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94화
“네, 형님. 모스 모스 맘모스입니다.”
-너 그거 하지 마. 유치해.
“안 유치해요. 형님. 살리는 포인트가 있다니까요. 잘 들어 보면 재밌어요.”
-누가 네 이름을 신경 써서 듣니? 다른 거 해.
함께 하는 프로그램도 있었고 강종석과 맘모스는 허물없이 친한 사이. 언제나처럼 티격태격으로 통화가 시작되었다.
-그건 그렇고... 잠깐 통화 괜찮아?
“당연히 괜찮습니다. 형님 전화받을 시간은 언제나 충분하죠. 뭐, 중요한 일이라도 있나요?”
-아니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고··· 너 내일 뿜뿜 아이돌 녹화 있지?
“네. 있습니다.”
-내일 나오는 팀이 헤이데이 맞지?
“어, 형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아직 기사도 안 떴는데.”
-다 아는 수가 있지···
“하긴, 형님이 알고자 해서 모르는 건 없죠. 그런데 헤이데이는 왜요?”
-거기 멤버들 중에 재경이라고 있을 거야. 팀 막내라고 하던데.
“네, 맞아요.”
김재철 피디에게서 재경이 이야기를 들은 이후 강종석은 재경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자연에 살으리랏다 자료도 찾아보고 무대 화면도 찾아봤지만 이렇다 할 결론이 썩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헤이데이가 뿜뿜 아이돌에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친한 맘모스에게 먼저 전화를 해본 것이다.
-재경이 어떤가 해서. 요번에 김재철 피디랑 예능 하나 들어가는데 재경이를 넣자고 하네. 근데 재경이가 어떤지 내가 통 알 수가 있어야지...
“무슨 예능인데요?”
-야외 버라이어티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건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아직 뭘 할지도 모르는데 재경이부터 넣는다고요?
-그러게... 어쨌든 김 피디가 직접 추천했으니 신중하게 살펴봐야 할 것 같아.
갑자기 맘모스는 김지민 작가와의 어제 통화가 생각났다. 헤이데이와의 사전 미팅 후 전화가 왔었는데 헤이데이 대박이라고 엄청 흥분했었다.
“그러고 보니까 어제 뿜뿜 메인 작가님한테서 전화 왔었는데, 재경이 보통 아니니까 집중 공략해 보라고 했어요. 세게 나가도 된다고.
-그래? 김지민 작가가 그렇게 얘기했단 말이야?
“네. 현 피디가 그런 주문을 했던 건 몇 번 있었는데, 김 작가님은 처음이었어요. 항상 살살하라고만 했거든요. 그런데 어제는 대뜸 전화 와서는 헤이데이에 물건 하나 있으니까 인정사정 봐주지 말고 막 나가라고 하던데요. 아마 그게 재경이라고 했던 것 같아요.”
-음···
수화기 너머로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뭐···그래도 아직 나이도 어리고 방송 경험도 없으니까 막상 카메라 불 들어오면 죽 쑬지도 몰라요. 그런 애들 많이 겪어 봤잖아요. 살살 수위 조절해야죠.”
-모스 모스 맘모스.
“아하하. 역시 형님. 잘하시네. 봐요 재밌잖아요.”
강종석이 재미있게 맘모스를 부르자 맘모스의 기분이 확 좋아졌다.
-내일 녹화 몇 시지?
“아침 열 시에 시작하죠.”
-알았어. 그럼 내일 녹화장에서 보자. 봐서 잠깐 들릴게.
“그러시겠어요? 역시 형님의 프로그램에 대한 사랑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아, 그리고 다음에 네가 밥 한번 사라.
“아니, 형님이 동생한테 베푸셔야죠.”
-큭큭큭. 알았어. 다음에 밥 한 끼 먹자. 팍팍 쏠게.
“네, 형님. 들어가십시오.”
맘모스는 전화를 끊으면서 생각했다.
‘종석이 형님이 재경이를 보러 녹화장에 오겠다고? 밥 먹을 시간도 없는 양반이? 재경이 부담스러워서 녹화 망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
뿜뿜 아이돌 녹화날이 밝았다. 우리는 녹화 두 시간 전인 오전 8시에 SBC 방송국으로 출발했다.
오늘 뿜뿜 아이돌의 키를 잡고 있는 리오와 재경이의 상태를 살폈다. 둘 다 기가 안정되고 활력이 넘쳤다. 이 정도 컨디션이면 무난히 녹화가 잘 진행될 것 같았다.
“형, 아침에 이상한 냄새가 나던데 그게 저거야?”
찬희가 밴 구석에 놓인 2리터 보온 물병을 가리켰다.
“그래. 너희들 며칠 째 강행군인데 몸에 좋은 약 좀 다렸어. 아무리 젊어도 피로가 누적되면 몸이 이겨내지 못하니까. 오늘 뿜뿜 아이돌 녹화도 파이팅 해야지. 쉬는 시간에 한잔씩 마시면 딱 좋을 거야.”
이른 새벽 나는 지리산 깊은 곳에 다녀왔다. 멤버들에게 먹일 약재를 구하러.
산삼, 영지버섯, 더덕, 두릅, 도라지, 그리고 벌꿀까지 채취해 와서 정성껏 다렸다. 향이 어찌나 진한지 2층까지 온 집에 진동을 해서 멤버들의 아침잠까지 다 깨웠다.
“형이랑 함께 사니까 삶의 질이 바로 달라지네.”
“그러게 말이야. 뜨끈뜨끈한 아침밥도 챙겨 먹었는데 보양식까지.”
“기운이 넘쳐.”
“사람 사는 것 같다.”
도로에서 허비하는 시간을 잡은 만큼 헤이데이의 식단과 건강까지 신경 쓸 생각이었다. 배고프고 건강하지 못하면 인기가 무슨 소용이고 돈은 또 무슨 소용이겠는가?
“지금부터는 명심해. 너희들 몸은 너희들의 것만이 아니라는 걸. 팬들 그리고 새로 차리는 회사 직원들도 너희 몸에 대한 지분이 있으니까 소중히 다뤄주면 좋겠어.”
“네, 알겠습니다.”
“내가 그래서 아침에 밥 한 공기 뚝딱 했잖아.”
“열심히 먹겠습니다.”
“밥과 보약을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멤버들은 애교 섞인 농담으로 감사의 인사를 대신했다.
***
헤이데이를 태운 밴이 SBC 정문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방송국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기자들과 방송국 리포터들이 치열한 자리다툼을 하고 있었고 팬들까지 거기에 끼여 엉망이었다. 경비업체 직원들이 나와서 정리를 하고 있었지만 힘겨워 보였다.
“매니저님, 무슨 일이죠?”
동일이가 바짝 긴장했다.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들과 방송국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모여 있어.”
“그 뒤로 팬들도 쫙 깔려있네.”
“우리 때문에 이렇게 모인 거야.”
“그런 것 같아. 팬들이 들고 있는 현수막에 헤이데이라고 적혀 있잖아.”
나는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헤이데이가 별 매니지먼트를 나왔다는 소문 이후 공식 첫 스케줄이니 사람들이 몰려들 수밖에. 어제 별점에서도 그렇게 나왔었고.
“별 매니지먼트랑 전속 계약을 끝냈다는 소문을 취재하러 온 거겠지.”
어제부터 SNS에서는 헤이데이와 별 매니지먼트의 계약 종료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시끌했다.
대부분 별 매니지먼트를 나와서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이었지만 그래도 회사에 남아서 회사 빨을 이용하는 게 나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매니저님. 저기 안내하시는 분이 지하주차장에 못 들어간다고 신호를 보내는 데요. 팬들이 막고 있나 봐요.”
동일이가 비상 깜빡이를 켜면서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방송국에서 일부러 막았을 수도 있어. 취재진 사이를 지나가게 하려고.”
“네?”
“저기 봐. 이미 바리케이드 쳐 놓고 헤이데이가 지나갈 통로를 만들어 놨잖아. 홍보하기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겠지.”
하루 종일 헤이데이와 별 매니지먼트 결별 기사로 포털과 SNS가 장악될 테고 연관검색어로 뿜뿜 아이돌도 자연스럽게 언급될 테니 홍보는 효과 만점일 것이다.
사실 홍보라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헤이데이가 불리한 입장만도 아니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극성팬들의 난입이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팬들이 모여 있는 구역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기를 모아 팬들의 마음을 재빨리 스캔했다. 사람이 많은 만큼 많은 소리가 한꺼번에 훅 들어왔지만 집중해서 잘 들었다.
-헤이데이 응원해야지. 기죽지 않게..
-우리 헤이데이 얼굴 한 번이라도 볼 테야.
-헤이데이 뒤에는 우리 팬들이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순수한 팬들의 마음이었다. 고마운 마음이기도 했고. 대다수는 이런 마음이었는데... 그런데 곧 검은 기운의 실체가 드러났다.
-우리 빅터스를 망치고 자기들은 활동을 해. 용서 못해.
-빅터스가 불쌍해.
-오늘 사고를 쳐버리겠다.
빅터스의 극성팬들이 분탕을 치려고 팬들 사이에 섞여있었다. 분탕들은 헤이데이 팬으로 위장하고 있었기에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완전 당할 뻔했다.
‘이런... 눈치를 못 챘다면 큰일 날 뻔했네.’
분탕 제거를 어떻게 할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형, 어떡하지?”
찬희가 기자들 대처를 어떻게 할지 물어왔다.
“어.”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찬희에게 대응 방법부터 설명했다.
“어차피 한 번은 부딪혀야 할 상황이니까 간단한 질문에 간단한 응답 정도는 하도록 해. 꾸미지 말고 있는 그대로. 저번에 사전 미팅 때처럼.”
“응, 알았어.”
찬희는 멤버들과 머리를 맞대고 작전에 들어갔고 나는 동일이를 쳐다봤다.
“동일아.”
“네, 매니저님.”
“네가 나 대신 헤이데이를 좀 챙겨.”
“네, 알겠습니다. 매니저님은?”
“나는 우리 팬들을 지켜야 할 것 같아.”
그때, 뿜뿜 아이돌의 이상학 피디가 밴을 향해 열심히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어떡하죠?”
“제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저만 따라오세요. 바리케이트 사이로 빠져나갈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상학과 이야기를 끝내고 멤버들을 돌아봤다.
“모두 준비됐지?”
“응. 준비됐어.”
“그럼 나가자.”
동일이가 먼저 내려서 멤버들 쪽 차 문을 열었다. 찬희 현우 크레이즈 리오 재경이 순서대로 차에서 내렸다.
“저를 따라오세요.”
이상학 피디는 앞장서서 멤버들을 안내했고, 동일이는 두 팔을 쫙 벌려 멤버들을 챙기면서 뒤쪽에서 나아갔다.
찰칵.
찰칵.
찰칵.
바리케이드 통로로 들어서자 기자들과 팬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응원의 말과 시끄러운 잡음도 뒤섞였다.
“헤이데이 힘내라!”
“꺄아악!”
“야, 앞에 좀 숙여.”
“밀지 마, 밀지 마,”
“위험해, 위험해. 저기 막아.”
바리케이드 밖은 헤이데이를 보려는 순수한 팬들과 분탕들이 모여들면서 점점 아수라장이 되어갔다. 순수 팬들은 헤이데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질서를 지키는 반면 분탕들은 일부러 사람들을 밀고 선을 넘으면서 위협적인 행동을 해댔다.
‘기운들이 조금씩 탁해진다. 도화, 잠깐 힘 좀 써야겠다.’
내가 손을 쫙 펼치자 허리춤에 꽂혀있던 도화선이 손 안으로 휙 날아들었다. 나는 도화선을 단단히 쥐었다.
***
헤이데이는 방송국 정문 앞에서 잠깐 멈춰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별 매니지먼트와의 계약은 완전히 끝난 겁니까?”
“네. 서로 원만하게 헤어지는 걸로 합의를 했습니다.”
“혹시 다른 대형 기획사와 계약을 하시나요?”
“아니요. 기존 회사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럼 헤이데이만을 위한 소속사라도 차린다는 말씀인가요?”
“네. 헤이데이만의 회사가 만들어질 겁니다.”
찬희가 차분히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동안, 나는 바리케이드 밖 팬들 무리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어떤 위험한 일이 발생할지 몰랐기에.
그 순간,
“야, 야. 비켜.”
덩치 사나운 한 여학생이 앞에 있는 팬들을 밀치면서 앞으로 나왔다.
“밀지 마. 밀지 말라고!”
“캭. 질서를 지켜. 밀면 안 돼.”
순수한 팬들이 소리를 쳤지만 덩치 사나운 여학생은 말을 듣지 않았다.
“니가 뭔데. 나한테 명령 질이야. 저리 비켜!”
“야, 네가 그러면 우리 헤이데이가 욕먹는 다고!”
“욕먹든 말든. 우리 빅터스가 누구 때문에 그 꼴 났는데. 나도 더 이상은 못 참아.”
여학생은 빅터스 팬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밝히면서 대열을 엉망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위태위태하다. 저러다 앞사람이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압사하겠어.’
나는 재빨리 부채를 흔들어 회오리 바람을 일으켰다.
헙!!
그리고 회오리를 분탕 여학생에게 날렸다, 회오리는 쏜살같이 날아가 분탕 여학생을 덮쳤다. 여학생은 바리케이드에 다리 하나를 걸치고 몸을 기울이고 있다가
“어어어.”
순식간에 뒤로 밀려나면서 담벼락에 패대기쳐졌다. 여학생 뒤를 따르던 다른 분탕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 거렸다.
“뭐야?”
“아, 몰라. 그냥 덤비자.”
“계획대로 돌진.”
헤이데이 팬들 사이에 숨어 있던 분탕들이 구심점을 잃고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헙!
헙!
헙!
나는 수십 개의 회오리를 만들어 쏜살같이 날렸다.
“어.”
“으악.”
“어어억.”
분탕들은 뒤로 밀리면서 자빠졌다.
“야, 너희들 헤이데이 팬 아니지?”
“아까 빅터스 팬이라고 하던데.”
“여긴 왜 왔어?”
내 역할은 거기까지면 됐다. 화가 난 헤이데이 팬들이 쓰러진 분탕들을 에워싸고 있었으니까. 팬들은 그들만의 룰로 분탕을 해결 볼 것이다.
‘쯧쯧. 우매한 지고. 처음부터 제대로 된 아이돌을 선택했어야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빨리 벗어날 줄도 알고. 탈덕은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건데...’
헤이데이는 인터뷰를 끝내고 방송국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도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