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쇠로 시작하여 불로 끝나는 것.-2-
마파두부麻婆豆腐.
얼굴에 곰보가 핀 할머니麻婆가 만든 두부요리豆腐라고 하여 지어진 이름.
한국 사람에게도 친숙한 이 요리는 중국의 쓰촨성四川省. 사천이란 곳에서 태어났다.
중국식 고추기름인 라유辣油의 시뻘건 붉은색이 둥둥 뜬 모습 그대로, 한입만 먹어도 입이 얼얼해지는 맛이 일품인 요리이다.
'그게 바로 사천요리의 진가지.'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마파두부가 실력을 알아보기에 가장 알맞은 요리라는 것일까?
만화에도 자주 나올 만큼 사람들에게 대중적으로 알려진 요리라서?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좀 더 근본적인 부분을 볼 필요성이 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의 기초적인 조리법을 알아봐야 한다.
차오炒, 바오爆, 탕湯, 촨川, 후이会.
풀어쓰면. 볶고, 데치고, 끓이고, 졸이고, 전분으로 점성을 맞춘다는 뜻이다.
그 외에도 다지기, 편 썰기, 깍둑썰기 등등. 도공刀工의 기초에 속하는 기술들까지.
이런 기술들을 전부 하나로 녹여내야만 제대로 된 일품을 만들 수 있는 요리. 그것이 바로 이 마파두부다.
내가 다녀봤던 중식 주방 중에서는 처음 냄비를 잡을 때 신고식으로 마파두부를 만들어야 하는 전통을 가진 곳도 있었다.
괜히 중식 주방 전용 전투력 측정기 소리를 듣는 요리가 아닌 것이다.
'나도 몇 번 해봤지.'
과거를 회상하며 대충 이런 내용을 정리해서 말해 주니, 김철정이 놀랍다는 눈치로 반색한다. 양희연이나 나현주도 비슷한 모양새다.
"야, 너 잘 안다. 혹시 중식집 출신이야?"
"아니, 딱히."
정작 중식 가계 출신은 자기면서 잘도 말하는 녀석이다.
'이렇게 말하고 혹시 아니면 좀 뻘쭘할 것 같은데…….'
이 시절 선생님들의 대략적인 성격 정도는 기억나도, 수업 내용 같은 건 전혀 기억이 나질 않으니 대충 찍어본 것에 불과하다.
호언장담을 해놓고 만약 틀리면 굉장히 쪽팔릴 것이다.
"너무 믿지는 마. 확실하진 않으니까."
만약 틀렸을 경우에 대비한 밑밥을 깔아놓은 뒤, 화제를 돌려 조리도구나 챙기자며 조원을 닦달했다.
"기물들?"
"선생님이 미리 꺼내놓고 가셨잖아. 그거 보고 똑같이 가져오면 되지 뭐."
"아."
그렇게 말하자 김철중을 비롯한 조원들이 알겠다는 듯 움직였다.
우리가 먼저 뒤쪽 접시 선반에서 기물들을 챙겨오자, 여태껏 서로 떠들고 있던 다른 아이들도 그걸 보고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순식간에 북적이게 된 선반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빨리 가져오길 잘했지?"
세 명이 나를 보며 끄덕였다.
***
잠시 뒤, 재료를 챙기러 다녀오겠다던 최태호 선생님이 돌아왔다.
뒤로 함께 끌고 온 커다란 트레이에는, 파와 마늘, 생강, 고추, 돼지고기, 두반장, 산초. 그리고 커다란 두부가 여러 판.
"오."
딱 봐도 마파두부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
내 예상은 정답이었다. 그것을 본 조원 셋 또한 놀랐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그러는 동안 최태호 선생님은 가져온 재료를 조리대 위에 올려 정리를 마치고 학생들을 쭉 둘러봤다.
자리마다 준비된 접시들과 필기할 준비를 마치고 열렬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학생들.
그 모습을 보고, 굳게 다물려 있던 사각턱이 열린다.
"이번 신입생들은 첫 반부터 준비성이 좋구나."
나가기 전과 별다를 것 없는 말투였지만 나름 흡족해 보이는 목소리였다.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선생님이 도마 위에 올라가 있던 중식도를 손에 쥔다.
그러고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거침없이 재료를 고른다.
"주목. 지금부터 조리를 시작한다. 메뉴는 마파두부다."
'잘 봐두자.'
최태호 셰프는 중국 본토에서 개최된 북경 중화요리 경연대회에서 외국인 신분으로 대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정말 몇 안 되는 셰프 중 한 명이다.
그런 셰프가 손수 요리하는 것을 보며 배울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아마 이 자리에 모인 대부분의 학생이 모르고 있을 테지.
드디어, 최태호 선생님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중식은 쇠로 시작해서 불로 끝난다."
최태호가 순식간에 재료를 재단하고 세척을 마친 후 말했다.
그 뒤에는 재료의 손질을 시작한다.
마늘의 꼭지를 잘라내고, 생강의 껍질을 벗기고, 파를 세로로 가르고, 두부를 정확한 크기, 정확한 정육면체 모양으로 등분한다.
하나하나 자세한 설명을 빠트리지 않으면서도, 손에는 조금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마치 기계처럼 정확하게,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만.
마늘을 중식도의 널따란 옆면으로 내리쳐 으깨고, 잘게 다진다.
생강도 비슷한 크기로 맞추어 다지고, 파도 마찬가지로 처리.
고추는 어슷하게 썰어 이 전부를 서로 겹치지 않게끔 한 그릇으로 몰아둔다.
그 후, 행주로 도마와 칼을 닦아낸 뒤 돼지고기를 도마에 올린다.
돼지고기 덩어리를 대패 삼겹살처럼 얇게 저민 뒤, 본인의 칼 가방에서 또 다른 중식도를 챙긴 최태호가 쌍수로 중식도를 쥐었다.
꼭 북채를 양손으로 쥔 모양새였고,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타다다다다다당!
도마와 그 위에 얇게 썰린 돼지고기를 북 삼아 난타 공연이라도 하는 것처럼 양손에 든 중식도를 번갈아 내리친다.
언뜻 보면 거친 모양새지만, 실제로는 칼과 도마가 상하지 않으면서도 고기는 확실하게 잘릴 정도의 힘.
칼에 두드려지듯 다져지며 도마 위로 넓게 펼쳐지는 돼지고기를 중식도의 넓은 면을 주걱처럼 사용하여 반으로 접은 뒤, 수직 방향으로 다시 칼질을 거듭한다.
고작 수십 초도 안 되는 사이에 훌륭한 다진 고기가 된 (전)고깃덩어리를 다른 접시에 옮긴 뒤, 이어서 설거지를 마친 도마와 칼을 정리한 최태호가 학생들에게 말했다.
"여기까지가 쇠의 일. 즉 칼이 하는 일이다."
말만 들으면 "이렇게만 하면 된다. 참 쉽지?"라고 하는 것 같은 말투였으나, 그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써는 방법이나 조리 시의 주의점 등을 쉼 없이 설명하면서도 재료의 재단부터 마지막 손질까지 끝내는 데 걸린 시간이 채 10분이 안 되었다.
설명을 위해 일부러 속도를 늦춘 것임을 생각하면, 평소처럼 할 때엔 지금보다 시간이 반의반도 채 걸리지 않겠지. 찬혁도 놀랄만한 속도였다.
'와, 기계도 안 쓰고 수작업으로 저 속도가 나오네.'
찬혁은 연회주방의 수 셰프였고, 그 이전에도,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 호텔에 입사했을 때부터 연회주방을 떠난 적이 없는, 어느 의미 연회주방의 성골이었다.
'그게 좋다는 건 아니지만…….'
연회주방은 대부분의 직원이 기피하는 곳인 덕분에 그곳에 빈자리가 생겼을 때 지원하여 원래는 수준에 맞지 않던 호텔 주방에 입사할 수 있었던 찬혁이었지만, 사람이 무언가를 피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연회주방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고객은 기본적으로 수백 명 단위의 단체이고, 그 특성상 다른 주방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인원을 갈아 넣어야 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실력을 키웠던 찬혁의 눈으로 보아도, 지금 최태호가 보여주는 속도는 굉장한 것이었다.
경험이 깊은 찬혁은 그런 점에서 놀라움을 느끼고 있었지만, 다른 학생들은 그저 막연히 대단하다는 생각만을 할 뿐이었다.
'우와, 되게 빠르다.'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몇몇을 제외한 학생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학생들이 충격을 받은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태호는 묵묵히 다음 작업을 준비했다.
본격적으로 화구에 불이 오른다.
학생용 화구는 평범한 가스레인지였으나, 교사용 조리대 한편에는 밑면이 둥그런 중식용 팬인 웍을 안정적으로 받칠 수 있는 전용 화구가 따로 설치되어 있었다. 가스 밸브를 열고 불을 붙이니, 마치 폭죽이 터지는 것 마냥 불꽃이 솟아오른다.
─화르륵!
솟아오른 불꽃을 아무렇지도 않게 웍으로 덮어 버린 최태호.
그대로 불을 줄여 작은 불로 웍을 달구고, 그사이 다른 화구에 올려두었던 냄비의 물을 확인한다.
웍 전용 화구만큼은 아니라지만, 가정용 가스레인지와는 차원이 다른 화력 덕분에 짧은 시간 만에 끓어오른 물에 소금을 넣어 풀어주고, 그 물에 두부를 데친다.
'저기서 조심해야지.'
이때, 두부를 데치는 과정에서 두부가 뭉개지거나 풀어지는 등, 심하게 모양이 망가져서는 안 된다.
마파두부에는 비교적 부드러운 두부를 사용하는 데다 소금은 두부를 부드럽게 만들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았다간 눈 깜짝할 새에 모양이 망가지니 주의를 거듭해야만 하는 것이다.
'오. 역시.'
최태호가 데쳐낸 두부는 애초에 물에 넣지 않은 것처럼 처음과 같은 말끔한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 우람한 근육에 어울리지 않는 섬세한 손놀림이었다.
두부를 데쳐낸 뒤에 이어지는 화려한 웍 놀림.
넉넉히 두른 라유에 마늘, 생강, 파를 넣고 끓여 맛과 향을 배게 한 뒤, 그 기름에 다진 돼지고기를 볶는다.
이때 잡내가 나지 않도록 청주를 뿌려주자, 웍의 열기로 순식간에 증발하는 청주. 증기가 된 알코올에 불이 옮겨붙는다.
하지만 아랑곳없이 웍을 흔드는 최태호. 저 뜨거운 불길이 무색해질 지경이다.
'이쯤 되면 거의 공연인데.'
중식은 이렇게 눈이 즐거워지는 면이 있다. 찬혁 또한 그런 점을 좋아했다.
차례차례 웍 속으로 재료들이 합쳐진다.
두반장, 노두유, 굴소스, 산초가 어우러져 말로 형용하기 힘든 향을 풍긴다.
코끝이 아릿해지지만, 그럼에도 당장이라도 퍼서 입에 넣고 싶어지게 만드는, 알싸하고도 매콤한 냄새가 비강을 타고 넘어와 입속을 헤엄치니 절로 침이 넘어갔다.
─꿀꺽.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침을 삼키는 소리. 자기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찬혁은 실실 웃었다.
잠시 뒤, 접시에 맛깔나게 담긴 마파두부가 조리대 위에 올라왔다.
데코레이션 삼아 한 줄 길게 뿌려진 흑색 산초와 붉은 라유, 그 속에 하얀빛을 숨긴 마파두부.
적과 백, 흑이 이루는 선명한 대비.
'솔직히 만든 거 시식은 국룰 아닌가.'
'제발 한입만 먹게 해주세요……!'
학생들은 저마다 남몰래 수저를 챙겨 들고 언제든 앞으로 나갈 수 있게 준비한다.
그야말로 이성을 잃게 만드는 아웃풋이었다.
일차적으로 정리를 끝낸 최태호가 조리대 뒤로 서서 말한다.
"이게 불이 하는 일이다. 자, 그럼 시작해라. 모르겠는 게 있다면 손들고."
그러고는 "재료는 앞에 있는 조부터 한 명씩 나와서 받아가라."라는 말로 이야기를 끝내는 최태호. 할 말은 다 했다는 태도로 어디선가 가져온 의자에 앉는다.
"……!!"
─술렁술렁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해진다.
학생들의 눈이 거의 불타오를 것처럼 벌겋게 변한다.
'에이 설마. 먹어볼 시간도 안 주고 바로 시작한다고?'
'다, 다 식는데?'
점점 소란스러워지는 실습실. 가만 놔두면 폭발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 속, 누군가의 손이 올라온다.
"선생님!"
밝고 명랑한 목소리에 방금 전까지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가라앉는다.
시선들이 한 곳으로 모인다.
"?"
무슨 일이냐는 듯 목소리가 나온 곳을 바라보는 최태호 선생.
그러자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층 더 큰 목소리로 말한다.
"시식해봐도 될까요?"
"…… 그래라."
덤덤한 최태호 선생의 긍정에 소리 없는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
나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보려 고개를 돌렸다.
사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알 수는 있었지만.
'저만한 유명인 목소리를 모르면 간첩이지.'
아무리 어려졌다지만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돌린 곳에는, 역시 예상한 대로 미래의 쿡튜브 스타. 백예은이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