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2차 시험.-4-
조진형. 별명은 조진놈. 뭘 조졌느냐고? 딱 보면 모르겠는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인성 하나는 끝내주는 놈이었지.'
그것도 아주 나쁜 의미로.
조진형은 이른바 말하는 일진이었다. 성심고에 입학한 만큼 나름 공부도 곧잘 했고, 1학년 2학기 때에는 대회반 시험에 합격한 실력자이기도 했다.
'그럼 뭐해. 자기 커리어를 자기 손으로 조져 버렸는걸.'
사실 조진형이 아무리 날려봤자, 아무래도 학교가 학교이니만큼 중학생 때처럼 세를 이루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주먹 좀 친다고 나대기보다는 요리와 공부를 중요시했고, 그건 학교의 교사들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조진형은 1학년 때는 그냥 얌전히 학교를 다니다 졸업할 생각이었던 듯 보였다. 방금처럼 시비를 걸고 다니기는 해도, 수업은 성실하게 들었고, 무엇보다 대회반에 들어가기까지 했으니까.
다만, 대회반 시험에 합격하고 긴장이 풀린 것일까. 일주일도 안 되어 노상에서의 음주, 흡연으로 시비가 붙어 싸웠다가 경찰서에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
경찰서에서는 보호관찰과 봉사시간 채우기로 대충 처리했지만, 덕분에 대회반에서는 강제 탈퇴. 그 녀석 바로 다음 가는 점수를 받았던 내가 대신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 말씀.
조진놈이라는 별명은 이것에서 기인한다.
인성이 조진 놈. 커리어도 조진 놈.
"허허."
그래서일까, 괜히 짜증을 부리며 가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실소가 새어 나왔다.
저 나이 또래 애가 암만 인상을 써봐야 별로 무섭지도 않다.
30cm짜리 칼을 들고 있는 황소만 한 덩치의 셰프가 주방이 떠나갈 것 같은 고함으로 으름장을 놓던 주방. 여자가 한이 맺히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절로 실감이 가던 여류 셰프의 주방 등등. 온갖 인세의 지옥을 겪어봤던 나다.
이제 와 고등학생이 눈 좀 부라리는 게 대수겠는가. 오히려 조금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조진놈 저거. 6층까지 와서 조리복을 입고 다니는 걸 보니 쟤도 시험을 보려나 보다.
1학기 때도 시험을 봤었구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신경을 껐다.
어차피 언제, 누가 시험을 보든 결국 결정은 요리로 되는 것이다.
─꿈틀. 빠직.
그렇지만, 그렇지만 마음속에서 걸리는 것이 하나.
마치 잘 박히다 끝에만 살짝 구부러져 채 들어가지 않은 못처럼.
일직선으로 그어나가다가 삐끗해서 틀어진 선처럼.
그렇게 내 마음 밑바닥 언저리에, 찝찝함이라는 이름의 가시나무로 틀어진 둥지가 내 전신을 찔러대는 기분.
…… 아, 알겠다. 깨달았다.
이 찝찝함. 꺼림칙함. 불쾌함.
오랜만에 마주한 저 얼굴이, 기억이란 잔잔한 호수 아래의 진흙을 거칠게 헤집었다.
이런 기분이 든 이유는, 시간이 지나 침전되어 잠잠하게 가라앉아 떠오를 리 없던 감정의 잔해들이 떠오른 탓이다.
저 녀석이 혼자 자빠져서 운이 좋았다고? '덕분에' 대회반에 들어가?
지랄 맞은 개소리. 그런 걸로 운이 좋다 만족해?
'아니, 그럴 순 없지.'
설령 걷기에 앞서 달리려다 발목이 부러져도 그건 내 선택이다. 남이 일으켜 주었다고, 발을 잡아 걸음을 옮겨주었다고 그 자리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때의 난 그랬었다. 그걸로 만족이란 감정을 느꼈다.
어쩌면, 그게 내가 이 학교에서 버티지 못한 이유 중 하나였을 수도 있다.
사장님의 죽음이란 아픔을 이유 삼아 안주를 택한 스스로에게 혐오를 느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러니. 그렇기에. 그러니까.
"이번에는 그렇게 안 돼."
오늘은, 내 발로 달릴 차례다.
고맙다, 조진놈. 덕분에 기합이 좀 들어갔어.
환한 조명이 새어 나오는 조리실의 문.
나는 그 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
─드르륵.
미닫이문의 레일이 굴러가는 소리가 실습실에 울려 퍼졌다.
기름칠도 잘 되어 있던 문을 어떻게 열었기에 이런 소리가 나는 건가 싶어 고개를 돌린 학생들은, 이내 깜짝 놀라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야, 뭐냐 쟤.'
'나도 모르겠는데.'
서로 가까이 붙어 있던 학생 두 명이 서로에게 소곤거렸다.
이유는 다름 아닌 지금 막 문을 열고 들어온 다른 학생. 찬혁의 표정 때문이었다.
'아까 나간 애도 좀 양아치 같았는데 쟤는…….'
'저대로 사진 찍어서 수배지에 연쇄살인범이라고 붙여놔도 믿을 것 같다.'
뭐 때문인 건지 핏대가 울긋불긋하게 솟은 이마.
매서울 정도로 시퍼렇게 날 선 눈매.
굳게 다물려 정확한 一자를 그리고 있는 입.
얼굴의 상중하가 각각 상반되는 분위기를 띄었으나, 그 속에 섞인 감정은 뚜렷했다.
분노.
대체 무엇에 그렇게 화가 난 것인지, 찬혁이 스스로 빈자리를 찾아 조리도구를 비롯한 짐을 조리대 위에 내려놓을 때까지 그 누구도 그의 곁에 다가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앗, 혁이 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
찬혁을 보자마자 눈에 띄게 기뻐하는 백예은, 그녀 한 명을 제외한다면.
"지하 재료실 좀 들렀다 오느라."
"아아. 그럼 그게 오늘 준비해온 재료야?"
"응."
보여줘, 보여줘! 라며 꺅꺅 소리치는 백예은.
그 모습을 옆에서 보던 학생들은 핏줄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와, 아무리 아는 사이여도 그렇지 어떻게 저런 애한테 말을 걸지?'
'지금 쟤 옆에 가면 다쳐도 크게 다칠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은은 찬혁이 가져온 아이스박스 옆에 달라붙어 보여 달라며 조르기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어차피 반죽 밖에 안 들은 거 봐서 뭐하게. 가라 좀."
"에이~.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면서. 좀 보여줌 안돼? 응?"
"숙성 시간 재기 귀찮아. 온도 맞춰서 가져온 거란 말이다."
"치잇, 쫌생이."
"고운 말 써라, 고운 말. 보통 자기 걸 지키려는 사람한테 쓰지 않는 말이야, 그거."
"고운 말이래. 하하핳, 혁이 아재 같아!"
"아……!? …… 하아, 그래. 내가 좀 애늙은이야. 제발 조용히 해주라. 나이를 먹으면 사소한 거에도 귀가 아프다고."
"푸하하하핳!"
하지만 그런 예상과는 반대로, 서로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이던 두 사람은 큰 탈 없이 잘 대화하고 있었다. 미묘하게 들러붙는 예은을 찬혁이 귀찮다는 듯 설렁설렁 떼어내려 할 뿐이다.
그 광경에 학생들은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하아, 다행이다. 표정만 저렇지 그렇게 화난 건 또 아닌가 보네.'
'아닌데…… 진짜 지금 당장이라도 누구 하나 때려죽일 표정인데…….'
그렇게 시시콜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진지한 표정을 지은 예은이 찬혁에게 질문을 건넸다.
"근데 혁아."
"응?"
"너─"
그런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학생들은 생각했다─
"─표정은 왜 그래?"
"…… 뭐라고?"
─지뢰를 밟는 소리가 났다고.
***
사실, 예은도 찬혁을 보았을 때 전혀 놀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평소에는 극단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커다란 감정 기복을 보이지 않던 찬혁이, 웬일로 오만가지 인상을 쓰고 있었으니까.
'왜 저러지?'
다만, 그녀가 놀란 이유는 그가 화를 내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찬혁이 화를 내는 것 자체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예은은 찬혁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역시 다른 사람한테 화난 건 아니야.'
예은이 가서 말을 걸었을 때, 찬혁은 꼭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는 듯 평소처럼 그녀를 대했다.
귀찮은 듯 설렁설렁 그녀를 대하고, 그러다 가끔 농담을 건네고. 예은의 농담도 잘 받아쳐 주고. 마치 늑대가 이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경계하는 것 같은 표정만 뺀다면 다른 때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여러 차례 말해왔듯이 백예은은 남의 눈치를 살피는 것에 능하다.
정확히는, 그 사람의 본질을 깨우치는 것에 능하다.
찬혁 같은 사람은 쉽게 남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다.
보통 자신의 신경을 건드는 일이 있어도, 몇 차례 참고, 참다가. 정 아니다 싶을 때 터지는 성격의 소유자다.
'날 대하는 것만 봐도 그래.'
예은은 일부러 그에게 조금 질척이듯 행동했다.
어찌 보면 조금 귀찮을 정도로. 그런데 찬혁은 한 번도 그녀에게 진심으로 짜증을 낸 적이 없다. 귀찮아하고, 대충대충 대할지언정 그쪽에서 밀어내려고 하지 않는다.
이건 예은이 그녀의 외모가 가진 장점을 적절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그녀가 찬혁의 성격에 그어진 선을 잘 타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녀가 봐온 찬혁 같은 사람들의 경우, 진짜로 화를 내는 상대는 외부의 타인이 아니다. 그 상대는 바로─
'내부의 자신.'
자신의 어리석음.
자신의 미숙함.
자신이 저지른 실수.
자신의 부족함에 화를 내고, 자신이 모자라단 사실 자체가 가장 힘겨운 사람들.
그렇기에 채찍질하는 것은 자신.
짜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자신.
타인을 통해 받은 압력이, 스스로를 터트리는 화약이 되어 버린다.
그렇기에, 상처를 받기도 쉽다.
예은이 지금 당장은 얌전한 찬혁을 자극한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한 번쯤은 압력을 뺄 필요가 있으니까.'
무슨 말이냐는 듯 어벙한 표정을 지은 찬혁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예은이 외쳤다.
"표정 말이야 표정! 왜 그렇게 뿔이 나 있냐구!"
"…… 아."
찬혁은 예은의 말을 듣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두 손을 들어 마사지하듯 자신의 뺨에 손을 올리고 빙글빙글 둥글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한 바퀴, 두 바퀴. 손바닥이 얼굴 전체를 쓸어내릴 때마다 와이퍼가 자동차의 앞 유리를 닦아내는 것처럼 점점 표정이 지워져간다.
그렇게 몇 번을 문질렀을까. 두 손을 다시 내린 찬혁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우……."
"……."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바닥이 내려갔을 때, 찬혁의 얼굴은 평소 예은이 봐왔던 표정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미안, 좀 긴장했나 봐. 내가 진지해지면 표정이 사나워지는 버릇이 있어서."
항상 남들이 요리할 때 내 얼굴만 보면 무섭다더라. 미안하다며 쓰게 웃는 그의 모습에 예은은 살짝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속내까지 알려줄 정도는 아니란 거지.'
태연한 대응. 이건 다시 말하면 찬혁과 예은의 사이에 그가 선을 그은 것이었으니까.
나는 괜찮다. 신경 안 써도 괜찮다. 혹은,
'신경 쓰지 마라.'
"……."
"…… 뭐야 너, 그렇게 무서웠냐? 미안하다니까."
아님 뭐, 아직도 표정이 덜 풀렸나? 원래 이 정도 하면 다 풀리는데.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전의 행동을 반복하는 찬혁.
예은이 살짝 굳었던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모야모야! 화난 줄 알고 놀랬잖아~!"
괜찮다.
아직은 이걸로 좋다.
무슨 이유로 찬혁이 스스로에게 그렇게 화를 냈던 것인지 궁금했지만, 아직은 몰라도 좋다.
'훈련이 잘 되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
적어도 이를 드러내지는 않는다는 거니까.
그렇게 자신을 납득 시켰다.
아직은 괜찮았다.
아직은.
─아직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