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90 회: 200 동아리 여선배I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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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몸으로 변해있을 선배를 상상하며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 한가운데 서서 온몸에 비누칠을 했다.
'어제 그 꿈 때문일까?'
문득 나는 지독했던 어젯밤 몽정이 오늘의 만남을 예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나는 5년만의 해후가 아직 꿈인지 현실인지를 놓고 마치 카오스 원리처럼 혼돈 속에 헤매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감히 예상치도 않은 극적인 반전에 감탄이나 감동을 먹듯이 나 또한 그런 지경에 빠졌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세탁기 바로 옆에 놓여있는 세탁물 바구니 맨 위에 날개를 접은 나비처럼 숨을 죽이고 있는 선배의 야릇한 팬티 때문이었다.
그것도 블랙 톤 계통의 아주 야한 디자인, 그러니까 사타구니 거웃에 달라붙는 그 부위는 망사로 처리된 소위 말하는 T-백 끈 팬티였다. 엉덩이 쪽에는 그 갈라진 골짜기만 간신히 가려주는 그야말로 여자라도 선뜻 착용하는데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외설스럽기 짝이 없는 팬티였다.
'휴~! 이런 걸 다 입다니…!'
꿀꺽! 나는 나도 모르게 입안에 가득 고이기 시작한 침을 삼키며 사주경계를 하듯 욕실 문 쪽을 힐끔거리고는 잽싸게 팬티를 집어 들었다.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
나는 온몸에 덕지덕지 매달려 있는 비누거품을 털어낼 생각은 아예 접어두고 손끝에 매달려 있는 팬티를 얼굴 가까이 갖다 대고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요소요소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아랫도리 녀석은 이유 있는 저항인 양 부풀대로 부풀어 올라 첨단에 아리한 통증을 동반하고 있었다.
어느새 내 코는 거웃과 두덩 아래쪽 꽃잎계곡 부위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아아, 선배!"
독백이 아닌 신음이 저절로 잇새를 뚫고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랫도리 특유의 강렬한 냄새를 깊숙이 흡입한 나로서는 마치 선배의 그 은밀한 부위에 얼굴을 파묻고 코에 문질러지는 까슬까슬한 거웃의 촉감이 망사로 된 천에서 묻어나고 있는 듯한 기분 때문이었다.
헌데 코를 간질이듯 파고드는 냄새는 최음제 그 이상으로 강렬했고, 촉감은 오감을 일시에 마비시킬 정도로 감미로웠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샤워소리 대신 쥐어짜는 듯한 내 신음소리를 들었는지는 몰라도 욕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선배가 얼굴만 삐쭉 내밀고 한소리 했는데 이건 숫제 도전적이었다.
"어쭈! 웬 신음소린가 했지. 아무튼 좋은 현상이야. 얘, 아예 그걸로 손장난 한번 치고 나와. 그래야 오래 갈 거 아냐. 참, 다 좋은데 그 팬티 이빨로 씹으면 안 돼! 내가 제일 아끼는 팬티란 얘기야. 그러니 얼른 끝내고 나와. 난 지금 한창 쏠리는 중이란 말이야."
그러고는 할 말을 잊은 표정으로 망연자실해 있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쾅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나는 선배의 걸쭉한 음담패설에 자칭 프리섹스주의자라고 공공연하게 떠벌리며 섹스찬미를 주창하던 그때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나는 자위행위를 치르고 나오라는 선배의 말을 거역하고 다시 샤워기를 틀어 비눗물을 털어낸 다음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욕실 문을 열었다.
"헉!"
내가 자지러지듯 놀란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다. 선배는 약속대로 아랫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헤어누드, 그러니까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완벽한 알몸으로 식탁에 앉아 있었다.
"어머, 그 물건도 놀랐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네!"
"서, 선배! 이런 황홀한 이벤트일 줄이야!"
한껏 벌어진 내 입은 쉽게 다물어지지 않았다.
"뭘 그러고 있는 거니? 어서 와서 앉기나 해. 종우 네 졸업식 날 내 몸 중에 유일하게 네 손길이 닿지 않은 그곳을 열어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5년이란 시간이 흐른 오늘에야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으니 다행이지 뭐! 자칫하면 저승에까지 가지고 갈 여한이 될 뻔했는데 이렇게 한풀이를 할 수 있다니 말이야!"
순간 선배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농담이 아닌 진담으로 들렸기 때문일까?
나는 배꼽 쪽으로 물구나무를 서 있는 아랫도리 녀석을 가릴 생각도 하지 않고 선배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선배, 그걸 잊지 않고 있었단 말이에요?"
"호호, 믿기지 않으면 이 선배가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 하는 흰소리로 알아들으면 돼. 자, 어서 먹기나 해. 먹어야 힘을 쓸 거 아니니."
나는 어떤 힘인 데요? 하는 토를 달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다. 아니 어쩌면 달 수 있는 여지를 찾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처럼 포탄형 가슴 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풍성한 젖가슴이 나를 유혹이라도 하듯 도톰한 젖꼭지를 앞세워 나를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탐스런 유방이었다.
'그래, 그땐 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어린애처럼 칭얼거렸지.'
***
대학 1학년 때 문학 동아리 첫 MT가 있는 그날이었다. 까만 밤바다가 길게 펼쳐져 있는 모래사장 한 모퉁이에서 여자의 젖가슴이 단순히 수유(授乳)를 목적으로 여자 몸에 달린 게 아니라는 진실을 알게 해 준 장본인이 바로 선배 그녀였다.
"얘, 그만 됐어! 어서 떨어져! 이런데서 흥분하기 싫단 말이야! 어서!"
그때 선배는 자칫 흔들릴 뻔 했던 자신을 추스를 줄 아는 냉정한 여자였다.
"선배, 여기선 왜 흥분하면 안 되죠?"
나는 반항기 있는 말투로 다그쳐 물었다. 그러자 선배가 눈을 살짝 흘기며 말했다.
"종우 너,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 자고로 여자는 자기 취향에 안 맞는 분위기에는 흥분이 안 된단 말이야."
"그래서요?"
"잘 들어. 종우 너 졸업식 날 더 소중한 것을 줄 테니까 그때까지 공부나 열심히 해."
"소중한 게 뭔데요?"
"그건 그때 말해 줄게. 대신 내 입술과 가슴은 종우 네가 원할 때 오늘처럼 기꺼이 열어주고 만지게 해 줄게. 됐지?"
"하늘에 두고 맹세할 수 있어요?"
"응. 하늘과 땅이 뒤바뀌지 않는다면…."
"그런데 선배, 하필이면 지금은 왜 안 되고 졸업식 그날이죠?"
왠지 장담으로 들린 선배의 그 말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도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날 짝사랑하는 정우에게 선물로 줄 게 그것 밖에 없어서 그래. 한편으로는 그때쯤이면 여자로서 네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으니까. 말인즉슨 내가 줄줄이 달고 다니는 남자들을 다 떼어낸 다음에 널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야.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그리고 만에 하나 내가 섹스 경험이 일천한 그런 단순무지한 여자라는 상상은 안하는 게 좋아."
"…"
'제기랄! 이런 요부를 내가 사랑하고 있다니…. 아냐! 요부라도 좋아! 내 이상형인데 그게 걸림돌이 될 수는 없어!'
"얘, 그만 일어나자. 애들 기다리겠다. 아마도 지금쯤 난리도 아닐 거야."
그랬을 것이다. 소리 소문 없이 증발해 버렸으니.
내 손을 잡고 나를 일으켜 세운 선배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내 입술을 훔친 것도 그때였다.
"으으, 선배!"
나로선 그때가 이성과의 첫 키스였다. 내 입안으로 헤집듯 미끄럼을 탄 선배의 뜨거운 혀 놀림은 그야말로 현란했고 말초신경이 녹아버릴 정도로 감미로웠다.
한참동안 서로의 혀가 얽히고설킨 다음에야 혀를 빼낸 선배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얘, 앞으로 나한테 키스를 신청할 때는 오늘처럼만 해! 알았지? 자, 그만 가자."
그때 선배는 내 한쪽 팔짱을 끼었는데 내 팔꿈치에 전해지는 팽팽한 젖가슴의 볼륨감에 어쩌면 이 여자를 평생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듯 선배는 남자를 끄는 이상한 마력의 힘을 가진 그런 여자였다.
***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아, 아뇨. 선배 알몸을 보고 있자니 잠시 멍해졌나 봐요."
"녀석, 여자 몸 처음 보는 것도 아닐 텐데…."
"여자라고 뭐 다 같은가요."
"그래. 들어서 기분 좋은 말이니까 들은 거로 하지. 자. 어서 먹자. 그러고 보니 이런 알몸으로 마주 앉아 뭘 먹는다는 게 처음이지만 그래도 그리 나쁘진 않다, 그치?"
"이거 원 손이 떨려서 입에 바로 들어갈지 모르겠네요."
"그게 인간의 속성인 게야. 처음에는 다 서툴고 어색하고 눈치를 살피게 되고 그러다가 눈에 익고 손에 익으면 자동적으로 그 환경에 적응하게 되는 거지. 다음번에는 오늘보다 덜할 거야."
"다음번이라뇨?"
이게 또 무슨 궤변(?)인가 싶었다. 일일연속극처럼 시리즈로 엮자는 얘긴데 이리 되면 요상한 스토리 전개가 아닌가.
"나는 정우가 그런 방향으로 대시해 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선배?"
"오라, 여자 친구나 애인이 있는 게로구나?"
"아니면요?"
"아니면 당연히 대시를 해야지."
"그럼 그렇게 할 게요. 일주일에 한 번 여기 올 게요."
"얘, 가능하면 밤에 오면 좋겠어."
"왜죠?"
"자고 다음날 가야하니까."
"선배,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
"응. 종우 널 다시는 냉정하게 대하고 싶지 않아."
"그 말은 지금 선배에게 남자가 없다는 뜻인가요?"
선배가 대답은 하지 않고 대뜸 되물었다.
"종우 넌?"
"난 없어요. 선배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비록 첫사랑이었고 짝사랑이었지만 난 선배의 남자였으니까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아니 선배를 오늘 만나지 않았더라도 영원히 선배의 남자로 남고 싶었으니까요."
비로소 오늘에야 선배에 대한 내 마음을 고백한 꼴이었다. 왠지 가슴 한 구석 똬리를 틀고 내 정신과 육신을 지배하고 있던 하나의 짓눌림이 일시에 풀어지는 듯했다.
선배가 촉촉하게 젖어드는 눈길로 물었다.
"그 정도였니?"
"이 가슴을 열어 보여 드릴까요? 얼마만큼 새까맣게 타들어가 있는지…."
그러자 선배는 회한의 한 자락에 과거의 잔재들을 다 태워버리기라도 하듯 눈가에 이슬을 두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종우야, 미안해. 그냥 미안해! 나도 종우 널 언제부터인가 후배로 생각하지 않았어. 그러나 그때는…."
"그때는요?"
"여자지만 여자로 종우 너한테 다가설 수 있는 용기가 없었던 거야."
"왜죠?"
나는 다그치는 투로 물었다.
"그 이유는… 너도 알고 있듯이 나를 거쳐 간 남자가 한 둘이 아니었기 때문이야!"
그 말에 나는 그때의 억울한 심정을 단두대에 올려놓는 기분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선배, 사랑이 없이도 가능한 게 남녀 간의 섹스란 말도 있어요. 나 역시 여자랑 하고 싶을 때는 선배 알몸을 상상하며, 선배를 희롱한다는 기분으로 돈으로 그렇고 그런 여자를 사기도 했어요. 그렇듯 세상사 어차피 상대성이에요. 과거는 과거일 뿐이에요. 중요한 건 현재고 풀어야 할 건 미래가 아닌가 싶어요. 우리 이 시간 이후부터 선배의 과거는 현실의 지우개로 지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올바른 이성으로 오늘을 읽고 내일을 쓰고, 관능으로는 거듭 태어난 여자와 남자로 서로를 탐하고 즐길 수 있었음 해요. 우리에게 어울리는 유일무이한 사랑을 위해서라도 말이에요. 난 선배라면 자신 있어요. 선배는 어때요?"
"날 여자로 받아들인다면… 그럴 게."
그때 처음으로 선배가 정숙한 여자로 보인 건 왜일까?
"그럼 됐어요. 세상을 살려면 필요악이든 필요선이든 통과의례를 거쳐야 하는 것처럼 사랑 역시 확인절차가 필요하다 했어요. 남녀가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존재미는 섹스가 아닌가 싶어요. 빛 좋은 개살구지만 선배는 순결로 동정인 날 받아들이고 나는 동정으로 선배의 순결을 정복하고 싶어요. 할 수 있겠어요? 육신보다 정신이 우선되는 섹스를 말이에요?"
"응. 널 위한 여자로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그럼 우리 선배 침실로 가요."
"먼저 들어가 와인 한 잔 가지고 갈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