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133화 (133/150)

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133화

바로 전화를 했다. 늦은 시간이지만 곽재권은 전화를 바로 받았다.

-대표님. 오늘 종일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됐나요?

“아, 급한 일이 좀 있어서...”

차마 찬희의 후즈 댓 싱어 녹화가 있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비밀을 지키는데 예외를 두다 보면 사돈의 팔촌까지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니까.

“그런데 무슨 일인가요? 팬클럽에 문제가 생겼다니...”

-그게... 쉴드와 코우트에서 불법을 저지른 상황을 포착했습니다.

“불법이라고요?”

현재 헤이데이의 팬 카페는 각종 포털 사이트와 인터넷 게시판마다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다. 그중 네이비의 쉴드와 넥스트의 코우트(coat)가 회원수나 활성화 면에서 대표적인 카페였고, 회사에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 공식 팬클럽으로 지정할 계획이었다.

-두 곳 모두 카페 방문기나 회원 등록기라는 불법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회원수와 방문수를 늘리고 있었더라고요.

“이런...”

상황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곽 부장님이 직접 포착하신 건가요? 아님 기자들이 눈치를 챈 건가요?”

-다행히 오늘 제가 발견했습니다. 아직 기자들은 모릅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헤이데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팬들이 벌인 일이라 하더라도 헤이데이의 이름이 걸려있는 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별 매니지먼트에서 불법 문자 투표로 곤혹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팬클럽 창단으로 비슷한 불법 행위가 있다면,

헤이데이가 피해자라 하더라도 대중은 피로할 수밖에 없다. 곧 있을 정규 앨범 활동 시 화력이 반감될 것도 뻔하고.

“곽 부장님. 늦은 시간에 전화로 얘기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 출근하는 데로 다시 말씀하시죠.”

-네. 대표님.

“코우트와 쉴드의 카페장에게 연락해서 불법 프로그램으로 조작한 숫자는 원래대로 바로 잡으라고 해 주시고요.

-그건 이미 조치를 취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후즈 댓 싱어의 방청객 판정단으로 즐거웠던 것도 잠시, 나는 다시 치열한 현실로 돌아왔다.

***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곽재권 부장과 자리를 했다. 눈에 실핏줄이 터지고 피부도 까칠한 것이 어제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느라 속을 태운 흔적이 역력했다.

“그러니까 넥스트의 코우트(coat)와 네이비의 쉴드가 다퉜단 말이죠?”

“네. 회원수가 많고 활동성이 좋은 카페를 공식 팬클럽으로 지정하겠다는 회사의 공고가 나가고 기싸움이 시작됐는데... 그 후로 싸움이 크게 번진 것 같습니다.”

곽 부장은 카페 운영의 불법 정황이 포착된 증거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이 자료는 헤이데이의 공식 팬클럽을 지정한다는 공문을 각 팬 카페에 공지하고 난 다음, 코우트와 쉴드의 트래픽 수치입니다. 날짜를 보시면 3월 8일부터 시작해서 쉴드의 방문자 수가 1만 2천 명에서 3만 5천 명으로 세 배 가량 급증한 걸 볼 수 있고, 10일부터는 코우트도 3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사건의 정황이 객관적 수치로 잘 정리되어있었다. 내가 자료를 살피는 동안 곽재권은 계속 말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두 카페 간 사이가 계속 나빠지고 있다는 겁니다. 게시판에 서로를 비방하고 헐뜯는 게시물이 점점 도를 넘고 있고요. 감정의 골이 깊습니다.”

“최악이네요.”

팬들이 하나로 뭉쳐 헤이데이를 응원해도 모자랄 마당에 분열이라니,

안 될 말이었다.

“감정이 계속 상하면 이성을 잃고 무슨 짓까지 저지를지 알 수 없습니다. 불법 프로그램으로 회원수를 조작하는 걸 넘어 해킹한 포털 사이트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까지 구입해서 회원수를 늘릴 수도 있거든요. 그땐 저희가 아니라 경찰이 나서겠죠.”

팬들끼리의 다툼으로 경찰서를 들락날락거리는 일은 연예계에 왕왕 있는 일이다. 대부분 실체가 없는 감정 문제라 기획사의 초기 중재가 중요하다.

“당장 문제를 해결합시다.”

“네. 공식 팬클럽을 하루라도 빨리 만들어서 구심점을 잡아야 합니다. 팬들이 더 이상 분열하지 않도록.”

쉴드와 코우트 두 카페 중 하나를 공식 팬클럽으로 지정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제 다른 방식으로 팬클럽을 만들고 팬심을 모아야 했다.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좋을 까요? 혹시 생각해 두신 건 있나요?”

곽재권이 어제 종일 내 전화만 기다리고 있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 대책을 강구해 놓았을 것이기에 그의 생각부터 들어보고 싶었다.

“저희가 직접 면접을 보는 겁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카페 운영진을··· 직접 면접 보자고요? 일반 회사처럼?”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회사가 팬클럽을 운영한다는 말인데... 팬들의 반발이 심하지 않을까요? 팬클럽이 회사 조직의 하나가 되어 그 가치가 훼손될 수도 있고요.”

곽재권은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그러니까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하는 겁니다. 면접 자체는 회사가 주관하되,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이 직접 면접관이 되는 겁니다.”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이 서로의 면접관이 된다라?

오, 참신한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네. 일단 공식 팬클럽 운영진을 선발한다는 공고를 내고 지원자를 받습니다. 그리고 회사가 1차 서류 심사를 하는 겁니다. 최소한의 불합격만 추리는 거죠. 예를 들면 이번 코우트와 쉴드의 운영진들은 당연히 제외해야겠죠.”

“그렇죠... 그리고 1차 합격한 지원자들이 서로를 면접한다는 거네요.”

“네. 의견이 하나로 모아질 때까지 끝장 토론을 하는 겁니다.”

“음···”

나쁘지 않았다.

회사가 주관했다고는 하지만 팬들끼리의 합의를 통해 운영진을 선발하는 방식이라 이미 활성화되어 있는 팬 카페를 지정하는 것보다 더 민주적이었다.

“자신들이 뽑았으니 잡음은 없을 겁니다.”

“좋네요. 오늘 내로 공고문을 내고 면접 날짜를 잡으세요. 이런 문제는 스피드가 생명이니 서두르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보고할 것이 또 있는 것 같았다. 곽재권은 들고 온 패드의 전원을 켜서 내 쪽으로 돌려놓았다.

시선이 자연스레 화면으로 쏠렸다.

“회사 홈페이지가 완성이 되었습니다.”

“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네요.”

화면에는 사다리 모양의 하이 디멘션의 로고와 함께 헤이데이 다섯 멤버가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각 멤버를 터치하자 흑백이었던 사진이 컬러로 바뀌면서 그 멤버의 활약상을 담은 브이로그 영상이 떴다.

“오, 직관적이고 능동적이네요.”

“네. 멤버 모두가 함께 있는 사진을 클릭하면 공연 영상이나 안무 연습 등 함께 활동한 영상이 나오고, 멤버 개인을 터치하면 개별 활동 영상으로 넘어갑니다. 밑에 보시면 너튜브나 SNS 사이트와도 링크가 되어 있어 정보를 찾아보기 쉽습니다.”

곽재권은 홈페이지 기능들을 하나씩 눌러가며 내게 보여주었다.

“잘 나왔네요. 웹 디자인 회사가 에이웹스죠?”

“네. 전부터 알고 지내던 엔지니어가 만든 회사인데, 신생 기업이지만 능력 하나만큼은 보장합니다”

“네, 곽 부장님 추천이라 확실하네요.”

홈페이지의 단추 이것저것을 눌러보면서 웹 반응 속도나 색감 음향 등도 살펴보았다. 아무 문제없었다.

업데이트 한 가지만 더 체크하면 될 것 같았다.

“속도도 괜찮고... 업데이트는 어떤식 인가요?”

“페이지 플랫폼이 웹진 프로세스라 검색 로직이 업데이트되면 그에 연동해서 업데이트를 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자료가 아무리 많아도 쉽고 빠르게 업데이트가 됩니다.”

“네. 만족입니다. 이대로 올리면 되겠습니다.”

“그럼, 홈페이지 주소를 각 포털에 등록하고 팬 카페에도 올리겠습니다.”

“수고해 주십시오.”

패드를 곽 부장에게 넘기면서 마지막으로 현우 사진을 클릭해 보았다.

흑백이었던 현우가 칼라로 변하면서 대본 연습을 하고 있는 현우의 모습이 재생되었다.

“달랑 하나 남은 것까지 모두 뺏어가려고 하고 있잖아. 그 사람들은 바다를 그저 돈으로 밖에 안 봐.”

‘3월 드라마 촬영’이라는 자막이 스르륵 나타났다 사라졌다.

***

그날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잠들기 전에 BC 갤러리에 들어가 분위기를 살폈다. 다양한 이슈들로 게시판은 활활 불타고 있었다.

- 털갈이와 등껍질 무식 대전

- 사기를 쳐도 적당히 쳐야지. 하루 만에 세배 떡상 이 지랄

- 신고 각 재고 있었는데 탈주했음

갤러리 팬들은 코우트와 쉴드의 회원 뻥튀기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다. 곽 부장의 발 빠른 대처가 없었다면 문제가 크게 번질 뻔했다.

- 공식 팬클럽 운영진 지원할 사람?

- 갤러리에서 팬클럽 운영진 나올 확률은 없나?

- 우리 한번 나가볼까.

공식 팬클럽 운영진 선출에 대한 이야기에도 열을 올렸다. 오전 중으로 공지를 다 돌렸기에 운영진 선출은 오늘의 핫이슈였다.

- 사다리에서 운영진 선출 공지 올라오고 코우트, 쉴드 운영진들 갑자기 잠수 타더라.

- 걔들도 허무하겠지.

- 이번에 하이 디멘션 일하는 거 맘에 들었음.

- 나도.

- 언냐들 지원할 거임?

- 아무나 지원 가능하다고 해도 팬클럽 운영 경력은 있어야 할 긔

- 신입도 뽑아야 경력이 생기지. 신삥이 없는데 경력을 어떻게 뽑냐.

그때 닉넴 알박고가 나타났다.

- 알박고: 헤이데이 대표는 신입이든 경력이든 가리지 않을걸. 능력만 있으면 뽑을 사람이야.

BC 갤러리는 익명이 원칙이지만 닉네임을 쓰는 이용자도 있었다. 그중 알박고는 양질의 정보와 정확한 해석을 내놓는 것으로 헤이데이 게시판에서 유명했다.

- 오오, 알박고 왔네.

- 알박고라면 신뢰하지.

- 오늘은 먹이 없남?

알박고는 나타날 때마다 알짜배기 최신 정보를 주고 갔으므로 팬들은 오늘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알박고를 맞이했다.

- 알박고: 내일 헤이데이 공식 홈페이지 오픈해.

- 사실임?

- 확실함?

- 알박고가 한 말은 틀린 적이 없어.

- 알박고: 확실함 네이비 사이트에 홈피 주소 올라온 거 확인했거든. 아마 개인 활동 브이로그가 다량 풀릴 것으로 예상한다.

- 오...

- 오~ 예~

- 알박고의 말이 사실이라면 난 무척 행복.

- 그럼, 내일 현우 새 영상 볼 수 있는 거야? 너무 보고 싶어 눈물 나 ㅜㅜ

- 난 크레이즈 보고 싶어.

- 리오 대회 준비 영상 또 올라오겠네. 파워 스쿨도 멋져.

- 재경이는 일상 많이 올려주니까 넘 좋아.

팬들은 내일 풀린다는 브이로그 영상에 대한 기대감을 맘껏 펼쳤는데, 갑자기 찬희 팬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 찬희 브이로그 너무 없음

- 맞아. 심할 정도지. 재경이 10개 올라올 때 1개 올라올까 말까.

- 그게 좀 이상.

- 혹시 회사랑 찬희 사이가 안 좋은 거 아닌가?

- 회사 대표가 우리 찬희 차별하나?

찬희는 후즈 댓 싱어에 올인하고 있다 보니 올릴 수 있는 브이로그에 한계가 있어 영상이 적었다. 하지만 이유를 모르는 찬희 팬들의 감정은 부글거렸다.

그때,

- 알박고: 그건 절대 아님.

사진 하나가 게시되었다. 나와 찬희가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 알박고: 내가 지금까지 조명수 대표를 분석한 바로는... ... 뭔가 찬희만의 프로젝트가 비밀리에 진행 중인 것 같아. 분명 조만간 크게 한번 터질 거야.

‘헉!’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알박고의 추리력은 너무나 정확했으니까.

알박고라면 후즈 댓 싱어의 새로 바뀐 가왕이 찬희라는 걸 금방 알아 챌 것 같았다.

‘대단해. 적은 정보로 정답의 80%까지 왔다니...’

거기다 게시판 팬들도 알박고를 신뢰하고 좋아했다.

알박고는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을 모두 갖추고 있는 셈이었다.

- 알박고 님. 헤이데이 공식 팬클럽 운영진 모집에 지원해 보시죠?

반말이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높임말로 게시글을 남겼다. 알박고가 내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바라는 마음으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