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5화 (5/403)

5. 다시 한 발짝.-4-

그런 말이 있다.

익히기는 쉬우나 숙련되기는 어렵다.

이 세상에 수많은 음식이 있지만, 알리오 올리오는 이 말에 가장 부합되는 음식 중 하나다.

조리법은 굉장히 간단하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슬라이스 한 마늘을 볶는다.

마늘이 익으면 삶은 파스타 면을 넣어 기름에 볶는다.

끝이다. 정말로.

이 뒤에 간을 맞춘다거나, 뭐 이런저런 기교나 추가적인 재료가 더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알리오 올리오라는 파스타의 기본은 이것이 전부다.

'근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단 말이지.'

하지만 이렇게 기교를 부리기 힘든 단순한 요리일수록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바뀐다.

우선 냄비에 물을 담아 화구에 올린다.

면이 충분히 잠길만한 양의 물이 끓으려면 꽤 시간이 걸린다.

물의 온도가 올라가는 동안 재료준비를 끝내둬야 시간이 절약된다.

'여기다 소금을 한 줌.'

물맛을 봤을 때 자신의 입맛에 살짝 짤 정도로. 음식의 퀄리티는 여기서부터 결정된다.

소금이 잘 풀어지도록 집게로 잘 저어준 뒤, 다시 도마로 간다.

준비해야 하는 것은 마늘과 이태리 파슬리, 그리고 레몬.

마늘 5, 6알을 반대편의 빛이 비쳐 보일 정도의 두께로 얇게 슬라이스.

원래 여기까지 얇게 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만들 레시피에는 이 정도 두께가 딱 알맞다.

'그리고 도마를 한 번 닦아줘야지.'

작은 그릇에 썰어놓은 마늘을 옮긴 뒤, 적신 물수건으로 칼과 도마를 깨끗이 닦는다.

마늘 특유의 매운맛이 칼과 도마에 묻어 자칫 잘못하면 다른 재료의 맛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뒤에 레몬을 반으로 자른다.

레몬은 즙만 짜내어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이 정도면 된다.

다음은 이태리 파슬리.

이 이태리 파슬리는 작은 브로콜리처럼 생긴 평범한 파슬리와는 다르게 살짝 쑥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둘 다 사용법은 비슷하지만 미세한 풍미가 다르지.'

거침없는 손놀림으로 두꺼운 줄기를 잘라내고 이파리만을 골라낸다.

줄기는 서양식 육수를 내는 데에 쓸 수도 있지만, 당장 나한테 필요한 것은 아니니 패스.

이파리가 상하지 않게 한곳으로 잘 뭉친 파슬리를 곱게 다지기 시작한다.

─통통통통통

칼과 도마가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주방을 채운다.

"오케이. 이 정도면 충분해."

딱 좋은 크기로 다져진 파슬리를 물기 없는 그릇에 옮겨 담는다.

'한 3, 4분 걸렸나?'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손질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칼을 잡은 손에 남은 미묘한 위화감을 탈탈 털어 떨쳐낸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 몸에 남은 나쁜 습관 탓인 것 같았다.

'이건 익숙해질 수밖에 없겠네.'

어차피 요리라는건 하다 보면 늘어나는 법.

예전처럼 매직샌드나 비지 같은 걸로 계속 연습하면 금방 나아질 것이다.

그다음은 드디어 불을 쓸 시간.

프라이팬에 조금 넉넉하다 싶을 정도로 올리브유를 채운다.

기름이 소스를 대신하는 오일 파스타의 특징상, 기름의 양은 충분하게 잡아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화구에 불을 점화. 가정용 가스레인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화력으로 타오르는 불꽃을 적당한 크기로 줄인다.

'마늘은 약한 불에서 천천히.'

마늘을 넣자마자 센 불로 볶아 버리면 마늘이 금방 타고, 기름에도 마늘의 향이 충분히 배어 나오지 않는다.

작은 기포와 함께 맛있는 소리를 내며 익기 시작하는 마늘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보글보글보글!

"오."

마침 딱 좋게 물이 끓기 시작한다.

미리 계량해두었던 면들이 서로 눌어붙지 않게끔 겹치지 않게 펼쳐 넣은 뒤 기다란 요리용 나무젓가락으로 저어준다.

파스타에도 종류마다 서로 익는 시간이 다르다.

사람들이 흔히 스파게티라고 부르는 면 또한 파스타의 일종 중 하나.

'면 중에서 소면이라는 느낌이지.'

한국에도 칼국수 면, 우동 면, 잔치국수에 쓰는 소면, 메밀 면 등등이 있듯이, 파스타의 종주국인 이탈리아에도 엄청난 종류의 면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스파게티가 익는 시간은 대략 8분. 좀 더 설익은 면이 좋다거나, 퍼진 면이 좋다거나 하는 사람들은 전후 1분 정도로 익히는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좋다.

'이제부터 카운트 시작.'

머릿속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면을 익히는 것도 10여 년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하다 보면 뇌에 시계가 하나 생긴다.

그때부터는 기계식 타이머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치이이익.

면이 제대로 풀리는 것을 확인한 뒤, 뜨거운 기름 위에서 맛있는 엑기스를 뽑아내는 것에 열중인 마늘로 시선을 돌린다.

살짝살짝 저어가며 마늘이 골고루 익을 수 있게끔 자리를 잡아준 뒤, 간을 맞춰줄 소금과 손으로 비벼 가루로 만든 페페론치노를 프라이팬에 더해 준다.

'냄새 좋고~.'

면이 익을 시간에 맞추어 불을 조절.

마늘의 양면이 황금빛을 닮은 갈색으로 물들어갈 때 즈음, 머릿속 타이머가 시간이 다 됐음을 알린다.

'이제 6분.'

면이 끓는 물에서 심지까지 완전히 익는 데에는 8분이 필요하지만, 면을 꺼내 팬에서 볶는 과정에서 면은 더 익게 된다.

그렇기에 조금 이른 시간에 면을 꺼내는 것이다.

혹시라도 냄비 속에 아깝게 남는 면이 없게끔 집게로 잘 집어 프라이팬에 넣은 뒤, 국자로 적당한 양의 면 삶은 물. 면수를 퍼서 함께 집어넣는다.

'여기가 중요해.'

화력을 최대로 올려 프라이팬 속 내용물들을 한 차례 뒤섞는다.

물과 기름 같은 사이라는 말이 있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잘 섞이지 못하는 사이라는 뜻.

이 말처럼 우리는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요리에서는 다르지.'

적당한 온도로 가열된 기름과 전분기를 머금은 물.

오일 파스타의 맛을 최종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바로 물과 기름을 얼마나 잘 섞느냐에 달렸다.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을 하나로 합치는 것.

그 과정을 바로 에멀젼emulsion이라 칭한다.

이 에멀젼을 거친 물과 기름은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크림, 혹은 우유 같은 옅은 노란빛이 섞인 하얀색 소스가 된다.

'이렇게 말이지.'

프라이팬 속에서 빛나는 크리미한 색채에 절로 입가가 올라간다.

이후에는 불을 끄고 다져놓았던 이태리 파슬리와 적당한 양으로 잘라놓았던 버터를 넣고, 팬에 남은 열기로 녹여 파스타 면발 전체를 코팅하듯 뒤섞는다.

마지막으로 소금과 후추를 뿌린 뒤, 반으로 잘라놓았던 레몬을 손으로 뭉개어 전체적으로 스며들 수 있게 레몬즙을 한 바퀴.

성공적으로 완성된 변형 알리오 올리오를 접시에 옮겨 닮는다.

돌아온 뒤 처음 시도한 요리지만 아주 나쁘지만은 않았다.

'조금 더 연습은 필요하겠지만…….'

몸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크게 괘념치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멋스럽게 담은 파스타를 나름 만족스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자니, 갑자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양희연이었다.

'보고 있던 거야?'

뭔가 굉장히 초롱초롱 거리는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내가 만든 알리오 올리오를 바라보는 양희연.

저런 눈으로 보고 있으니, 혼자 먹어치웠다간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접시를 내밀며 말을 건넨다.

"어…… 너도 먹을래?"

"어, 어?"

갑자기 말을 걸어서 당황한 걸까, 눈동자가 이리저리 헤엄치는 것이 나한테도 보일 정도였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양희연은 갑자기 대답도 없이 반대편 여자 기숙사 출입구를 향해 달려 나가 버렸다.

어찌나 빠른지 말을 걸 새도 없었다.

괜히 내밀고 있던 접시가 무안해져 접시를 거두고, 반대쪽 손에 들고 있던 포크로 파스타를 말아 입에 넣는다.

"맛있는데……."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맛있었다.

***

"그냥 놔뒀어야 됐는데."

뛰쳐나간 양희연은 내가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자기가 어지럽혀놓은 기구들이나 재료들까지 그대로 둔 채로.

그냥 놔두고 가기는 찔려서 결국 나 혼자 전부 정리했지만, 불만이 없지는 않았다.

'나 때는 말이야. 정리를 그렇게 해두고 갔으면 바로 그냥……!'

외롭게 분통을 터트리다,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알고 맥이 빠졌다.

'그래, 내가 정리했으면 됐지 뭐…….'

나 때고 뭐고 어차피 동급생인데. 가끔 그럴 수도 있지.

사람 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고, 배가 차니 참을성이 생겼나 싶다.

그렇게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어, 왔냐? 마침 잘 왔다 야."

"응? 왜?"

내가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나를 반기는 김철정.

무슨 일인가 싶어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니, 손가락으로 내 책상을 가리키며 말한다.

"너 아까 전화 왔던데. 내가 받아서 밥 먹으러 갔다고 했어."

"진짜? 땡큐땡큐."

전화가 왔다는 김철정의 말에 잰걸음으로 달려가 책상 위에 올라가 있는 폰을 집어 든다.

알바비로 구매한 중고 핸드폰이었는데.

오랜만에 느끼는 그립감에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듯했다.

'지금은 아직 없는 추억이지만.'

이것저것 만지작거리고 싶은 마음을 눌러두고, 부재중 전화 기록부터 먼저 살폈다.

'산 지 얼마 안 된 거라 전화 올 곳도 별로 없는데.'

내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엄마나 여동생. 그리고─

"사장…… 님?"

─사장님.

디스플레이에 찍힌 그 세 글자 단어에, 내 사고가 잠시 멈췄다.

***

이름은 박춘배. 사장님이라고 나는 불렀다.

후덕한 체형에, 매번 뱃살을 쪼물딱 거리며 "이놈 좀 빼야 하는데…… "라고 매번 중얼거리지만, 밥 먹을 틈만 생기면 매번 고봉밥을 두세 공기씩 퍼먹는 아저씨.

그런 모습에 진저리를 치며 "그렇게 먹으니 살이 안 빠지죠."라고 말을 해줘도 털털하게 웃으며 이렇게 안 먹으면 힘이 안 나서 일을 못 한다고 뻥뻥 큰소리를 치고는 했다.

언제든 기운이 넘쳐서 백 살은 거뜬하게 살다 가실 것 같은 분이었는데.

돌아가셨다. 내 생각보다 너무 일찍.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직전. 집으로 돌아가 그리운 얼굴들을 볼 생각에 들떠있던 나였다.

그런데 갑자기 연락이 왔다. 사장님이 돌아가셨다고.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그렇게 멀쩡하시던 분이 왜 이렇게 갑자기 변고를 당하셨는지.

나중에 들어보니 화재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것도 가게나 집에서 난 화재도 아니고, 퇴근길에 불이 난 다른 건물에서 사람을 구하다가 돌아가셨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땐 이런 멍청한 양반이 다 있나 싶었지만, 이제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장님다웠다고 생각한다.

'항상 남 돕지 못해 안달이던 아저씨였으니까.'

덕분에 나도 구해져서, 이렇게 내 꿈을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됐으니까.

그런 사장님이. 지금은 아직 살아계신다.

솔직히 무서웠다.

만약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는데 아무도 받지 않는다면?

내가 돌아왔다는 것 자체가 환상이었다면?

그런 두려움에 누군가에게 연락하는 것 자체를 무의식적으로 기피하고 있었다.

'용기를 내야 해.'

언젠가 사장님이 그랬다. "망설이기만 하다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보다는 낫다."라고. 그래서 나는 이 학교에도 올 수 있었다.

전화번호부에 찍힌 이름이, 마치 내 등을 밀어주는 것 같았다.

괜히 웃음이 났다. 더 이상 거리낄 건 없었다.

─꾹.

나는, 망설임을 털어내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