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쇠로 시작하여 불로 끝나는 것.-4-
"너……."
나를 보는 최태호 선생님의 눈이 매섭다. 시선으로 사람을 때릴 수 있으면 지금쯤 멱살 정도는 잡혔을 기세다.
'그렇게 못 할 짓을 한 건 아닌데.'
그런 내 생각에는 동의하지 못하는 것인지, 선생님이 풍기는 분위기가 싸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려놓았던 수저를 다시 들어 두 입 째 마파두부를 입으로 가져간다.
─우물우물…… 꿀꺽.
입에 넣자마자 바로 넘겨 버렸던 아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지긋이 시간을 들여 씹으며 맛을 음미하는 선생님.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서 입가만이 미세하게 일그러진다.
'웃는 건지 찡그리는 건지 모르겠네.'
얼굴 근육을 너무 안 써서 굳으셨나. 표정을 지어도 무슨 표정인지 알 수가 없으니 원.
그나마 아까보다는 나아진 얼굴이 된 선생님이 입을 연다.
"됐다. 갖고 들어가."
"예?"
무슨 평가라도 해주지 좀.
내심 지금의 나보다는 수준이 높을 것이 확실한 셰프의 의견을 듣고 싶었는데. 정작 최태호 선생님은 이미 볼일이 끝났다는 태도로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일 뿐이었다.
허망한 눈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그쪽에서 나를 왜 그러냐는 시선을 돌려준다.
"뭐냐?"
"……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 원래 저런 사람인걸 뭐 어쩌겠어. 두 입씩이나 드셔주신 걸 감사히 생각하자. 그렇게 자기 위로를 하며 접시를 들고 내 자리로 돌아간다.
"뭐래?"
"그냥, 아무 말도."
"하긴 그래 보이더라."
그나마 조원 셋 중 날 반갑게 맞아주는 건 김철정뿐이었다.
'하긴, 쟤네랑 딱히 친한 것도 아니긴 하지.'
인생을 통틀어서 그나마 친구 딱지 붙일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이 녀석 말고는 없었다. 애당초 사람 대하는 것이 서투른 내가 사흘 만에 누군가와 이만큼이나 친해진 게 신기하지만.
그만큼 김철정의 친화력이 좋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설거지나 해야겠다.'
괜히 생각할수록 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기분에 생각을 털어내고는 마파두부를 자리에 내려두고 싱크대로 향한다.
"오."
설거짓거리를 손에 쥐며 다음 차례는 누가 될지 보던 때, 마침 나 다음 차례로 나오는 이가 있었다.
'안창민.'
천재. 21세기 대장금. 스타 셰프. 외모를 낭비하는 남자.
그 외 기타 등등의 수식어를 가진 명실상부 성심조리고등학교 최고의 스타 중 한 명. 그가 조리대로 나서고 있었다.
"……."
"……."
'뭐라는 거야.'
거리가 멀어서 소리는 잘 들리지 않지만 과정은 아까와 똑같았다.
수저로 음식을 헤집고, 소스만 떠서 농도를 확인해 본 뒤에 한 입. 그러고는 수저를 놓고 노트를 펼쳐 든다.
'한 입으로도 충분한가 보네.'
그만큼 더 볼 것도 없이 맛있다는 뜻이겠지. 평가를 마친 안창민이 접시를 들고 자리를 돌아간다. …… 그런데,
"음?"
"……."
뭔가…… 이쪽을 보는 느낌이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눈이 마주쳤다. 지금.
"……."
뭔가 싶어서 계속 그쪽에 시선을 던지니 이내 저쪽에서 먼저 등을 돌려 버린다.
'뭐야?'
표정이 좀 아니꼬웠는데.
안창민에 등에 눈을 두고 손만을 바삐 움직이고 있는데, 딸그랑 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김철정도 만든 마파두부를 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 빨라."
"너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까 되게 사람 놀리는 것 같다."
"놀리는 거 맞는데?"
"이놈이."
서로 농담 따먹기로 헛웃음을 한 번 터트리며 세 번째 순위로 음식을 내가는 김철정.
저 녀석은 저래 보여도 3대째 내려오는 전통 있는 중식당의 외동아들. 평범한 수업을 받은 녀석이 아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최태호 선생님의 표정이 그것을 증명한다.
'거봐.'
다시 돌아오는 김철중의 표정이 환하다.
"뭐라셔?"
"잘 했다던데."
저 선생님 기준으로 그 정도면 최고의 칭찬이었다.
'내 마파두부는 별로였나…….'
어떠면 어떻다 말을 안 하니 알 수가 있어야지.
차례차례 완성되어 나오는 음식을 평가하는 최태호 셰프의 의미심장한 표정에 담긴 뜻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
잠시 후, 모든 학생의 평가를 마치고 수업을 마무리 할 시간.
자신이 만든 마파두부를 앞에 두고 최태호의 말만을 기다리던 학생들에게 돌아온 것은 고작 몇 마디 짧은 말이 전부였다.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치겠다."
그러고는 고생했다거나, 수고가 많았다거나 하는 흔한 인사말조차 없이 자신의 짐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한숨이 나올 정도의 무성의함이었지만, 학생들이 놓치기 쉬운 부족한 부분들을 정확히 지적하며 고쳐야 할 점을 단편적이나마 지도해 주는 모습은 더할 나위 없는 교사의 모범이었다.
'이상한 선생님이네.'
'근데 생각보다 되게 괜찮아.'
그야말로 학생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행동거지. 그러나 첫인상과는 반대로 학생들이 내린 첫 수업의 평가는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듯했다.
이내 짐 정리를 끝낸 최태호가 그대로 가방을 챙겨 실습실을 나섰다.
문을 나가기 전, 한마디 말을 남기고서.
"류찬혁 조. 오늘 청소 당번은 너희다. 다 끝내고 교무실로 검사받으러 와라."
대답도 듣지 않고 휙 사라지는 최태호.
그 잔상을 찬혁은 동태 눈깔처럼 썩어 버린 눈으로 허망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
교무실로 돌아온 최태호는 방금 수업에서 학생들의 평가를 기록해놓은 노트를 펼쳐 들었다.
노트에 빼곡하게 들어찬 글씨들은, 그가 얼마나 학생들을 진지하게 평가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한 장, 두 장 페이지를 넘긴다.
반의 평균보다 수준이 높거나, 혹은 너무 낮은 학생의 이름 옆에 그려진 별표들. 최태호는 그런 별표가 그려진 이름들을 보며 기억을 되새겼다.
'안창민. 말할 필요가 없군. 천재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요리를 먹고, 그 맛을 그대로 똑같이 재현해온다면 어떨까.
일반인은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요리사로서는 소름이 돋는 일이다.
재료의 손질법, 조리과정에 들어가는 시간. 넣는 조미료의 양 등등. 그 모든 것을 외운다면 언제든 균일한 맛이 나올 수는 있다. 하지만 고작 만드는 걸 한 번 보고, 한 입 먹어본 학생이 그가 만든 것을 똑같이 따라 만들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사실이지.'
교장이 입학시험 때부터 눈여겨봤다더니. 납득이 가는 솜씨다.
'김철정. 분명 김범규 선배님의 아들이라고 했던가.'
도공과 화공. 둘 다 중식을 제대로 배운 이가 가진 특징을 확실히 보여줬다. 어릴 때부터 받은 영재교육의 성과가 나타났다고 봐야 한다.
'양희연. 기본기가 좋다. 중식 말고 다른 요리법을 배웠겠지.'
재료를 썰었을 때의 모양새를 보기 좋게 유지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기초를 뗀 정도로 나오는 솜씨가 아니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티가 난다.
그렇게 하나하나 기록과 기억을 대조해가며 이름을 확인해나가던 최태호의 시선이 한곳에 머무른다.
"근데 이 녀석은……."
류찬혁. 입학시험 때도 크게 두각을 보인 학생은 아니었을 터인데, 최태호가 깜짝 놀랄 만큼의 한 방을 숨긴 요리를 만들어냈다. 맛도 맛이지만, 임팩트만을 따져보자면……
─드르륵.
"아, 최 선생님. 일찍 와계셨네요."
그때, 박예휘가 교무실의 문을 열고 등장했다.
인사를 건네며 옆자리에 앉는 박예휘에게 최태호는 작은 끄덕임으로 답한다.
'아, 그러고 보니.'
문득, 최태호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박 선생."
"예?"
최태호 쪽에서 먼저 말을 거는 것은 꽤나 드문 일이기에, 박예휘는 살짝 놀란 얼굴로 대답했다. 노트에 고정되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못하는 최태호의 모습에 박예휘의 눈에 의아함이 담긴다.
이윽고, 최태호가 노트를 덮고는 입을 열었다.
"당신네 1반, 제법 기대되는 녀석들이 많더군. 힘내보게."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
최태호의 머릿속에 좀처럼 정의를 내리기 힘들었던 학생에 대한 평가가 지금 막 떠올랐다.
"건방진 녀석이 있어. 그 녀석은 좀 까다로울 거야."
그의 입가에 좀처럼 보기 힘든 짙은 미소가 걸린다.
***
다른 아이들이 떠난 실습실.
나는 김철정을 비롯한 조원들의 눈치를 보며 말없이 바닥만 쓸고 있었다.
'으윽…….'
등으로 꽂히는 날카로운 시선에 몸을 필 수가 없었다.
'바늘방석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만.'
하긴, 다른 조원 탓에 청소를 떠맡은 신세가 된다면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자중 좀 할걸.'
선생님이 많고 많은 아이들 중 날 콕 찝은 이유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아마 내가 만든 마파두부 때문일 테지.
사실 그 마파두부, 만드는 과정이 한 가지 더 들어갔으니까.
고추기름에 향신채를 넣어 기름을 내기 전에, 고춧가루를 넣어 한 번 더 끓이는 과정이.
아마 상당히 매웠겠지. 뇌리에 쨍하게 박힐만한 마파두부를 만들고 싶었지만, 더 맛있는 걸 주어진 재료만 갖고 만들 자신이 없어 내 나름 레시피를 어레인지 해본 것이었는데, 괜히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 입맛에는 맛있었는데.'
─탕. 탕.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쓰레받기를 털어내고 있자니, 마찬가지로 쓰레받기를 비우러 온 양희연이 내 옆에 섰다.
얘한테도 미안하게 됐다. 원래는 진즉 돌아가서 남은 수업시간 동안 좀 쉬기라도 했을 텐데.
그냥 아무 말도 없이 넘어갈 수는 없어서 사과를 건넨다.
"저기, 있잖아."
"?"
"괜히 나 때문에 고생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그 말에 잠시 나를 바라보던 희연은, 대답도 없이 고개를 돌려 가져온 쓰레받기를 쓰레기통에 털기 시작했다.
'대답하기도 싫다 이건가.'
그렇다고 내가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할 말이 없어 가만히 바라만 보다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어제, 기숙사 주방."
"…… 응?"
갑자기 들려온 소곤대는 수준의 작은 목소리에, 머리가 번쩍 올라간다.
시선을 올리자, 양희연이 쓰레기통을 내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 뒤에 가봤는데, 내가 어지럽힌 거, 정리돼 있었어. 네가 치운 거야?"
여전히 묘하게 음치가 부르는 노래를 듣는 것 같은 특이한 억양이었지만,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양희연이 말을 잇는다.
"그럼 이건, 쌤쌤이네."
쌤쌤……? 무슨 뜻이지? 대충 서로 비겼다는 말로 해석하면 되나?
이 상황을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고마운 이야기지만, 그건 그거고 아까부터 계속 말을 저는 이유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넘어가는 것도 정도껏이지 계속 이러니까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있나.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 저기, 아까부터 궁금했던 건데."
"?"
"왜 계속 말을 그렇게 하는 거야?"
그 말을 듣자마자 희연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지더니, 대답도 없이 등을 휙 돌려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뭐야, 뭐 하면 안 될 말이었나.
"…… 하아……."
한 때 불혹을 넘나들던 사나이 류찬혁.
아재가 현역 여고생의 감수성을 파악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임을 새삼 깨달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