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141화
비보잉 TV의 운영자 덤블러가 히로바 공연장 객석에 앉아 카메라를 켰다.
그도 한때는 비보이를 꿈꾸던 지망생이었지만, 배틀 도중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은퇴를 하고 지금은 비보잉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었다.
“컴배트 오브 더 이어. 구독자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죠? 이제 B조 16강전 첫 경기, 대한민국의 파워스쿨과 미국의 크로스 핏의 대결이 시작되겠습니다.”
덤블러는 라방을 시작했다. 구독자 1.1만의 작은 채널이었지만, 컴배트 오브 더 이어는 메이저 대회인 만큼 접속자는 금방 100명을 넘었다.
국내에 얼마 남지 않은 비보잉 찐팬들이었다.
- 일본까지 가서 고생 많아요.
- 덤블러, 일본 공기는 어때요?
- 드디어 시작하는구나.
- 오늘만 기다렸다.
- 아, 근데 왜 하필이면 첫 경기부터 미국이냐?
- 대진운이 없네.
- 덤블러 일본까지 가느라 여비도 많이 썼을 텐데...
후원금 3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후원금 10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접속자들은 덤블러에게 인사를 건네고 후원금도 쏘아가며 불운한 대진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경기에 패배의 기운이 물씬 느껴져 씁쓸했다.
‘오늘 방송 망했겠지. 중간까지만 가줘도 좋을 텐데... 하필 첫 경기부터 미국이냐.’
덤블러도 불안했다.
파워스쿨이 쭉쭉 올라가 줘야 접속자가 늘어나고 채널이 성장할 발판을 삼을 수 있을 텐데, 첫 경기부터 탈락한다면 일본까지 따라 온 노력이 수포가 될 터였다.
“네. 처음부터 너무 강한 팀을 만났어요. 파워 무브의 장인 레니게이드만 해도 두 말이 필요 없잖아요.”
덤블러는 멘트를 날리면서 접속자 수를 슬쩍 봤다. 189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지금은 경기가 코앞이라 증가하고 있었지만, 미국과의 경기에서 진다면 반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 어차피 우승하려면 한 번은 붙어야 하는 거 아님?
- 4강에서 만났다면 좋았을 것을... 그쯤이면 레니게이드 힘 좀 빠져 있을 텐데...
- 파워스쿨은 힘 안 빠지냐?
- 여러분 이건 아셔야 합니다. 어차피 우승은 못 해요. 파워스쿨은 루틴은 강하지만 임팩트 있는 크루가 없어요.
- 리오와 골렘 있는데?
댓글창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올라왔다. 덤블러도 자기 의견을 내놓았다.
“리오와 골렘이 뿜뿜 아이돌 무대를 찢어 놓긴 했지만, 실제 배틀 경험이 부족해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 맞아. 예능에서 하는 거랑 진짜 대회랑 같겠냐?
- 리오는 아이돌 하느라 비보잉 오래 쉬었잖아요. 기량을 회복 못했을 거예요.
- 아이돌이 비보잉 비빈다는 게 말이 안 되지.
- 리오는 그냥 아이돌이 아니라 헤이데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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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방의 채팅창이 뜨거운 그때,
파워스쿨의 수장 모도가 무대에 오르기 전 크루들을 불러 모았다.
“대결이 시작되면 먼저 음악을 들어. 처음 들어보는 곡이라도 세션이 비슷하니까 비트를 예상할 수 있을 거야. 되도록 비트 킬링 포인트는 예측해서 맞추고. 가산점 주는 심사위원도 있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 같은 동작이라도 보기에 좋다. 비보이가 기술을 요하는 스포츠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댄스. 춤에 동작을 맞추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떤 음악이 나올지 모르는 것이 함정이라, 어떤 비보이는 동작을 음악에 맞추는 걸 포기하고 준비한 기술을 그냥 선보이는데, 좋은 점수를 얻기는 어렵다.
“순서는 저글링, 넉다운, 어썸으로 가고, 분위기를 가져와야 할 턴에서는 골렘이 나간다.”
“네.”
모도의 눈길이 저글링에서 넉다운, 어썸 그리고 골렘에게로 옮겼다가 리오에 까지 닿았다.
“레니게이드가 나오면 리오가 출격한다.”
“네.”
리오를 바라보는 모도의 눈빛이 믿음으로 가득했다.
“루틴은 순서대로 2번 14번 7번이다.”
모도는 손을 제일 밑으로 놨다. 그 위로 크루들의 손이 하나씩 포개졌다.
“자, 이제 신나게 한번 놀아보자!! 올 포 원! 원 포 올!”
“올 포 원! 원 포 올!”
“파이팅!”
“고고~”
팀 구호를 크게 외치고 파워스쿨은 무대 위로 올라갔다.
리오는 공연장을 쭉 훑어보았다.
물결치는 관객들과 카메라, 조명, 심판, 디제이 그리고 벽에 붙어 있는 컴 배트 오브 더 이어 현수막.
수년간 꿈에서 보았던 그대로였다.
‘이제 악몽을 끝내자.’
주먹을 불끈 쥐며 마음을 다잡았다.
우승 후보 미국을 상대하지만 전혀 기죽지 않았다. 어차피 목표는 우승이니까.
크로스 핏의 크루들도 무대로 올라오자,
MC가 디제이를 쳐다보며 음악을 주문했다.
“디제이 레이온, 렛츠 겟 투 더 코티!!”
빵! 빵! 빵!
브레이크 비트가 고출력 스피커에서 터져 나왔다.
“여러분 시작됐습니다!! 크로스 핏의 그레이트 원이 선공입니다.”
경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덤블러도 바빠졌다. 접속자 수는 251명이었다.
- 몸이 가볍네요.
- 로봇인가요?
- 로봇도 저렇게 빠르진 않을 것 같다.
- 우왕. 역시 우승 후보 미쿡팀.
“몸의 균형과 스킬 연결이 자연스럽네요. 그레이트 원은 2019년에 파이어 볼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비보이입니다.”
- 근데 뭔가 산만하지 않나요? 나만 느끼나?
- 음악하고 동작이 안 맞는 거 같음.
- 기술은 좋은데 음악이랑 따로 논다.
- 레퍼토리대로 하니까 조금씩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기술은 좋았지만 음악을 못 맞춰 아쉬움을 남긴 그레이트 원이 들어가고, 파워스쿨의 저글링이 나왔다.
“저글링은 스타일리시한 동작으로 유명하죠.”
저글링은 탑락의 브롱스 스텝을 밟으며 무대 곳곳을 휘젓고 다녔다. 그다음 공중제비를 한 바퀴 돌고 고다운으로 내려가서 날개를 퍼덕이듯이 CC스텝.
- 발이 정신없이 움직이네.
- 공중에서 발을 바꿨어.
- 스텝만으로도 눈 돌아갑니다.
“와우, 풋워크는 명불허전입니다.”
라방 접속자 수가 320명을 넘었다. 덤블러는 늘어나는 접속자 수에 신이 나서 중계를 이었다.
“이제 크로스 핏의 첫 번째 루틴 들어갑니다. 미국팀은 플립이나 덤블링 같은 화려한 기술을 쓰는 게 특징인데요. 오늘은 어떤 동작을 보여줄지 한번 볼까요?”
크로스 핏은 사람 줄넘기를 만들어 빙글빙글 돌리면서 그 위를 넘나들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식상한 동작이었다.
- 쟤네들 탄력 하나는 알아줘야 함
- 잘하긴 한데 뭔가 지루하다.
- 우와, 등 밟고 공중 2회전. 이건 쎄다
- 서커스 보는 것 같네요.
“지금부턴 파워스쿨의 반격이 있겠습니다. 파워스쿨은 개인전보다 루틴이 강합니다. 그동안 창의적인 루틴도 많이 선보였고요. 기대됩니다.”
슬렘, 넉다운, 헬라 세 크루가 할로우 백으로 징검다리를 만들고,
그 위를 어썸이 밟고 지나가다가 360도 공중제비를 돌고 정확하게 착지.
“오호호호. 지린다. 역시 파워스쿨은 루틴 장인입니다.”
- 짝짝짝짝짝
- 오잉? 내가 지금 뭘 본 거임?
- 루틴은 파워스쿨이 맛집
- 이러면 게임 끝 아님?
“여러분, 여기 관객들이 난리 났습니다. 한번 보세요.”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하려 덤블러가 카메라를 객석으로 돌렸다.
수건을 흔들며 소리를 지르는 관객들이 포착되었다. 한쪽으로 헤이데이의 일본 팬클럽도 질서정연하게 부채를 부치며 응원하고 있었다.
- 우왕. 관객들 난리 났네.
- 저 멋진 걸 직접 봤으니 난리날 수밖에.
- 근데 헤이데이 팬들도 있네.
- 일본에서도 인기가 있나.
- 파워스쿨 이긴 것 같다.
“분위기가 파워스쿨로 넘어왔지만 아직 미국팀엔 레니게이드가 있습니다. 결과는 아직 모르니 끝까지 지켜봐 주십시오.”
멘트를 쏟아붓고 있는 사이 덤블러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접속자 수가 갑자기 네 자리를 찍었기 때문이다.
1709
채널이 개설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불어난 접속자 수만큼 채팅창도 바빠졌다. 글들이 너무 빠르게 올라가고 있어 캐치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 일본에 헤이데이 팬클럽이 있나 보네요.
- 리오는 나왔나요?
- 우리가 이기고 있는 거얌
- 날아다니네
- 소문 듣고 왔어염
- 덤블러 형 나 조금 늦었어. 근데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낯설게...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왜 갑자기 접속자가 폭주하고 있는지... 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채팅해주세요.”
- 헤이데이 팬카페에서 소문 듣고 왔어요
- 알고리즘 추천받고 왔어요,
- 리오 방송한다고 해서요.
- 근데 운영자님 방송 안 해여?
“아, 헤이데이 팬분들과 비보잉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소문 듣고 오셨군요. 감사합니다.”
그 순간, 크로스 핏의 레니게이드가 전광석화처럼 튀어나왔다. 분위기가 파워스쿨로 더 넘어가기 전에 진화에 나선 것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네요. 레니게이드가 출동합니다.”
그는 들짐승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역시 레니게이드입니다. 근육이 고무로 되어 있다는 설도 있던데 과장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 아, 말씀드리는 순간, 레니게이드의 시그니처 동작 토네이도 코핀에 이어서 백 덤블링. 와아, 바닥에 누운 상태에서 나인티 나인을 꼽습니다!”
- 으아아아아
- X발 인간이 아니네
- 와우!!
- 앞에 건 전부 페이크였어
- 너무해.
- 파워스쿨에게 희망은 없나요?
“레니게이드의 타점 높은 윈드밀, 헤일로, 크리켓 삼단 콤보가 무대를 뒤집었습니다. 분위기는 다시 미국으로 넘어갑니다.”
덤블러와 시청자들, 파워스쿨과 크로스 핏 크루들 그리고 관객과 심판까지 모두 레니게이드의 현란한 기술에 넋을 놓고 있을 때,
리오는 차례를 기다리며 오직 비트에 집중하고 있었다.
와와와
짝짝짝
레니게이드가 모두를 홀려놓고 진영으로 들어갔고, 리오가 무대 한가운데로 뛰쳐나왔다.
리오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엘보 무한 스핀을 돌기 시작했다.
“리오가 나왔습니다. 과연 분위기를 다시 가져올 수 있을지···”
- 왔다아아아!!!!
- 쌌다아아아!!!
- 와아, 엘보 무한 스핀을 바로 꽂아 버리네
- 리오, 사랑해!!!!
- 리오, 리오, 리오.
“여러분 리오의 저 일자 다리를 보세요. 완전 곧은 일자예요.”
- 그게 왜요?
- 중요한가요?
비보잉을 잘 모르는 일반인이 많아서 덤블러는 차근차근 설명을 해야 했다.
“대부분 비보이들은 나인티나인, 투 싸우전즈, 투틴, 더블틴 할 때 중심을 잡기 위해 다리를 만자(卍)로 합니다. 그러다 원심력이 어느 정도 올라오면 다리를 올립니다. 그런데 리오는 바로 곧은 자로 들어갔다는 겁니다. 거기다 무한 회전. 게임 끝입니다!!”
- 와와. 리오 만세.
- 우리 리오가 해낼 줄 알았습니다.
- 자랑스러운 헤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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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보 무한 스핀을 성공시킨 리오는 할로우 백 도끼발, 한손 크리켓, 숄더 슬라이더까지 쉬지 않고 선보였다.
리오라는 이름을 전 세계 비보이들에게 각인시키는 순간이었다.
와와와
짝짝짝짝
리오 넘버 원!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을 질렀고, 파워스쿨의 크루들은 무대 위를 펄쩍펄쩍 뛰었으며, 크로스 핏의 크루들은 고개를 떨구었다.
파워스쿨의 완전한 승리였다.
“시청자 여러분 이거, 이거 보이십니까? 저 닭살 돋았어요.”
덤블러는 카메라에 자신의 팔을 비췄다.
- 나도.
- 난 울고 있는 중.
- 화면 리오나 좀 비춰주세요.
- 덤블러의 닭살 따위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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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스쿨의 저력이 이 정도일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특히 리오의 기술은 천상계입니다··· 헤이데이 멤버 중 한 명이라고만 여겼는데··· 말을 못 잇겠습니다. 여러분.”
- 반성하세요.
- 리오는 원래 비보이 유망주.
- 그냥 아이돌 아님.
- 타고난 춤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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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흥분이 조금 가라앉은 덤블러가 접속자 수를 슬쩍 봤다. 그리고 눈을 한번 비비고 다시 한번 봤다.
“실화입니까? 접속자 수가 25.000명을 넘어섰네요. 와우, 감당이 안 되는데...”
- 리오, 파이팅.
- 파워스쿨 결승 가자.
- 결승에서 일본만 꺾으면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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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블러가 감당을 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접속자 수는 배로 늘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