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131화
사회자 나선규가 다시 무대로 올랐다.
“댄스곡으로 맞붙은 마지막 팀까지 1라운드 대결을 모두 만나보셨습니다. 무대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든 코 낮은 피노키오. 신나고 유쾌한 무대를 보여주신 바람난 들장미. 자, 여러분의 선택은? 버튼을 눌러 주세요.”
방청객들은 별 어려움 없이 버튼을 꾹꾹 눌렀고,
나선규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연예인 패널들과 대화를 나눴다.
“저기 패널 분들. 아까 뒤에서 보니까 정신줄 놓고 즐기시던데. 소세우 씨, 어떻게 보셨습니까?”
“아, 피노키오는 베테랑이고 공연도 많이 해 본 가수입니다. 로커 아니면 교회 찬양대 있죠. 막 이렇게 어깨를 흔들면서 노래 부르는 거 보셨잖아요. 오~~주여, 주여 하면서.”
소세우가 장난스럽게 박수를 치면서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헐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하하하
웃음이 조금 터졌지만 정직구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소세우 씨는 절에 다니지 않아요? 불교잖아요.”
“아, 요새 절에서도 이렇게 합니다. 오~ 부처, 부처. 부처 핸접.”
소세우는 계속해서 오버스럽게 주접을 떨었고, 더는 안 되겠다 싶은지 나선규가 진화에 나섰다.
“아, 잠시만요. 소세우 씨. 종교 얘기는 민감하니까 그만, 그만.”
소세우는 기다렸다는 듯 배꼽 인사를 하며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나선규는 틈을 보이지 않고 유명 프로듀서 임병찬에게 질문을 던졌다.
“전문가 의견도 좀 들어 볼까요. 임병찬 씨. 어떻게 보셨습니까?”
“네. 피노키오는 대단한 가수인 게 틀림없습니다. 폭발적인 고음에서 호흡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고 에너지가 꽉 차있는 게 고수가 분명합니다.”
“아~ 그렇군요.”
“아, 나선규 씨. 죄송한 말씀인데 말이죠.”
또 정직구가 끼어들었다.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아주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때였으니까.
“네, 무슨 말씀?”
나선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직구를 바라봤다.
“들장미는 무슨 잘못입니까? 아니, 들장미는 무슨 잘못이길래 피노키오랑 붙어서 아무 관심도 못 받고 저렇게 서 있기만 한 거죠?”
“아, 아닙니다. 피노키오 인터뷰가 끝나면 들장미와도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습니다.”
“정말입니까?”
“...네..에..”
정직구가 다그치자 나선규가 꼬리를 뺐다.
하하
호호호
들장미는 기다렸다는 듯 앙탈을 부렸다.
“맞습니다. 이럴 거면 저에게 왜 3곡을 준비하라고 하셨나요? 그냥 1곡만 준비해도 충분했는데... 저한테 억하심정이라도?”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들장미는 우는 척하며 속상한 듯 고개를 저었고 나선규는 진땀을 빼야 했다.
그때, 결과가 나왔다는 이현희 피디의 사인이 들어왔다. 나선규는 스피드 있게 진행을 이었다.
“1라운드 마지막 팀의 대결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 함께 결과 보시죠.”
나선규가 손을 전광판 쪽으로 들어 올리며 힘차게 외치자, 전광판의 숫자가 올라갔다.
다다다닥~
96대 5
압도적인 피노키오의 승리였다.
피노키오는 들장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들장미는 맞절을 하면서 축하해줬다.
“코 낮은 피노키오가 바람난 들장미를 누르고 2라운드에 진출하겠습니다.”
짝짝짝
와와와와
2라운드에서도 피노키오는 다크 서클 저승사자를 가볍게 제압했다.
‘꿈속에서’를 여자 원키에다가 여자 음색으로 소화했는데, 사회자 나선규를 비롯 패널과 방청객 심지어 스태프들까지 혼돈에 휩싸였다.
“말도 안 돼! 아까 그 피노키오 맞아?”
“남자 아니었나? 여자야?”
“그럼 ‘런 앤 런’ 부를 때 여자였단 말이야?”
나선규는 이현희 피디에게 달려가서 출연자 바뀐 거냐고 물었고, 아니라는 대답까지 받았다.
“어떻게 가성도 아니고 진성으로 여자 목소리를 내지?”
대기실에서 모니터하고 있던 남현일의 머리카락도 쭈삣 섰다.
피노키오는 남자일까 여자일까 미스터리를 남기고 2라운드의 경연이 모두 끝났다.
3라운드는 코 낮은 피노키오와 날아라 네버랜드의 대결이었다.
***
“37대 가왕, 할 게 없어 백수의 왕을 위협할 최후의 1인, 3라운드까지 올라온 두 명의 복면 가수를 이 자리에 모시겠습니다. 뜨거운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코 낮은 피노키오와 날아라 네버랜드가 무대에 올라 인사를 하자 큰 박수가 터졌다.
짝짝
짝짝짝
‘찬희의 기가 흥분된 상태로 빠르게 움직인다. 음...하지만 걱정할 수준은 아니야. 네버랜드만 꺾으면 남현일과 함께 설 수 있다는 설레임의 긴장이니까.’
오늘 녹화에서 내가 특별히 찬희를 위해 할 일은 없었다. 찬희는 혼자서도 침착하게 잘 해내고 있었다.
나는 그저 방청객 판정단의 역할만 잘하면 됐다.
나선규의 진행이 시작되었다.
“먼저 날아라 네버랜드. 3라운드까지 올라온 소감 부탁드립니다.”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준비한 세 곡을 다 부르고 갈 수 있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네, 우리 코 낮은 피노키오는요?”
“우선 좀 떨리고요. 후~.”
“괜찮아요.”
“네. 후회 없는 무대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도 또다시 정직구가 불쑥 마이크를 잡았다.
“저기. 나선규 씨. 제가 여기 계신 분들을 대표해서 피노키오에게 한 가지만 물어볼 게요.”
“좋습니다. 물어보시죠.”
“실례지만, 피노키오 씨. 남자예요? 여자예요? 저도 그렇고 여기 패널들 그리고 방청객 어쩌면 시청자분들까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나선규도 마침 궁금하던 참에 잘 됐다 싶어 피노키오를 쳐다봤다.
“다들 궁금해하시거든요. 혹시 정체를 밝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법 거울이 그냥 마법 거울이듯, 피노키오는 그냥 나무 인형일 뿐입니다.”
피노키오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을 잘 피했다.
“아니, 저···그렇네. 피노키오가 똑똑하기까지 하네.”
하하
호호
정직구는 수긍을 했고 방청석에서는 옅은 웃음이 터졌다.
나선규는 남현일에게로 질문을 돌렸다. 3라운드부터 가왕은 가왕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할 게 없어 백수의 왕 지금 심경이 어떻습니까?”
“올라오신 두 분이 너무 실력자여서 제가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제 노래에만 집중해야 할 것 같아요...
이 가왕 의자가 제 엉덩이에 딱 맞고 너무 편한데 지금 물려주기가 싫어요.”
하하
하하하
“혹시 두 분 중에 올라오셨으면 하는 사람이 있나요?”
“음, 저는 피노키오가 올라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유는요?”
“피노키오가 올라오면 이 가왕 가면이 피노키오 코에 걸려서 안 맞을 것 같아요. 저를 이기더라도 가면 못쓰면 무효니까···”
“그럴 땐 가왕 가면도 코를 길게 하면 되는데...”
“아··· 그렇습니까. 그건 또 몰랐네요. 하하핫!”
하하하
하하하하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현일은 여유를 즐기면서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 이제 3라운드 가왕 후보 결정전을 시작하겠습니다. 날아라 네버랜드 ‘꺼져버려’ 무대부터 감상하시죠.”
네버랜드만 남고 나선규와 피노키오는 무대를 내려갔다.
그와 동시에 드럼과 신시사이저의 격렬한 연주가 시작되었다.
바밤밤바바밤밤바밤
[헤이헤이 헤이 야~~~~이야~~~~~~]
네버랜드의 파워풀한 고음.
방청객들은 박수를 치면서 어깨를 들썩였다.
[넌 거침없이 내게 와서 사랑한다 말했지만 네 눈빛 속에 또 다른 여자가 있어 넌 필요 없어 꺼져버려]
구멍 없이 꽉 찬 소리가 공개홀을 집어삼켰다.
[너의 장난에 난 속지 않아 내가 원하는 대로 살 거야~~~~아]
아아악!
이야야야!
억억억억억!
네버랜드의 펑크한 에너지에 방청객들은 괴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나 역시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걸 잊고 신나게 즐겼다. 이 세상에 오직 음악과 나만 남은 듯이.
오~ 예!
***
찬희는 무대 뒤에서 대기하며 ‘반쪽 사진’의 가사를 곱씹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고 남은 사람은 그리움에 잠 못 이룬다는 알앤비 곡인데, 찬희는 발라드 감성을 좀 더 불어넣을 생각이었다.
‘남현일 선배님과 견주기 위해서는 기교, 음정, 음색, 고음 이런 것이 아니야. 오직 진심이어야 해. 노래를 부를 때엔 그 노래에 담긴 진심을 전달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라고 말씀 하셨어.’
찬희는 예전 한 라디오에서 남현일이 했던 말을 가슴 깊이 담아두고 있었다.
노래는 사람의 진심을 전달하는 거라고 했던 말.
세 번째 곡 ‘반쪽 사진’은 마음을 비우고 오직 진심으로만 부를 생각이었다. 가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성에만 온통 집중해서.
찬희가 마인드 컨트롤하고 있는 사이 어느덧 네버랜드의 무대가 끝나고 사회자 나선규는 피노키오를 소개하고 있었다.
“다음 가왕 도전자, 코 낮은 피노키오의 ‘반쪽 사진’입니다.”
짝짝짝
와와와와
찬희는 뚜벅뚜벅 무대로 걸어 나와 심호흡을 하고 두 눈을 감았다. 무대, 대결, 경연, 가왕, 그런 단어들은 모조리 잊고 ‘반쪽 사진’만 생각했다.
휘~ 우~
입술이 떨리며 옅은 호흡이 스몄다.
애잔한 피아노 연주와 함께 시작한 노래.
[우우우~~아~~아~~예이예~~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다~아아~~
그 그리움에 잠들지 못하고~오~ 하얀 밤을 또 견디고 있어~~~어어
너를 보내지 말 걸~~ 그랬나봐~~~아아아~]
“하아~”
“아아~”
“후우~”
아픈 사람을 떠나보냈던 쓸쓸하고 슬픈 목소리에 방청석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홀리게 만들었던 그리스 신화의 사이렌처럼 찬희는 방청객의 마음을 홀리고 있었다.
[이렇게 까지 고통스러울 줄 알았다면~~어언~~ 너의 손을 놓지 말 걸 그랬나봐~~아아
웃는 모습으로~~ 보내 달라고 해서 그랬는데~~에에]
“후우~”
“하아~”
방청객들은 눈물이 주루륵 흘렸다.
다들 한 가지씩은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아픈 사연이 떠올라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찬희의 노래가 감정의 꼭지를 틀어버린 것이다.
연예인 판정단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코를 훌쩍였다.
정직구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주르륵 흘렀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개운한 마음도 동시에 들었기에 감정을 막지 않고 그대로 뒀다.
그런데 누구보다 감동받은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가왕 자리에 앉아 있는 남현일이었다.
‘반쪽 사진’은 평소에 애창곡이었고 스스로도 많이 불렀던 곡인데,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감동이 밀려와 주체할 수 없었다.
가면 뒤로 눈물이 계속 흘러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닦아야 했다.
[메말라 버린~ 사막에도 슬픔의 샘이라는 게 있어~~
다음에 너를 다시 만나면 그땐 놓치지 않을 거야.]
노래는 절정을 향해 달리고 방청석에는 훌쩍이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모두들 찬희의 노래에 스며들어 순간을 잊고 있었다.
[이제 남아 버린 거~~언~~ 너의 반쪽 사진 뿌~~~운]
노래가 끝났는데 박수가 바로 나오지 않았다. 감정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명이 밝아지고 피아노의 마지막 선율까지 사라지자 폭발적인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짝짝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브라보~ 브라보~
최고! 최고!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남은 눈물을 꼭꼭 훔치면서.
가왕 남현일도 누구보다 크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