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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119화 (119/150)

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119화

많은 이야기와 웃음을 남기고 라디오 굿 이브닝이 끝났다. 자정을 넘긴 시간이라 제작진과 간단히 작별 인사만 한 후 서둘러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너의 손가락 노래 어땠어? 형이 부탁한 희망곡이라 특별히 더 신경 썼는데...”

찬희가 밴 앞자리에 앉으면서 물었다. 굿 이브닝 스케줄은 우리 둘 만이라 찬희는 조수석에 앉아갔다.

“말해 뭘 해. 아주 좋았지. 내 귀에 캔디였어. 후즈 댓 싱어에 나가면 남현일 꺾어버리겠다는 댓글 안 봤어?”

“봤지... 근데 내가 그 정도 실력이 될까?”

“아까 라이브로만 본다면 충분해... 혹시 기회가 온다면 나가볼래?”

“후즈 댓 싱어에?”

“응.”

나는 은근히 후즈 댓 싱어 출연에 대한 밑밥을 깔았다. 이제 곧 섭외 전화가 올 텐데 찬희도 마음의 준비는 해놓아야 했으니까.

“형, 나 사실... 후즈 댓 싱어 나가보고 싶어. 내가 예전부터 좋아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고 남현일 선배님 존경하니까.”

찬희는 조금 망설이더니 용기를 내어 솔직히 말했다. 찬희가 마음을 숨기지 않아 다행이었다.

“찬희 네 생각이 그러면 한번 나가보자. 난 나쁘지 않다고 봐.”

“엥. 근데 섭외도 안 왔는데 우리끼리 나가?”

“간절히 바라면 다 이뤄지는 법이잖아.”

“좋지. 섭외 오면 나간다.”

“그래, 이제 숙소로 출발합니다.”

차 시동을 켜려는 그 순간,

위이이잉~ 위이이잉~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당연히 후즈 댓 싱어의 이현희 피디였다.

‘오, 생각보다 빨리 전화가 왔네. 숙소에 도착할 때쯤 올 줄 알았는데. 잘 됐다. 찬희도 같이 들어야지.’

“잠깐만.”

나는 핸드폰을 거치대에 놓고 스피커폰으로 연결했다. 찬희는 이 밤에 누구 전화일까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자신감 있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밤늦게 죄송합니다. 저는 후즈 댓 싱어 피디 이현희라고 합니다. 찬희 씨 매니저 되시죠?

"네, 헤이데이 매니저 조명수입니다.”

-시간이 늦은 건 아는데, 방금 라디오 마쳐서 아직 방송국 일거라 생각했어요.

“맞습니다. 막 차 시동을 켜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찬희는 놀라서 입 모양만으로 내게 물었다.

[형, 이게 무슨 일이야?]

[너 섭외 전화 아닐까?]

[정말?]

-다름이 아니라 방금 라디오에서 찬희 씨 라이브 잘 들었어요.

“아, 네.”

-완전 소름 끼치더라고요. 제가 찾던 바로 그 목소리였거든요.

“아, 혹시 섭외 말씀이신가요? 후즈 댓 싱어의?”

찬희는 양 볼과 귀가 빨개졌다.

-네. 저희 프로에 나와 주실 수 있을까요? 찬희 씨 정도라면 지금의 가왕과 멋진 대결을 펼쳐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시청자분들이 정말 좋아하실 거예요.

“음... 일단 찬희와 의논을 좀 해봐야겠네요. 지금 가왕이 만만치 않기도 하고...”

-저희 프로에 찬희가 꼭 필요합니다. 부탁드립니다. 매니저님!

이현희는 솔직하고 대범하게 나왔다. 스케줄 핑계를 대고 한발 빼보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을 만큼.

그 순간 찬희도 손가락으로 오케이 표시를 해 내밀었다. 줄곧 나가고 싶었던 프로그램의 피디가 이 정도로 간곡히 부탁하니 망설이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찬희를 바라보며 입 모양으로만 한번 더 확답을 받았다.

[오케이?]

[응. 오케이.]

“후즈 댓 싱어에 찬희가 꼭 필요하다니, 영광입니다. 아마 찬희도 이 소식을 들으면 좋아할 거예요. 사실 후즈 댓 싱어의 열혈 시청자거든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섭외 요청에 바로 응했다.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주 녹화 가능할까요? 찬희 씨 얼굴을 가릴 마스크는 내일 바로 제작에 들어가도록 할게요.

“네, 미치겠네 활동이 끝난 시점이라 가능할 겁니다.”

-그럼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여러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는데 지금 다 하긴 너무 늦었으니까요... 아, 그리고.

“뭐 당부의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섭외는 절대 비밀입니다. 출연 가수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후즈 댓 싱어의 정체성이니까요. 찬희 씨와 매니저님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부탁드립니다. 다른 멤버나 회사 사람들도 모르게... 절대...

“그야 당연합니다. 찬희와 저만 알고 있겠습니다.”

-네. 그럼 매니저님. 조만간 뵐게요.

“네. 들어가십시오.”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예에쓰~~예쓰.”

참았던 숨을 터트리며 찬희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지금 가왕이 7주째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남현일이야. 괜찮겠어?”

“응, 괜찮아. 이기던 지던 남현일 선배님과 한 무대에 서서 겨뤄보고 싶어. 꿈의 무대잖아.”

“그래. 마음 편히 먹고 그냥 즐긴다고 생각해.”

“그래도 이왕 나가는 거 이기는 게 좋겠지. 보는 사람도 더 재밌을 테고.”

“당연하지. 거기 피디가 이 늦은 밤에 왜 직접 섭외 전화를 했겠어? 이겨 달라는 거지. 꼭.”

“형, 나 오늘부터 바로 연습 들어갈래.”

“오늘은 푹 자고 내일부터 하자.”

부릉~

밴이 부드럽게 출발했다.

***

개별 활동의 신호탄은 재경이부터였다.

NBS의 새 예능 <보물찾기>의 첫 녹화가 오늘 부산에서 있었다. 나는 1박 2일 동안 고생할 재경이를 위해 쌍화탕을 달였다. 가볍게 몸보신하기에 그만한 게 없었다.

“음, 냄새 좋다. 명수 형. 굿 모닝.”

나갈 준비를 다 마친 재경이가 방에서 나와 식탁에 앉았다. 나는 막 완성된 뜨끈뜨끈한 쌍화탕 한 잔을 재경이 앞에 놓았다.

“1박 2일 동안 고생할 텐데, 마셔.”

“고마워. 아마 내 또래 중에서 아침마다 이런 거 마시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거야.”

“혹시 거부감 들거나 먹기 싫으면 솔직히 말해도 돼.”

“아니야. 싫기는. 한 잔 마시고 나면 몸이 따뜻해지고 기운이 펄펄 솟는 걸. 나는 한약재 냄새도 좋아.”

“그래. 일단 체력이 돼야 뭐라도 하지.”

“응.”

재경이는 쌍화탕을 한 모금 마시고 내게 엄지척을 해 보였다.

아마 맛이 그렇게 나쁘지 않을 것이다. 쌍화탕을 끓일 때 단맛 나는 대추와 감초는 많이 넣고 쓴맛 나는 숙지황은 적게 넣었으니까. 벌꿀도 첨가하고 고소한 잣까지 띄웠다.

20대 초반 멤버들의 입맛에 맞추려 나름 노력했다.

“드디어 오늘 첫 녹화다. 기분은 어때?”

“설레.”

“설렌다고? 긴장은 안 돼?”

“긴장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지. 그건 당연한 거고... 긴장 말고 그다음 기분이 설렘이야.”

“왜 설레는데?”

“방송이긴 해도 여행 가는 거잖아. 여행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어. 부산은 아주 어릴 때 한번 가보고 처음이거든. 그래서 무척 설레.”

“아, 그렇구나.”

재경이와 한참 대화를 하고 있는데 크레이즈가 까치머리를 하고 나왔다. 늦게 까지 작업하고 피곤할 만도 한데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또 작업하러 갈 모양이었다.

“성민아. 좀 더 자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나는 쌍화탕을 한잔 따라 크레이즈에게 내밀었다. 크레이즈는 눈을 반만 뜨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더라도 작업실에서 자는 게 마음 편해. 유진이도 매일 그러고 있잖아.”

크레이즈는 쉬어서 갈라지는 목소리로 재경이를 쳐다봤다.

“근데 재경이는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나 오늘 <보물찾기> 첫 녹화야.”

“아~ 하. 미안. 미안. 내가 요즘 정말 정신이 없어.”

“헤이데이의 명 음반을 만드시느라 그런 건데 제가 이해해야죠.”

재경이가 생글 웃으며 크레이즈에게 인사를 꾸벅했다.

“그래. 명 음반. 기대해도 좋아. 그건 그렇고 <보물찾기>는 어떤 예능이야?”

“응, 일단 두 팀으로 나눠서 게임을 해. 이긴 팀에게는 보물에 대한 결정적 힌트를 주고 진 팀한테는 시시한 힌트를 주고. 그리고 보물을 찾는 거지. 보물을 찾은 팀은 럭셔리 숙소와 저녁밥을 제공받고 못 찾은 팀은 허름한 숙소와 초라한 저녁밥을 받고.”

“큭큭. 말만 들어도 재밌겠다.”

“응, 관광지를 소개하면서 게임하고 벌칙 받고 그런 예능이야. 강종석 형님 말씀에 따르면 녹화해나가면서 차츰 컨셉이 잡힌다 하더라고.”

“오늘 녹화는 어디서 하는데?”

“부산. 오프닝은 일단 NBS 방송국 앞에서 하고 그다음 부산으로 내려가서 해운대, 자갈치 시장, 태종대, 송도 케이블카 뭐 그렇게 돌 거야.”

재경이의 말이 빨라지면서 톤이 올라갔다. 생각할수록 설레는 모양이었다. 크레이즈도 그렇게 느꼈는지 무심코 한 마디 뱉었다.

“넌 일하러 가는 게 아니라 놀러 가는 거 같다.”

“솔직히 여행 가는 기분이거든. 일하러 가는 거라고 속으로 아무리 다그쳐도 자꾸 그래. 명수 형.”

“응?”

“나 이런 기분이면 안 되는 건가?”

재경이가 나를 쳐다보며 갑자기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안 되긴. 뭐든 즐기면서 하는 사람이 고수인 거지. 긴장해서 딱딱하게 굳는 것보다 즐거워 보이는 게 훨씬 나아. 또 시청자들에게 여행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도 <보물찾기>의 목적 중 하나잖아.”

“역시, 형 말 들으니 안심이 된다.”

재경이가 방긋 웃으며 쌍화탕 마신 컵을 내밀었다. 한 방울도 남김없이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그때, 리오가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굿 모닝, 리오 형.”

“리오야, 와서 앉아. 쌍화탕 한 잔 해야지.”

“응.”

리오는 현관 앞에 캐리어를 놓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컵에 쌍화탕 한잔을 따라 리오 앞에도 놓았다.

“오늘 가는 거야?”

크레이즈가 리오에게 물었다. 쌍화탕의 효능 덕분에 쉬어서 갈라졌던 목소리가 많이 돌아와 있었다.

“응.”

“언제 와?”

“대회 끝나면 바로 와야지.”

리오는 3월 한 달 동안 파워 스쿨의 합숙소에서 지낼 예정이었다. 3월 말에 있는 비보잉 세계 대회 컴배트 오브 더 이어(COTY)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리오, 준비는 잘 돼가? 필요한 건 더 없고?”

하이 디멘션은 파워 스쿨의 이번 대회 스폰서가 되었다. 물론 우리 리오가 출전하는 대회니까 신경 좀 썼다.

준비 과정과 출전하는 여러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내고 비행기 티켓과 호텔 숙박비 정도를 지원하는 선이었다.

“응. 없어. 소소한 건 와이가 다 챙기거든. 비행기랑 호텔만 해도 다들 고마워해. 명수 형. 고마워.”

“고맙긴. 리오 넌 우리 하이 디멘션의 보물인데.”

하하

하하하

가볍게 농담을 했더니 모두들 가볍게 웃었다. 그때, 약속이라도 한 듯 현우 찬희 동일이가 한꺼번에 나왔다.

세 잔의 쌍화탕을 더 따라야 했다.

“자, 이건 현우 꺼. 오늘 2차 리딩이지?”

“응. 대본이 6회까지 나왔어.”

“대사는 다 외웠어?”

“안 외우려고 해도 저절로 다 외워져. 이것도 병인가?”

“병이라면 훌륭한 병이지.”

그다음 잔을 따라 동일이 앞으로 내밀었다.

“동일아, 오늘 재경이 잘 부탁해. 내가 못 가서 미안하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부산을 너무 좋아해서 수십 번 가봤거든요. 지리도 빠삭하고 부산 사람들 운전 성향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재경이 잘 데려갈게요.”

“그래. 너만 믿는다. 내가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그래도 오늘 저녁에는 합류할 거야.”

“네, 천천히 일 보시고 내려오십시오.”

원래 재경이 첫 녹화는 내가 데리고 가려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후즈 댓 싱어의 이현희 피디와 비밀스러운 약속이 잡히는 바람에 부산행은 동일이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찬희가 와 앉았다.

나는 찬희에게도 쌍화탕을 한잔 건넸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아무 말도 시키지 않았다. 실수로라도 후즈 댓 싱어 얘기가 나올까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찬희와 나는 요 며칠 티 내지 않으려 정말 조심하고 있었다.

“찬희 형도 오늘 스케줄 있어?”

크레이즈가 불쑥 물었다. 음반 작업으로 바쁘다면서도 찬희 스케줄은 꿰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하고는.

“어... 그게...”

평소 거짓말을 못하는 찬희는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양 볼만 붉어질 뿐이었다.

재빨리 내가 나섰다.

“찬희도 스케줄 있어.”

“어떤 거?”

크레이즈는 심드렁하게 물었다.

“친구!... 찬희야, 너 오늘 고등학교 동창 만난다고 했지?”

“어, 어,... 어, 친구. 아니...어.. 동창 만날 거야.”

찬희가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순간 멤버들이 눈치챌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다들 자기 일이 바빠 그런지 수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중 크레이즈가 제일 관심 없어 보였다.

괜히 나와 찬희만 진땀을 뺐다.

“이제 나가자. 동일이는 재경이랑 NBS 방송국으로 가면 되고, 현우 리오 크레이즈 찬희는 내가 차례대로 데려다줄게.”

“응.”

“가자.”

“우리는 개별 활동도 꼭 단체 활동같이 한다. 그지?”

“뭐, 보기 따라서는.”

모두들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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