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8 회: 27 하숙생과 두 모녀 -- >
1
무려 1백통 넘게 이력서를 넣은 끝에 중견그룹 축에 드는 K사에 당당히(?) 합격을 했다.
하지만 6개월 동안의 수습 기간을 거쳐야 서울 본사 근무가 가능한 관계로 부득불(不得不) 지방에 있는 계열회사 소재지에서 하숙을 해야 했다.
서울 토박이인 내가 초행길이나 다름없는 거제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경이었다. 정확하게 이틀 후에는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 안에 하숙집을 구해야 했다.
점심도 거른 나는 일단 회사 가까이에 있는 주택가 골목을 발바닥에 열이 나도록 돌아다녔다. 주로 주택 담벼락과 전봇대를 유심히 살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9월 초라 등짝으로 땀이 흥건히 배어나고 있었다.
'제기랄! 똥도 약에 쓸려면 귀하다더니 ….'
한동안이나 이 구석 저 구석을 이 잡듯 하다 보니 입 안이 거북 등처럼 쩍쩍 갈라지는 듯한 갈증이 장난이 아니었다. 안되겠다 싶어 바로 가까이에 있는 구멍가게 수준의 슈퍼로 냅다 달려가 생수 한 병을 사고 막 나오는 순간 내 발목을 낚아채는 뭔가가 있었다.
그것은 눈에 잘 띄도록 청 테이프로 전봇대에 착 달라붙어 있는 하숙 광고 전단지였다.
'옳거니!'
속으로 쾌재를 부른 나는 부리나케 달려가 전단지 하단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와 휴대폰 번호부터 확인하고 지역 번호를 몰라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스럽게도 바로 연결이 되었다. 여자 목소리였다. 음색이 옥구슬이 구르는 듯 낭랑했다. 아니 뭇 사내들의 심장을 녹이고도 남을 만큼 교태 끼마저 감지되는 야릇한 분위기를 잔뜩 풍기는 그런 목소리였다.
"저 …, 하, 하숙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첫 마디를 더듬거리고 말았다.
- 죄송해서 어쩌죠? 지금 밖에 나와 있었어요. 한 30분 후에는 만날 수 있겠는데 … 괜찮으시다면 그때 다시 전화 주시겠어요?
'젠장, 완전히 폰섹스 스타일이구먼.'
그만큼 그녀의 목소리는 섹시 그 자체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일면식도 없는 여자의 목소리에 흥분이 되기는 머리털 나고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일까. 문득 그녀가 어떤 타입일까 하는 상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그, 그럼 30분 후쯤에 전화를 다시 드리겠습니다."
- 참, 지금 있는 곳이 어디에요?
"아, 예, 그러니까 … 동신 슈퍼 바로 옆에 있는 전봇대 앞 …."
잡스런 생각에 빠져있던 터라 얼버무리듯 내뱉은 말이 채 갈무리되기도 전에 그녀의 목소리가 대뜸 끼어들었다.
- 어머, 잘 됐네요! 바로 그 근처거든요. 슈퍼 주인에게 탱자나무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되는데 …. 다시 전화를 하더라도 집을 알고 있으면 번거로움을 덜 수 있잖아요.
한꺼번에 너무 많은 말을 들은 터라 혼란스러웠지만 슈퍼에서 탱자나무 집을 물으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은 귀에 쏙 들어왔다.
"그럼 그렇게 할 게요.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나는 재치가 있는 여자라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끊고 다시 슈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나는 슈퍼에서 100미터도 채 안 되는 지점에 파란 철 대문 바로 옆에 탱자나무가 있는 2층 단독주택을 찾을 수 있었다.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문 나는 괘종시계 시계추처럼 대문 앞을 왔다갔다 어슬렁거렸다. 30분 후에야 주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더욱이 초행길이나 다름없는 낯선 곳이라 마땅히 갈 곳이 없는 나로서는 이렇게라도 해서 시간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어라!'
여태껏 수십 번도 넘게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보지 못했다는 게 우습기도 했지만 하여튼 철 대문에 딸린 작은 문이 빠끔히 열려 있었다.
'벌써 왔을 리는 만무할 테고 …. 그렇다면 안에 누가 있다는 얘긴데 ….'
문득 여자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안에 있는 게 확실하다는 생각을 한 나는 작은 문을 지그시 앞으로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현관문이 마주 보이는 마당 한가운데 서서 딱 두 번, 실례합니다! 계십니까! 하는 인기척을 냈다.
그런데 이 무슨 경우인지 사람의 인기척이라고는 그 어디에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들릴 듯 말 듯한 좀은 수상쩍고 이상야릇한 가녀린 소음이 내 귓전을 맴돌았다.
'이게 무슨 소리지?'
불현듯 괜한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나도 모르게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 괴이한 소리의 진원지는 작은 텃밭 쪽으로 창문이 나 있는 방이었다. 다행히 커튼이 양 옆으로 오픈된 상태라 얼굴만 들이밀어도 방안이 훤히 들여다보일 것 같았다.
해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창문 안쪽으로 눈길을 던졌다.
'헉!'
순간, 나는 하마터면 비명 같은 소리를 입 밖으로 토할 뻔했다. 아닌 게 아니라 방 안에서는 도발적이면서도 선정적인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주인공은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소녀라고 해야 할지 숙녀하고 해야 할지, 하여간 내 눈에는 영계 축에 드는 계집아이로 보였다,
샛노란 반팔 티 위로 봉긋 솟은 탐스런 젖무덤의 볼륨감이며, 잘록한 허리까지 내려오는 갈색의 긴 머리카락이며, 콧날이 오뚝하니 선 옆모습이 가히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계집아이 두 다리가 좌우로 쩍 벌어진 상태에서 턱하니 책상 위로 걸치다시피 하더니 오른손을 냉큼 사타구니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아래위로 오르락내리락 하기 시작했다.
'뭐야?'
졸지에 내 뜻과는 상관없이 그 환상적인 짓거리를 목격한 나는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계집아이 아랫도리는 그 짓거리를 증명이라도 하듯 팬티를 거부한 맨살이었는데 탱글탱글하게 익은 뽀얀 허벅다리의 탄력이 꿈틀거릴 때마다 팽팽한 윤기마저 자르르 흐르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숨이 멎는 듯한 경악스러움에 사로잡힌 나는 나도 모르게 입 안에 가득 고인 군침을 꿀꺽 삼켜야 했다.
그랬다. 계집아이는 벌건 대낮에 포르노성 야동을 보며 자위행위를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방 한가운데 길게 드러누워 있는 오후의 햇살도 수줍은 듯 숨을 죽인 채 계집아이의 자위행위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계집아이는 한껏 달아오르는 중인지 앙증맞은 입술 사이로 뜨거운 신음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뒤로 젖힌 상태에서 다른 한손으로 자신의 젖가슴을 그러쥐고 쥐어짜듯 비틀어대고 있었다.
희미하게 귓전을 간질이는 계집아이의 축축한 신음소리에 동화된 나는 연신 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단단하게 팽창해 있는 아랫도리 자존심을 오른손으로 움켜잡고 있었다.
'젠장!'
그 여느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주체하기 힘든 묵직하면서도 뻐근한 기운이 잔뜩 쏠리고 있었다.
그때 계집아이는 여전히 아래위를 동시에 공략하고 있었다. 한껏 상기된 표정인 걸 보면 감당하기 어려운 흥분에 흠뻑 젖어 있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이었다. 아랫도리 은밀한 부위를 들락거리는 손놀림이 아까보다 더 빨라지고 있었다. 탱탱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허벅다리 경련도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는 걸 보면 얼마 안 있으면 자신이 의도했던 그 무엇을 이룰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지랄 같은 생 쇼에 흠뻑 빠져든 나는 죽자 사자 자존심 녀석을 자극해 나갔다. 체면 불구하고 계집아이가 꽃잎을 활짝 열어젖힐 때 자존심 녀석을 밖으로 꺼내 사정의 방아쇠를 당길 참이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 또한 크기 마련인지 계집아이나 나나 아쉬움의 독배(毒杯)를 들어야 했다.
"얘 좀 봐! 들어왔으면 문부터 단속하지 않고 …."
대문 쪽에서 들리는 주인 여자의 목소리인 듯한 기척에 화들짝 놀란 나는 황급히 튀어나와 먼저 인사부터 했다.
"죄, 죄송합니다! 문이 열려 있기에 그만 실례를 했습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아까 전화를 한 김민준이라 합니다."
나는 한꺼번에 많은 말을 구슬 꿰듯 줄줄 쏟아냈다.
"어머나! 노, 놀랐잖아요!"
많이 놀란 얼굴로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는 뒷걸음질을 치며 한 손으로 입까지 막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앙증스런 보조개가 양 볼에 하나씩 찍혀 있었다.
"노, 놀라게 했다면 거듭 죄송합니다."
고개까지 숙이며 무례함을 사과한 나는 은근슬쩍 그녀의 외양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딱히 미모는 아니지만 수더분한 인상에 30대 후반 쯤으로 짐작되는 그녀는 하반신 와이라인 윤곽이 확 드러나는 타이트한 청바지에 네크라인이 깊게 파인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첫눈에 봐도 봉긋 솟구쳐 있는 젖무덤의 볼륨감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리고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어서인지 키는 늘씬한 편이었고, 나이에 비해 군살이라고는 전혀 없는 아랫배와 잘록한 허리 그리고 미끈하게 빠진 다리가 뇌쇄적(惱殺的)인 각선미를 연출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섹시 그 자체라 해도 괜찮을 성 싶은, 그러니까 사내라면 한번쯤은 유혹을 하고 싶거나, 유혹을 당하고 싶은 그런 타입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렇듯 내가 느낀 그녀의 첫인상은 섹시한 목소리에 어울리는 섹시미가 잔뜩 풍기는 그런 여자였다.
어느새 내 심장은 심하게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문득 황홀경에 빠져 느끼는 벅찬 감정이란 게 이런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별 말씀을 …. 하여튼 이렇게 쉽게 만났으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저,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그녀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됐는지 속눈썹이 유난히 긴 눈으로 나를 지그시 응시하며 다소곳하게 물었다.
"네, 말씀하세요."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빨아들일 듯 직시하며 또렷하게 대답했다.
"이쪽 말씨가 아닌 것 같은데 … 혹시?"
"아, 네 …. 실은 서울에서 왔습니다."
그렇게 운을 뗀 나는 거제까지 내려와 하숙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간략하게 얘기했다.
그러자 그녀가 이해가 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방부터 봐야겠네요. 먼저 마음에 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방은 이층이에요. 전망이 좋다고들 하는데 어떨지 …."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은 따로 있었다.
나는 앞서 계단을 올라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세류요(細柳腰)를 연상케 하는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도 허리지만 타이트한 청바지에 감싸인 팽팽한 둔부의 하늘거림에 미치다 못해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래서일까. 잠시 소강상태에 빠져있던 아랫도리 자존심에 다시 걷잡을 수 없는 벅적지근한 힘이 뻗치고 있었다.
'인마, 분위기 파악도 할 때 해야지 …. 알았으니 그만 대가리 숙여!'
나는 불룩하니 텐트를 치고 있는 녀석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기분이었다.
"들어오세요!"
막 이층 방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라는 눈짓을 하는 그녀에게 나는 멋쩍은 웃음을 날렸다.
"아, 네!"
"애 아빠가 서재로 쓰던 방이었는데…."
말꼬리를 얼버무리는 그녀의 표정 위로 왠지 모를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데 왜?"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경우인지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그만 생각지도 못한 한 마디를 내뱉고 말았다.
'이런 젠장!'
순간 괜한 걸 물었다 싶은 생각이 안 든 건 아니지만 이왕 내뱉은 이상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녀가 먼저 성큼 방 안으로 들어서며 내뱉는 말에 싸늘한 기운마저 감지되고 있었다.
"이 세상에 …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이에요."
결국 그녀는 혼자 사는 여자임을 내 앞에서 보란 듯이 광고를 한 셈이었다.
일순 나는 초라한 연민보다 뜨거운 스캔들을 머릿속에 먼저 그렸다. 이 정도 수준의 여자라면 도시락을 싸다니면서까지 유혹이란 명분으로 훔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애써 동정어린 한소리를 내뱉었다.
"이런 제가 실수를 했군요? 죄송합니다."
그녀는 내 사과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 방을 둘러보며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방을 건성으로 훑어보았다.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눈독을 주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놈처럼.
"저 침대는 애가 쓰던 거였는데 구입한 지가 얼마 안 된 거라 버리기가 아까워서 …."
그때 처음으로 내가 말을 끊었다.
"사모님, 저 침대 제가 쓰면 안 될까요?"
그 말에 그녀가 대뜸 반색을 하며
"그럼 이 방을 쓰실 거예요?"
하고 되물었다.
"네."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결국 구체적인 사항은 1층 거실 소파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