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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101화 (101/150)

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101화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곧 밴의 주인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또롱 또롱 귀에 착착 감기는 목소리. 엄지나였다.

‘지나 씨가 웬일일까? 아마도 현우 드라마 때문이겠지. 현우에게 준 배역이 원래 별 매니지먼트에 할당된 거라 탈이 났으려나...’

이런저런 궁금함을 가지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환한 사무실 휴게실에 엄지나는 주선해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하하하

호호호호

둘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지 한참을 웃었다.

“안녕하세요. 지나 누나.”

“오셨네요.”

“오랜만이에요.”

헤이데이는 얼른 달려가 먼저 인사를 했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행운의 마스코트 엄지나를 보니 반가움이 큰 것 같았다.

“어, 보고 가게 될 줄 몰랐는데. 반갑다. 얘들아~”

엄지나도 헤이데이를 반갑게 맞이했다. 저번에 현우가 먼저 누나라고 부르기로 한 이후로 엄지나와 헤이데이는 편하게 지내고 있었다.

“이렇게 씩씩한 걸 보니까 마음이 놓인다. 그동안 너희들 마음고생 심했을 텐데 전화 한번 못해주고 미안해.”

“누나가 왜 미안해요? 우린 끄떡없습니다. 누나를 가끔이라도 못 보는 게 슬프긴 하지만···”

재경이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왜? 여기 사무실 웬만한 카페보다 좋은데. 주선해 씨가 타주는 커피도 맛있고. 내가 자주 놀러 오면 되지. 아니다. 나도 내년 계약 끝나는 대로 여기로 확 옮겨 버릴까.”

“아, 저희가 아직 배우 파트는 생각이 없어서요...”

“호호. 농담이에요. 조 매니저님.”

순간 엄지나의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당분간은 헤이데이에게만 신경 쓰려했는데 엄지나가 계약하고 싶어 하는 줄 알고 급히 거절해 버렸다.

“아~”

하하하

호호호

나는 조금 민망해졌고 사람들은 재밌다고 깔깔 웃었다.

모두들 한바탕 웃었더니 어색함이 금세 사라졌다. 엄지나는 조곤조곤 계속 말을 이었다.

“별 매니지먼트 회사 건물은 커도 갑갑한데 여기는 가슴이 확 트이네요. 정말 좋은 곳에 자리 잡으셨어요. 매니저님.”

“네. 헤이데이가 복이 많아 그런지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네요.”

엄지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주선해가 핸드폰 시계를 살피며 외투에 손을 가져갔다.

“아~ 사실 제가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서요. 영어회화 학원도 가야 하고. 지금 안 나가면 늦을 것 같아서.. 먼저 가볼게요.”

“이런. 벌써 시간이 8시가 다 됐네요. 선해 씨 얼른 가보세요.”

“네, 매니저님. 헤이데이 스케줄 표랑 섭외 들어온 거 책상 위에 올려 뒀습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뵐게요. 선해 씨.”

“네, 내일 뵐게요. 매니저님.”

주선해가 먼저 퇴근을 했다.

“형, 우리는 연습실에 있을게. 하루라도 연습을 빼먹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아서 말이지.”

“그래. 올라가서 연습해. 동일아. 같이 올라가.”

“네, 알겠습니다. 매니저님.”

헤이데이 멤버들과 동일이도 2층 연습실로 올라갔다.

1층 사무실엔 엄지나와 나만 남게 되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조용해졌지만 엄지나가 금방 다시 입을 열었기에 어색함은 1초도 없었다.

“아, 오늘 뿜뿜 아이돌 녹화했다면서요. 고생했겠다. 그 프로그램 힘들다고 소문났던데요”

“아니에요. 재밌게 잘했어요. 혹시 시간 되시면 본방 꼭 챙겨 보세요. 오늘 헤이데이가 엄청난 걸 해냈거든요.”

헤이데이가 최초로 모든 미션을 통과했다는 걸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지만 꾹 참았다. 너무 가벼워 보일 수 있으니까.

“그래요? 매니저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본방사수 꼭 하고 싶은 걸요.”

“네,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혹시 몇 단계까지...”

윙~ 윙~

뿜뿜 아이돌 이야기를 좀 더 나누려는데 엄지나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엄지나는 손을 뻗어 재빨리 핸드폰을 확인했다.

“매니저 언니가 스케줄 늦는다고 문자 폭탄이에요. 잠시만 요. 답장 좀 하고요.”

“네.”

엄지나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는 빠른 손놀림으로 문자에 답을 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탁자 위로 올렸다.

엄지나가 많이 바빠 보여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입을 열었다.

“많이 바쁘신 거 같은데, 혹시 제게 할 말이라도?”

“아, 그게...”

나는 순간 긴장되었다. 혹시라도 현우를 캐스팅에서 뺀다는 말을 듣게 될까 봐.

뿜뿜 아이돌 신경 쓰느라 현우 드라마 생각을 잠시 못했다. 아무래도 별 매니지먼트에서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바다에 그린 노을> 제작사인 크레용 픽처스에서 사전 준비를 다 마친 모양이더라고요. 아마 조만간 첫 대본 리딩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저쪽에서 리딩 전에 서로 인사 겸 해서 윤만수 CP님 도승재 감독님 그리고 서향숙 드라마 작가님이랑 자리를 한번 마련하자고 해요. 주선해 씨에게 물어보니까 오늘 크레용 픽처스로부터 연락은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뿜뿜 아이돌 녹화하는 동안 연락이 왔었나 보다. 안 그래도 사무실 들어와서 스케줄 정리를 하려 했는데 그전에 엄지나 부터 만나버려 아직 알지 못하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일단 엄지나의 말부터 묵묵히 들었다.

“그런데···”

엄지나는 뭔가 말하기가 껄끄러운지 살짝 망설였다.

“네, 말씀하세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쪽에서 좀 껄끄러워해요.”

“뭘요?”

“···현우를요.”

역시 현우의 배역에 관한 문제였다. 나는 계속 들었다.

“현우가 맡은 인혁이라는 배역이 드라마 전반에 매우 중요한데... 현우가 아이돌이라 의구심이 든다는 거죠.”

“아~ 네. 이해합니다.”

나는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했다.

드라마에 아이돌을 출연시키는 것은 양날의 검과 같다. 팬덤, 사전 인지도, 그리고 화제성에서 드라마 홍보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조금이라도 소위 발 연기를 하는 날이면 여지없는 비난과 조롱의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게시판은 시청자들의 악플로 도배가 된다. 거기다 시청률이라도 낮으면 제작사는 모든 독박을 도맡아 쓰게 된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 미팅 자리에서 심하다 싶을 정도로 과한 요구를 하거나 깐깐하게 굴지도 몰라요. 한마디로 현우를 테스트 할거란 말이죠. ···그 때문에 현우가 마음 상할까 걱정이에요.”

“아닙니다. 현우나 나나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나 씨는 그런 걱정 마세요.”

“아~ 네.”

엄지나는 마음이 놓인다는 듯 어깨를 내렸다.

그 순간 나는 엄지나의 깊숙한 속마음을 캐치할 수 있었다.

-별 매니지먼트에서 크레용 픽쳐스를 압박해서 현우를 빼려 했는데 내가 막았어. 현우가 인혁 역에 최고로 적합하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아직도 도승재 감독님을 비롯한 모든 관계자들은 별 매니지먼트와 껄끄러워지는 걸 싫어해서 현우를 빼고 싶어 하잖아... 나 혼자서 계속 막는 건 너무 힘들어. 현우가 그 사람들에게 직접 실력을 보여주고 인정을 받아 배역을 꿰차야 해. 그래야 뒷말도 없고 탈도 없을 거야. 현우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역시 별 매니지먼트에서 순순히 배역을 넘겨주려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제작사를 압박해 배역을 도로 가져가려 했지만 엄지나가 막았고 관계자들은 현우를 테스트해보고 결정하는 입장인 것 같았다.

‘지나 씨가 중간에서 많이 곤혹스러웠겠군.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말 노력하고 있어.’

엄지나는 내게 진 목숨 값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진한 고마움이 밀려들었다.

“지나 씨가 우리 현우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시네요.”

“네?”

“이제 현우가 별 매니지먼트 소속도 아닌데, 크레용 픽처스에서 계속 현우를 기용하려는 건 순전히 지나 씨 덕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이제 제가 은혜를 갚아야 할 것 같은데요.”

“아니죠. 그런 게 목숨을 살려준 은혜와 비교가 되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현우만을 위한 게 아니라 제가 출연하는 작품을 위한 것이기도 해요.”

엄지나는 창밖 중정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조 매니저님께 보답을 하기 위해서 현우를 추천한 것은 맞지만 지난번 현우의 연기를 보고 확신이 들었어요. 현우가 인혁 역할에 너무 잘 어울린다는 것과 반드시 우리 드라마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될 거란 걸.”

“그렇게까지.”

“저도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쭉 해 왔던 터라 다른 사람 연기를 보는 눈이 있어요. 현우는 확실히 재능이 있어요. 만약 거기에 노력까지 더해진다면 무서울 정도로 성장할 거예요.”

나는 엄지나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내 보기에도 현우의 연기는 괜찮았지만 같은 연기자가 하는 평가와는 다른 것이니까.

“얼마 전에 손범희 선생님도 만났어요.”

“현우의 예전 연기 선생님?”

“네. 만난 김에 현우에 대해 여쭸었는데, 선생님 말씀이 현우가 제대로 연기를 배우면 누구도 감당 못할 거라고 하셨어요.”

“선생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나요?”

엄지나는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팍팍 끄덕였다.

“현우가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도승재 감독님도 안심하실 거예요.”

“네, 철저히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현우를 추천해주신 지나 씨 얼굴에 먹칠하지 않도록.”

“뭘, 먹칠 식이나...”

그때, 엄지나의 핸드폰이 다시 진동을 했다. 매니저의 독촉 메시지 일 것이다. 엄지나는 벌떡 일어서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더 늦었다가는 일주일 내내 잔소리를 듣겠어요. 그럼 이만 전 가볼게요. 미팅 자리에서 봬요.”

“네, 알겠습니다. 바쁘신데 일부러 어려운 발걸음 해 주시고, 고마워요.”

“천만에요. 새 사무실도 구경하고 주선해 씨랑 수다도 떨고 맛있는 커피도 대접받고 또···”

엄지나는 무슨 다른 말을 하려다 멈췄다.

“가끔씩 들릴 거예요. 여기 포근하고 너무 맘에 들어요.”

“언제든지.”

엄지나는 핸드폰을 꼭 쥐고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나는 밴이 떠날 때까지 현관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

크레용 픽처스 드라마 기획실에 도승재 감독 서향숙 드라마 작가 그리고 윤만수 CP가 모여 앉아 있었다.

“확실하게 별 매니지먼트에서 그 아이돌 써도 된다고 했어요?”

도 감독이 윤 CP에게 물었다.

“고성만 실장하고 통화했는데 그렇게 하라던데. 아니 오전까지만 해도 현우 빼고 자기들한테 다시 배역 달라고 난리 난리를 치더니, 오후에 전화 와서는 그냥 두라고 하는 건 또 뭐야?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아마 엄지나 때문에 그런 걸 겁니다. 처음부터 인혁 역할은 엄지나가 현우를 콕 집어서 넣었거든요. 아마 회사에서 현우를 빼려 한다는 걸 알고 엄지나가 나섰겠죠.”

도 감독은 엄지나가 현우에 대해서 열을 올리며 칭찬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윤 CP가 소파에 몸을 기대며 알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들어올렸다.

“엄지나랑 같이 작품 했던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엄지나는 캐스팅에 간섭한 적이 한 번도 없다더라고. 그런데 이번엔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어.”

“혹시 현우랑 엄지나랑 서로 친한 사이라 그런 게 아닐까요?”

서향숙 작가가 주저주저하며 말을 꺼냈다.

“아는 사이?”

“뭐···그러니까 사촌 동생이라든지 아니면 그··· 남자 친구의 동생이나 아니면 애인 사이···뭐 요새 연하남 많이 사귀잖아요.”

“에이··· 설마. 엄지나가 얼마나 철저한데. 완전 프로페셔널이야. 내가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는데, 엄지나 작품 욕심 장난이 아니야. 대본에 구멍이 날 정도로 연습을 한다더라고. 진짜 남자 친구라면 오히려 작품에서 빼지 넣지는 않을 거야.”

도승재는 팔짱을 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연인 사이 그런 건 절대 아니라는 듯.

“아이 참, 그럼 왜 그런데요. 이번 작품에서 인혁 역할 정말 중요한데. 별에 오태환도 있고 이은성도 있고, 좋은 배우들 많은데 왜 하필 아이돌이래.”

서향숙 작가는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이 엉망이 될까 봐 걱정이었다.

“요즘엔 아이돌도 데뷔전부터 연기 연습시킨 대잖아. 연기력이 우리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몰라. 한번 보고 결정합시다. 그리고 헤이데이 요즘 인기 상한가니까 우리한테 플러스면 플러스지 마이너스는 아닐 거예요.”

도승재는 자기 생각이 맞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서향숙을 달랬다.

처음부터 엄지나가 흔쾌히 출연에 응한 덕분에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는데, 이런저런 조건이 변했다고 현우를 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칫 엄지나까지 잃어버릴 수 있으니까.

“혹시 연기가 어색하면 비주얼로 가야지. 어떡하겠어? 역 비중을 확 줄이고. 뭐, 어쩔 수 없지 않겠어요?”

윤만수가 도승재, 서향숙과 눈을 맞추면서 플랜비를 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세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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