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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118화 (118/150)

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118화

라디오 굿 이브닝으로 가고 있는 밴 안.

찬희는 별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듯해서 나도 운전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었다.

‘찬희가 마음속에 뭔가 담아 두고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일까?’

그때 찬희의 마음의 소리가 들려버렸다. 찬희의 메시지가 너무나 컸고 나 또한 찬희의 생각이 궁금했기에 저절로 일어난 작용이었다.

-후즈 댓 싱어에 나가고 싶다. 남현일 선배님이 가왕으로 있을 때 한번 겨뤄보고 싶어. 혹시 지더라도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어쩌면 이길 수도 있잖아. 사실, 자신 있거든.

이런 내 마음을 명수 형에게 말하면 뭐라고 할까? 이긴다면 상관없겠지만, 진다면 헤이데이 이미지에 좋을 건 없겠지... 다들 개별 활동 열심히인데, 내 욕심 때문에 일을 망칠 수도 있어...

찬희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이기든 지든 후즈 댓 싱어에 나가 남현일에게 도전장을 내밀어 보고 싶지만 그것이 헤이데이에게 안 좋게 작용할까 걱정하고 있었다.

‘찬희가 후즈 댓 싱어에 나가고 싶구나.’

찬희의 마음을 읽었지만 쉽게 뭐라 말해 줄 수 없었다. 사실 찬희의 생각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찬희가 남현일을 꺾고 새로운 가왕이 된다면 실력을 인정받고 좋은 이미지를 얻게 되겠지만, 진다면 시시한 실력이 드러났다며 헤이데이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기자들의 먹잇감이 될 것이 뻔했다.

‘어떡하는 게 좋을까? 음... 후즈 댓 싱어에 나가려면 남현일과 비교해서 찬희의 실력이 어떤지 살펴봐야 해. 남현일은 정말 만만한 가수가 아니니까. 오늘 라디오에서 찬희가 남현일의 노래를 불러본다면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겠는데.’

찬희가 남현일의 노래 부르는 걸 들어본다면 승산이 있을지 없을지 판단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찬희야.”

“응, 형.”

이름을 부르자 상념에 젖어 있던 찬희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봤다.

“혹시 오늘 라디오 희망곡 내가 신청해도 될까?”

“그게 무슨 소리야? 듣고 싶은 노래라도 있어?”

“응, 남현일의 <너의 손가락>.”

“아, 그 노래라면 요즘 신청곡으로 많이 들어오는 노래야. 남현일이 후즈 댓 싱어 가왕이다 보니 다들 관심 많으셔.”

“그럼 불러줄 수 있겠네. 왠지 오늘 밤 너의 목소리로 그 노래가 듣고 싶어서.”

“응. 충분히 가능할 거야. 저번 주에도 부르려고 한 노래니까. 피디님께 말씀드릴게.”

“고마워.”

***

굿 이브닝 진행자 지수연과 찬희가 주거니 받거니 토크 중이었다.

청취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지수연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사연을 읽어가며 높아진 인기를 확인했다.

“찬희 씨 그거 알고 있어요?”

“그거가 뭔지 말씀을 하셔야 알든지 모르든지 하죠.”

“아하하. 맞네요. 제가 그거가 뭔지 아직 얘기를 안 했네요.”

출연을 거듭할수록 찬희의 입담이 늘고 지수연과의 호흡이 좋았다.

“밤에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려야 할 정류소를 지나쳐 몇 정거장을 더 간대요.”

“왜요? 피곤하실 텐데.”

“찬희 씨 라이브 듣느라고.”

“에이, 그런 청취자 분이 어딨어요?”

“진짜예요. 여기 사연을 보내주셨어요. JK라는 청취자분은 몇 번이나 그랬대요.”

“JK?”

찬희는 JK라는 아이디가 보낸 사연을 확인했다. 그런데 말투나 어감이 왠지 낯익었다.

“이거 재경이에요.”

“네? 아니 JK가 헤이데이 막내 재경 씨라고요?”

“이상한 거 게시판에 올리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제가 아주 부끄러워 죽겠어요.”

“아하하. 그러면 이 사연은요? 자가용 타고 집에 도착했는데 찬희 씨 노래 듣느라 시동을 못 끄겠어요라고 보내주셨잖아요.”

지수연은 모니터에 얼굴을 묻고 사연을 읽었다.

“혹시 정성민?”

“우와. 소름. 어떻게 아셨어요?”

“크레이즈 본명이거든요.”

하하하

호호호호

“아하하. 그래도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네요. 헤이데이 멤버들 사이 너무 좋다는 거. 동생들이 찬희 씨 엄청 챙긴다는 거.”

“네, 멤버들에게 항상 감사하죠.”

“평소에도 멤버들이랑 이렇게 장난치고 막 그래요?”

“네,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아하. 그래서 찬희 씨 나오면 우리도 즐거워지는구나. 재경 씨 크레이즈 씨 사연 보내 주셔서 감사해요. 자, 그럼 우리 청취자들이 가장 기다리는 순서죠. 찬희 씨. 오늘 들려주실 곡은요?”

“네. 진해에 사시는 이봄 님이 신청하신 남현일의 <너의 손가락> 들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 큰 박수 주세요.”

와와

짝짝짝

박수소리가 들리고 잔잔한 반주가 흘러나왔다. 찬희는 자리에 일어서서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섰다.

[아아아~예이예에에

내 손등을 스쳐 지나가던 너의 가녀린 손가락

내 앞머리를 쓸어 올려 주던 너의 창백한 손가락~]

감미로운 목소리가 청취자의 귀 속으로 녹아들어 갔다. 그리고 내 귀에도.

‘오~ 역시 한 소절만 들어도 알겠다. 남현일의 독주를 막을 자는 찬희뿐이라는 걸.’

잠시지만 찬희의 실력을 의심한 것이 미안했다.

찬희는 새로운 버전의 너의 손가락을 창조해냈고, 그것은 남현일의 오리지널 버전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남현일의 오리지널 버전이 오래된 사진 느낌이라면 찬희의 노래는 ultra HD 같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당장 섭외를 진행해 볼까?’

나는 지체 없이 옥상으로 올라갔다.

술법 만개주망(萬個蛛網)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순광에 오른 도사 중에서도 절륜의 경지에 닿은 자만이 부릴 수 있는 최고난도 술법.

몸에 흐르는 기를 사방으로 방사하여 사람을 찾아내고 또한 행동을 조종할 수도 있다.

“도화선!”

도화선부터 불렀다. 도사의 부채가 있으면 도력은 더 강해지는 법이니까.

허리춤에 있던 도화가 공중으로 튀어 올라 내 손에 감겼다.

착!

도화를 펼쳐 부채질을 했더니 순식간에 강한 바람이 일어 몸이 뜨고 빙글빙글 돌았다. 속도가 점점 붙어나가자 몸 안의 기를 방출해 뻗기 시작했다.

만개주망(萬個蛛網)!!

“후즈 댓 싱어의 이현희 피디를 찾아라!!”

촘촘한 기의 거미줄이 서울 시내 전체로 뻗어 나가며 건물 안, 길 위, 도로를 질주하는 모든 사람들과 연결되었다.

이현희를 찾는데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방송국 피디는 방송국 근처에 있기 마련이니까.

“찾았다, 이현희 피디!”

이현희는 도로 위 승용차 안에서 섭외 담당 작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눈 주변에 다크 서클이 진하게 발라져서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간곡하게 부탁을 했어? 그냥 건성으로 한 거 아냐?”

-아니에요. 최대한 정중하게 말씀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이현희는 남현일의 대항마가 될 수 있는 보컬 4대장 중 하나인 김하순의 섭외가 성사되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섭외 작가의 한 템포 밀리는 목소리에서 뜻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감지했다.

-안 된대요. 힘들대요.

또 땡이구나. 어느 정도 거절당할 건 알았지만 순간 짜증이 밀려들었다. 한 달 내내 섭외에 난항을 겪고 있었으니까.

“뭐가 마음에 안 든대?”

-자기는 예능이 싫대요.

“후즈 댓 싱어는 예능이 아니라 고품격 음악프로그램이라고 말했어?”

-했죠.

“그랬더니?”

-그냥 웃던데요. 씨알도 안 먹혀요. 그리고···

“그리고 뭐?”

-솔직히 남현일이 부담스럽다고.

“아이, 참 나. 그래 내가 바보다, 바보야. 왜 남현일을 섭외해서는 이 고생이라니.”

처음에 남현일이 섭외에 응했을 때만 해도 쾌재를 불렀는데 이제는 그 선택이 독이 되고 있었다. 이미 가왕이 누구인지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프로그램은 식상해 질대로 식상해졌고 재미는 반감되었다. 최고 시청률 8%까지 찍었다가 최근엔 브레이크도 없이 쭉쭉 떨어지고 있었다.

남현일에게 살살해 달라고 부탁도 해 봤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는 막상 무대에 서면 도전자들을 다 발라 버렸다.

도전자들은 자존심에 스크레치가 났고, 다음 도전자 찾기는 점점 힘들어졌다.

“휴. 그럼 박주선 씨에게 연락해. 이번에 뮤지컬 끝났어.”

-네? ···박주선 씨가 누구죠?

“대한 소극장에서 뮤지컬 피터팬 했었잖아. 피터팬 역할한 배우.”

이현희 피디는 인지도가 없는 가수를 말하고 있었다. 그런 가수들은 후즈 댓 싱어에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손해 볼 것이 없었으므로 언제나 오케이였다.

하지만 문제는 누군지도 모르는 가수를 보고 누군지 맞춰야 하는 패널과 시청자들의 피로감이었다.

-그렇게 인지도 없는 가수가 출연하면 패널들이 할 말이 없을 텐데요...

“누군 모르니? 그럼 어떡해? 방송하지 말까? 녹화는 해야 할 거 아냐.”

-네. 알겠습니다.

이현희 피디는 전화를 끊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성질을 내고 말았다.

시청률은 수직 낙하만 남았다. 시청자 게시판에 욕이란 욕은 다 올라올 거고, 본부장에게 끌려가서 한 소리도 듣겠지. 잘못하면 다음 개편 때 프로가 없어질 수도 있다. 휴~

“아~~~ 진짜 어디 구세주 없나? 이현희를 살려주실 구세주 없나요?”

고함을 크게 질렀다. 요즘 스트레스를 너무 받고 있어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미쳐버릴지 몰랐다.

내 짐작보다 이현희의 상황은 더 안 좋았다. 하지만 어둠이 짙은 새벽 다음엔 반드시 밝은 아침이 찾아오는 법.

우리 찬희가 이현희의 아침이 되어줄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이현희의 구세주 노릇 좀 해 볼까?’

헙!

“라디오를 켜서 굿 이브닝으로 주파수로 맞춰라.”

만개주망(萬個蛛網)으로 행동을 간섭했더니 이현희의 손이 스르륵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손이 왜 이래. 뭐야?”

‘괜찮아요. 괜찮아. 다 피디님을 위한 겁니다.’

이현희의 손가락은 정확하게 굿 이브닝 주파수를 맞췄고,

그땐 찬희의 노래가 막 2절을 향해 가고 있는 순간이었다.

[아아아~예이예에에

내 두 뺨을 감싸던 너의 가녀린 손가락

내 가슴에 살며시 올려두던 너의 창백한 손가락~]

너의 손가락에 더 이상 내 사랑이 보이질 않아

이제 우린 정말~ 이렇게 끝나는 걸까~

떠나지 말란 나의 생각을 떠나란 나의 말로

내 입술이 나를 배신해~]

뭐야!!

이 노래 지금 누가 부르는 거야!!

이현희는 갓길로 차를 세웠다. 온몸에 전율이 일어 운전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진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스킬

호흡에 묻어나는 가사의 애절함에 숨이 벅찰 정도였다.

거기다 분명 남현일의 노래인데 지금 노래를 하는 가수는 남현일이 아니었다. 누굴까? 누군지 전혀 짐작이 되질 않았다.

“구제주다. 후즈 댓 싱어의 구세주가 나타났어!! 남현일을 발라버릴 가창력 그리고 누군지 짐작 가지 않는 참신함.”

이현희는 너무나 기뻐서 또 소리치고 있었다.

그때, 노래가 끝나고 박수와 환호 소리가 터졌다. 그리고 디제이의 멘트도.

[와우, 찬희 군 오늘도 멋진 노래 감사합니다. 애청자 여러분들이 소름 끼친다고 문자 폭주예요. 사실 나도 눈물 났어....]

“찬희라면 헤이데이 보컬 찬희?”

남현일의 대항마로 아이돌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겨뤄볼 만한 실력이 되지 않을 거란 선입견 때문이었다.

“근데 역으로 생각하면 패널이나 시청자들도 아이돌이 나올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을 거 아니야. 와우! 이거 대박이다.”

이현희는 섭외 작가에게 당장에 전화를 걸었다.

-네. 피디님.

“지금 당장 헤이데이 매니저 전화번호 좀 알아봐.”

-섭외하시게요? 제가 전화해볼까요?

“아니. 내가 할 거야. 이거 꼭 성사시켜야 하거든.”

늦은 밤이지만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이현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직접 섭외 전화를 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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