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대회반 입부.-1-
"하아아…… 피곤해 돌아가시겠네."
성심조리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벌써 일주일 가까이 된 금요일 아침.
나는 피곤에 절어 뻐근해진 뒷목을 주무르며 오늘도 짧은 등굣길을 걷는 중이었다.
"너도 독하다. 나는 조리이론이랑 레시피 정리하는 것도 힘들던데, 넌 어떻게 교과목까지 밤새서 공부할 생각을 하냐?"
옆에서 같이 걷던 김철정이 지긋지긋하다는 눈초리를 보내온다.
"그래도 이번 주 수업은 편했잖아."
"그게 문제야. 이번 주 수업은 나름 편했는데도 이 정도면 나중에는 대체 어쩌려고……."
"그러게 말이다……."
최태호 선생님처럼 특이한 수업은 화요일 하루가 끝이었다.
그 외의 실습은 대부분 평범한 것들이었다. 한식의 색 배분하는 법, 일식의 생선 감별 및 기본적 손질법 등등. 오늘 있을 양식은 재료 써는 법을 배울 거라던가. 대부분 학생들의 기초 수준을 알아보기 위한 수업들이었다.
"특이한 건 최태호 선생님 하나뿐이었네."
"글쎄……."
얘가 아직 이 학교 물이 덜 들어서 그렇다. 2학기만 되어봐라. 이 학교 실습 교사라는 양반들 대부분이 어딘가 또라이 기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솔직히 셰프 직함 단 사람 중에 마냥 착한 사람은 없는 것 같긴 하지만…….'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그랬다.
이상한 괴성을 흘리는 김철정을 보고 실실 웃으며 학교 현관에 다다를 쯤, 낯익은 모습을 발견했다.
"양희연이랑 나현주네."
"어."
신발장 앞에 함께 모여 있는 크고 작은 두 사람.
쟤네는 서로 다른 점이 많아서 같이 있을수록 찾기가 쉽다.
저쪽에서도 우리를 발견했는지 작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는 나현주.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양희연.
나도 손을 어깨높이로 흔들어 보이며 답했지만, 받아주는 건 나현주 뿐. 양희연은 휙 고개를 돌리고 들어간다.
그 모습을 본 김철정이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찔렀다.
"뭐냐. 너 쟤랑 싸웠냐?"
"아니."
"그럼 왜 저래?"
"몰라."
오히려 내가 왜 그러는지 알고 싶다.
중식 수업 이후로 매번 같은 조에서 수업한 사이지 않은가.
'다른 애들이 나랑 짜려고 안 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조가 된 거긴 하지만…….'
아무튼. 주방에서도 직원들끼리 일주일씩이나 서로 서먹하게 굴면 능률도 오르질 않는단 말이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숨을 길게 내쉬고는 흐느적흐느적 흔들던 손을 내린다.
"됐다. 들어가자."
모처럼 일찍 온 거. 홈룸 시작 전에 잠깐 눈 좀 붙이려니까.
***
"오늘 홈룸 시간은 동아리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올 것이 왔다.
박예휘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내가 한 생각이었다.
선생님은 들고 있던 프린트 한 뭉텅이를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모두가 한 장씩 잘 받은 것을 확인하고는 교탁 앞에 서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보면 알겠지만, 여러분이 지금 받은 건 동아리 가입 신청서에요. 동아리 목록은 뒷장에 적혀 있으니 다들 확인해보세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종이를 뒤집는 소리가 교실을 메운다.
나는 굳이 종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들어갈 곳은 이미 정해놨으니까.'
몇 분 뒤. 슬슬 목록의 확인이 끝났으리라 생각한 것일까. 선생님이 말을 잇는다.
"다들 잘 봤죠? 동아리 가입 신청을 받는 기간은 다음 주 이 시간까지예요. 기한이 지난 다음 신청을 해도 들어갈 수 없으니까 모두 그 점 잘 유의합시다. 다만."
생글생글 웃어 보이던 선생님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퍼렇게 갈린 칼날처럼 싸늘해진다.
"대회반 동아리는 예외입니다. 대회반에 지원하고 싶은 학생은 지금 손을 들도록 해요."
나왔다. 대회반. 여기가 바로 내가 들어가고 싶은 동아리였다.
지체없이 한 손을 번쩍 들었다.
박예휘 선생님의 눈이 학생들을 한 차례 훑는다.
"하나, 둘, 셋…… 지원자는 총 여덟 명. 생각보다 많네요."
마치 시장터에 널린 식재료를 감별하는 것 같은 매서운 눈초리. 오싹한 기운이 등골을 훑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 성심조리고등학교의 대회반의 정원은 학년 당 다섯 명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요?"
"……."
"올해의 신입생은 총원 364명. 364명 중에 오직 다섯 명만 대회반에 들어갈 권리가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364명 중 5명. 약 73:1 정도의 경쟁률.
물론 모든 학생이 대회반에 들어가길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한 비율로만 보았을 때는 가혹할 정도.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어.'
왜냐하면, 성심조리고등학교의 대회반은 소속되어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업계의 셀럽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서울시 배 전국 청소년 요리경연대회 개인전 12년 연속 대상. 단체전 8년 연속 대상.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하는 U─20 국제 요리경연대회 우승자 국내 최다 배출.
마지막으로, 나이제한이 없는 세계조리사연맹 배 국제 요리경연대회 최연소 우승자 배출.
'최연소 우승 기록은 안창민이 2학년 때 깨 버렸지만.'
아무튼,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수상기록들을 보유한 성심조리고등학교 대회반.
그 그룹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일종의 인증마크를 받은 셈이 되는 것이다.
"다른 반에서도 평균 다섯에서 여섯 명 정도는 지원하겠죠. 하지만 방금 말했다시피 대회반의 학년 당 정원은 다섯입니다. 그럼 어떻게 사람을 골라낼까요?"
"……."
아무도 대답이 없자, 선생님이 다시 말을 잇는다.
"간단합니다. 경쟁을 붙이는 거예요. 군계일학. 낭중지추라 했습니다. 결국 뛰어난 사람은 어떻게든 빛을 보기 마련이죠."
"……."
"반대로, 학 옆의 닭이 될지, 구멍 뚫린 주머니가 될지는 여러분에게 달렸지만요."
아까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웃음을 지어 보인 선생님이 말을 마무리 짓는다.
"방금 손을 들었던 학생들은 지금 바로 신청서를 작성해서 내세요."
그 말을 듣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신청서 위로 펜이 달리기 시작했다.
***
"어떨 것 같아?"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반찬을 담고 있던 내게 김철정이 말을 걸어왔다.
"뭐가?"
"뭐긴 뭐야. 대회반 신청한 거 말이야."
입 좀 다물어라. 반찬통에 침 튈라.
혹시 몰라 식판을 내 몸으로 가리며 철정에게 대답한다.
"글쎄다. 들어가 본 적이 있어야 알지."
사실 들어갔었다. 2학기 때긴 했지만.
"대회반 엄청 빡세다던데. 안 그래도 맨날 밤늦게 자면서 괜찮겠냐?"
말은 걱정하듯 해도 헤실헤실 웃는 것이 사람 약 올리려고 작정한 표정이다.
"아무렴 죽기야 하겠어?"
"너 하는 거 보면 죽을 것 같아서 그런다, 짜샤."
대충 빈자리를 찾아 앉은 우리.
학교 다닌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서로밖에 없다는 것에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한계가 여실히 보였다.
"근데 대회반은 왜 지원한 거야? 이름값이 필요한 거면 꼭 지금 안 해도 되잖아."
과연, 김철정은 아까부터 그게 신경쓰였나보다.
확실히 그냥 대회반에 소속됐다는 명함이 갖고 싶은 거였다면 2, 3학년 때 신청해서 들어가면 충분하긴 하지만, 그건 굉장히 시야를 좁게 보고 있는 것이다.
대회반이 되었을 때의 이점은 이름값에서만 오는 게 아니니까.
"그야 대회반에 들어갔을 때 학교 지원이 나오니까 그렇지."
"엉? 그런 게 있었어?"
"팜플렛이나 인터넷만 좀 뒤져도 나오는 거야."
대회반 동아리는 학교에서 가장 이름이 드높은 곳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학교에서 가장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 하는 동아리이기도 하다. 만약 대회에서 꼴사납게 탈락이라도 하면 학교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되는 셈이니까.
그래서 학교에서는 대회반 인원들에게 상당한 양의 편의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기숙사비 무료화라거나, 장학금이라거나. 자율 재료 신청 권한이라거나…….'
돈, 돈, 돈.
언제나 돈이 문제인 이 세상에서 완벽한 답안 또한 돈인 법.
김철정 이 녀석은 금수저에 가까운 녀석이라 그런 거에 큰 고민이 없긴 하겠지만, 나에게는 당장 나의 저금이 걸린 일이기에 허투루 넘어갈 수 없다.
'당장 기숙사에서 연습할 때 쓸 재료값만 줄여도 국밥을 삼시 세끼 들이킬 수 있겠다.'
그런 내 고뇌를 아는지 모르는지 김철정 이 녀석은 허겁지겁 식판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이럴 거면 왜 물어본 건지…….'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그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손이 근질근질 했다.
마음 같아선 저 뒤통수를 살포시 눌러 식판과 얼굴이 더욱 친해지게 만들고 싶었지만, 그쪽을 더 꾹 눌러 참아낸다.
'…… 밥이나 먹자.'
결국 방황 하던 손이 수저로 발길을 돌렸다.
몇 숟가락 뜨니, 우습게도 철정이 녀석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과연 점심을 거르는 학생의 퍼센티지를 매년 소수점 단위로 유지하는 업체다운 맛이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식사에만 집중을 하고 있을 때, 시야 구석에서 식판 하나가 들이밀어 지는 것이 보였다.
'뭐야?'
식당에 빈자리가 얼마나 많은데, 뭐하러 이렇게 옆에 딱 붙어 앉는 건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내게 인사를 건넨다.
"안뇽!"
언제나 꾸밈없는 밝은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질 않는 여자. 백예은이었다.
***
"백예은?"
"우엥? 내 이름 알고 있었구나? 나도 네 이름 알아! 류찬혁!"
그야 알고 있지. 한창 전성기 때엔 모르면 간첩이란 소리를 듣던 유명인인데.
난 오히려 얘가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게 놀라웠다.
'근데 얜 왜 왔어?'
의아한 눈길로 백예은을 쳐다보지만, 그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아랑곳없이 옆자리에 앉았다.
'먹성은 여전하네.'
나와 김철정이 퍼온 것을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의 급식이 담긴 식판의 모습에 과연 대단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먹고 다니는데 살이 안 찌는 걸까.
"잘 먹겠습니다!"
혼잣말로 그렇게 말하고 저 작은 입으로 와구와구 잘도 밥을 퍼 나른다.
갑자기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니, 철정이 녀석이 마치 눈으로 내게 "얜 뭐냐."라고 묻는 것 같았다.
묻지 마라. 나도 모르겠으니까.
순식간에 사라져가는 식판 위 음식들.
김철정은 그게 굉장히 신기했는지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으로 먹는 것도 까먹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 많던 양을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평정해 버린 백예은이 교복 안주머니에서 꺼낸 티슈로 입을 닦으며 말한다.
"잘 먹었습니다!"
그래, 딱 봐도 잘 먹은 것처럼 보인다.
그 모습을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제야 내 옆자리에 앉은 이유를 밝히려는 듯 백희연이 곧게 시선을 맞췄다. 다갈색 빛 눈동자가 꿰뚫을 듯 내 눈을 마주 본다.
"찬혁이 너도 이번에 대회반 지원하는 거지?"
"어? 어. 맞는데. 그게 왜?"
너'도'라고 말하는 걸 보면, 얘도 대회반에 지원했나보다.
'그러고 보니, 1학기 때 원래 대회반은 누구누구더라…….'
안창민은 확실했고, 그 외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으며 그게 뭐 어쨌냐는 눈으로 웃는 낯을 바라보자 더 활짝 웃음을 지어 보이며 답한다.
"이번 학기에 같이 대회반 할 얘한테 눈도장 찍으러 온 거거든~. 앞으로 잘 부탁해!"
"……."
속으로 왜 그걸 네가 정하고 있느냐 묻고 싶었지만, 악수를 나누자는 듯 앞으로 내민 손을 마냥 무시하기도 뭣하여 힘을 빼고 살짝 맞잡으니, 힘차게 위아래로 손을 흔드는 녀석.
"그럼 밥 맛있게 먹어! 안뇽!"
그렇게 제 마음껏 내 팔을 휘두른 백예은은 식판을 챙겨 들고 휙 가버렸다.
자기 친구네와 합류하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김철정이 입을 연다.
"뭐냐 쟤."
나도 몰라.
식판에 담긴 밥은, 이미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