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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134화 (134/150)

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134화

공식 팬클럽 운영진을 뽑는다는 공지가 나간 후 이력서가 물밀 듯 들어왔다. 특별한 자격요건이 없었으므로 헤이데이를 사랑하는 팬들이 대거 지원한 것이다.

1차 서류 합격자를 뽑느라 단 2명인 홍보팀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 경영지원팀의 오현식까지 합세했다.

“이 지원자는 코우트 게시판 관리자네요.”

허예지가 곽재권에게 지원서를 넘겼다.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렀던 코우트와 쉴드의 운영진은 제외시키기로 했기에.

곽재권은 지원서를 받아 들었다.

“팬클럽 운영 경험도 많고 헤이데이를 사랑하는 열정도 넘쳐나는데...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팬클럽 창단에 조금이라도 잡음이 있어서는 안 되니까 코우트와 쉴드 쪽은 모두 탈락시키도록.”

곽재권이 지원서를 탈락 쪽에 놓자 허예지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쪽 회원들이 반발하지 않을까요? 차별이라고.”

“두 카페에서 불법을 저질렀다는 건 팬들 사이에 공공연한 비밀이야. 그쪽 카페 출신이 운영진으로 선발되는 순간 다른 모든 팬들을 잃어버리게 돼. 잠재적 팬들까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분란의 싹은 자르는 게 낫지. 일을 원칙대로 처리하면 천천히 가더라도 길을 잃지는 않아.”

“알겠습니다.”

허예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지원서를 집어 드는데,

오현식이 검토하고 있던 지원서를 곽재권에게 내밀었다.

“부장님. 이 김은지라는 지원자 괜찮은 것 같은데요. 회장이 될 가능성이 보입니다.”

“그래? 한번 볼까.”

곽재권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지원서를 살폈다.

그런데 점점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오현식에게 다시 지원서를 건넸다.

“오현식 씨, 김은지 지원자 SNS 확인 좀 해 줘. 지금 당장.”

“네. 알겠습니다.”

오현식은 빠른 속도로 마우스를 클릭하고 자판을 두드렸다. 인터넷으로 자료 찾는 일엔 자신 있었으므로 거침없었다.

허예지가 손에 쥔 지원서를 탈락에 놓으면서 오현식 옆으로 다가가 김은지의 지원서를 살폈다. 곽재권의 반응이 심상치 않아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팬클럽 경력도 꾸준하고... 괜찮은 것 같은데요...”

“경력만 보면 화려하지. 중학교 때부터 팬클럽 활동을 해 왔으니까.”

“네. 좋아했던 스타도 배우, 스포츠 선수, 예능인까지 다양하네요. 이런 지원자가 회장이 된다면 팬클럽 운영에 플러스 요인 아닌가요?”

“그렇지. 순수한 헤이데이 팬이라면.”

“네? 그럼 순수한 헤이데이 팬이 아닐 수도 있단 말씀이세요?”

허예지뿐 아니라 오현식도 깜짝 놀라 동작을 멈추고 곽재권을 바라봤다.

곽재권은 둘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했다. 이 기회에 일하는 법도 좀 가르치고.

“그렇게 열심히 덕질하던 사람이 최근 팬클럽 경력은 왜 빠져있는 거야?”

“어, 그렇긴 하네요...”

김은지의 경력란에는 이상하게도 최근 2년 사이의 경력이 빠져있었다.

“... 뭐 그건 팬클럽에 가입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팬질을 잠시 쉬었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허예지는 아직까지 곽재권의 의심을 공감할 수 없었다.

“빅터스 활동 시기와 겹쳐.”

“앗. 그러네요.”

“또 한 가지 불법 문자 투표 사건에 대해 지나치게 언급하고 있어. 빅터스와 연관까지 지어서 말이지... 냄새가 나.”

오랜 기간 엔터 산업에 몸 담아온 동물적 감각.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밀려드는 찝찝한 기분.

곽재권은 아무래도 김은지가 수상했다.

오현식은 아무래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계속해서 인터넷을 뒤졌다.

“김은지 씨의 까까오 스토리, 블로그, 인별그램 찾았습니다.”

“한번 살펴볼까.”

곽재권은 먼저 까까오 스토리에서 김은지의 사진을 쭉 훑었다.

특별한 것은 없어 보였다. 여행 사진, 강아지 사진, 커피 사진, 음식 사진, 그리고 예전에 좋아했던 배우와 스포츠 선수 사진들이 쭉 이어졌다.

그런데 사진을 보는 곽재권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파이고 그림자가 졌다.

“부장님, 뭐가 잘못됐나요?”

“수상하지 않아?”

“네? 뭐가요?”

허예지는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헤이데이 운영진에 지원할 정도라면 헤이데이 사진이 있어야 하잖아. 예전에 좋아했던 스타들의 사진은 있는데 어떻게 헤이데이 사진이 없지? 오현식 씨.”

“네, 부장님.”

“인별그램과 블로그도 보자.”

“네.”

오현식은 김은지의 블로그로 넘어가서 게시물을 클릭했다. 화면의 사진들이 빠르게 바뀌었다.

그때, 곽재권의 눈에 뭔가가 보였다.

“어, 잠깐, 잠깐. 위로 다시 올려 봐.”

“네.”

오현식은 천천히 화면을 다시 올렸다.

“스톱, 스톱. 여기다, 여기.”

곽재권은 사진 속 거울을 가리켰다.

“거울 좀 확대해 줘.”

오현식은 곽재권이 가리킨 사진을 캡처해서 부분 확대를 했다. 거울 속에는 의자가 비쳤는데 등걸이 위로 머플러가 걸쳐있었다.

“저거 머플러에 빅터스 로고 맞지?”

사진을 최대한 선명하게 맞췄더니,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빅터스의 로고가 나왔다.

“헐. 뭐야?”

“어떻게 이런 일이...”

곽재권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진의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펴 옷걸이에 걸려있는 빅터스의 에코백 굿즈까지 찾아냈다.

“우와~ 소름.”

“와우. 부장님 정말 대단하세요.”

허예지와 오현식은 입이 떡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았다.

“촉이 오더라고. 김은지 빅터스 팬클럽 골든 트로피의 운영진이었을 가능성이 커. 빅터스 강제 해체되고 보복으로 헤이데이 팬클럽에 들어와서 트롤링을 하려던 거겠지.”

“캬아, 지독하네요. 그럼 여기 들어오려고 SNS 게시물에 빅터스 사진을 전부 없앴다는 거잖아요.”

“독기를 품으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팬들은 열정으로 움직이는데 그게 방향을 잃으면 별의 별일이 다 생긴다고.”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허예지와 오현식은 김은지의 지원서를 탈락에 놓으면서 가슴을 쓸었다. 곽재권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걸 생각하니 온몸이 다 오싹오싹했다.

“너무 완벽하다 싶으면 한번 더 살펴야 하는 거야. 돌다리도 두들겨 가면서...”

“네, 알겠습니다.”

“부장님 덕분에 제대로 한 수 배웠습니다.”

둘은 좋은 회사에 입사해서 훌륭한 상사에게 제대로 일을 배우게 된 행운을 놓치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바쁜 하루를 보냈다.

***

면접 날 아침 1차 서류 합격자들로 회사가 북적였다.

총 20명의 합격자들이 토론을 벌여 1명의 회장을 뽑고, 회장이 지정하는 4명의 임원을 더 뽑을 예정이었다.

“안녕하세요. 면접 보러 왔습니다.”

“오늘 면접 보는 사람 여기로 오는 거 맞죠?”

약속 시간인 오전 10시가 가까워지자 지원자들이 속속 회사에 도착했다. 허예지는 현관 앞에서 지원자들을 맞이해서 회의실로 안내했다.

지원자 대부분이 팬 카페의 운영진이거나 아이돌 매치 때부터 덕질한 팬들이었기에 서로를 대강 알았다.

“여기가 헤이데이가 있는 사무실이구나.”

“이런 데서 일하면 힐링되겠어요.”

“보통 기획사들이 겉만 화려하지 갑갑하던데, 하이 디멘션은 카페 같이 편하네요.”

“헤이데이 오빠들 오늘 사무실에 있나?”

설렘 가득한 지원자들의 소곤거림을 들으며, 나는 그들 중 누가 알박고 일까 생각했다.

알박고에게 운영진에 지원해보라고 권하기는 했지만, 1차 서류 심사에서 특별히 챙기지는 않았다.

알박고라면 서류 심사 정도는 가뿐하게 통과할 테니까...

덜컥.

10시를 1분 남겨두고 현관문이 열리면서 마지막 지원자가 들어왔다.

나는 그녀가 알박고임을 단번에 알아봤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느껴지던 알박고 특유의 기가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알박고구나. 어디 관상이나 한번 볼까? 그런데 누굴 많이 닮았는데... 누구더라?’

관상을 살피려 얼굴을 자세히 보는데 어쩐지 낯익었다.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와 판박이었다.

‘아~ 더 임팩트의 이재영 기자.’

확실한 증거를 찾으려 재빨리 알박고의 지원서를 살폈다.

[성명 : 이수영]

이름을 보니 더욱 확실했다.

알박고는 더 임펙트 이재영 기자의 동생이었다.

‘이재영도 오목눈으로 광채가 났었는데 이수영도 똑같은 오목눈이야. 집안 내력인 모양이지.’

오목눈은 인내심과 끈기가 있고 성취욕이 강하고 집요한 성격.

턱선과 목덜미 그리고 쇄골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마저도 이재영이랑 똑같았다.

‘알박고 이수영. 어쩐지 남다르더라. 그 언니에 그 동생이구나.’

이재영 기자와 외모만 닮은 것이 아니라 일하는 스타일도 닮았다면 헤이데이 팬클럽 회장으로 무조건 합격이었다.

물론 이수영 본인이 쟁취해야 하지만...

***

나는 곽 부장과 함께 회의실로 들어갔다. 20명의 지원자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저는 헤이데이 매니저이자 하이 디멘션 대표 조명수입니다. 우선 헤이데이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물심양면 힘써주신 여러분들을 직접 뵈니 너무나 기쁩니다.”

짝짝짝짝짝

와아아아아

진심이 담긴 감사 인사에 지원자들은 열렬한 박수로 화답했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지금 헤이데이는 새롭고 발전된 모습을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도 여러분의 사랑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야말로 헤이데이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니까요···”

지원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격스러워했다.

“오늘 우리들은 헤이데이의 공식 팬클럽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운영진을 선출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면접 방식은 공지한 데로 자유 토론입니다. 그럼 간단히 자기소개부터 하고 바로 토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내 바로 옆에 앉은 지원자부터 차례대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저는 20살. 구민서입니다. 대학생이긴 한데 팬클럽 회장이 된다면 1년 정도 휴학할 생각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살 안혜영입니다. 헤이데이는 저의 첫사랑이죠.”

“저도 20살 유세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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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2살 이수영입니다. 유학 다녀와서 지금은 인턴으로 일하고 있어요. 헤이데이의 실력은 아이돌 매치 때부터 알아봤고, 헤이데이를 능가하는 아티스트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헤이데이와 함께 할 수 있다면 몸과 마음을 바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지원자들의 간단한 자기소개 후 본격적인 토론에 들어갔다.

물꼬는 터야 했기에 곽재권 부장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팬클럽이 해야 할 일들 중 가장 중요한 일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지원자들은 생각에 잠겼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먼저 구민서가 입을 열었다.

“무조건 음방에서의 화력이죠.”

“맞아, 맞아. 저도 그 생각했어요.”

구민서의 말에 안혜영이 바로 맞장구를 쳤다. 구민서와는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 그런지 구민서는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음방 때 인원수에서 밀리면 사녹이나 생방하기 전부터 힘이 쭉 빠집니다. 응원소리도 커야 사람들도 우리 헤이데이가 인기가 많다고 생각할 거고요. 그러기 위해서 인원수는 무조건 빵빵하게 채워야 되고, 헤이데이만의 특정한 구호와 시그니처 응원 동작도 정해야 합니다.”

“맞아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짝짝

짝짝

유세은까지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물론 안혜영도 치고 있었다.

‘음··· 저 세 사람이 친구인가 보네. 안혜영과 유세은이 구민서를 의도적으로 밀고 있어.’

“굿즈 제작도 잘해야 합니다. 손수건이나 티셔츠 가방 같은 물건은 실용적이고 좋죠.”

“맞아.”

“회원을 등급으로 나눠서 긴밀하게 관리하는 것도 효율적이겠죠.”

“커피 차 보내는 것도 체계적으로...”

“팬 미팅은... 2만 석 규모로... ”

토론이 구민서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기존 팬클럽들이 이미 하고 있는 방식을 앵무새처럼 따라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토론이 조금 실망스럽다 느끼는 그쯤,

“공식 팬클럽이라면 먼저 하이 디멘션에게 동등한 입장을 요구해야죠.”

알박고 이수영이 입을 열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이수영에게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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