 뽑은 세 명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른 선생들은 웬일로 박 선생님이 세 명씩이나 뽑았냐며, 혹시 그 악명 높던 커트라인이 조금은 하향수정 된 거 아니겠냐며 소란이었지만, 박예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저 셋이 이상한 거다.'

박예휘는 그들의 1차 심사를 볼 때 판정에 있어서 조금의 가감도 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칼같이. 티끌만 한 실수 하나까지 찾아내어 단호하게 평가했다. 그 증거가 바로 저 셋이다.

여덟 명의 학생 중 다섯 명은 10점 이상의 감점을 받아 탈락했다. 하지만 저 셋 중 감점을 당한 학생은 없었다. 그의 눈으로 보아도 감점 요인 하나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 비정상적이었다.

"박 선생님은 어때요. 주목하는 학생이 있나요?"

"저 말입니까? 예, 물론 있지요."

"오, 그거 궁금하네요. 한 번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신의 질문에 당당하게 답하는 박예휘의 모습에 호기심을 보이는 교장.

박예휘는 교장의 뒤이은 질문을 가벼운 웃음과 함께 돌려주었다.

"안창민, 백예은, 류찬혁. 이 학생들입니다."

"허헛. 그 학생들은 박 선생님 반 아이들 아닙니까."

교장은 그 대답을 농담으로 여겼는지,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박예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자신만만하게, 그는 주장했다.

"매년 수많은 대회반 지망생을 봐왔습니다만, 하하. 글쎄요……."

"흐음?"

"제 예상에 불과합니다만, 이번에 제가 맡은 반에서 개교 이래 가장 많은 천재를 배출할 것 같네요."

그 담대한 선언에 교장과 교감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이들도 아는 것이다. 박예휘라는 요리인이 헛소리를 하지 않을 위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드르르르륵!

"음?"

그들이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학생들에게서 시선을 돌렸을 때, 실습실 뒤편에서 우렁찬 모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흠칫 놀란 선생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실습실 가장 뒤편. 넓은 조리대를 한쪽 끝부터 반대편 끝까지 빈틈없이 사용하는 학생이 한 명. 얼핏 보면 난잡해 보이는 그 모습에 교사들이 짐짓 놀란 듯 눈을 치켜뜬다.

"오오."

특히 교장은 감탄까지 내뱉으며 그 광경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교사들의 시선이 집중된 그곳. 교장의 감탄사를 끌어낸 조리대 앞에는 다름 아닌─

"…… 거, 되게 쳐다보네."

─파스타 기계로 거침없이 반죽을 늘리고 있는 류찬혁. 그가 자리하고 있었다.

***

"어디 보자."

실습실 옆쪽의 선반에서 내 이름표 앞에 놓여 있던 재료가 담긴 접시를 들고 온 참.

요리를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신청한 재료가 빠짐없이 있는지를 체크한다. 요리의 기본이다.

"계란, 그라나 파다노, 관찰레, 그 외 조미료…… 오케이. 전부 문제없고."

당연히 빠진 재료 같은 건 없었다. 하긴, 이 학교에서. 그것도 대회반 입부 시험 같은 중대한 이벤트에 그런 실수를 저지를 확률은 0%에 가깝겠지.

그다음에는 조리도구 체크.

어차피 내가 지금 만들 요리, 까르보나라Carbonara를 만드는 데에 복잡한 조리도구는 크게 필요하지 않다. 칼, 도마, 냄비, 프라이팬. 이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래도 이게 있어서 다행이구만. 역시 6층이야, 이 비싼 걸 들여놓다니.'

혹시라도 상할까 조리대 아래 선반에 모셔두었던 도구를 조리대 위로 올린다.

통짜 알루미늄 합금으로 된 쇳덩이의 묵직함. 광이 날 정도로 반짝반짝 닦여 사방으로 은색 빛을 반사해내는 이 모습을 보면 경건한 마음마저 드는 듯하다.

이것의 정체는 이름하야 전동 제면기. 그것도 전자식 자동 두께 조절기가 달린 놈이다. 내 기억 상 이 모델의 요즘 가격대가 0이 여섯 개는 붙는 것으로 아는데, 용케도 이걸 몇 개씩이나 구비 했다 싶다.

'이래서 6층에 한 번 익숙해지면 힘들다는 거야.'

메이저 리그와 마이너 리그의 차이를 몸으로 느끼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짝.

살짝 손뼉을 치며 생각을 끝맺는다. 잡생각은 여기까지. 재료 체크 끝. 도구 체크 끝.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조리를 시작할 시간이다.

"우선은 냄비부터 불에 올려두고……."

파스타를 만들 때는 항상 끓는 물이 최우선. 물이 끓는 걸 기다리는 시간 동안 수많은 과정을 해치워놓을 수 있으니까.

화구에 냄비를 올려 센 불로 세팅. 그다음 순서는 제면, 손수 면을 만드는 것이다.

아이스박스에서 오늘 새벽부터 준비해온 반죽을 꺼내 들었다.

약 5시간을 거쳐 완벽한 텍스쳐로 숙성된 밀가루의 감촉이 랩 너머로 전해져왔다.

좋다. 아주 좋다.

골이 빠지게 시간 계산을 한 보람이 있는 반죽이다. 이 질감이면 다른 부분에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지금의 내게 가능한 최고의 면을 만들 수 있다.

─촤악, 촤악.

깨끗하게 닦인 조리대 위로 밀가루를 넓게 흩뿌린다.

반죽이 조리대에 달라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작업. 그 위에서 숙성이 끝난 반죽을 열심히 치대고 눌러 납작한 모양새를 만든다. 제면기에 넣기 위해서이다.

제면기.

말만 들으면 뭔가 대단한 기계인 것 같지만, 실상을 따져보면 그냥 밀대 두 개가 딱 달라붙어 있는 기계다. 레버로 돌리는 수동식과 모터로 돌리는 전동식이 있지만, 이것은 후자.

두 개의 롤러 사이로 납작하게 만든 반죽을 넣으면 손쉽게 면을 만들기 알맞은 두께로 반죽을 늘려주는 좋은 기계다.

'단계별로 굵기 조절을 해줘야 하는 게 좀 귀찮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단번에 두꺼운 반죽을 얇게 만들려고 하면 반죽이 버티지 못하고 찢어져 버리고 만다. 그래서 처음에는 롤러 사이의 간격을 벌리고 두껍게 시작하여, 그 간격을 점점 좁혀가며 얇고 길게 만들어야 한다.

'싼 모델은 일일이 롤러 간격 조정하는 게 좀 귀찮지만, 전자식은 이야기가 다르지.'

특히 이 녀석은 고성능 센서로 반죽 자체의 두께를 측정해 자동으로 롤러 사이의 간격을 조정해 준다. 그래서 나는 따로 제면기를 만지작거릴 필요 없이 오로지 반죽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런 전자식 센서가 달린 제면기로 할 수 있는 잔재주가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이것. 롤러에 눌려 나오는 부분과 롤러에 말려 들어가는 중인 부분을 자전거 쳇바퀴마냥 하나로 이어주면, 제면기에서 빠져나온 반죽을 다시 정리해서 넣는 과정 없이 롤러와 내 손을 축 삼아 무한궤도처럼 굴려 가며 손쉽게 반죽을 뽑아내는 것이 가능하다!

'반죽 방향이 틀어지지 않게 조절하는 게 보통 쉬운 일은 아니지만.'

비싼 값을 하는 제면기 덕에 술술 얇아져 가는 반죽 위로 조금씩 밀가루를 흩뿌리며 덧발라주던 그때. 어디선가 들려온 탄성이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오오."

'…… 뭐야?'

눈을 돌린 그곳에는, 꽤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 거, 되게 쳐다보네."

나는, 생각보다 요리할 때 누가 날 쳐다보는 게 어색한 타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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