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135화
“동등한 수준이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가요?”
곽재권이 이수영에게 물었다. 토론을 하고 처음으로 나온 색다른 의견에 크게 관심을 가지면서.
이수영은 목을 한번 가다듬고 야무지게 입을 열었다.
“이제 팬들은 소속사에서 이렇게 하라고 하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고 하면 저렇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인정합니다.”
곽재권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수영은 다음 말을 하기에 앞서 구민서를 한번 쳐다봤다.
“물론 팬클럽 차원에서 헤이데이를 응원하고 문자투표를 하고 도시락을 선물하고 커피차를 보내는 것도 중요하죠. 그런 일들 모두 헤이데이의 기를 살리는 일이니까요.”
이수영이 의견에 동의해주니 구민서는 뿌듯한 마음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런 지원들은 각 포털의 카페나 BC 갤러리에서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개인적으로 하기도 하죠. 한 마디로 공식 팬클럽이 최우선으로 할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공식 팬클럽에서 하는 것만 못하겠죠.”
구민서의 입술이 일그러지면서 변명하듯 반박했지만 설득력은 없었다.
이수영은 또박또박 말을 이어 나갔다.
“제 말은 헤이데이에게 공식 팬클럽만 할 수 있는 지원을 하기 위해선, 하이 디멘션과 동등한 정보를 서로 공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시겠어요?”
이번엔 내가 이수영에게 요청했다. 들을수록 설득력이 있었기에.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봤다.
“조명수 대표님.”
“네. 말씀하세요.”
“헤이데이의 정규 앨범이 5월에 나오죠?”
“네, 그렇습니다. 5월 말이나 늦어도 6월 초로 보고 있습니다.”
“혹시 다른 경쟁 아이돌들이 그쯤에 앨범 낼 확률이 없어서 시기를 그때로 잡으신 건가요?”
이수영은 헤이데이에게만 매몰되지 않고 가요계 전체를 꿰뚫어 보는 안목이 있었다.
“네. 백퍼센트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앨범의 퀄리티가 높고 헤이데이가 열심히 하기에 크게 걱정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관심이 분산된다면 좋을 건 없겠죠.”
나는 순순히 인정을 했다.
“맞습니다. 헤이데이의 첫 정규 앨범인데 최대한 조심하는 게 낫죠... 그런데 혹시 너무 조용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나요?”
“음...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나라에 A급 아이돌이 수십 팀인데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어요. 아이돌의 유닛마저 미동이 없습니다.”
이수영의 통찰력은 대단했다.
내가 은근히 신경 쓰고 있던 부분까지 정확하게 끄집어냈다.
“계속 말씀해 보시죠.”
“정보에 따르면 ‘가리봉동 빅풋’이 한참 프로듀싱 작업 중에 있답니다.”
가리봉동 빅풋은 우리나라 탑 프로듀서로 탑 가수만 작업하는 거물. 그런 가리봉동 빅풋이 일을 하고 있다는 건 곧 탑 가수가 가요계에 컴백한다는 의미.
그런데 나에겐 금시초문인 정보였다.
‘이수영의 정보가 틀렸거나 가리봉동 빅풋이 비밀리에 작업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인데... 이수영의 정보가 맞다면 가리봉동 빅풋은 왜 조용히 작업하고 있을까? 홍보 때문에라도 떠들썩하게 일하는 스타일이잖아...’
누군가 비밀리에 앨범 작업을 하고 있구나!
나는 이수영의 말에 더욱 집중했다.
“폭풍 전야와 같은 분위기입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탑 티어 아이돌이 우리 헤이데이와 비슷한 시기에 앨범을 낼지도 모르는... 어쩌면 그걸 눈치채고 다른 아이돌들이 조용한 것일 수도 있고요.
그런 돌발 변수가 생겼을 때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공식 팬클럽은 하이 디멘션과 동등한 입장이어야 합니다.”
지원자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응원과 지원만 생각했지, 안으로 숨어있는 복잡한 상황까지 계산하려니 용량 초과였다.
그때, 위기를 느낀 구민서가 툭 치고 나왔다.
“5월에 다른 아이돌이 컴백할 수도 있다는 사실과 팬클럽이 회사와 동등한 입장이어야 한다는 게 무슨 상관인가요? 회사는 회사의 일이 있는 것이고 팬클럽은 팬클럽의 일이 있는 겁니다. 괜히 말을 어렵게 하지 마세요.”
구민서는 나와 곽재권을 한번 흘깃 보더니 회사의 입장에 섰다. 우리에게 점수를 따려는 속셈이 뻔했다.
하지만 이수영은 구민서의 말을 바로 받았다.
“팬클럽이 어려운 상황에서 진짜 힘을 내려면, 미리 더 많은 양질의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헤이데이에게 도움이 되는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니까요. 소속사와 팬클럽 양쪽에서 합을 맞춰 헤이데이를 지원한다면 좋지 않겠어요?”
“좀 더 쉽게 설명이 안 되나요?”
구민서는 날을 세웠다.
“좋습니다. 리오가 일본에서 열리는 컴배트 오브 더 이어에 참가하는 건 알고들 계시죠?”
“네, 압니다.”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나?”
“참. 질문 수준이...”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었지만 아직 중재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이수영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할 뿐이었다.
“그럼, 팬클럽에서 리오를 응원하러 가야죠. 현지의 일본팀은 엄청난 응원을 받을 텐데 리오가 속해 있는 파워스쿨은 야유를 받을지도 모르잖아요.”
“물론 갈 수 있는 팬들도 있겠지만 일본까지 모두 다 갈 수는 없죠. 팬들의 상당수가 학생과 직장인이잖아요. 국내라면 모를까 일본까지 어떻게 대규모 원정을 갑니까? 너무 이상적으로만 생각하시네요.”
현실적인 구민서의 반론에 다른 지원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혹시 일본에도 헤이데이 팬카페가 있는 건 알고 있나요? 공식 팬클럽에서 미리 협조 공문을 보낸다면 어떨까요?”
!!
지원자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훑으며 묻자 모두들 뻥찐 표정이 되었다.
‘이수영은 해외 팬카페 상황까지 꿰고 있구나.’
일본에 헤이데이 팬카페가 있다는 걸 회사는 알고 있지만, 일반 팬들에게는 아직 생소한 정보였다.
이수영은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일본에 있는 헤이데이 대표 펜카페는 봄, 또는 전성기라는 뜻의 ‘하루(はる)’입니다. 총 회원수가 75,000명 정도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회원수도 8000명이 넘어요. 한국에 있는 공식 팬카페가 응원 요청을 한다면 적어도 2000명 정도는 움직일 겁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이 먼저 성립해야겠죠. 하나는 팬클럽에서 리오의 스케줄을 정확하게 미리 알고 있을 것. 그리고 팬클럽의 대표성을 전 세계 팬들이 인정하고 있을 것.”
이수영은 말을 마치면서 지원자들의 표정을 살폈다. 의견이 잘 전달되었을까?
“아~~”
“그렇네요. 모든 정보를 미리 알고 있다면 하이 디멘션을 거치지 않고 자치적으로 응원 계획을 다 세울 수 있겠네요.”
“맞아요. 아니면 회사에서 정한 방침을 따라가는 것 밖에 안 될 거예요. 공식 팬클럽에서 하는 일이 공항에 마중 나가는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지원자들은 완전히 설득되었다.
이수영은 덧붙였다.
“하이 디멘션은 헤이데이에 대한 정보를 공식 팬클럽과 공유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팬클럽에 공신력이 생기고 전 세계 팬들을 하나의 구심점으로 묶을 수 있습니다.”
짝짝짝
“동의합니다.”
“맞습니다.”
“옳아요.”
지원자들은 박수까지 치면서 이수영의 의견에 적극 동의했다.
“이수영 님의 의견은 회사차원에서 검토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권한이 커지면 그만큼의 책임도 따른 다는 것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정리를 하면서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악플 대처법, 다른 아이돌 팬클럽과의 교류, 회원 관리와 팬미팅에 관한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이었는데 거의 이수영의 독무대였다.
이수영이 회장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하지만 구민지는 틈틈이 야욕을 드러내며 이수영을 몰아붙였다.
“절대 아닐걸요. 현우는 ‘바다에 그린 노을’이 처음 하는 연기라고 인터뷰에서 밝혔어요. 광고나 아이돌 매치 때 짧은 오프닝을 찍은 거 빼고는 연기를 한 적이 없어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구민지가 이수영을 다그쳤다.
“아니에요. 현우는 그 전에도 연기를 한 경험이 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지역 극단 고도가 연출한 ‘오늘도 해피엔딩’이란 연극에서 아역으로 출연했었어요.”
아니 정말?
나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정보였다.
이수영은 핸드폰에 저장해 놓은 당시 지역 신문 기사를 지원자들에게 보여 주었다.
“동그라미 친 이 어린이가 현우예요. 눈이랑 턱이 지금이랑 똑같죠. 제가 극단 고도에 직접 연락해서 확인했습니다.”
‘그런 깨알 같은 정보까지? 이수영은 하늘이 내린 팬클럽 회장이야.’
헤이데이의 실력을 알아보는 눈.
헤이데이를 사랑하는 마음.
해박한 지식과 정보력.
똑 부러지는 입담과 친화력.
거기다 유학파라 영어도 잘한다고 했다.
이수영이라면 안심하고 팬클럽을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곽재권 부장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내 눈을 맞추며 눈을 찡긋 걸렸다.
결국, 구민서 마저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만장일치로 이수영이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헤이데이 팬클럽 임원으로 특권을 누리거나 혜택을 바라고 이 자리에 모인 게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사랑하는 헤이데이가 꽃길만 걸을 수 있도록 책임과 희생을 하려고 이 자리에 모인 것이죠.
저는 팬들이 마음껏 헤이데이를 사랑할 수 있도록 든든한 안내자가 되겠습니다. 무엇보다 하이 디멘션과 팬들의 연결 다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짝짝짝
짝짝짝짝
이수영의 단호하고 결의에 찬 소감이 끝나자 지원자들은 박수를 치며 응원했다.
이렇게 헤이데이 공식 팬클럽 운영진을 뽑는 면접 토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똑.똑.
그때, 주선해 과장이 들어왔다. 주선해는 방긋 웃으며 지원자들에게 말했다.
“회사 정원에 음료와 다과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토론하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가셔서 좀 즐기시죠.”
와와
짝짝
지원자들은 따로 마련된 다과 파티를 하러 정원으로 나갔다. 고마운 팬들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주 과장이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한 것이다.
“혹시 헤이데이 회사에 없나요?”
“우연히 못 마주치나?”
“뒷모습이라도 보고 싶다.”
“냄새라도 맡고 싶은데...”
지원자들은 헤이데이의 순한 팬이 되어 금세 팬심을 마구 드러냈다.
그 정도 소원 못 들어줄 거 없었다.
“아마 크레이즈는 있을 거예요. 음반 작업하느라 거의 회사에 붙어있거든요. 주 과장님?”
“네, 대표님.”
“크레이즈한테 혹시 팬들과 잠시 인사 가능한지 물어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돌발적이긴 해도 그 정도 팬 서비스는 가능할 것 같았다. 팬들은 헤이데이를 위해 돈과 시간을 들여 이 자리까지 와줬는데 인사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닐까.
“와와와”
“어쩜 좋아.”
“실화냐?”
“대표님. 최오!!”
팬들은 크레이즈를 만난다는 셀렘에 정신을 못 차리고 방방 뛰었다. 구민서가 제일 심했다.
“이수영 씨는 잠깐만 저 좀 볼까요?”
“아, 네.”
***
이수영만 데리고 대표실로 들어갔다.
중정으로 향한 대표실 벽은 유리로 되어 있어 팬들이 다과를 먹으며 크레이즈를 기다리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팬들도 이수영과 내가 대화 나누는 모습을 훤히 볼 수 있었다. 일부러 커튼은 치지 않았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재영 기자님은 잘 계세요?”
“아니. 어떻게 아셨어요?”
“얼굴이 다 말해주잖아요. 엄청 닮았어요. 이름도 이재영, 이수영.”
“아~ 네~ 언니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헤이데이에 관해 잘 아세요? 이재영 기자님이 가르쳐 주셨나? 이재영 기자님도 헤이데이 팬이시잖아요.”
“아니요. 그 반대예요. 제가 어렵게 얻은 정보를 언니가 다 가져다 쓰죠. 저 때문에 언니도 헤이데이 팬이 된 거고요.”
“하하. 그렇군요.”
나는 조금 웃다 다시 진지해졌다.
“토론에서 수영 씨가 말한 것처럼 5월 가요계가 조용해서 마음에 걸립니다. 저 나름대로 알아보겠지만, 정말 헤이데이 팬클럽이 큰일을 해야 할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늦어도 4월 말까지 국내외 모든 팬들을 장악하세요. 하이 디멘션이 팍팍 지원하겠습니다.”
“네. 반드시 그렇게 할게요.”
이수영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는 돌아섰다.
“아참, 수영 씨.”
“네?”
“일본 팬 카페 하루에는 이미 연락을 해 놨습니다. 리오 응원 오시기로 했고요. 그러니까 그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역시 대표님이라면 그럴 줄 알았어요. 찬희 오빠도 잘 부탁할게요. 요즘 찬희 팬들 원성이 자자합니다.”
나는 찡긋 웃어 보였고,
이수영은 양손으로 엄지척을 날리며 대표실을 나갔다.
‘삼국지로 따지자면 곽재권은 복룡이고 이수영은 봉추다. 복룡과 봉추를 얻은 하이 디멘션이라···.”
일어서서 옷을 챙겨 입었다. 남해에서 촬영하고 있는 현우에게 가기 위해서였다.
원래는 주말 첫 촬영부터 함께 하려 했는데, 팬클럽 문제가 꼬이는 바람에 동일이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일들이 잘 해결되었으니 한시라도 빨리 현우에게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