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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104화 (104/150)

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104화

현우를 숙소에 데려다주고 이번엔 재경이와 함께 한정식 수라상으로 갔다. 재경이는 그곳에서 강종석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재경아, 지금 식사 자리는 사적인 자리니까 너 혼자 강종석 씨와 식사하는 거 알지?”

“응. 알지.”

“우리도 간 김에 밥 먹고 밴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끝나면 전화해.”

“알았어.”

***

수라상은 매끈한 서까래와 기와가 멋스러운 한옥 건물이었다. 분재가 쭉 놓인 마당에는 가야금 소리가 은은히 퍼지고 고운 한복을 입은 직원들은 친절히 우리를 맞이했다.

“예약하셨나요?”

“네. 강종석이랑 조명수 이름으로 되어 있을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직원은 능숙한 솜씨로 예약자 명단을 확인했다.

“확인했습니다. 먼저 강종석 님이 예약한 자리부터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직원이 앞장서자 재경이가 직원을 따랐다.

“재경아, 밥 맛있게 먹고 끝나면 전화해.”

“오케이, 알았어.”

“재경아.”

“응?”

“··· 아니, 맛있게 먹으라고.”

주눅 들지 말고 하던 대로 하라고 말하려다 다시 집어넣었다. 헤이데이 멤버 중 어디에 내놔도 제일 안심이 되는 녀석이니까 잔소리는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응, 알았어. 이제 나, 들어간다.”

재경이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매화방으로 들어갔다. 동일이와 나도 작게 손을 흔들었다.

잠시 후, 재경이를 안내했던 직원이 돌아와서 우리 자리도 안내했다. 출입문이 가까워서 손님들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이 다 보이는 다소 어수선한 자리였다.

“숙수상으로 2인분 부탁합니다.”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직원은 몸에 밴 친절로 주문을 받으며 공손히 인사했다.

한옥으로 된 식당에서 한복을 입은 직원의 서빙을 받으니 예전 생각이 많이 났다. 오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소하게나마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고맙기만 했다.

“저, 매니저 님.”

“응?”

“혹시 이 자리 매니저님이 직접 부탁하셨나요?”

동일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몸을 기울여 조용히 물었다. 표정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그건 왜?”

“아니, 좀 안 좋은 자리를 내 준 것 같아서요. 사람들 들락날락 거리는 거 다 보이고 어수선하네요. 원래 예약석은 좀 사적이고 조용한 자리를 내주지 않나 싶어서요.”

나는 싱긋 웃었다. 동일이가 예상보다 빨리 눈치를 채서.

“네 말이 맞아. 내가 출입문에서 가까운 곳으로 부탁한다고 했어. 그럼 혹시 왜 내가 이 자리를 달라고 했는지는 알겠어?”

“음···”

동일이의 콧잔등에 진한 주름이 파였다. 이유를 파악해 보려 애쓰고 있었다.

“식당에서 일어나는 일을 빨리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오, 맞아. 출입문 자리는 혹시라도 재경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재빨리 대처할 수 있고 또 식당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다 확인할 수 있고... 뭐, 사생팬 급습 같은 것도 이제는 대비해야 하니까.”

앞으로 동일이 혼자서 멤버들을 데리고 다녀야 할 때가 많아질 것이므로 동일이에게 매니저에 관한 기본 수칙들을 미리 가르쳐 놓는 일은 중요했다. 직접 경험하며 배우는 것이 가장 좋기는 하지만 신생 회사 중추 역할을 빨리 해내려면 속성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매니저는 자기가 맡고 있는 사람에게서 단 한순간도 눈을 떼면 안 돼. 항상 주변을 살피고,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고. 사건사고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거니까.”

“네, 명심하겠습니다. 매니저님.”

동일이는 입을 굳게 다물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에 말이 나온 김에 나는 조금 더 들어갔다.

“지금 내 뒤 창가에 앉은 사람 보이지? 눈치 채지 못하게 한번 봐.”

“네?”

나는 눈짓으로 뒤에 앉은 한 남자를 가리켰다. 동일이의 시선이 내 어깨를 지나 그 남자에게 향했다.

“회색 스웨터 입은 사람 말씀하시는 건가요?”

“응. 그 사람 지금 뭐 하고 있어?”

“창밖을 보는데요... 그리고 식당 안쪽도 보고... 앗, 우리 쪽도 봐요.”

동일이는 남자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급하게 시선을 깔았다.

“며칠 전부터 우리 숙소를 기웃거리고 있는 프리랜서 기자야.”

“기자라고요?”

“허문호 기자. 주로 악의적인 기사를 써서 조회수로 먹고사는 기자야.”

“아~ 그런데 저 사람이 허문호 기자라는 건 어떻게 알아보셨어요?”

“자기 기사에 자기 사진을 붙여 놨더라고.”

“그게 뭐 자랑이라고 사진씩이나...”

“연예인들이 혹시라도 자기 만나면 아는 체하고 용돈이라도 좀 찔러 달라는 말이겠지.”

“아, 완전 똥파리 같은 새끼네요.”

동일이가 얼굴이 벌게져서는 어처구니없어했다.

“연예인에겐 언제 어디서 저런 똥파리가 달라붙을지 몰라. 그러니까 항상 조심하고 주변을 살펴야 하는 거야.”

“오늘도 큰 거 배웠습니다. 꼭 명심할게요. 그런데 매니저님.”

“응?”

“저 사람 조치를 취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가만 두면 우리 재경이한테 안 좋게 할 것 같은데...”

“괜찮아. 그냥 놔둬.”

동일이 표정이 순간 굳었다. 위험을 알면서도 가만히 두라니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저 사람이 아무리 뭘 하려고 해도 재경이는 못 건드려. 지금 재경이는 비구혼구(匪寇婚媾) 왕(往) 우우즉길(遇雨則吉)이거든.”

나는 주역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해서 재경이의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그것이 혼란만 가중했나 보았다. 동일이는 무슨 말인지 몰라 눈만 껌뻑 껌뻑였으니까. 나는 동일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비구혼구 왕 우우즉길은 진흙을 덮어쓰고 있는 돼지가 수레에 실려 가는데 갑자기 비가 내려 그 진흙을 깨끗하게 씻어 준다는 말이야. 재경이는 돼지고 저 허 기자가 비야. 아무리 재경이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를 쓴다고 해도 오히려 재경이에겐 좋은 일로만 작용하게 될 거란 거지.”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알 것 같습니다.”

그때, 2단 서빙 카트가 우리 테이블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음식을 한가득 싣고서.

“식사 나왔습니다.”

금방 테이블 위로 된장찌개, 더덕구이, 궁중식 소불고기, 돼지 장작구이, 굴비, 묵은지, 회, 각종 나물들이 한상 가득 차려졌다.

“우와, 고급식당이라 다르네요. 이걸 어떻게 다 먹죠?”

동일이는 혀를 내두르면서도 좋아서 어깨를 실룩거렸다.

“매니저는 먹을 기회가 있을 때 먹어 놔야 해. 일이 바쁘면 삼각 김밥 하나 먹을 시간도 없잖아.”

“넵. 잘 알고 있습니다.”

“먹자.”

“먼저 드십시오.”

“그래.”

우리는 각종 요리와 반찬에 젓가락 가져가기가 바빴다. 음식 모두가 참으로 기가 막혔다.

그렇게 한참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웅성거리는 소리와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에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강종석이 왔구나!’

강종석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눈인사하며 들어왔다. 그리고 식당 지배인을 따라 재경이가 기다리는 매화 방으로 들어갔다. 태도가 예의바르고 겸손했다.

“잘 나가는 연예인이라 그런지 포스가 다르네요. 걸음걸이도 느낌이 달라요. 텔레비전에서 봤을 때는 그냥 웃기다 그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오랫동안 정상을 유지한다는 건 그만큼 관록이 있다는 얘기지.”

“재경이가 강종석과 함께 프로그램을 하다니. 재경이 완전 봉 잡았습니다.”

“음, 근데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어.”

“반대일 수도 있다고요? 어째서요?”

동일이의 눈이 호기심으로 커졌다.

“강종석이 지금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몇 개지?”

“그건 제가 알고 있죠. 3개입니다. KBC에 달려라 선데이. SBC에 행복 토크쇼, 미디어 A에 어쩌다 온 손님.”

“그래. 그러면 시청률은?”

“시청률 까지는 잘 ..”

동일이는 생각해내려 고개를 갸웃거렸다.

“달려라 선데이는 10%, 행복 토크쇼 3%, 어쩌다 온 손님이 4% 정도야. 한 마디로 달려라 선데이 빼고는 강종석의 명성에 비해 턱 없이 낮아. 달려라 선데이도 한때 잘 나갈 때는 18% 정도였는데 거의 반 토막 난 거고.”

“그러면 아무리 강종석이라도 심적으로 힘들겠네요.”

“그렇지. 그리고 강종석 라인의 막내가 맘모스라는 것도.”

“아, 그렇네요. 그 뒤로는 후배 안 키웠나 보네요.”

“안 키운 건 아닌데 다 실패했어. 일단 실력 있고 참신한 신인을 찾기가 어렵고, 또 찾았다 한들 실전에서 대부분 나가떨어졌으니까.”

“와, 천하의 강종석도 답답하겠습니다.”

동일이가 구수한 된장찌개를 호호 불며 입에 넣으려다 멈췄다.

“그렇다면??”

“그래, 맞아. 재경이가 강종석의 구원 투수가 될 거야. 지난번에 뿜뿜 아이돌 녹화장에서 강종석은 재경이를 알아봤어. 지금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인재란 걸 말이야.”

“오호. 이거 제대로 윈윈 하겠는데요.”

“그렇지.”

식사는 맛있었다. 나는 굴비가 특히 입에 맞아서 부스러기 조각까지 살뜰히 발라먹었고, 동일이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잘 먹었다. 우리는 숭늉에 수정과까지 마시고서 식사를 잘 마무리했다.

잠시 통안으로 재경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만 살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재경아, 너 홍어 먹어 봤어?”

강종석은 이미 재경이에게 말을 놓고 있었다.

“네, 홍어 좋아합니다.”

“그래. 역시 뭘 먹을 줄 아네. 내가 이 집 단골인데 홍어가 기가 막혀. 한 번 먹어 봐.”

강종석은 묵은지를 맨 아래에 깔고 그 위에 삼겹살과 알싸한 홍어를 올려 한 입에 쏙 넣었다. 그리고 재경이에게 똑같이 따라먹어 봐라고 권했다.

“으음. 역시 이 맛이다. 역시 맛있어. 너도 한번 먹어 봐.”

강종석은 재경이의 반응을 보고 싶어 재차 재촉했다.

‘재경이는 썩은 두부도 잘 먹고 뱀개구리 백숙도 잘 먹는데 그깟 홍어 정도야...’

역시 재경이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형님. 홍어를 그렇게 먹으면 진짜 맛을 알 수 없어요.”

재경이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고, 강종석은 당황했다.

“그럼 어떻게 먹는데?”

“잘 보세요.”

재경이는 홍어를 소금에 찍어서 바로 입으로 쏙 넣었다. 다른 재료를 일절 첨가하지 않고.

그리고 오물오물 씹으며 입으로 공기를 흡입하고 다시 코로 내뿜었다.

“오호, 여기 홍어 최고다.”

“너, 홍어를 묵은지하고 삼겹살 없이 그냥 먹어? 소금만 찍어서?”

“네. 이렇게 먹어야 진짜 제대로 된 홍어 맛을 즐길 수 있거든요.”

“이야.”

“아, 잠시 만요. 더 기막히게 맛있는 거도 먹어보죠.”

재경이가 벨을 눌러 직원을 불렀다.

“저기 홍어 코 삭힌 거 있나요?”

“홍어 코요? 네. 있긴 한데 그건 홍어 제대로 드실 줄 아는 사람만 드시는 거 라서요.”

직원은 얌전히 홍어 코는 아무나 먹는 게 아님을 강조했다.

“괜찮습니다. 조금만 갖다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직원은 홍어 코 삭힌 것을 가져왔다. 벌써부터 냄새가 진동을 하는지 강종석의 표정이 찌그러졌다.

“감사합니다.”

재경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홍어 코를 집어 들더니 소금을 찍어 입에 날름 넣었다.

“와아, 역시 홍어는 코지. 형님도 한번 이렇게 드셔 보세요.”

재경이는 박수까지 치면서 강종석에게 권했다. 강종석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거절할 수 없어 젓가락을 들었다.

“그럴까?”

홍어 코를 입에 넣은 강종석의 얼굴이 차츰 굳어 갔다.

“형님. 씹어요, 씹어. 계속 씹으면 코에 터널이 뚫릴 겁니다.”

“씨··· 씹어? 계속? 이··· 이걸.”

“형님. 뭐든 제대로 하셔야죠. 방송이다 생각하고 씹으세요.”

“미치겠는데?”

“그게 진짜 홍어 맛이라니까요.”

재경이가 옆에서 닦달을 하자 강종석은 어쩔 수 없이 홍어를 씹었다. 처음 만난 동생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기에.

“이제 입을 열어서 숨을 들이키세요.”

강종석은 재경이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데 정말 재경이가 말한 대로 코가 뚫리기 시작했다.

“어, 어. 뚫린다. 뚫린다.”

“안돼요, 안 돼. 더, 더, 더. 더. 씹으세요. 됐습니다. 이제 코로 숨을 쉬세요.”

“흐흐흥~”

강종석은 입을 닫고 코로 공기를 길게 내뺐다. 싸한 공기가 밖으로 터져 나가면서 정신이 번뜩 들었다.

“와아~~~~정신이 아찔하네.”

“어때요?”

“아, 스트레스가 팍팍 풀린다. 홍어는 이렇게 먹어야 참이네. 참이야. 동생 덕분에 내가 하나 배웠네. 하하.”

강종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손가락을 척 올렸다.

전혀 어색함 없이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처럼 둘은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역시 재경이는 친화력 갑이었다. 내가 간섭할 일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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