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르되브르-포기할 수 없는 것
"찬혁아. 내가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하지만, 웬만하면 요리사는 하지 마라."
도마 앞에 서서 한창 재료 준비를 하고 있던 내게, 사장님은 그렇게 말했다.
"왜 그러세요, 갑자기?"
갑자기 이 아저씨가 왜 이러나 싶어 고개를 돌렸다.
"아니, 그냥. 너도 일해서 알겠다마는 요식업이라는 게 쉬운 장사는 아니잖냐."
"그야 뭐 그렇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내 얼굴을 본 사장님은 이러저런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요리사라는 직업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 중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직업일 것이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업장으로 출근해서 오픈 준비.
마지막 손님을 보낸 다음에야 가게를 정리하고 밤늦게 퇴근.
시간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손님들 식사를 만들어주느라 정작 자기 먹을 건 뒷전.
일 년 365일 중 남들 다 쉬는 주말, 공휴일은 당연히 일해야 하는 날.
사시사철 뜨거운 불 앞과 차가운 냉장고 안을 지켜야 하는 정신 나간 업무강도.
"내가 봤을 때 요리는 그냥 취미로만 하면 충분한 것 같아."
그 외에도 기타 등등. 불평을 쏟아낸 사장님이 그렇게 말을 끝맺었다.
"동의하는 바가 없는 건 아닌데요……."
하나하나 따져보면 간단히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없다.
장사가 잘 풀리면 흔히 말하는 돈맛을 보고 금융치료라도 할 수 있다마는.
반대로 말해 돈맛이라도 보지 못한다면 도저히 해먹을 수 없는 일이라는 뜻도 된다.
"그런 거 다 아는 사람이 가게는 왜 차렸대요? 그런 거 다 알고 한 거 아니에요?"
"얼굴 좀 펴라. 안 그래도 인상도 험상궂게 생겨서. 무섭다 인마."
"제가 안 그러게 생겼어요?"
중학교 3학년 생일이 지나고 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뛴 지 어언 반년.
하필 날 이쪽 길로 이끈 사장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니 그야 얼굴이 찡그려질 만도 하다.
"그리고 제 얼굴이 뭐가 어때서요. 나이에 맞게 생겼구만."
"그래, 너한테 내가 얻어맞을 것처럼 생기긴 했지."
"뭐요?"
"아무 말도 안 했어."
아무런 일도 없었단 듯 태연하게 주방 정리에 마저 나서는 사장님을 한 차례 째려보고는, 다시 재료를 다듬기 시작했다.
흙을 털어내고 야채의 껍질 등을 미리 벗기는 작업.
도마도, 칼도 체구에 비하면 조금 크긴 하지만, 손놀림은 숙련된 어른 못지않게 날래다.
반년 전의 나였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속도였다.
이것도 다 사장님이 기초적인 요리법을 가르쳐 준 덕분이다.
"그래서요. 왜 갑자기 그런 말을 꺼냈는데요?"
"아니, 그냥 푸념 한 번 해본 거야. 장사가 너무 잘 되니까 힘들어서."
칼질이 멈출세라 눈도 돌리지 않은 채 묻자, 흐흐흐 하고 괴상한 웃음을 흘리는 사장님.
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안 그래도 바쁜데 흰소리나 하고 있어.
"예? 하, 그러면 사람이나 얼른 더 뽑아요. 저도 얼마 안 있으면 기숙사 들어가잖아요."
사장님을 면박하는 겸,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요리사라는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서기 위해 지원한 조리 고등학교.
특성화 고등학교인 탓에 높은 내신과 실기 점수가 필요한 데다, 기숙사에서 통학하며 이 가게도 그만둬야 했기에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사장님 왈─
"네가 정말 진지하게 이쪽 일을 하고 싶다면, 이런 가게에서 계속 일하는 것 보단 지금부터라도 기초를 확실하게 다져놔야 한다."
─라고 하시기에 죽을 둥 살 둥 내신 점수를 올려서 턱걸이로 합격 커트라인에 발을 올릴 수 있었다.
"그랬지 참. 일주일 뒤에 입학식이라고?"
"네. 기숙사 들어가는 건 그 전날이고요. 이번에 들어가면 다음에 오는 건 빨라도 한, 두 달 정도는 지난 다음일 걸요."
아마 학교 적응이다, 수업이다 뭐다 하려면 조금 바쁠 테지.
기숙사도 있으니 일가가 전부 이사하지 않아도 되는 건 다행이다.
마지막 남은 감자까지 전부 껍질을 까고 물에 담근 뒤 냉장고에 넣는다.
더러워진 도마를 정리한 뒤, 음식물 쓰레기까지 마저 처리하자 화구와 냉장고 청소를 마무리한 사장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사장님이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오늘도 수고했다."
"사장님도 고생하셨어요."
사장님이 갑자기 내 손에 봉투 하나를 쥐여주었다.
뭔가 싶어서 마주 보니, 사장님이 웃는다.
"이번 달 월급이다. 보너스도 좀 넣었어."
"오, 감사합니다. 근데 웬 보너스에요? 평소엔 짠내 나게 최저 딱딱 맞춰 주시던 분이?"
내가 장난스레 웃으며 농담을 건네니, 사장님도 마찬가지로 웃으며 내 머리를 살짝 쥐어박았다.
"인마, 직원 경조사에 사장이 한턱 쏠 수도 있는 거지."
"평소에도 좀 그러시지 그러셨어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그래. …… 아, 그리고 하나 더."
"?"
한번 말을 끊은 사장님이 힐끗 달력을 보고는 말을 잇는다.
"일은 오늘까지만 하자. 내일부터는 안 나와도 괜찮아."
"예?"
깜짝 놀랐다. 해고하겠다는 건가?
"뭐예요? 사람을 뭐 이렇게 갑자기 짤라요?"
아니 깜빡이나 켜고 들어오든가.
내가 놀란 얼굴로 되물으니 사장님은 오히려 더 깊은 웃음을 짓는다.
"고등학교 입학 전에 일만 하고 갈 생각이냐? 네 어머니나 여동생한테도 시간을 좀 써야지."
커다란 손바닥으로 머리를 덮어 버리듯 툭툭 쓰다듬는 사장님.
괜히 겸연쩍어진 나는 잽싸게 손을 쳐내며 쏘아내듯 말했다.
"갑자기 무슨 오지랖이에요? 알아서 할 테니까 놔두세요."
"그래. 알아서 잘 하리라 믿는다."
능글맞게 웃는 얼굴에 짜증이 돋아 휙 등을 돌렸다.
"아무튼,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고생 많았다. 조심히 들어가렴."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사장님.
그게, 내가 마지막으로 본 사장님의 모습이었다.
***
─툭툭.
"아저씨! 아저씨! 일어나요! 아이고, 무슨 술을 이렇게 마셔선!"
"…… 어어."
귓가에서 울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이 살짝 들었다.
"…… 꿈이었나."
굉장히 그리운 시절의 꿈을 꾼 기분이 들었다.
침침한 눈을 몇 번 비비자, 내 앞에 놓인 플라스틱 테이블과 먹다 만 소주, 안주거리 약간이 보였다.
'뭐지. 마시다 잠깐 뻗은 건가?'
그렇게 잠깐 넋을 놓고 바라만 보고 있자니, 옆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내 귀를 찔렀다.
"아저씨, 정신 들어요? 일어났으면 얼른 계산하고 일어나요. 저희도 이제 정리해야 되니까."
"아, 예. 예……."
조금 더 정신이 들자, 비로소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깨달을 수 있었다.
집 근처에 있는 포장마차. 하릴없이 집에만 있기가 싫어 무작정 뛰쳐나와 들린 곳이었다.
"저, 얼마죠?"
"보자, 그쪽 아저씨가 먹은 게…… 응? 12000원? 왜 이것밖에 안 돼?"
아주머니는 영수증에 체크 된 것이 뭔가 이상했는지, 내가 앉았던 테이블을 살폈다.
잠시 뒤, 확인을 끝낸 아주머니가 돌아온다.
"아니 아저씨. 어디서 술 마시고 왔어요?"
"어…… 아니요? 왜요?"
"…… 됐어요. 얼른 계산해 주셔요."
"예."
지갑에서 돈을 주섬주섬 꺼내어 아주머니에게 쥐여) 뒤 가게를 돌아 나선다.
뒤통수에서, 아주머니가 나를 타박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
얼마 안 되는 내용물을 꺼내어 홀쭉해진 지갑을 보며 너털너털 걷는다.
"고작 술 한잔했다고 이렇게 되냐……."
마치 통장의 모습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것 같은 지갑을 바라보며 투덜거린다.
"후…… 이럴 게 아니었는데……."
하도 관리를 안 해서 덥수룩한 수염과 더벅머리.
다림질도 잘 안 되어 구깃구깃한 주름이 또렷하게 나 있는 옷.
그나마 키 하나는 훤칠하여 봐줄 만했지만, 원판을 다른 것들이 가려 버리니 숫제 거지꼴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었다.
제대로 된 직장도, 기술도 가진 평범한 사회인이었으니까.
"귀국한 것도 벌써 한 달째인가……."
과거, 나는 양식의 총본산이라 불리는 프랑스,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요리사였다.
그것도 평범한 레스토랑이 아닌,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미식 잡지인 미슐랭 가이드.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인 별 3개를 받은 호텔 산하 레스토랑의 수 셰프.
그런데 왜 지금은 이런 모습으로 길거리를 거니는 것일까.
'조금만 더 버텼으면 나도 주방장chef de cuisine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셰프 드 퀴진chef de cuisine.
보통 주방장이라고 호칭하지만, 그 이름은 그런 호칭 이상의 명예를 갖고 있다.
'진짜 셰프.'
사람들은 흔히 요리사들을 보고 셰프라고 부른다.
하지만, 일정 이상의 규모를 가진 주방에서 셰프라 불릴 수 있는 요리사는 단 몇 명뿐이다.
셰프는 이른바 말하자면 하나의 주방을 진두지휘하는 요리사.
공적인 자리에서 셰프라는 명칭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 요리사는 굉장히 극소수.
셰프 드 퀴진은 그 소수에 들어가는 지위 중 하나다.
그보다 높은 직급이 없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발로 뛰는 요리사 중에서는 가장 높은 직급. 찬혁은 그 자리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었다.
'잘리지만 않았다면 말이지.'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정치의 희생양이 되었다.
호텔 주방 정도의 규모를 가진 곳이라면, 그곳은 이미 회사와 다를 것이 없다.
오죽하면 직급을 부장, 차장 식으로 나누겠는가.
'총주방장을 그 호텔의 임원으로 대우하니 말 다했지.'
그런 만큼, 사원 간의 정치 또한 수면 아래에서 활개를 친다.
나는 그런 것에 별 흥미가 없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시발 인종차별주의자 새끼들.'
그건 바로 내가 주방에서 유일하게 높은 직급을 가진 아시아인이었기 때문이다.
수 셰프 정도면 일반 회사에서는 과장이라고 볼 수 있는 위치였으니까.
정치질을 일삼는 직장 동료들의 눈에는 그런 내가 눈엣가시였던 것일까.
나는 그들의 음해 탓에 다음 대 연회 주방의 셰프 드 퀴진의 승진 평가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거기까지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승진이 밀려난 것 자체가 문제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은 계속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일을 하다 보면 다시 승진의 기회가 찾아왔겠지.
'요리사가 요리만 잘하면 됐지 무슨 정치질이냐.'라며 말하고 다니긴 했지만, 정치를 안 하는 것이지 눈치가 없는 게 아니었다.
'내 성깔도 그렇게 만만찮은 성깔도 아니었고'
주방의 인사를 담당하는 총주방장에게서 자신의 근무평가가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음해되어 있다는 것을 알자마자, 매번 자길 아시아인이라고 고깝게 보던 양식 주방 수 셰프에게 달려가 그 뚝배기를 프라이팬으로 후려쳐 버렸으니까.
그렇다.
그것이 호텔에서 해고를 당한 이유였고, 패소로 물었던 합의금은 내가 거지꼴을 면치 못하게 된 사유였다.
***
"하, 씨. 술도 더 안 나오네……."
차디찬 벤치에 앉아 술병을 아무리 기울여도 이슬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
나는 깔끔하게 비워 버린 소주병을 벤치 옆으로 치워 버리며 등받이에 늘어졌다.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저절로 눈이 감긴다.
"진짜, 내가 그 꼴을 보자고 그렇게 열심히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롭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 꿈이 그랬던 것을 누구에게 불평하자고.
'아니, 불평할 수 있지.'
한 명. 세상에서 딱 한 사람뿐이긴 하지만.
입가에 저절로 지어지는 웃음을 참으며, 하늘에 대고 욕하듯 외쳤다.
"빌어먹을 사장님 놈아! 혼자 그렇게 가니까 좋았습니까!?"
내게 희망을 주었던 사람.
내게 슬픔을 주었던 사람.
내게 꿈을 갖게 한 사람.
내가, 꿈을 포기하지 못하게 한 사람.
"그래서 뭐? 그만둘 거야? 이만큼 해놓고?"
내 입으로 나를 놀리듯 반박하며, 아마 그 사람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라 상상하곤 혼자 킥킥댄다.
잠이라는 이름의 짐이 쏟아져 내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듯했다.
"아무렴. 절대 그만 못 두지……."
점점 거세게 덮쳐오는 수마에 나는 저항하기를 그만뒀다.
이윽고, 내 시야가 흑색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