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8화 (8/403)

8. 쇠로 시작하여 불로 끝나는 것.-3-

백예은.

2027년도에 첫 방송을 시작. 그 후 단 3년 만에 엄청난 급성장을 이루어 엄청난 유명세를 얻은 인물이다.

나와 동갑임에도 얼굴만 보면 띠동갑으로 착각할 정도의 동안을 자랑하는 미모. 그리고 본인 스스로가 가진 밝은 에너지에서 나오는 텐션이 장점이었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었지.'

졸업 후 3년 정도 유명 한식당 주방에서 일하다 퇴사한 뒤에 방송을 시작했다던데, 고작 3년차 답지 않은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와 요리실력, 물꼬가 트이면 10분을 내리 웃게 만드는 입담. 그리고─

'식성.'

그렇다. 백예은이라는 인물은 그야말로 먹기 위해 인생을 사는 사람이었다. 먹기 위해서 요리를 배우고, 먹기 위해서 헬스를 다니는 노력이 얼마나 가상한지.

특히 주요 컨텐츠 중 하나였던 자기가 만들어 자기가 먹방하기 시리즈.

그중에서도 전설 아닌 레전드로 꼽히는 수라상 만들어 혼자 먹기 편은 조회수가 수천만에 달했다.

그야말로 왕에게 대접할법한 수라상을 과거에서 끄집어내온 것처럼 차리는 솜씨와, 그걸 혼자 먹어치우는 기괴할 정도의 먹성.

자신도 그녀의 구독자이긴 했지만, 솔직히 그 영상을 처음 봤을 때에는 이 여자가 미친 게 아닌가 싶었더랬다.

'성장세가 너무 가팔라서 스캔들이 있긴 했지만…….'

아무튼, 그런 백예은의 끼는 여기서도 여전한 듯 보였다.

'덤으로 식욕도 말이지.'

저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라. 최태호 선생님이 안 된다고 말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궁금할 정도다.

하긴, 쟤가 예전에 내가 일하던 호텔에서 팬미팅을 한다며 왔을 때도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탁.

"자, 여기."

"오, 고마워."

잡생각을 하고 있자니 맨 앞줄에 있던 조부터 순서대로 돌아온 마파두부가 어느새 우리한테까지 전달됐다.

각 조마다 자기들 그릇에 조금씩 퍼가서 모양이 처음보다 많이 망가져 있기는 했지만, 과연, 겉모습만으로도 놀라웠다.

"와, 이거 엄청나네."

"그러게."

"……."

어디 하나 탄 곳 없이 매콤한 향을 내뿜는 새빨간 빛깔의 라유.

잡내라고는 티끌만큼도 느껴지지 않게끔 잘 볶아진 돼지고기.

그리고 손을 대면 베일 듯 조교가 접은 모포처럼 완벽한 각을 유지 중인 두부까지.

'아니 씹. 마지막은 좀 그렇다.'

또 PTSD가 재발했다. 아, 한 번 더 가야 되네. 시부랄 진짜…….

아무튼, 벌써 기대되는 마음을 꾹 누르고 조심스레 각각 한 입 먹을 수 있는 분량만을 퍼서 담은 뒤, 다음 조에게 접시를 넘겼다.

"일단 시식이나 해보자."

각각의 개인 접시로 치우치지 않게 마파두부를 서로 나누고, 혹시라도 더 식을세라 한입에 털어 넣는다.

"!"

가장 먼저 입을 강타하는 것은 산초와 라유의 매운맛!

중국에서는 흔히 매운맛을 표현할 때 마痲와 랄辣이라는 표현을 쓴다.

마는 저린 맛. 입이 마비되는 것 같은 얼얼한 맛.

랄은 아픈 맛. 마치 입안을 벌이 쏘는 것 같은 화끈한 맛.

이 둘을 합쳐 마라痲辣라고 칭한다. 그렇다.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끈 마라 요리의 마라가 바로 이것이다.

절묘하게 조합된 산초의 저린 맛과 라유의 쏘는 맛은 그야말로 황금비율.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그런 심리적인 가드 아래를 뚫고 들어오는 어퍼컷 그 자체다.

─우물우물……

그 어퍼컷을 어떻게든 견뎌내고 턱을 움직이면, 이번에는 담백하고도 고소한 돼지기름을 머금은 두부의 맛이 혀에 감긴 매운맛을 중화시킨다.

꼭 "엉? 고작 그게 다냐?"라고 날 조롱하며 가드 위를 두드리는 잽 같기도 하고, 괜히 얻어맞아 눈물이 찔끔 난 내 등을 도닥이는 어머니의 손길 같기도 하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그 기만에 속아 마음을 놓게 된다면─

─꿀꺽.

"읍!?"

─무방비한 식도를 불덩어리가 쑤시게 될 테니까.

녹말물로 걸쭉한 점성을 갖게 된 소스가 마치 손이라도 달린 것 마냥 내 식도를 붙잡고 내려간다. 그 손자국이 닿은 곳마다 매운맛을 남기면서.

입부터 위장까지 아주 불꽃 길을 깔아 버리는 것 같은 맛. 하지만 내 앞에 이 마파두부가 더 있었더라면 숟가락을 멈출 수 없었겠지.

고작 한입. 딱 한입에 불과한 마파두부였음에도 조리모를 쓴 이마와 꽉 조여진 목깃 속에 땀이 맺히는 것이 느껴졌다. 과연 최태호 셰프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맛이었다.

'이게 자격증 시험 레시피로 나올 맛이냐…….'

심지어 이 마파두부 레시피는 자격증 시험에 쓰는 레시피다.

중식의 치트키 소리를 듣는 XO장이나 특별 비법 같은 건 단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그런 플레인 요거트나 다름없는 레시피로 이런 맛을 뽑아낼 수 있을 줄이야.

경험에서 나오는 조미료의 배합 비율과 양. 심지어 저 선생님은 요리를 만들면서 간조차 안 봤다. 무엇을 얼마나 넣으면 어떤 맛이 나오는지 이미 외우고 있다는 뜻이다.

"대단하네."

더 할 말이 없었다. 주어진 환경에서 뽑아낼 수 있는 완벽한 접시였다.

다만……

'이런 걸 애들보고 그냥 만들라고?'

저 선생님은 진짜 너무한다 싶었다.

이 학교 보건 선생님조차 똑바로 기억 못 하던 내가 최태호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 아주 간단한 이유다. 컨셉충이니까.

장신. 매서운 인상. 근육질. 과묵함. 거기에 특기는 중식.

뭔가 겹치는 게 있지 않은가?

저 아저씨. 20대 때 봤던 요리만화를 보고 중식에 빠져서 원래 전공을 때려치우고 중식 셰프가 된 사람이다.

자기가 꽂힌 만화책 등장인물처럼 되고 싶다고 헬스까지 시작했고, 끝끝내 정말로 닮은꼴이 되어 버렸다나.

'지금 와선 헬스가 좋아져서 다닌다고 하지만…….'

뇌피셜이 아니라 저 선생님 가게에서 요리를 배운 수제자 중 한 명이었던 옛 호텔 선배가 알려준 사실이다.

처음 알았을 때는 얼마나 황당했는지. 첫 수업부터 저렇게 무게 꽉 잡고 들어오는 게 다 컨셉질 때문이란다. 황당하다 못해 실소가 터지지 않는 게 이상하다.

'그래도 실력은 확실하니까 좋다 치자. 그나마 아이라인은 안 그리고 다니는 게 어디야.'

가르치는 요령도 좋고, 학생들의 수준을 일일이 신경 써주는 선생님은 별로 없다. 알아서 따라와라 주의인 이 학교의 조리교사들 중에서도 꽤 이질적인 분이지만, 그래도 이런 괴짜 같은 점 하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선생님이다.

"씁,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어쩌겠는가. 까라면 까야지.

요리사가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주문받았을 때 거절할 수 있는 경우는 딱 두 가지뿐이다. 재료가 없거나, 아니면 인명이 걸린 사고가 터졌거나.

그 외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만들어서 나가야 한다. 이것도 똑같다. 만들면 될 뿐이다.

"야, 김철정."

"어, 어?"

아직도 음식 맛에 넋이 나가 있는 철정이 놈의 어깨를 툭툭 친다.

"가자. 재료 챙기러 가야지."

"어. 오키."

그제야 접시를 내려놓고 허둥지둥 움직이는 녀석. 나는 남은 둘에게도 이어 말했다.

"양희연, 나현주. 우리가 너희들 몫까지 재료 챙겨올 테니까 너네는 여기 설거지 좀 부탁한다."

"알겠어."

"……."

아까처럼 단답과 고갯짓으로 대답하는 두 사람.

슬슬 이놈들을 단답녀와 벙어리녀로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고민이 살짝 머리를 스쳤다.

…… 아무렴 어떻겠어. 아예 무시하는 것보단 낫지.

김철정을 대동한 나는 조리대 위에 올라간 재료들을 챙겨 돌아왔다.

양희연과 나현주도 그새 설거지를 끝낸 뒤였다. 이 정도면 손이 꽤 빠르다.

"자, 받아."

"고맙ㄷ…… 워."

양희연에게 재료가 담긴 접시를 건네주자, 이번에는 제대로 감사 인사가 돌아온다.

'근데 저번부터 말은 왜 자꾸 저는 거야?'

생긴 건 멀쩡히 생긴 애가 계속 이러니 신경이 쓰였지만, 이내 생각을 거뒀다. 굳이 남 사정을 파헤칠 필요는 없다. 그래 봤자 귀찮은 일만 늘어나니까.

'자, 그럼.'

준비는 갖춰졌다.

파, 마늘, 생각, 고추, 돼지고기, 두반장, 산초, 두부. 그 외 기타 등등.

조리를 시작할 시간이다.

***

'물이 흐르듯 하다.'라는 말이 있다.

마치 물이 흐르는 모양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인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 양희연의 눈에는 류찬혁의 움직임이 그야말로 물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와…….'

저번에 기숙사 주방에서 처음 보았을 때도 생각했던 것이지만, 찬혁의 요리를 보고 있노라면 꼭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했다.

과장을 해서 움직인다는 뜻이 아니다.

숙련된 연기자가 선보이는 연극처럼, 모든 것이 잘 짜여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냄비에 물을 받으며 재료를 나누고, 화구에 냄비를 올린 뒤 나눈 재료들을 세척한다.

마늘, 생강, 파, 고추, 돼지고기, 두부. 칼을 쓰는 재료들의 손질이 끝나기 무섭게 물이 끓어오르자, 이미 시간을 예상했다는 듯 준비하고 있던 두부를 단번에 넣어 데친다.

단 한 차례의 주저함도 없이, 주방이라는 무대 속에서 재료라는 연기자와 힘을 합쳐 조리대라는 이름의 단상 위를 수놓는 움직임.

방금 최태호 선생님이 보여준 호쾌함은 없지만, 잔잔하게 샘솟는 계곡물처럼 보기에 즐거운 광경이었다.

'벌써?'

하지만 그 속도는 평범한 계곡물 수준이 아니었다.

찬혁은 순식간에 웍을 흔들어 조리를 마친 마파두부를 접시에 담아내는 중이었으니까.

내용물을 쏟아낸 웍 안에 사용한 접시들을 쏟아 넣은 찬혁이 별것 없다는 듯 담담한 태도로 말한다.

"나 제출하러 간다."

"뭐야 너. 벌써 끝났어?"

자기 요리에 집중하고 있던 김철정의 고개가 번쩍 들린다. 적잖게 놀란 표정이다.

찬혁은 찬혁대로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벌써 손님상으로 나가야 정상이야. 오히려 좀 늦은 거지."

"지금 한 15분 지나지 않았냐? 아까 선생님이 한 것보다 빠른 것 같은데?"

"그거야 선생님이 일부러 느리게 만들었으니까 그렇지."

"아무튼 난 간다."라며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접시를 들고 떠나는 찬혁의 뒷모습.

철정과 희연. 그리고 아닌 척 곁눈질로 힐끔힐끔 보던 현주의 어이를 가출시키는 찬혁이었다.

***

"완성했습니다."

"음."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접시를 놓자 최태호 선생님의 눈에 이채가 서린다.

출입구 위에 걸린 시계로 향하는 눈. 등받이에 기대 꼬았던 다리를 풀고는 똑바로 자세를 잡는다.

"시간은 그럭저럭."

"그렇죠? 업장 같았으면 지금쯤 늦게 나온다고 국자가 날아왔을 텐데."

선생님의 말에 너스레를 떨고 실실 웃다가, 아차 싶었다. 언제 봤다고 선생님한테 까불고 있는 거냐. 혹시라도 호통이 날아들까 바짝 긴장하며 고개를 든다.

하지만 선생님의 표정은 내 예상과 달랐다.

"그랬겠지."

살짝 웃음기 어린 표정으로 수저를 드는 선생님.

'뭐지, 원래 까부는 애들 싫어하시는데.'

하지만 선생님은 그저 숟가락으로 마파두부를 몇 번 헤집어보고만 있었다.

모처럼 맛깔나게 플레이팅(접시를 꾸미는 것)한 음식을 헤집기 몇 차례. 굳게 다물려 있던 입이 열린다.

"모양은 합격. 농도도 훌륭해."

과연, 그런 걸 보고 있던 건가.

따로 평가에는 안 들어갈 거라더니, 깐깐한 선생님이다.

"그럼 맛은 어떨까……."

이번에는 들쑤신 마파두부를 한 숟갈 크게 퍼 올려 입으로 가져간다. 그러자─

"!!"

번쩍 부릅떠지는 최태호 선생님의 두 눈!

그 모습을 보는 내 입가의 미소가 진해졌다. '성공이다.' 그런 짧은 감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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