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28 회: 213 타락, 그 시작과 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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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에게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처음으로 대학 3년 선배인 상희와 함께 새로 오픈하는 <24시 편의점>에 행사 도우미 일을 나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상희는 올해 스물여섯이다. 그 나이면 도우미 세계에서는 퇴물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무슨 노하우가 있는지 상희는 예외였다. 아닌 게 아니라 퇴물 취급은커녕 스물을 갓 넘긴 영계 계집애들도 콜이 없어 안달할 때도 상희만은 업주들의 전화가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인기가 캡이었다.
행사만 전문으로 뛰는 도우미 생활이 5개월째인 정미는 여느 도우미들과 마찬가지로 사흘에 한 번 꼴로 나가는 행사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정미가 하루 종일 목이 아프도록 똑같은 멘트를 반복해서 날리고 노래를 불러 받는 일당은 칠 만원이었다. 한 달에 평균 10회를 뛴다 해도 70만원이 고작이었다.
'한 달에 150은 벌어야하는데…'
허벅지 살이 반 이상 드러나는 초미니스커트와 젖가슴 골이 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깊게 파인 블라우스를 입고 길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떠들어대는 일에 비해 받는 돈이 정미에게는 불만이라면 불만이었다.
'매일 나가게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문득 도우미들 사이에 떠도는 말이 생각났다.
"얘, 상희 선배는 한 달에 오백은 기본이래."
"얘는, 그게 말이 되는 소리니? 한 달 내내 공치는 날 없이 나간다 해도 삼십 곱하기 칠 하면 이백 십인데…"
"누가 아니… 뒤로 들어오는 돈이 있는지."
정미는 버스에 오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어쩌면 소문이 아닌지도 몰라… 필시 뭔가 있는 게 분명해.'
정미는 어제 저녁 상희 선배가 한 말을 떠올렸다.
"정미 너, 내가 하자는 대로만 해. 그럼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지금보다 배는 더 벌 수 있으니까… 알았지?"
그때 정미는 선배의 표정에서 묻어나는 야릇한 음모를 눈치 채지 못했다. 설마하니 상희 선배가 그런 여자일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미가 편의점에 도착했을 때 선배는 벌써 와 있었다. 초미니스커트와 블라우스 차림의 상희 선배 몸매는 쭉쭉 빵빵 빠진 여느 영계 도우미들 못지않았다.
상희 선배가 정미를 쳐다보며 말했다.
"얘, 얼른 옷 갈아입고 와."
"응, 선배."
편의점 바로 옆 여자 화장실로 들어선 정미는 출입문을 잠근 후 초미니스커트와 블라우스로 갈아입었다.
정미가 다시 편의점 앞으로 갔을 때, 선배는 편의점 안에서 사장인 듯한 중년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배가 정미를 보고 손짓으로 불렀다. 정미는 한껏 치켜 올라간 스커트를 밑으로 내리며 편의점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정미야, 인사드려. 여기 사장님이셔."
"안녕하세요. 윤정미라고 해요."
정미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사장이란 사내가 정미의 탄력감 있는 몸매를 아래서부터 위를 대놓고 훑으며 좀은 거들먹거리는 투로 말했다.
"그래요, 아주 상큼하게 생긴 얼굴이라 마음에 드는구먼."
그러고는 이내 선배를 쳐다보며 거듭 확인하려는 투로 물었다.
"상희, 어제 말한 대로 틀림없겠지?"
말 떨어지기 무섭게 선배가 눈을 살짝 흘기며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아이, 사장님도~ 우리가 어린앤가요."
"그래, 그래. 알 거 다 아는 숙녀지 허허!"
순간 정미는 기겁을 했다.
'어머! 어머!'
놀랍게도 사장이란 작자가 선배의 스커트 안으로 한 손을 밀어 넣어 엉덩이를 움켜쥐는 게 아닌가 말이다.
그 지경인데도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다른 한손으로 정미의 젖가슴을 만지려고 하는 게 아닌가.
정미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소리 쳤다.
"어머! 왜 이러세요?"
그러자 사장이란 작자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선배를 빤히 쳐다보았다.
선배가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장님, 얘가 오늘 저랑은 처음이라 몰라서 그래요… 정미야, 일단 나가서 얘기 좀 해."
선배가 정미의 손을 잡아끌고 들어선 곳은 여자 화장실이었다. 그때 정미는 뭔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 됐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이건 아냐.'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어떻게 사장이란 작자가 일면식도 없는 도우미를 그렇고 그런 여자 대하듯 한단 말인가.
'혹시? 설마?!'
머릿속이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그때 선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기 딴에는 답답해서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휴우…"
"선배, 왜 그래?"
선배가 정미를 빤히 쳐다보며 따지듯 물었다.
"정미 너, 내가 하는 대로 따라 한다고 약속했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미가 되받아 물었다.
"선배, 그 약속이랑 사장이 우릴 함부로 대하는 거랑 상관이 있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맞아?"
"그래, 상관있어."
"그럼 난 싫어. 사장이란 작자에게 희롱이나 당하면서 이딴 짓 하기 싫어."
"뭐 싫어? 이딴 짓? 정미 너, 배부른 소릴 하는 거 보니 아직 덜 급한 모양이구나. 윤정미, 이건 선배가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니까 잘 들어. 요즘 도우미 하겠다고 날뛰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웬만한 애들도 일거리가 없어서 그만두는 판국이라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정 하기 싫으면 관둬. 하지만 오늘까지는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와.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하지만 선배…"
선배가 정미의 말을 가로 챘다.
"알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정미야, 난 말이야. 너 때문에 지금까지 쌓아온 신용 잃고 싶지 않단 말이야. 업주들이 왜 나만 찾는지 아니? 그게 다 신용 때문이야. 신용."
정미는 선배가 신용이라는 말에 악센트를 줄 때 선배의 눈에서 한줄기 빛이 섬광처럼 번쩍하는 것을 느꼈다.
정미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신용 운운하는 선배에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조금 있다 선배가 뜬금없는 말을 툭 내뱉었다.
"정미 너, 설마 섹스 경험이 없는 건 아니겠지?"
정미는 너무도 노골적인 선배의 멘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여기서 왜 섹스니 경험이니 하는 말이 튀어나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서, 선배 지금 무슨 말을…"
"하긴, 처녀일 리가 없지."
"그래, 선배 나 처녀 아냐. 근데 그게 도우미 일이랑 무슨 상관인데?"
말 끝나기 무섭게 선배의 입에서 폭탄선언이나 다름없는 충격적인 말이 스스럼없이 튀어나왔다.
"정미야, 나 말이야… 사실은 도우미 일이 끝나고 저녁때가 되면 업주들하고 모텔로 가서 아랫도리로 사내들을 아주 죽여주는 그런 여자야. 아까 말한 신용도 다 아랫도리로 사내놈들을 몇 번이고 죽여준 대가로 얻은 거야. 이 나이에 아직 도우미 일을 하고 있는 비결도 타고난 아랫도리 덕분이라는 얘기야."
"선배…"
정미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엄연한 현실이야. 해서 하는 말인데…"
정미는 선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를 알고 잽싸게 말을 가로챘다.
"싫어… 선배, 말도 안 돼!"
정미는 낯선 사내 몸뚱이에 깔려 헐떡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아무리 돈이 궁하지만 그 짓만은 싫었다.
"정미 너, 정말 선배 신용을 하루아침에 시궁창에 곤두박질치게 만들 거야?"
"선배, 사장이란 작잔 한 명인데 선배 혼자서 상대하면 되잖아. 굳이 나까지 그럴…"
선배가 냉큼 말을 가로챘다.
"윤정미, 오늘 너랑 같이 나온 이율 모르겠어?"
"그럼 사전에… 그 작자에게?"
"그래, 어제 선금까지 받았어. 점심시간엔 내가 잠깐 립 서비스 해주기로 했어. 그리고 저녁엔 네가 사장과 모텔로 가는 조건이야. 참, 중요한 걸 빠트렸네. 우리 둘이 그치를 즐겁게 해주는 대가는 50이야. 정미 네 몫은 30이야."
정미는 목돈 30에 욕심이 생긴 것은 사실이었으나 제 몸을 상납하듯 그 작자에게 내던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선배, 난 못해요!"
그러자 선배가 완강한 투로 말했다.
"안 돼! 해야 돼. 내 신용 때문에라도 정미 넌 해야 돼."
"선배…"
정미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선배는 정미의 감정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얘, 내숭 그만 떨어. 남친이랑 가끔 모텔에서 즐기는 몸인데 그 작자랑 못할 것도 뭐 있니?"
"더러운 돈과 내 몸을 거래하는 게 싫단 말이야."
정미 입장에서는 달리 할 말이 그것 밖에 없었다.
그러자 선배가 대뜸 비아냥거리는 투로 빈정거렸다.
"뭐, 더러운 돈? 정미 너 진짜 웃기는 애구나. 돈 때문에 도우미 일을 하면서 더러운 돈이라고? 정미 너, 철이 있는 애니 없는 애니? 내가 괜히 널 내 파트너로 찍은 줄 아니? 누구보다도 돈이 필요한 너라는 거 알기 때문에 팀장에게 아양까지 떨면서 내 파트너로 삼은 거야. 그리고 정미 너 등록금이 없이 휴학까지 했잖아. 이래도 그 작자에게 가랑이 한번 벌려주고 받는 돈이 더러운 돈이니?"
그 말에 정미는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결국에는 선배의 강요에 백기를 들고 무릎을 꿇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선배가 이번에는 성적 욕망을 부추기는 말로 정미를 꼬드겼다.
"그리구… 이건 경험자로서 하는 말인데 참고로 들어. 네 남친이랑 해봐서 잘 알겠지만 중년 남자들 테크닉은 정말 끝내준다 너. 비교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중년 남자하고 한번 해보면 진정한 섹스가 뭔지 알게 된다는 거지… 얘,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이니? 돈 생기고 미치도록 즐기고… 이걸 두고 고랑 치고 가재 잡는다는 거 아니니. 하여간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으니 생각하고 말 것도 없어. 긴장은 되겠지만 막상 부닥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적응하는 게 인간이잖니. 난 믿어… 아니, 믿고 싶어. 정미가 잘 할 거라는 거 말이야. 그럼 나 먼저 나가 있을 테니 천천히 나와. 그렇다고 너무 늦으면 안 돼. 10분만 있다 나와."
선배는 정미가 뭐라고 말할 틈도 주지 않고 화장실 밖으로 휑하니 나가 버렸다.
정미는 손수건으로 눈가에 맺혀 있는 눈물을 훔치며 생각에 잠겼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래, 지금 나에겐 돈이 필요해.'
5개월 전에 실직한 아버지를 생각하면 이 세상에 돈이란 돈은 죄다 긁어모으고 싶은 것이 지금의 정미였다.
하지만 몸뚱이를 팔면서까지 돈을 손에 쥔다는 자체가 부모님에게 죄를 짓은 것 같은 기분이라 왠지 모르게 망설여지는 정미였다.
'아, 이럴 때는 뭐가 현명일까? 몰라, 모르겠어. 뭐가 뭔지 모르겠어.'
바로 그때, 선배의 경쾌한 멘트가 음악소리에 섞여 들려왔다. 정미는 이끌리듯 화장실을 나와 선배 옆에 서서 빠른 템포의 음악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정미는 오늘따라 도우미 둘을 번갈아 쳐다보는 사내들의 눈빛이 축축하다 못해 음탕하게 느껴졌다.
선배의 멘트가 끝났다. 정미는 선배가 건네주는 마이크를 잡고 입에 갖다 댔다. 정미가 멘트를 하는 동안 선배는 남자들의 음탕하기 짝이 없는 눈길을 즐기듯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느새 편의점 안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둘은 30분 간격으로 돌아가면서 멘트를 날리고 춤을 추었다. 그러는 사이 점심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