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2 회: 16 빛바랜 금욕(禁慾)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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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원룸 현관문을 열고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선 영우는 욕실 쪽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안면 가득 드리웠다.
그러는 그의 손가락에는 그녀의 자동차 키 뭉치가 걸려있었다.
'후후! 타이밍치고는 절묘하구먼!'
영우는 욕실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옷을 하나씩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쇼킹하다할 만큼 극적인 장면을 연출함으로 해서 그녀에게 그 어떤 항거나 저항의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나름의 정면 승부수였다.
어찌 보면 기선 제압용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후후! 이 정도면 천하에 둘도 없는 성녀聖女라도 돌아앉겠지.'
영우는 당장이라고 일을 치룰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게 팽창해 있는 아랫도리 자존심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자신인지 자만인지 모를 뿌듯함에 한껏 기고만장해 있었다.
한편 뜨거운 물에 샤워를 끝낸 은수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들어갈 데와 나올 데가 확실한 요철凹凸의 볼륨감과 뇌쇄적인 각선미 그리고 육감적인 윤기마저 자르르 흐르는 알몸을 매우 만족스런 얼굴로 이모저모 뜯어보고 있었다.
'그래, 아직은 팽팽해. 시들지 않았어. 후후, 그러면 뭘 해. 아무 쓸모 짝에도 없는 몸인 걸'
그랬다.
5년여의 독신 생활 동안 본의 아니게 금기기禁忌時 해 온 금욕이 주는 상실감에 사로잡힌 그녀는 눈이 부실 정도로 섹시한 육체적 아름다움도 실감으로 와 닿지 않았다.
'후후! 언제쯤 나오려나. 이거 이대로 그냥 쳐들어가야 하는 거 아냐! 아니지,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기라도 하면 말짱 도루묵이잖아. 그나저나 기절은 안 해야 할 텐데 ….'
영우는 극적인 것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이런 흉측스런 몰골을 보고 입에 거품을 물며 까무러치지나 않을까 하는 최악의 사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절한 여자를 일방적으로 어찌한다는 건 각본에 없었으니까.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영우는 내심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서서히 경직도가 약해지고 있는 자존심을 한 손으로 거머쥐고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욕실 문이 스르르 열렸다.
"악! 누, 누구? 아, 아니! 너, 넌!"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완벽한 알몸 그대로 밖으로 나온 그녀는 그냥 온 몸에 소름이 돋는 여지조차 찾지 못한 채 단말마 비명을 지르며 스르르 바닥으로 허물어지는데 급급해 했다.
"선배, 죄송해요! 이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용서는 나중에 빌게요!"
그때 영우는 눈이 부실 지경인 우윳빛 알몸 구석구석을 마치 탐색이라도 하듯 내리훑고 있었다.
"아,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어, 어쩜 이럴 수가 있니? 제발! 가, 가까이 오지 마! 다가오면 나 이대로 혀 깨물고 죽어버릴 거야!"
얼어붙은 듯 옴짝달싹도 못한 채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은수는 자신의 두 눈이 저주스럽기까지 했다. 차라리 눈먼 장님이었으면 싶었다.
'아, 이건 현실이 아냐! 난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거야!'
그녀는 결코 있을 수 없는 현실임을 극구 고집하며 두 눈을 감아버렸다.
보고 싶지 않는 아니, 봐서는 안 될 흉물 때문이었다.
그랬다.
그녀가 두 눈을 질끈 감은 건 완벽하게 발가벗은 영우의 알몸도 알몸이지만 수컷의 상징인 아랫도리 자존심이 독기를 품고 벌겋게 달아올라 하늘을 찌를 듯 보무도 당당하게 곧추 서있는 모양새 때문이었다.
"선배, 너무 아름다운 몸이네요. 왠지 이러는 나 자신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건 왜일까요?"
"대, 대체 어, 어떻게 드, 들어 온 거야?"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그녀는 영우가 원룸 안에 다시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가 않았다.
"후후, 선배는 두 가지 실수를 하셨더군요."
"시, 실수라니?"
그녀는 실수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첫 번째 실수는 현관문 키가 달려있는 차 키 뭉치를 미리 챙기지 않은 것과 두 번째 실수는 현관문 체인을 걸지 않았다는 사실 …."
그때 영우는 두 눈으로 무방비 상태로 드러나 있는 그녀의 풍만한 젖무덤을 집요하게 핥고 있었다.
은수는 귀를 막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아랫도리 와이계곡이 있는 그대로 드러날 것이 자명自明한 일이라 그저 듣기 싫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며 영우의 말을 가로챘다.
"그, 그만해! 후회하고 있으니까. 영우 넌, 나쁜 놈이고 교활한 놈이야! 안심을 시켜놓고 방심을 할 거라는 걸 예상하고 각본을 썼을 테니까."
"하지만 만에 하나 선배가 평소처럼 현관문 체인만 걸어 놓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래, 이제 어쩔 참이야?"
'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야?'
-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잖아?
- 당연한 말을 한 건 맞지만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웃기지 않니?
- 하긴, 방어본능 치고는 해석하기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지는 말이긴 해.
- 그나저나 이대로 당해야 하는 거니?
- 그 짓거리는 절대 안 된다고 애원이라도 해보는 게 어때?
- 나더러 애원을 하라고?
- 자존심상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이니?
- 혀를 깨물고 죽으면 죽었지 애원 따윈 안 해!
- 그럴 용기가 있긴 있는 거니?
- 못할 것 같니?
- 가정과 남편이 있는 유부녀도 아니고 그렇다고 결혼을 약속한 애인도 있는 것도 아닌데 양심이니 윤리니 정조니 하는 것으로 자신을 폄하貶下하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닐까?
- 그래서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뭐니?
- 그냥….
- 그냥, 뭐?
- 이런 말해도 화 안 낼 거지?
- 해!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니까.
- 그냥 … 미친 척 해버려!
- 미친 척 하라는 것은 아무 생각 말고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라는 그 뜻이니?
- 그래. 피할 수 없는 상황일수록 차라리 즐기라는 말도 있잖아.
- 말도 안 돼! 나더러 이 작자 손아귀에 놀아나라는 거니?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니?
- 싫으면 그냥 네 말대로 혀 깨물고 죽든지 맘대로 해.
- …
- 왜 말이 없어?
-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 거니?
- 비상구는커녕 탈출구조차 없는 사면초가四面楚歌 신세라는 걸 인정하는 게 좋을 거야.
- 나쁜 자식!
"선배, 이미 나쁜 놈, 교활한 놈으로 낙인찍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불을 보듯 뻔한 거 아닙니까?"
"물론 그 최선의 행동이란 게 내 몸을 가지는 거겠지?"
사뭇 도전적인 은수의 반격에 영우는 내심 반기는 표정이 역력했다.
"선배, 지금 이실직고以實直告 하는 거지만 굳이 오늘이 아니더라도 이런 기회는 왔을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니?"
"사실 강간을 해서라도 선배를 취하고 싶었으니까요. 그 이유는 학교 선배이기 전에 한 여자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
"또 할 말이 남은 거니?"
"선배 같은 매력적인 여자를 취하지 않으면 남자로 태어난 게 불행일 것 같았으니까요."
말 끝나기 무섭게 영우가 성큼 다가서자 은수는 몸을 뒤로 빼며 단호하게 말했다.
"오, 오지 마! 그대로 있어!"
"선배, 그대로 있으란다고 있을 거라고 믿는 건 아니겠죠?"
"그래, 알아! 당할 때 당하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어."
"선배, 무슨 말인데요? 나라는 놈 이럴 땐 인내심이 풍부한 놈은 못 되니까 짧고 간단하게 말해요,"
"나쁜 자식! 먼저 불부터 꺼! 어서!"
어쩌면 그녀는 환한 형광등 불빛 아래서 무참하게 능욕을 당하는 수치심만큼은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선배의 그 섹시한 알몸을 감상할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그리 썩 좋은 제안은 아니지만 …. 좋아요, 선배의 뜻이 정 그렇다면 기꺼이 받아들이죠."
영우는 진한 아쉬움을 애써 삭히며 몸을 틀어 불을 꺼버렸다.
그러자 칠흑 같은 어둠이 실내를 뒤덮었다. 순간, 그 어둠을 가르는 듯한 은수의 당찬 목소리가 영우의 귀를 때렸다.
"영우 너, 한발작도 움직이지 말고 똑똑히 들어!"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들으라면 들어, 이 나쁜 자식아!"
은수는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듣긴 듣겠지만 짧게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아랫도리 이 녀석이 한계를 느끼면 통제 불능이니까요,"
"잘 들어! 이건 충고니까 참고하는 게 좋을 거야. 믿든 안 믿든 그건 네 자유지만 …. 나, 사실 5년 동안 금욕에 길들어진 수녀처럼 살았어. 너 같은 수컷 입장에서 말하면 5년 동안 섹스에 섹 자로 모른 채 굶었다는 뜻이야."
"그럼 처녀나 다름없겠군요?"
"그래, 남자 아랫도리에 길들어지지 않은 처녀나 진배없어."
"그래서요?"
"그러니 아프지 않게 소중한 물건 다루듯 살살 다루어 달라는 거야. 그냥 우격다짐으로 그냥 무지막지 하게 찌르지 말란 말이야. 아프다는 소리가 안 나오게 말이야! 무슨 말인지…."
"서, 선배!"
순간. 영우는 그녀의 말을 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지적에다 고상하고 우아하다 할 정도의 귀티 나는 품위를 인격처럼 달고 다니는 그녀의 입에서 그런 난잡하고 음란하기 짝이 없는 되바라진 말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내뱉어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은수의 악담은 더 노골적으로 영우의 두 귀를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계속 들어 나쁜 자식아! 망가지기로 작정한 년이 아니, 망가질 게 불을 보듯 뻔한 계집년이 무슨 말을 못할까. 그 말은 통증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라도 충분히 아니, 흥건하게 젖었을 때 들어오라는 뜻이야. 그리고 …."
"또 할 말이 남은 겁니까?"
"내가 신음소리를 내도 그건 내 의지가 아니니까 이 여자가 진짜 흥분해서 아니, 미치도록 좋아서 이 생 지랄을 떠는구나 하는 착각이나 오해 따윈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서, 선배!"
"그리고 이건 꼭 알고 덤벼야 할 거야. 내 성감대性感帶는 좀 특이해. 젖꼭지도 아니고 귓불도 아니야."
"그럼 어디에요?"
"허벅다리 안쪽이 제일 민감해. 그리고 나, 영우 너랑 그 몹쓸 짓거리 하는 거 빨리 끝내고 싶으니까 … 내가 허락할 때까지 내 몸에 손끝 하나 건드리지 마! 알았지?"
"선배, 그건 너무 야박한 거 아닌가요?"
"토 달지 말고 옆으로 비켜 서."
"왜죠?"
"내 발로 침대로 갈 테니까. 이건 선배가 후배에게 하는 경고야. 여자가 남자에게 하는 부탁이 아니란 말이야."
말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퍼질러 앉아 있는 자세를 풀고 침대로 걸어갔다,
그때 영우는 어둠 속에서 새하얀 빛을 두른 채 하늘거리는 그녀의 뒤태 각선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싱글 침대 위에 반듯하게 드러누운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어떤 처지에 직면해 있는지를 비로소 실감했다.
'그래, 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건 없는 거야. 누가 그랬지. 소중한 건 쉽게 잃어버린다고 ….'
- 그래, 이게 어쩌면 네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현명이고 최고의 지혜인지도 모르지.
- 과연 현명이니 지혜니 하는 말로 나 자신을 합리화 할 수 있을까?
- 순수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당하는 일이지만 그런 쪽으로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지 않을까?
- 하긴, 세상사가 초대하지도 않은 타의에 의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다반사茶飯事니까.
- 근데 너, 괜찮겠어?
- 뭐가?
- 네 몸에서 일어나는 성적 반응 말이야?
- 너도 그게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구나?
- 사실이 그렇잖아. 장장 오 년 동안 단 한 번도 받아들인 적이 없는 남자 아랫도리 이물질인데 난들 왜 그런 생각이 안 들겠니?
- 사실 나, 그게 두려워! 내 몸이 어찌 반응할지 무서워! 그냥 아무 느낌도 없었으면 좋겠어.
그랬다.
막상 마음을 다잡을수록 겁이 나고 두려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건 어쩌면 5년이란 긴 세월 동안 섹스에 관한 한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한 자신의 몸에 대한 의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은수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음욕의 불을 켜고 있는 영우에게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어서 올라와! 이제 영우 네 마음대로 해! 깔아뭉개든 짓이기든 꼴리는 대로 해. 다만 … 아프게만 하지 마! 바라는 건 그것뿐이야! 뭐해? 미친놈처럼 어서 덤비란 말이야! 어서!"
"선배, 말 좀 순화시키면 어디가 덧납니까?"
"미친년이 미친놈과 정신 나간 짓 하는 마당에 고운 말이 나올 거라고 기대했다면 그건 네 착각이야!"
"네 말은 선배 다른 면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