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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105화 (105/150)

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105화

일과가 시작되기 전 아침, 숙소 소파에 앉아 어젯밤 허문호 기자가 쓴 기사를 읽었다.

[아이돌 일탈, 이대로 좋은가?

최근 언젠가부터 본업이 가수인지 예능인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무분별하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아이돌이 많아졌다.

지난 <자연에 살으리랏다>에 출연해 큰 성공을 거둔 헤이데이는 뿜뿜 아이돌에 이어 NBS 신규 예능까지 출연할 예정이다.

아무런 검증도 안 된 아이돌이 인기만을 믿고 예능에 얼굴을 비친다면 그 식상함과 피로감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사흘 전 허문호 기자의 전화를 받았었다. 한정식 수라간에서 보고 난 직후였다.

“여보세요.”

-쉬고 계실 텐데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연예부 기자 허문호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하하. 제가 이번에 기획하고 있는 특집 기사가 있는데 계속 헤이데이가 밟혀서요. 기사 내기 전에 먼저 말씀드리는 게 도리가 아닌가 해서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혹시 어떤 주제로 기사를 쓰고 계신지 알 수 있을까요?”

-뭐. 특별한 건 아니고... 요즘 무분별하게 예능에 출연하는 아이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헤이데이의 재경이만 꼭 집어 말하는 것도 아니고... 음..

허문호는 최대한 말을 돌렸지만, 결국 헤이데이에게 불리한 기사를 준비하고 있으니 기사를 막으려면 돈을 준비해라 그런 말을 했다.

아마 별 매니지먼트 같은 대형 기획사에는 이런 전화를 걸지 못할 것이다. 잘못했다가는 회사의 법률팀이나 홍보팀에게 역으로 당할 테니까.

우리 같은 신생 회사는 대항할 조직이 없다 여겨 쉽게 생각하는 듯했다.

“기사를 쓰는 건 기자님 마음입니다. 그러니 이런 전화를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지금 재경이의 운세는 크게 뻗어있어, 재경이를 비방하려는 기사조차 득으로 작용할 정도였으니까.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겠다. 우리 회사에도 이런 일을 전담할 홍보팀이 필요해.’

주 과장 홍 실장 동일이 그리고 내가 유기적으로 움직여 회사를 그럭저럭 잘 운영하고 있었지만 계속 이런 식일 순 없었다.

이제는 회사도 체계가 필요했다. 허문호 기자 같은 사람이 함부로 덤비지 못하도록 할.

덜컥.

“오늘 밖이 엄청 추운데요.”

밴에 스노우 체인을 갈아 끼운 동일이가 손을 호호 불며 들어왔다.

“늦겨울 추위가 매섭나 보네. 멤버들 따뜻한 패딩 단단히 챙겨 입으라고 해. 오늘 야외 행사에서 감기라도 걸리면 안 되잖아.”

“네. 알겠습니다.”

나는 헤이데이 스케줄 표를 보면서 비는 시간을 체크했다. 직원회의부터 열어 함께 의논해야 했으니까.

“동일아, 오늘 헤이데이 스케줄 6시쯤 끝나지?”

“네. 4시에 스퀘어 플러스 팬 사인회로 스케줄이 끝납니다.”

“그래. 그러면 저녁에 우리 직원회의 한 번 하자.”

“직원회의요? 주 과장님이랑 홍 실장님이랑 매니저님이랑 저랑요?”

“응. 회사 설립만 해놓고 너무 신경을 못 쓴 것 같아. 물론 그동안 많이 바쁘긴 했지만... 이제 제대로 된 회사를 만들어야지.”

“네, 알겠습니다.”

***

동일이는 헤어숍으로 멤버들을 데리고 갔고 나는 사무실로 직행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와 분주한 주선해가 보였다.

주선해는 전화를 받아 메모를 하고 컴퓨터에 자료를 입력하고 어질러진 주변을 정리해가며 1인 3역을 해내고 있었다.

‘와우, 주 과장님이 아니었음 회사가 하루도 못 돌아갈 뻔했네. 저러다 쓰러지겠다.’

나는 작은 일이라도 도우려 얼른 사무실로 들어갔다.

주선해는 통화를 하느라 내가 들어서는 것도 눈치 못 채고 있었다.

“네,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아, 당연하죠.”

수화기를 손에 든 주선해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였다. 만개한 꽃처럼 표정이 밝아지면서. 좋은 소식의 전화인지 주선해는 흥분하고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만은 사무적인 톤을 계속 유지했다. 베테랑답게.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툭.

“오~ 예~”

주선해는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소리치며 춤을 췄다. 사무실에 아무도 없다 생각해서 그런지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으흠, 으흠, 으흠.”

나는 최선을 다해 인기척을 냈다. 큰 소리로 헛기침을 세 번이나 내면서.

주선해가 화들짝 놀라며 애꿎은 책상만 손으로 쓸었다.

“매니저님. 언제부터 거기 계셨어요? 왔으면 인기척이라도 하든가...”

“흠. 흠. 무슨 좋은 전화를 받았나 보네요.”

주선해는 다시 그 통화가 생각나 활짝 웃었다.

“우리 헤이데이에게 광고 섭외가 들어왔어요.”

“광고 섭외는 계속 오고 있는데요···”

“지금껏 들어왔던 곳이랑은 비교가 안 되게 큰!”

“오, 그래요?”

“한번 맞춰 보세요. 어디서 왔을까요?”

주선해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쉽게 맞출 수 있지만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도술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이 내겐 있었다.

그래서 그냥 평범하게 답을 유추해 보았다.

“어썸 치킨?”

잘 나가는 아이돌이라면 반드시 찍는다는 치킨 광고가 헤이데이에겐 아직까지 없었으니까.

“노노.”

주선해는 역시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주선해가 하는 걸로 봐서 더 큰 광고인 것 같았다.

“명품 의류 광고? 펜냐? 사니타스?”

“아닙니다. 정답은 바로 스카이 일렉트로닉스의 블랙 펄 22입니다.”

“오~.”

주선해가 그렇게 방방 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도 그럴 뻔했으니까.

“블랙 펄 22라고요?”

“네. 방금 전화 온 회사가 스카이였어요.”

주선해는 방금 적은 메모지를 내게 보여 주었다.

[스카이 일렉트로닉 블랙 펄 22 스카이 애드 제작 오중환 CD(Creative Direct).]

“스카이 애드 광고 제작팀에서 이번에 새로 출시하는 블랙 펄 22의 모델로 헤이데이를 선정했데요.”

스카이는 세계 최고의 핸드폰 회사로 블랙 펄 22는 아직 시중에 나오지도 않은 따끈따끈한 신상이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스카이 주력 상품의 모델로 헤이데이가 선정되었다니.

'일단 광고비가 상당하겠지. 지금 회사 사정으론 돈이란 있어도 있어도 모자라잖아. 분명 도움이 될 거야. 하지만 돈만 다가 아니다. 블랙 펄 22의 모델을 한다면 헤이데이가 SS급이 되었다는 대외 증명도 될 거야.’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승천하고 있었다.

“회사 논의를 거쳐서 다시 전화드린다고 했어요.”

“잘하셨어요.”

주선해는 역시 품위를 유지할 줄 알았다.

하하하

호호호

우리는 마주 보고 실컷 웃었다.

“아, 그런데.”

주선해가 아차 생각난 듯 손바닥을 탁 쳤다.

“블랙펄 22 모델이 헤이데이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팀도 참여한다고 해요. 아마 매체마다 모델을 다르게 쓸 건가 봐요. 지상파, 케이블, 영화, 너튜브 뭐, 그런 식으로 나눠서. 아직 어떤 매체에 어떤 모델이 들어갈지는 정해지지 않았고요.”

“스카이에서 야심 차게 대대적으로 홍보를 할 건가 보네요. 어쨌든 너무 끌지 말고 점심 먹고 바로 오케이 전화 돌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내 책상에 앉았다. 주선해도 자기 책상에 앉아 업무를 다시 시작했다.

“선해 씨, 다음 주 헤이데이 스케줄 하고 섭외 요청 자료 좀 부탁합니다.”

“네, 잠시만요.”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주선해가 파일을 찾는 동안에 또 전화가 왔다. 주선해는 한 손으로는 파일을 찾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능숙하게 전화를 받았다.

“네, HD 매니지먼트입니다.”

회사 이름을 헤이데이의 이니셜을 따서 HD로 등록했다. 그런데 헤이데이 멤버들이 조금 부담스러워해서 HD에 맞는 다른 단어를 생각하고 있었다.

“매니저님 여기.”

주선해는 수화기를 손으로 막고 파일을 내게 건넸다. A4 4장에 걸쳐서 각 파트별과 날짜별, 시간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네. 상의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전화 통화를 마무리했다. 주선해는 통화에 대해 바로 보고했다.

“제주도 호텔 오픈 행사로 헤이데이가 출연해 달라는 전화예요.”

“언젠데요?”

“3월 초라는데... 시간이 있으려나 모르겠어요.”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3월에는 현우 드라마와 재경이의 예능 촬영 시작된다. 제주도 행사까지는 어려웠다.

“네. 그럼 거절하겠습니다.”

주선해는 방금 온 전화로 다시 전화를 걸어 공손히 거절했다.

“저기, 선해 씨?”

“네, 매니저님.”

“오늘 저녁 6시에 직원회의 한번 하려는데 시간 어떠세요? 퇴근 시간이랑 맞물려서 죄송해요. 헤이데이 스케줄에 맞추려다 보니...”

“직원회의요? 우리 회사도 드디어 회의를 하나요? 당연히 시간이 됩니다. 매니저님.”

주선해는 무척 좋아했다. 회의 처음 해보는 사람처럼.

“네, 그러면 오늘 회의에서 직원 확충 계획과 회사의 방향성 같은 의제에 대해 논의를 하죠.”

“아~ 이제야 좀 회사 같은 느낌 나네요.”

“홍 실장님께도 연락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타타타-

주선해의 타이핑 소리가 밝게 울려 퍼졌다.

***

헤이데이의 스케줄이 끝나고, 저녁 6시가 되었다.

나는 배동일 주선해와 함께 직원회의를 시작했다. 홍예나는 동대문 시장 답사를 가서 참석 못한다고 했다. 갑자기 하게 된 회의이기도 하고 스타일리스트 팀은 독립적으로 일을 잘하고 있었으므로 괜찮았다.

“헤이데이가 별 매니지먼트를 나오자마자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지나왔습니다. HD 매니지먼트라고 사업자 등록이랑 대중문화예술기획업자 등록만 해 놓았지 제대로 된 조직도 인원도 없는 상황 속에서요.

여전히 매일매일 바쁘기는 하지만 이제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먼저입니다. 회사가 하루빨리 정상화되어야 헤이데이 활동에 도움이 될 테니까요.”

동일이와 주선해는 수첩을 펴고 앉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늘 회의에서는 조직의 경계를 확실히 정하고 각 팀의 부족한 인원과 업무 배정에 관한 밑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회의가 늘어지지 않도록 최대한 빠르게 진행을 할게요.”

둘은 눈을 반짝이며 허리를 곧추 세웠다.

“아, 먼저 저희 회사 이름에 관한 것부터 한 말씀드릴게요. 알다시피 저희 회사 이름은 헤이데이의 앞 글자를 딴 HD 매니지먼트입니다. 그런데 멤버들이 부담을 가지는 것 있고, 저 개인적으로도 좀 더 좋은 뜻을 담을 수 있다면 어떨까 해서 이름을 다시 정해봤습니다.”

“궁금한데요.”

“뭔가요?”

둘은 볼펜을 들면서 필기할 준비를 했다.

“하이(High) 디멘션(Dimension)입니다. 헤이데이가 한 차원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는 의미입니다.”

“오우, 괜찮은데요.”

“저도 마음에 듭니다.”

짝짝짝

짝짝짝

둘은 무척 마음에 드는지 박수까지 쳤다.

“네, 그럼 이제부터 회사 이름은 하이 디멘션 매니지먼트라고 부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HD 혹은 하이 디멘션이라고 부르면 되는 거죠?”

“맞습니다. 그런데 뜻이 확실히 보이는 하이 디멘션을 좀 더 썼으면 합니다.”

둘은 하이 디멘션을 몇 번이나 발음하면서 입에 착 붙이려 노력했다.

“이번엔 회사의 조직도입니다. 현재 하이 디멘션은 주 과장님이 맡고 있는 경영지원 팀, 홍예나 실장님의 스타일리스트 팀, 그리고 동일이와 내가 있는 가수 매니지먼트 팀. 이렇게 세 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스타일리스트 팀을 제외하고는 직원 수가 적은 게 사실이죠. 우선 경영지원 팀만 해도 주 과장님 혼자시니까요. 주 과장님. 지금 상황은 어떤가요?”

“네. 저 혼자서 재무 업무랑 헤이데이 스케줄 관리 업무를 모두 보고 있어서 손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보조 직원 한 명만 더 있어도 숨통이 좀 트일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경영지원 팀에 직원 한 명 추가하겠습니다. 저희 가수 매니지먼트 팀에도 최소 한 명의 매니저가 더 필요합니다. 이제 현우와 재경이를 시작으로 개별 활동에 들어갈 텐데, 팀 활동과 개별 활동 둘 다를 원활하게 소화하기 위해서 매니저 확충은 필수니까요.”

“그럼 이번에 새로 뽑을 직원은 두 명인 건가요?”

“네. 일단은 그렇게 정하고 상황 봐서 더 뽑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회사에 중요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입만 쳐다봤다.

“팀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합니다.”

“어떤 팀을요?”

“바로 홍보팀입니다.”

헤이데이에 대한 가짜 뉴스나 악의적인 기사에 대처할 수 있는 홍보팀이 지금 당장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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