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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1화 (11/403)

11. 대회반 입부.-2-

점심시간 후.

조리복을 챙겨 입은 우리는 양식 수업이 있을 실습실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특이할 건 없는 하루 일과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면……."

계속 붙어서 촉새처럼 종알대는 백예은만 뺀다면 말이다.

'시끄러워…….'

대체 왜 내가 오늘 등교 중에 본 길고양이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지, 아니 그 전에 얘가 왜 이렇게 갑자기 거리를 좁혀오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저기저기, 혁이 너는 대회반 입부 시험이 뭘 것 같아?"

얘 지금 뭐라 한 거냐. 혁이는 누구야.

"아, 혁이는 지금 내가 지은 별명! 맨날 찬혁이라고만 부르면 딱딱해 보이잖아. 발음도 어렵구! 그래서 지어봤어. 마음에 들어?"

"…… 맘대로 불러."

"응!"

뭐 사양이 없네.

방방 뛰는 고무공마냥 말이 이리저리 톡톡 튄다. 좋지 않은 의미로.

특유의 입담 덕분인지 쉬지 않고 떠드는 모습이 듣고 있으면 나름 웃기기는 했지만, 그걸 실습실까지 가는 내내 그러면 질리는 걸 넘어서 귀가 아프다.

여전히 활짝 핀 웃음이 개지 않은 얼굴. 누가 보면 표정의 디폴트가 웃는 걸로 설정되어 있는 줄 알겠다.

'방송 할 때도 항상 저러긴 했지만.'

가만히 놔두면 한도 끝도 없이 자기 이야기만 계속 떠들 것 같았기에, 말 중간에 끼어들어 급브레이크를 건다.

"그 새끼 고양이가 엄마랑 같이─"

"하나만 물어보자."

"응?"

말이 중간에 끊겼는데도 별 신경도 쓰지 않고 되묻는 백예은.

나는 방금 급식실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아까 말했던 대회반 같이할 거란 이야기. 무슨 뜻으로 한 말이야?"

"응? 말 그대론데?"

마치 자기가, 그리고 내가 대회반이 될 것이라는 걸 전혀 의심하지 않는 눈빛이었다.

"그럼 네 말은, 너랑 내가 대회반이 될 거라고?"

"창민이까지 셋이 같이!"

돌겠다. 1학년 대회반 정원이 다섯 명인데 우리 반으로만 TO를 반을 넘게 채워 버리네.

의아함을 담은 눈으로 백예은을 바라본다.

"안 믿는구나?"

"너 같으면 믿겠냐?"

당장 기억은 안 나지만, 분명 1학기 때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는 건 확실하다.

뾰로통한 얼굴로 쏘아보는 백예은.

그렇게 보면 어쩔 건가 싶어 마주 보니 그쪽에서 먼저 말을 잇는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궁금해?"

"이유가 있으면 좀 들려줘 봐라."

어차피 뭐 같은 반이니 같이 입부 하면 좋겠다 수준의 이야기겠지.

크게 신경을 두지 않고 대답을 기다린다.

"그냥 요리하는 걸 보면 알게 돼."

"……?"

무슨 뜻이지? 흐리멍덩하게 앞을 향해 있던 시선을 다시 예은에게 향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백예은의 얼굴에는,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감각한 표정이 지어져 있었다.

미래에서조차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얼굴에 내심 깜짝 놀란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이미, 그녀의 얼굴엔 평소와 똑같은 웃음이 지어져 있었다.

"내 꿈은 애완동물을 기르는 거거든? 그것도 되게 큰 개! 혁이 너는 애완동물 키워본 적 있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누가 무슨 말이냐 했었냐는 듯.

그렇게 태연자약하게 내게 웃어 보이는 백예은.

이 순간. 나는 새삼스럽게도 백예은이라는 사람이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

백예은. 미래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식품 업계와 미디어 업계에서 이름을 알아주는 중견기업의 사장.

어머니는 궁중음식 연구가이자 한식 종가로 유명한 정식당의 오너.

그런 가정의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 슬하에서 온갖 귀여움을 받아온 그녀이지만, 그녀의 부모님이 처음 백예은에게 건 기대는 생각만큼 크지는 않았다.

사업의 승계는 그녀의 오빠가.

식당의 운영은 그녀의 언니가.

예은은 그저 부모님과 형제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막내의 역할만을 착실하게 맡고 있으면 됐다.

그래, 그거면 충분했는데.

하늘은 그녀가 고작 그 정도 위치에 있기를 바라지 않으셨나 보다.

백예은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재능을 갖고 있었다.

한 번 배운 것은 잊는 일이 없었고, 어머니가 요리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바라만 보아도 곧잘 따라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오빠와 언니도 충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그녀의 앞에서는 달빛 앞의 반딧불과 같았다.

"예은아?"

처음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녀의 어머니였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시절.

작은 호기심으로 언젠가 어머니가 만들었던 요리를 따라서 만들어보던 때, 그 광경을 우연히 예은의 어머니가 목격하게 된다. 처음에는 애가 장난을 친 거겠지 싶었던 그녀이지만, 예은이 만들어낸 음식의 퀄리티를 보고 그녀는 단박에 예은의 재능을 알아챘다.

그날을 계기로 그녀는 예은에게 요리를 가르쳤다. 그야말로 정열적이게.

하지만 천칭이 기울면 한쪽은 올라가게 되는 법.

어머니의 관심이 온통 예은에게 쏠려 있음을 알게 된 예은의 언니, 백하은의 심정은 결코 좋을 수 없었다. 그녀의 눈에 예은은 자신이 쌓은 노력을 부정하는 존재 그 자체로 보였으니까.

어린아이일수록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다.

그것은 아무리 남보다 어른스러웠던 예은이라 한들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어른스러웠기에 보다 비틀리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과도한 기대를 거는 어머니와, 자신을 시기하는 언니.

그사이에 낀 예은의 마음은 나날이 깎여나갔다.

결국, 예은이 선택한 방법은 도망이었다.

자신의 재능을 우연으로 포장하여 어머니에게서 도망쳤고.

시기를 웃음으로 받아넘기는 것으로 언니에게서 도망쳤다.

그것은 결국 실망감이라는 또 다른 무게로 그녀를 짓눌렀지만, 예은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웃음이란 가면을 뒤집어쓰고. 도망치고 도망쳐서, 결국 바늘로 만든 성 같았던 집에서마저 도망쳐 나와 도착한 곳이 바로, 이 성심조리고등학교였다.

그리고 백예은은, 그렇게 도망친 곳에서도 자신을 숨기고, 그냥 조용히, 너무 잘 하지도. 그렇다고 못 하지도 않는 정도의 성적만을 갖고 졸업할 예정이었다.

지금의 찬혁을 알기 전까지는.

한 달 전.

예은은 입학시험장에서 눈앞에 있는 소년을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렸다.

***

사람에게는 특유의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친절할 것 같은 사람, 거칠 것 같은 사람. 음흉해 보이는 사람, 솔직해 보이는 사람. 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외모일 수도 있고, 행동거지일 수도 있다.

물론 그게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 있어서 전부가 될 수는 없지만, 저 옛날에는 관상학이라는 학문 또한 있지 않았는가. 쌓아 올린 데이터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 법이다.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는 것에는 도가 튼 희연이기에 그 정확도는 더욱 높았다.

'다들 범생이 아니면 괴짜뿐이야…….'

그것이 시험이 시작하기 전, 앞으로 같이 수업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보며 예은이 한 생각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학교였으니까.

그 와중에 굉장히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콰앙!

"하아, 하아, 늦을 뻔했네, 망할 아저씨 같으니. 태워다준다고 했으면서 자기가 늦잠을 자면 어쩌라고……!"

대체 어디서부터 달려온 건지 온몸으로 숨을 헐떡거리며 갑자기 등장한 인물. 그게 바로 류찬혁이었다.

'되게 날라리 같다.'

예은이 찬혁을 보았을 때의 첫인상은 그것이 전부였다.

바람에 휘날린 더벅머리. 옷을 정돈할 때마다 나오는 묘하게 건들건들한 태도.

그 자리에 모인 사람 중에선 굉장히 이질적인 분위기를 가진 아이였다.

'동물로 치면 들개 같은 느낌?'

머릿속으로 그런 이미지를 대입해 보던 예은이 쿡쿡 웃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크게 볼 것이 없었다.

요리실력은 예은의 눈으로 보아도 단순히 나쁘지 않은 수준에 불과했고, 딱히 대화를 나눌 기회도 없었으니까.

그런 예은의 인식이 변한 건 시험 후 단체면접을 가졌을 때였다.

날라리 기질에 들개 같은 이미지가 어울리던 찬혁은 생각보다 훨씬 예의 바르게 면접을 진행했고, 열정적인 목소리로 자신의 꿈에 대해 어필했다. 예은과는 전혀 다른, 희망이 담긴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

그냥 들개에서, 목줄이 걸려있는 훈련을 잘 받은 들개. 예은의 생각은 그렇게 바뀌었다.

만약에 개를 키운다면, 이런 타입이 좋을지도 모른다고 문득 생각했다.

***

'그랬던 애가 이렇게 변했단 말이지…….'

예은이 보는 지금의 찬혁은 그때의 찬혁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품행에서 묻어 나오던 건들건들함은 사라지고, 무언가 볼 장을 다 본 사람 같은 심드렁함이 온몸에 가득했다. 꼭 어머니가 운영하는 정식당의 주방장인 강 아저씨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솜씨도 비교도 못 할 만큼 올라갔어.'

그녀가 가진 재능과 그녀의 어머니가 하사한 가르침은, 단편적인 손놀림 하나에서 그 사람의 실력을 꿰뚫어 볼 수 있게 해주었다.

후천적인 학습으로 생겨난 일종의 통찰력.

그런 그녀의 눈으로 요 일주일 동안 봐온 찬혁의 솜씨는 도저히 한 달 전의 찬혁과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의 찬혁이 어중간한 식당에서 접시닦이나 하며 막 일을 배워나가는 사람 같았다면, 지금의 찬혁은 호텔에서 십몇 년은 닳고 닳은 쿡 같다고 할까.

면접에서 듣기로는 반년 전부터 평범한 동네 식당에서 처음 요리를 배웠다고 했지만, 고작 한 달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혹시, 나랑 동류인 건 아닐까?'

수수께끼가 많았지만, 그렇기에 찬혁은 예은의 호기심을 굉장히 자극하는 사람이었다.

딴판으로 달라진 분위기 속에, 옅게 배어 있는 입학시험 때의 인상이 겹친다.

'그때가 들개라면…….'

지금은 성숙해져 무리를 독립한 늑대의 이미지.

일취월장한 실력과, 이유모를 여유가 겸비된 결코 누군가를 따르지 않을 것 같은 고고함.

하지만─

'─늑대나 개나 어차피 같은 개과잖아?'

언젠가 그녀의 어머니가 그런 말을 했더랬다.

요리사라면 잘 드는 칼에 대한 소유욕을 갖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소중히 여기던 칼을 관리하며 했던 그 말은 아마 일종의 비유였을 것이다.

그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어딘지 모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뭔가 쿡쿡 내 뒤통수를 찌르는 것만 같은 기분에 난 주변을 둘러봤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지만, 딱히 이쪽을 보는 것 같은 사람은 없었다.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이며 다시 고개를 돌린다.

'요즘 몸이 허한가…….'

종종 귀가 간지럽다거나, 시선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일이 잦다.

'귀신이라도 있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사람도 있는데 귀신도 없으란 보장은 없겠지,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속으로 중얼대던 그때, 실습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등장한 박예휘 선생님의 모습에 웅성거리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이윽고 교사용 조리대 앞에 선 선생님이 입을 연다.

"어서오세요, 여러분.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양식 수업을 맡게 된 박예휘입니다. 담임으로서만이 아니라, 양식 교사로서도 앞으로 잘 부탁해요."

둘도 없이 상냥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선생님.

하지만 나는 안다. 저건 말하자면 이른바 식충식물의 향기 같은 것.

예전에 선배들은 말했다.

사탄의 아가리. 마귀의 입. 저 선생님한테 멘탈이 갈가리 찢겨나간 학생이 몇 명인지 셀 수조차 없다는 성심고 입딜1위.

그 입이, 대회반 지원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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