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128화
축지법으로 찬희보다 먼저 방송국에 도착했다.
방송국 앞에는 후즈 댓 싱어 출연자들을 기다리는 기자들로 와글와글 했다.
‘찬희가 올 시간이 남았으니 기자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한번 볼까?’
호환이형!
술법으로 가짜 사진기와 기자 출입증을 만들어 슬그머니 기자들에게 섞여 들어갔다. 그들은 오늘 가왕이 바뀔 것 인가 안 바뀔 것인가로 열띤 토의를 하고 있었다.
“어림없는 일이지. 남현일이 정통 발라드를 선택했다는 건 내려오지 않겠다는 얘긴데... 아무리 실력자라 하더라도 쉽지 않을 거야.”
“방청객 판정단도 남현일에게 질릴 때가 되지 않았나? 적당만 해도 도전자에게 표를 줄 것 같아.”
“글쎄... 선택의 순간이 오면 막상 사람들은 네임드를 선호하잖아.”
모르는 척 대화를 엿듣고 있는데 어떤 기자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다. 기자 출입증에 손아경이라고 적혀있었다.
“어. 그런데 당신?”
“아. 저요?”
나는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손아경의 마음의 소리부터 들었다.
-이 사람 어디서 봤던가? 연예부 기자 중에 내가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하여튼 눈썰미는 밝아서는. 기자들은 쉽게 넘어가는 게 없구나.’
익상술(益想術)!
나는 재빨리 술법 익상술(益想術)을 펼쳤다. 익상술은 내가 원하는 기억을 타인의 머리에 집어넣을 수 있는 술법이었다. 진실이 아닌 기억은 휘발성으로 금방 잊히므로 뒤탈은 없었다.
손아경에게 내가 친한 동료라는 생각을 주입시켰다. 그리고 시치미를 뚝 떼고 물었다.
“왜?”
“아, 아니야. 그런데 자네 왜 이렇게 늦었어? 이제 한 명 밖에 안 남았는데.”
“이런.”
손아경은 경직된 얼굴을 풀고 나를 살갑게 대했다. 나도 똑같이 대해주었다.
“어제 국장님이랑 술을 진탕 먹는 바람에. 겨우 겨우 일어났어.”
“작작 좀 마셔. 우리 나이가 되면 한방에 훅 갈 수 있다고.”
“그래. 이젠 적당히 마셔야겠어. 오늘 영 몸이 힘드네. 근데 이 피디가 섭외했다는 실력자에 대한 정보는 좀 나왔어?”
이왕 손아경과 친구가 된 김에 정보나 캐자 싶어 은근슬쩍 떠 봤다. 손아경은 인상을 구기면서 고개를 삐딱하게 돌렸다.
“아~ 일곱 명 까지는 알겠는데 한 명은 도저히 모르겠다. 숨기려고 작정한 것 같아.”
기자의 정보력에 새삼 놀랐다. 오늘 출연자 여덟 중에 일곱이나 알아냈다니.
설마 알아냈다는 일곱 중에 찬희가 포함되었을까 봐 심장이 쫄깃해졌다.
“일곱이나 알아냈어? 고생했네.”
“뭐, 고생까지야. 맨날 하는 일인데...”
“아, 난 정말 모르겠어. 다른 취재가 있어서 이번에 제대로 못 덤볐거든. 살짝 귀띔 좀 해줘. 다음에 밥 한번 거하게 살게.”
나는 손아경에게 새로운 기억을 하나 더 주입시켰다.
1월 1일 새해 탑스타의 열애설 정보를 내가 손아경에게 넘긴 것으로. 손아경은 부진한 실적 탓에 회사에서 잘릴 위기였는데 내가 준 정보 덕으로 오히려 승진을 하게 됐다.
물론 다 가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손아경은 그 기억이 진짜라고 굳게 믿었다.
손아경은 조금 망설이더니 순순히 입을 열었다.
“저번에 자네가 그 큰 정보를 대가 없이 내게 줬는데, 이번엔 내가 갚아야겠지.”
“뭘, 겨우 그거 가지고...”
“아니야. 자네 덕분에 새해부터 특종을 낼 수 있었어. 그런데 아직 제대로 된 밥 한 끼 못 샀잖아.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지? ... 어떻게 그런 일이...”
손아경은 이상한지 뭔가 생각하려 애썼다.
의지가 강하면 술법이 깨질 수 있는 법. 나는 얼른 손아경의 관심을 돌렸다.
“그동안 내가 좀 아팠잖아. 자네가 몇 번이나 밥 산다 술 산다 정보를 나눠준다 했지만 내 사정이 안 좋았던 거지. 이제 나도 건강해 졌고 일도 좀 해야 하니까... 오늘 정보를 좀 주면 되지 않을까?”
“그렇지. 그러면 되겠다. 그럼 내가 자네에게만 살짝 말해줄게.”
손아경은 바짝 다가오며 목소리를 낮췄다.
“후즈 댓 싱어는 노래 잘하는 출연자 넷 웃음 담당 넷. 통상 이렇게 여덟을 섭외하거든. 웃음 담당은 영양가가 없고, 노래 쪽 네 명이 핵심이야. 내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번쩍번쩍 감전맨, 빙글빙글 지구본, 날아라 네버랜드, 코 낮은 피노키오 이렇게 넷이 가수야.”
“아아 그래?”
손아경은 손가락으로 내 입을 가렸다. 다른 기자들 눈치 못 채게 조심하라는 의미로.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다시금 손아경의 말에 집중했다.
“그중에 감전맨은 아이돌이고 지구본은 트로트 가수야. 그러니까 남현일에게 비빌만한 실력들이 안 된다는 거지.”
나는 격하게 끄덕였다.
“그러면 네버랜드랑 피노키오가 남는데, 네버랜드는 뮤지컬 가수거든. 실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장르에 따른 한계가 명확해서 남현일의 대항마로는 부족해.”
“그럼 코 낮은 피노키오가 오늘의 실력자라는 거네. 알아낸 건 있어?”
“그게 문제야. 파도 파도 모르겠어. 이 피디가 얼마나 꽁꽁 숨겼는지 감도 안 잡혀.”
손아경은 머리를 흔들면서 피노키오를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서 왠지 모를 여유가 흘러넘친다는 것을.
‘아직은 모르지만 알아낼 방법이 있구나. 그리고 그건 절대 공유하지 않을 거고...’
손아경이 찬희의 정체를 알아내게 가만히 둘 수 없었다. 나는 그와의 대화를 좀 더 이었다.
“그런데 자넨 금방 알아낼 거잖아. 안 그래?”
“이번엔 정말 깜깜이야. 나중에 노래 부를 때 잘 살펴봐야지.”
손아경은 철벽을 쳤다.
대화로는 안 될 것 같았다. 타심독견으로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
‘우와. 혀를 내두겠군. 하마터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네.’
손아경의 방법을 들여다본 순간 소름이 돋아 올랐다.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명확했다.
녹화 후 방송국 재무팀에서 출연자들의 출연료를 소속사로 보내는데 손아경은 그때를 노리고 있었다. 이미 재무팀 사원 한 명을 정보원으로 심어 두고 있기에 가능했다.
‘이래서 가왕의 정체가 한 두 주면 들통이 나는 거구나. 기자들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족속들이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찬희가 탄 밴이 들어왔다.
“저기, 마지막 출연자 코 낮은 피노키오가 들어온다. 이현희 피디의 비밀병기.”
손아경은 다른 기자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좋은 자리로 옮겨 갔다.
밴에서는 피노키오 가면을 쓴 찬희가 내렸고 기자들은 마구 질문을 쏟아 냈다.
찬희는 아무런 반응 없이 침착하게 방송국으로 들어갔다.
나도 기자들 무리에서 빠져나와 안으로 들어갔다.
***
먼저 방송국 카페로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다. 그리고 이현희 피디에게 문자부터 넣었다.
[이현희 피디님. 조명수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어떤 기자가 출연료 정산 정보를 이용해서 피노키오의 정체를 밝혀내려 하고 있습니다. 재무팀에 비밀 정보원이 있어 가능한가 보더라고요. 바로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답장은 바로 왔다.
[헉. 기자들이 지금껏 그런 방법을 쓰고 있었군요. 본부장님께 말씀드려 출연료 정산을 제가 직접 해야겠네요. 소중한 정보 감사해요. 매니저님.]
찬희의 정체가 들통 날 위험이 확 줄어들었다.
나는 마음을 놓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쭉 빨아들였다.
‘보자. 녹화장에는 스태프로 위장해서 들어갈까? 아니면 여기 앉아서 천안통으로 볼까?’
사소한 고민에 빠져 있는데
내 옆에 앉은 두 사람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지금 올라가면 되겠다.”
“몇 시지?”
“한 시. 지금 가면 방청객 판정단으로 온 사람들 많이 와 있을 거야.”
“빨리 올라가자. 너무 늦으면 안 좋은 자리 배정받을지도 몰라.”
그 둘이 일어서고 나도 일어섰다.
방청객 판정단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
후즈 댓 싱어 방청객들로 로비가 바글바글했다.
방청객 판정단은 한 사람이 응모해 뽑히면 함께 가고 싶은 사람 한 명을 추천할 수 있는 방식으로 90명이었다. 거기에 연예인 패널 판정단이 10명.
총 100명의 판정단이 심사를 보는 구조였다.
‘그냥 들어갈 수는 없겠고 술법을 좀 써야겠구나.’
술법은 필요할 때만 쓰는 것이 원칙이라 한 번도 안 쓰고 넘어가는 날도 많은데 오늘은 필요한 일이 무척 많았다.
잠시 후, 조연출과 스태프가 나타났다. 조연출이 방청객 앞에 나서는 동안 스태프는 서약서와 스티커를 나누어 주었다.
“후즈 댓 싱어 방청객 판정단으로 오신 여러분 주목해주세요.”
시끌했던 로비가 순간 조용해졌다.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나누어 드린 서약서에도 같은 내용이 적혀있으니까 함께 봐주시길 바랍니다.”
방청객들의 눈은 서약서로 귀는 조연출에게로 향했다.
“가장 지켜주셔야 할 점은 녹화 내용을 스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엄마나 절친 남친 여친 절대 안 됩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거거든요. 첫 방송 때까지는 답답하시더라도 부디 참아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동영상, 사진 촬영 당연히 금지입니다. 녹화장 들어가시면 핸드폰 전원을 아예 꺼 주시고, 녹음기도 안 됩니다.
후즈 댓 싱어를 사랑해주시는 여러분이니까 잘 지켜 주실 거라 믿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를 위해 방금 나눠 드린 스티커를 핸드폰 카메라에 붙여 주시길 바랍니다.”
“네.”
어차피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방청객들은 일사불란하게 스티커를 카메라에 붙였다. 그리고 서약서에도 사인을 해서 제출했다.
조연출은 계속해서 진행해 나갔다,
“지금부터는 인원 점검을 겸해서 손등에 도장을 찍어 드리겠습니다. 카메라에 스티커 붙인 거 보여주시고, 초대 문자 받은 것도 준비해주세요.”
“네.”
방청객들은 지시에 따라 초대 문자를 켜 두고 손등을 내밀었다.
“1번.”
조연출은 파란 도장을 첫 번째 방청객에게 찍으면서 숫자를 외쳤다.
“1번. 문자, 카메라 보여주세요.”
그 뒤로 스태프가 번호를 다시 한번 부르면서 카메라와 문자를 확인했다.
“2번.”
“2번. 문자, 카메라 보여주세요.”
.
.
“75번.”
“75번. 문자, 카메라 보여주세요.”
내 앞사람까지 확인을 했다.
이제 내 차례였다.
“76번.”
내 오른 손등에 파란 도장이 꾹 찍혔다.
“76번. 문자, 카메라 보여주세요.”
“네.”
호환이형(互幻異形)!
스태프에게 카메라를 들이밀면서 환술 호환이형을 걸었다.
카메라에 스티커가 붙고 초대 문자 메시지도 나타났다.
“확인했습니다.”
스태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통과된 것이다.
그 순간
추사법(抽思法)!
사람의 기억을 지우는 추사법을 조연출과 스태프 그리고 주변 방청객에게 걸었다.
그들의 기억에 방금 부른 번호 76이 눈 녹듯 사라졌다.
“76번.”
조연출은 내 뒤 사람에게 또 76을 외쳤다. 하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됐다. 이제 방청석에 앉아 편안히 감상할 수 있겠다.’
90번까지 인원 점검을 마친 후 조연출이 다시 나섰다.
“지금 마지막 리허설 중이라 끝나면 입장하겠습니다. 어디 가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리세요. 나중에 입장할 땐 손등에 찍힌 도장만 보여 주세요.”
마지막 리허설이라면 남현일이겠구나 싶었다.
천안통으로 공개홀을 들여다봤다. 패널 판정단과 방청객 판정단 자리가 비어 있어 아직 썰렁했다.
객석 메인 카메라 앞에 이현희 피디와 카메라 감독만 덩그러니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카메라 동선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리고 남현일이 조용히 무대로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