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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95화 (95/150)

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95화

이상학 피디는 ‘헤이데이’ 푯말이 달려있는 대기실까지 우리를 안내했다. 소파, 텔레비전, 냉장고, 화장대, 피팅룸까지 잘 갖춰진 넓고 쾌적한 대기실이었다.

“30분 뒤에 메이컵 팀이 올 거고 녹화는 1시간 뒤에 있을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쉬고 계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맘모스와 와이도 와 계신가요?”

“네, 항상 일찍 나오세요. 그리고 이거.”

이상학은 품에서 대본 한 부를 꺼내 내밀었다.

“진행 대본입니다. 읽어보시고, SNS나 다른 곳에 유출은 안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오프닝 멘트랑 진행 상황 정도만 숙지하시면 될 겁니다. 맘모스와 와이가 워낙에 돌발적으로 진행을 해서 대본대로 안 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네.”

“그럼 쉬고 계십시오.”

간단한 브리핑을 마친 이상학 피디는 바쁘게 사라졌다.

시계를 보니 9시 정각이 되어가고 있었다.

‘앗, 9시에 도넛 나오잖아.’

방송국 앞에 유명한 도넛 가게가 있는데 맘모스가 그걸 좋아한다고 들었다. 녹화 전 인사하러 갈 때 사들고 가면 좋을 것 같아 기억하고 있었다.

“동일아.”

“네. 매니저님.”

“방송국 앞에 링고 도넛 있어. 거기가 정각마다 도넛이 나오거든. 조금 후에 갓 구운 도넛 나올 것 같은데 그것 좀 사와라. 한 박스에 12개 들은 것 세 박스. 아마 1인당 3박스 밖에 안 팔 거야.”

“네. 알겠습니다.”

“영수증 챙겨서 주 과장님께 첨부하고.”

“염려 붙들어 매셔요.”

동일이가 시원하게 대답하면서 문밖을 나섰다. 그리고 마침 도착한 스타일리스트 팀을 복도에서 마주쳤다.

“어, 홍 팀장님. 주희 씨, 영지 씨. 오셨네요.”

“응, 어디가?”

“네, 도넛 좀 사 오려고요.”

“아, 맛있겠다. 그럼 다녀와.”

“네, 들어가십시오. 안에 매니저님이랑 헤이데이 멤버 모두 있습니다.”

“응. 알았어.”

똑. 똑.

홍예나는 노크를 하면서 조심스레 대기실 문을 열었다. 밖에서 동일이와 인사하는 소리를 들은 지라 나는 이미 홍예나가 온 것을 알았다.

“홍 팀장님. 오셨네요.”

“네. 매니저님. 저희 안 늦었죠?”

“늦기는요. 딱 맞춰 잘 오셨습니다. 주희 씨랑 영지 씨도 반가워요.”

주희와 영지 어시는 날 보고 방긋 웃으며 들고 온 의상 가방을 테이블 위로 올렸다.

“오. 이번엔 어떤 의상일까?”

“기대된다.”

“보고 싶다.”

멤버들은 의상 가방이 놓인 테이블을 빙 둘러싸면서 눈을 반짝였다. 조금씩 패션에 눈을 떠가고 있는 중이라 관심이 많았다.

홍예나는 가방을 열어 차분히 의상을 끄집어냈다. 기본적으로 체육복이었는데 하의는 검정으로 통일되었고 상의는 멤버의 개성에 맞게 다양했다.

“오늘 녹화는 움직임이 격하겠지. 그래서 활동하기 편한 고탄력 스판으로 디자인했어. 자유로운 활동에 무리가 없을 거야. 자, 한번 입어보자.”

“네.”

“감사합니다.”

멤버들이 각자 자기 의상을 들고 피팅룸으로 들어가자 시끌했던 대기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틈을 타서 홍예나에게 물었다.

“새 작업실 어떻던가요?”

“전보다 훨씬 낫죠. 별 매니지먼트 작업실은 겉으론 좋아 보였지만, 지하가 주차장이랑 함께 붙어있어서 별로였어요. 지금 작업실은 지하라 해도 앞이 지상이라, 햇볕이 따뜻하게 들고 바람도 솔솔 불고 좋더라고요. 어떻게 그렇게 좋은 사무실을 구하셨어요? 우리 매니저님은 정말 수완도 좋으세요.”

“홍 실장님이 합류해주셔서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다시 불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고개를 숙이면서 고마움을 나눴다.

그러는 사이 멤버들이 의상을 입고 하나 둘 나왔다.

“멋지다. 내 눈에는 좋은데, 너희들은 어때?”

나는 멤버들의 핏을 요리조리 살피면서 의견을 물었다.

“나는 좋아.”

“나도.”

“편한데 예뻐.”

“다리가 길어 보이는 것 같아.”

“쭉쭉 늘어난다.”

멤버들은 격한 동작을 취해보면서 의상을 점검했다. 그리고 만족했다.

덜컥.

그때, 동일이가 도넛을 사들고 들어왔다.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대기실 안을 가득 채웠다.

“매니저님, 여기 도넛 사 왔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동일아.”

“와아, 도넛이다. 우리가 먹는 거야?”

크레이즈가 군침을 삼키며 물었다.

“한 세트만. 아, 팀장님과 주희 씨 영지 씨는 드셔도 됩니다.”

“호호, 감사합니다.”

“그럼 나머지는?”

“이건 주인이 따로 있지.”

“주인이 누군데?”

“맘모스.”

***

우리는 맘모스의 대기실로 갔다. 녹화 들어가기 전에 먼저 진행자를 찾아가서 인사를 하는 것은 출연자의 예의였다.

“안녕하십니까? 헤이데이입니다!!”

헤이데이는 대기실로 들어가면서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소파에 앉아 쉬고 있던 맘모스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험악한 인상과는 달리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나는 맘모스의 관상부터 살폈다.

맘모스.

이마가 훤칠해 붙임성과 사교성이 좋고 타인의 기분을 빨리 파악을 해 분위기를 이끌어 나간다. 눈은 크고 눈동자가 넓어 성품이 인자하고 침착하다. 하지만 얼굴 한가운데 우뚝 솟은 코로 보아 한번 고집을 피우면 감당할 사람이 없겠다.

‘흐음. 저 고집 때문에 우리 헤이데이가 애를 먹을 수도 있겠는 걸. 저 고집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맘모스의 상승 기운에 올라타겠는데.’

양쪽 입아귀가 위로 치솟아 있는 것이 주위에 사람이 많이 모인다.

맘모스는 대체로 밝고 명랑하고 유연하고 꽁한 구석이 없는 관상이었다.

“오, 헤이데이. 반가워. 야, 왜 작가들이 그렇게 헤이데이를 섭외하고 싶어 했는지 알겠네. 나보다 다 잘 생겼네.”

맘모스는 활짝 웃으며 헤이데이의 인사를 받았다. 개그를 곁들여서. 맘모스에겐 생활이 개그였으니까.

“오빠보다 못 생기면 그건 인간이 아니죠.”

헤이데이를 보면서 감격에 차 있던 맘모스 매니저 한송이가 바로 면박을 줬다.

“아니, 한송이. 넌 내 매니저야. 내 돈 내 매니저라고.”

“매니저라도 양심을 팔고 싶지 않네요.”

하하

큭큭

둘의 티격태격에 멤버들은 웃음이 터졌다. 분위기가 금방 편안해졌다. 개그의 힘이라고나 할까.

“저, 이거 좀 드시라고 가져왔습니다.”

“어, 이거!”

찬희가 링고 도넛 상자를 내밀었더니 맘모스의 눈이 왕방울 만해 졌다.

“링고 도넛 좋아하신다고 해서 준비했습니다.”

“아, 나 이거 엄청 좋아하지. 녹화 들어오기 전에 항상 들러서 사 오는데 오늘은 다 나가고 없더라고.”

“저희 매니저 형이 도넛 나오는 시간에 맞춰서 사 왔어요.”

“우와. 이렇게 고마울 데가. 아, 이거 아직도 뜨끈뜨끈하네. 진짜 잘 먹을 게.”

“맛있게 드십시오.”

“헤이데이. 너희들 좀 괜찮다.”

맘모스가 도넛 한 입을 베어 물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일단 맘모스 점수는 땄다.’

도넛 한 상자로 맘모스에게 쉽게 점수를 얻었다. 아침에 맘모스에 대한 자료를 훑던 중 링고 도넛을 좋아한다는 인터뷰 기사를 발견했던 것이 컸다.

“너희들도 하나씩 먹어.”

“아닙니다. 저희는 나중에 먹을게요.”

“혹시 나만 살찌우려고?”

“아. 아. 아닙니다. 저희 도넛도 두 상자나 있는 걸요.”

“농담이야.”

“아, 네.”

맘모스의 농담 한 마디에 찬희는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런데 막내가 누구지?”

맘모스가 재경이를 찾았다.

“네, 접니다.”

재경이가 손을 들면서 한발 앞으로 나왔다.

“네가 재경이?”

“예. 맞습니다.”

“그렇게 재밌다면서? 여기저기 소문이 자자해.”

맘모스가 대뜸 말했다. 벌써 세 개째 도넛을 입으로 가져가면서.

맘모스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있었지만 재경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음, 재경이를 떠보고 있구만. 그렇다면 맘모스의 마음의 소리부터 좀 들어 볼까?’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데··· 막상 녹화 들어가면 잘하려나.

맘모스는 재경이가 예능을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시험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은 반신반의 중이었다.

오랫동안 예능을 하면서 재밌다는 후배들을 많이 만나 봤지만, 막상 녹화가 시작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경우를 심심찮게 봐왔던 터라 재경이에 대해서도 크게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재경이는 맘모스의 말을 바로 받아쳐냈다.

“아, 그 소문 제가 퍼뜨린 건데요.”

“아하하하.”

순간 맘모스는 폭소를 터뜨렸다. 입에 있던 도넛이 밖으로 튀어나와 송이 매니저가 티슈를 건네야 할 만큼.

“좋아, 좋아. 나 이런 거 너무 좋아.”

재경이에 대한 평가가 급 달라졌다.

-재경 요고. 물건 맞네.

“오늘 녹화 재밌겠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준비할 게 많을 텐데 어서 들 가. 그래야 나도 편하게 도넛 먹지. 같이 나눠 먹기에는 양이 너무 적어.”

맘모스는 도넛 상자를 껴안으며 개그를 쳤다.

“양이 너무 적은 게 아니라 배가 많이 큰 게 아닐까요?”

재경이가 과감하게 농담을 쳐냈다. 수위가 조금 아슬했지만,

“아하하하. 고놈 재치쟁이.”

맘모스는 또다시 넋을 빼고 웃었다.

덜컥.

그때, 노크도 없이 문이 열리더니 와이가 쑥 들어왔다. 와이의 눈에 맘모스부터 보였는지 맘모스에게 인사를 했다.

“헤이, 요 맨. 와섭, 브라더 맘모스.”

“야, 야, 그런 거 하지 마. 구식이야. 죄다 구식이야. 모스 모스 맘모스. 이런 거 하란 말이야.”

맘모스는 깜찍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가 밀고 있는 개그를 쳤고, 와이는 눈을 질끈 한번 감았다가 떴다.

나는 타이밍을 맞춰 얼른 와이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안 그래도 지금 저희가 인사드리러 가려했는데··· 헤이데이입니다.”

“아, 네.”

그제야 와이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리고 헤이데이 멤버들에게로. 그리고 리오에게로.

와이의 시선이 리오에게 꽂혀서 떠나지를 못했다. 리오 또한 마음의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와이를 보게 돼서 그런지 굳어버렸다.

헤이데이 멤버들은 맘모스에게 했던 것처럼 와이에게도 큰 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헤이데이입니다!”

“오, 헤이데이. 요즘 가요계를 씹어 먹고 있던데. 만나서 반갑다.”

와이는 리오에게 줬던 시선을 걷어 들이고 멤버 모두를 살갑게 쳐다봤다.

“찬희입니다.”

“음, 반갑다.”

와이는 먼저 찬희와 악수를 나눴다.

“현우입니다.”

“반가워.”

다음은 현우와 악수를 나눴고,

“크레이즈입니다.”

“반갑다.”

크레이즈와도 악수를 나눴다.

“재경입니다.”

“오늘 녹화 잘해보자.”

막내 재경이까지 악수를 나누고 나자 남은 건 리오뿐이었다.

와이는 마지막으로 리오 앞에 섰다. 그리고 리오를 지그시 바라봤다. 고개를 푹 숙인 리오에게서 긴장된 한숨이 살짝 새어 나왔다.

“와썹, 리오. 너, 임마. 한참 지각이야.”

와이는 예전처럼 리오의 어깨를 툭 쳤다. 시간의 간격을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와이의 행동은 자연스럽고 편했다.

“···죄송해요. 좀, 늦었습니다.”

리오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왔으면 됐어. 많이 보고 싶었다.”

와이가 리오를 따뜻하게 껴안았고, 리오의 눈가는 붉게 물들었다.

“리오, 널 위해 마지막 미션이 준비돼 있어. 부디 마지막 미션까지 와다오.”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빡센 거 준비해 놨다··· 통과할 수 있겠지?”

“와이 낫!”

리오는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어느덧 둘은 옛날의 스승과 제자로 돌아가서, 파워 스쿨 멤버들이 하듯 주먹을 부딪치고 팔꿈치를 크로스했다.

“야, 야. 그건 진짜 구린 거라고. 모스 모스 맘모스. 이런 거 하라고.”

크크크

하하하

맘모스는 끝까지 개그의 끈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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