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16 회: 209 분노 그리고 능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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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마,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
동호 녀석이 흰 마스크를 손에 걸고 빙글 돌리며 투덜거렸다.
"올 때가 됐는데…"
"빌어먹을!"
"짜샤, 이럴 땐 진득하니 기다릴 줄도 알아야 싸나이 다운 거야. 여자 아랫도리 먹는데 이만한 고행쯤은 감수할 줄 알아야지."
짐짓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초조하기 짝이 없었다. 만에 하나 노심초사(?)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이 여자가 덜컥 외박이라도 하면 말짱 도루목도 도루목이지만 동호 녀석 볼 낯이 없는 건 불문가지다.
'이거 혹시 그때 그 놈이랑 아랫도리 짜 맞추고 있는 거 아냐?'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동호 녀석이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투덜거렸다.
"싸나이 두 번 됐다가는 제풀에 지쳐 돌아가시겠다."
지금 우리는 한 시간째 그 여자가 사는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세탁기 뒤에 옹크리고 앉아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시간은 밤 11시 정각, 자정까지 들어오지 않으면 억울하고 분한 일이긴 하지만 일단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과감히 철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좀은 맥 빠지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넉넉잡고 한 시간만 더 기다려보는 거야."
그러자 동호 녀석이 불만 투로 대뜸 토를 달았다.
"그래도 안 오면…"
"별 도리 없잖아. 일단은 철수해야지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쓰벌, 괜히 헛 뭐만 세웠잖아."
동호 녀석은 김빠진 맥주를 마시는 기분인지 한 손으로 아랫도리를 만지작거리며 예의 투덜거렸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장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올 거야."
녀석이 맞장구를 쳤다.
"그럼, 당연히 와야지. 똘똘이 목욕까지 시켰는데 안 오면 억울하지."
나는 언제 올 지도 모르는 그 여자를 곱씹는 기분으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아파트 단지를 밝히고 있는 방범등 불빛이 베란다 안을 희미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약혼까지 한 주제에 감히 우리 형에게 배신을 때려.'
불끈 쥔 두 주먹에 나도 모르게 절로 힘이 뻗치고 있었다.
'형, 걱정 마. 이 동생이 아주 멋진 복수를 해줄 테니까. 그러니 이딴 걸레 같은 년은 깨끗하게 잊고 새 출발 하는 거야.'
한때는 하나 뿐인 형의 약혼녀였던 그 여자에게 이런 천인공노(?)할 몹쓸 복수극을 마음먹은 것은 형과 약혼한 지 채 석 달도 안 되는 어느 날, 그것도 벌건 대낮에 어떤 놈 팔짱을 다정스럽게 끼고 모텔을 나서는 장면을 우연찮게 목격하면서부터였다. 그때 형은 1년 기간으로 중국 지사에 파견 근무를 나가 있었다.
'저, 저런 처 죽일 년을 봤나!'
온 몸의 피가 거꾸로 도는 것도 모자라 그냥 펑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다. 잘못 본 거겠지… 닮은 사람이겠지 했다.
하지만 뜯어보면 볼수록 아빠 엄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약혼까지 한 형의 예비 반려자 그 여자가 분명했다.
나는 사내놈의 승용차를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그녀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내가 형 대신 복수를 하고 말겠다는 결의를 가슴 깊이 다지면서…
'그래, 이 시간부로 넌 예비 형수가 아냐.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간통녀야. 간통녀.'
결국 내가 세운 계획은 군 동기인 동호 녀석으로 하여금 그녀을 처참하고 무참하게 짓밟는, 능욕이란 게 뭔지를 똑똑히 깨달게 해주는 것이었다.
내가 굳이 동호 녀석을 그년의 상대역으로 찍은 이유는 아무리 그래도 형과 구멍 동서는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동호 녀석은 군에 있을 때 나와는 그 누구보다도 의기투합이 잘 됐다는 걸 상기라도 하듯 거절은커녕 얼씨구나 했다.
"얌마, 그런 일이라면 내가 전문가잖아."
"그건 인정하는데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하는 비밀이란 거 명심해."
"얌마, 모르쇠 하면 이 강 모르쇠잖아. 그래, 디데이는 언제냐?"
"모레."
그렇게 해서 오늘이 바로 디데이였다. 그년 아파트 열쇠는 다행스럽게도 내가 하나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손수 만든 여러 가지 밑반찬을 나더러 갖다 주라고 할 때 주로 써먹든 복사된 열쇠였다.
"지금 몇 시니?"
동호 녀석이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물었다.
"열 한 시 삼십분."
나 또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제기랄! 30분 안에 안 오면 종치는구먼."
"짜샤, 이런 말도 있잖아.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쓰벌 놈, 누군 콱 돌아버릴 지경인데 문자 뻐꾸기는 왜 날리고 지랄이야."
바로 그때였다. 띠잉~! 살짝 열려있는 베란다 통유리 틈새로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 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와, 왔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쳐다보며 낮게 소리쳤다. 그리곤 거의 동시에 꼴깍 침을 삼켰다. 긴장의 끈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연신 침을 삼키는 녀석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야, 얼른 마스크 써."
강도 흉내는 아니라 해도 얼굴을 대놓고 드러낼 수 없는 상대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준비해 왔던 것이다.
잠시 후, 철컥, 현관문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벼락 치는 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렸다. 그리고 이내 현관문이 열리면서 현관 불이 자동으로 켜졌다.
그런데 그년 혼자가 아니었다. 한 명의 여자가 또 있었다.
"뭐야? 둘이잖아!"
동호 녀석이 먼저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게."
생각지도 않은 의외의 변수라면 변수였다.
"잘됐네, 뭐."
녀석이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뭐가?"
"쪽수가 맞잖아."
그제야 녀석의 속셈을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네 말은… 저 여잔 내 몫이라는 거야?"
아닌 게 아니라 초청하지도 않은 한 여자의 출현으로 분위기가 이상한 쪽으로 급반전 되고 있는 꼴이었다.
"그래, 얌마. 머리는 그렇게 굴리는 거야. 안 그래도 나 혼자 재미 본다는 게 뭐했는데… 이건 하늘의 계시나 마찬가지야."
바로 그때 거실에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얘, 우리 자기 출장 첫날부터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이러다 우리 자기한테 쫓겨나는 거 아닌지 몰라."
그년이 데리고 온 여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일단은 상판부터 어떻게 생겼는지 유심히 살폈다. 본의 아니게 내 섹스 파트너가 된 이상 성적 호기심이 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미모였다. 거기다 그년 못지않게 30대 중반의 나이에 어울리는 농염한 섹시미가 자르르 흐르는 육감적인 각선미가 나를 혹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쭉빵 버금하는 몸매였다.
"어라, 꽤 삼삼한데 그래."
녀석이 침을 삼키며 말했다.
"야, 저 여자 젖통 죽인다."
사실 단추 2개가 풀어진 블라우스 사이로 반 이상 드러난 젖가슴 골이 내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 아닌 게 아니라 머리 털 나고 처음으로 저 깊게 파인 골 사이에 내 아랫도리 녀석을 끼우고 원 없이 흔들어봤으면 하는 충동이 불같이 이는 순간이었다.
"저년도 만만찬잖아."
"그러고 보니 왜 유유상종이란 말이 생겼는지 알겠구먼."
"자고로 여자들은 끼리끼리 노는 족속이지. 야, 고개 바짝 숙여. 그리고 지금부턴 숨소리도 최대한 죽이는 거야."
녀석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그년은 우리가 숨어 있는 베란다 통유리 문 우측 구석에 있는 냉장고로 다가서고 있었다.
"계집애, 나랑 같이 있는데 뭐가 문제니? 혼자 적적해서 친구 집에 왔다고 하면 오히려 나한테 고마워할지 누가 알아."
"집으로 전화라도 하면…"
"안 받으면 휴대폰으로 하겠지. 그때 내가 받아서 이러쿵저러쿵 속닥속닥 하면 백에 백 고맙다고 할 걸."
"참, 휴대폰이 있었지. 계집애, 잔머리 굴리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니까."
"그러니 마음 푹 놓고 한판 진하게 때리는 거야. 그게 사내놈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여자인 우리들도 맘껏 즐길 수 있다는 걸 시위하는 차원에서 말이야."
순간 나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뭐야? 혹시 그거 아냐?'
동호 녀석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손가락으로 내 옆구리를 쿡 찌르고는 그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쥔 다른 손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서로 마주보며 둘만이 해석할 수 있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로 둘렀다.
'미친 것들!'
자위까지 들먹거리는 두 여자가 내 눈에는 정상적으로 보일 리 만무했다.
그년이 오렌지 주스 두 잔을 소파 앞 탁자에 내려놓자 이번에는 그 여자 입에서 파격적인 말이 스스럼없이 튀어나왔다.
"얘, 훔쳐볼 사람도 없는데 우리 속옷만 입고 있는 게 어때?"
"그래, 어차피 벗을 건데…"
그리곤 거의 동시에 마치 시합이라도 하듯 겉옷을 훌훌 벗어던지는 게 아닌가. 녀석과 나는 매미 허물 벗듯 하는 두 여자의 날렵한 손놀림을 뻥진 표정으로 그냥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동호 녀석이 거리낌 없이 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대놓고 아랫도리를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하긴 쭉쭉 빵빵 두 여자가 바로 눈앞에서 스트립쇼를 하듯 옷을 벗어 던지고 있는데 그 아무리 여색을 멀리하는 놈이라도 이 순간만은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나 또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사고를 치기도 전에 에로틱한 눈요기까지 제공하는 두 여자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아래위 한 세트인 듯한 검정 팬티와 브래지어를 걸친 그년이 레이스로 포인트를 준 핑크색 브래지어와 팬티로 아래위를 아슬아슬하게 가린 채 소파에 앉는 친구에게 말했다.
"얘, 느이 남편 밤일은 잘해 주니?"
친구가 주스 잔을 든 채 다리를 꼬며 시큰둥한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기 딴에는 용을 쓰긴 쓰는데 당최 오르가슴이란 게 와야 말이지. 넌, 어때? 새로 꿰찬 그치 말이야."
"이하동문이라고나 할까. 처음에는 그런대로 제법이다 싶더니만 하면 할수록 영 시원찮은 거 있지."
"그러다 또 다른 놈 꿰차는 거 아냐?"
"생각 중이야."
"얘, 그때 봐서 내 것도 하나 구해."
"그러지 뭐. 분위기 봐서 넷이서 한방에서 즐기는 것도 색다른 맛일 테니까 말이야."
친구가 먼저 깔깔 웃자 그년도 따라 웃었다.
나는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타락의 극치를 가는 두 여자를 단칼에 응징하고 싶은 충동이 불같이 일었다.
'망할 것들!'
나는 마스크를 쓰며 내 지시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동호 녀석에게 눈짓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동호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스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