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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90화 (90/150)

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90화

뿜뿜 아이돌 사전 미팅 시간에 맞춰 SBC 방송국 로비로 들어섰다. 로비 구석 한 무리의 방청객들이 헤이데이를 보고는 우르르 몰려들었다.

“어맛! 헤이데이다.”

“오~ 오늘 운 좋은 날이네.”

“꺅~ 어떡해...”

방청객들은 헤이데이를 만난 반가움에 발을 동동 구르며 폰카를 들었다.

이젠 익숙해진 풍경에 멤버들은 잘 대처했다. 웃으며 함께 사진을 찍어주고 원하는 곳 어디든 사인도 해줬다. 수첩이나 종이는 물론이고 입고 있는 티셔츠나 손등에도 해줬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제 녹화장으로 이동하실게요.”

프로그램의 스태프가 와서 방청객들을 데려갈 때까지 작은 소란은 계속되었다.

나는 로비에 있는 대형 시계를 한번 쳐다봤다. 뿜뿜 아이돌 제작진을 만나기로 한 시간이 아직 조금 남아있었다.

“얘들아, 일단 저기 휴게실로 가자.”

“응, 형.”

“알았어.”

우리는 휴게실로 발길을 옮겼다. 걸으면서 멤버들의 컨디션을 챙겼다.

“너희들 기분은 어때?”

“좋아. 조금 떨리긴 한데 이 정도는 뭐, 적당한 긴장감이지.”

찬희가 뭔가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

“그런데 명수 형.”

“응?”

“사전 미팅 때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는 거야? 아무래도 근황을 물어보면···”

아직 헤이데이가 독립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별 매니지먼트를 나온 건 겨우 어제의 일이니까.

만약 작가들이 문자 조작 사건을 묻는다면?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다면? 별 매니지먼트와의 관계를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결론은 빨리 나왔다.

“솔직하게 얘기해. 어차피 금방 다 알려질 사실이니까. 이 바닥 소문이 얼마나 빠른지 알잖아. 본 녹화 전에 다 알게 될 건데 오늘 사전 미팅에서 숨긴다는 게 무슨 의미겠어.”

“응, 알았어. 그럼 어떤 질문에라도 솔직히 대답하는 걸로 할게.”

찬희뿐 아니라 멤버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가 알아본 바로는 뿜뿜 아이돌 피디가 좀 괴짜라더라. 점잖은 것보다는 맞받아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야. 그러니까 편하게 해.”

“그럼 나 오늘 눈치 안 본다.”

“재경아, 너에겐 원래 눈치라는 게 없어.”

크크크

하하하

멤버들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긴장된 마음을 녹이고 있었다. 워낙에 다양한 개인기를 요구하는 예능이다 보니 준비를 한다고 해도 뭔가 모자라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나 역시도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오늘 사전 미팅에서 6개의 미션을 모두 알려내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헤이데이가 6개의 미션을 완수해서 뿜뿜 아이돌의 새 기록을 갈아치워야지. 그러면 엄청난 화제성을 얻게 될 테고, 멤버 각각의 매력을 대중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거야.’

“먼저 와 계셨네요. 뿜뿜 아이돌 이상학 피디입니다.”

풋풋해 보이는 젊은 얼굴이 웃으며 다가왔다. 우리를 데리러 온 뿜뿜 아이돌의 스테프인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헤이데이 매니저 조명숩니다.”

“안녕하세요. 헤이데이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지금 회의실에 뿜뿜 아이돌 스태프 다 모여 있습니다. 바로 안내할게요. 가시죠.”

“알겠습니다.”

우리는 이상학을 따라갔다. 뿜뿜 아이돌 출연자 미팅이라고 적힌 회의실 문 앞까지.

똑.똑.

이상학이 노크를 하면서 문을 조금 열었다.

“헤이데이 왔습니다.”

“왔다. 안 늦었네.”

“시간 딱 맞췄다.”

“드디어 헤이데이를 보게 되는구나.”

스태프들이 의자를 끌며 일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웅성거리는 속삭임도.

이상학은 사람들이 헤이데이를 맞이할 준비가 끝나자 우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 회의실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

회의실 안에는 스태프들이 가득했다. 대강 열 명이 넘어 보였다. 프로그램 인기가 좋다 보니 스태프가 많은 것도 있지만 헤이데이와의 사전 미팅을 모두 다 참여하고 싶었던 것도 있는 것 같았다.

‘하나, 둘, 셋, 넷···’

나는 먼저 카메라 불빛부터 셌다. 카메라를 직접 들고 있는 스태프만 해도 3명에 고정되어있는 카메라가 4대였다. 총 7대의 카메라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요즘 방송은 사전 미팅부터 녹화를 하는 것이 거의 관행이니까.

“안녕하세요. 헤이데이입니다.”

헤이데이는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스태프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오오오오오.”

“와아아아아!”

짝짝짝짝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제작진들은 환호와 박수로 헤이데이를 맞이했다.

“여기로 앉으세요. 매니저님은 저기 창가 쪽에 앉으시면 되고요.”

이상학 피디는 헤이데이를 메인 피디 맞은편에 앉히고, 나는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뒤쪽 자리로 안내했다.

메인 피디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헤이데이 여러분. 저는 뿜뿜 아이돌 메인 피디 현제국이라고 합니다.”

헤이데이도 차례대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메인 보컬 찬희입니다.”

“반갑습니다. 리드보컬 현우입니다.”

“랩 담당 크레이즈입니다.”

“댄스 리오입니다.”

“영광입니다. 보컬, 랩, 댄스, 이것저것 시키는 건 다 하는 재경입니다.”

하하하

호호호

큭큭큭

재경이의 재치 인사에 분위기가 업 되었다. 그런데 현제국 피디도 재치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뿜뿜 아이돌에서 악의 축을 담당하는 현제국입니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큭큭큭큭

현 피디의 만만치 않은 재치까지 가세해서 분위기는 일순간 녹았다.

‘재미있는 양반이로구만.’

나는 잠깐 현 피디의 관상을 살폈다.

눈이 전체 얼굴과 균형을 이루고 길게 뻗어 있다. 또한 쌍꺼풀이 뚜렷하고 흰자위와 검은자위가 뚜렷해 총기가 엿보인다.

‘이런 눈을 학 눈이라고 하지.’

학 눈의 특징은 거짓말을 못하고 자신의 생각에 솔직하다.

‘입술 또한 눈과 잘 어울리는구나.’

앞으로 돌출된 입은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자기주장이 뚜렷하다. 의견을 쉽게 굽히지 않고 고집이 세지만 그 결과에 대해선 온전히 책임질 줄 안다.

‘뿜뿜 아이돌이 잘 나가는 이유가 있었군. 일단 메인 피디가 일을 잘해.’

나는 현제국 피디의 관상으로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파악했다.

“반가워요. 저는 메인 작가 김지민입니다. 우리 작가들이 헤이데이 너무 만나고 싶어 했어요.”

현 피디 옆에 앉은 김지민 작가가 그다음 자기소개를 했다. 그녀에게서 현 피디의 고집을 상쇄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일에 있어 둘은 궁합이 좋았다.

회의실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고 나자, 다시 현 피디가 말을 이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 사전 미팅 다 녹화되고 있어요. 예고편이나 본방 자료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거 알고 계시면 됩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일단 김 작가님이 먼저 몇 가지 물어보실 게요.”

현 피디가 김 작가를 쳐다봤다. 김 작가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질문을 시작했다.

“우선, 팀의 뜻이 있을 텐데요? 헤이데이 정확히 어떤 뜻인가요?”

“네. 저희 헤이데이는 제일 잘 나가는 때 즉, 전성기라는 뜻입니다. 또는 놀랐을 때나 감탄할 때 쓰는 감탄사이기도 하고요.”

찬희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아, 그렇군요. 라임이 딱 맞네요. 헤이, 데이.”

김지민 작가가 고개를 끄덕이며 필기를 했다. 계속 질문을 이으면서.

“요즘 역주행의 대명사로 이름을 날리고 계신데. 어때요? 인기는 좀 실감하나요?”

“네. 아주 실감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어요?”

“좀 전에도 여기 방송국 들어오는데 로비에서 방청객 분들이 알아봐 주셔서, 사진 찍고 사인하고 응원도 받고 그랬습니다.”

“오! 그러셨구나.”

김 작가는 다른 멤버들도 돌아봤다. 혹시 다른 대답은?

“밴이랑 숙소도 바뀌었어요. 더 크고 좋은 걸로.”

크레이즈가 불쑥 말했다.

“맞아요. 일단 수입이 늘었다는 게 또 인기의 척도가 되죠.. 혹시 재경 씨는요? 인기를 가장 실감할 때?”

김 작가는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재경이를 바라봤다. 찬희와 크레이즈의 대답이 다소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지금 뿜뿜 아이돌 작가님과 사전 인터뷰하고 있잖아요.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오우.

짝짝짝.

작가들의 깨알 같은 박수가 터졌다. 김지민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건 조심스러운 질문이긴 한데··· 안 물어볼 수는 없어서요. 우리 프로그램에서 제가 악역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고...”

현제국 피디가 심각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문자 투표와 별 매니지먼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그러는구나. 올 것이 왔다.’

나는 현 피디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분위기가 너무 좋아지기 전에 어려운 질문부터 하려는 것 같았다.

멤버들도 눈치를 챘는지 마른침만 꼴깍꼴깍 삼켰다.

“아이돌 매치의 문자 투표 조작 사건 조금만 해도 될까요? 요즘 너무 큰 이슈라서 이 질문을 빼고 가면 진정성이 없어 보일 수 있어서요. 양해바랍니다.”

순간 회의실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다들 고개를 숙이고 컴퓨터나 폰 화면만 쳐다봤다.

하지만 멤버들은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까 로비에서 내게 어떡하면 좋을지 묻기도 했었다.

“네. 괜찮습니다. 어차피 한 번은 이야기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각오는 됐습니다. 묻고 싶은 질문이 있으시면 편하게 물어 봐주세요. 저희도 솔직히 대답해 드릴게요.”

“문자 투표 조작을 알게 됐을 때 심정이 어땠나요?”

찬희의 진지한 태도에 현 피디는 망설임 없이 질문을 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빙빙 돌릴 것 없이 바로 핵심을 찌르면서.

찬희는 앞에 놓인 사이다 캔을 따서 입으로 가져갔다. 막상 대답을 하려니 울컥한 것 같았다.

찬희의 여린 마음을 아는 현우가 대신 입을 열었다.

“솔직히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처음에 그 소식을 듣고 저희 다섯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제정신이었다면 거짓말이겠죠.”

현우는 솔직하고 간단히 대답했다.

“사실 저희도 스케줄이 취소되지는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네. 그때의 그 심정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 못 앉아 있어요. 그래도 극복을 했으니까...”

“극복이라면?”

이번엔 김 작가가 나섰다.

“저희 매니저 형이 멘탈을 잡는데 도움을 많이 줬습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과 저희의 행동 지침 같은 거... 자세히 다 말씀드릴 순 없고...”

아무리 솔직하다고 해도 속을 다 까뒤집을 수는 없다. 현우가 대답을 망설이자 김 작가는 더 이상 캐지 않고 다른 질문으로 얼른 넘어갔다.

“네... 그럼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떠신가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별 매니지먼트에서 사죄의 의미로 팍팍 밀어준다는 말이 있던데요.”

사이다 한 캔을 다 비워낸 찬희가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저희는 별 매니지먼트와 함께 일하지 않습니다. 이제 새로운 회사에서 새롭게 시작할 겁니다.”

“네?”

모든 스태프들이 깜짝 놀라 할 말을 잃었다. 별 매니지먼트를 나오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아니까...

‘이제 공식적인 일이 되었으니, 내가 나서서 정리를 좀 해야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어제 헤이데이는 별 매니지먼트를 나왔습니다. 이미 신뢰가 깨진 마당에 함께 일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더라고요. 멤버들과 상의 끝에 헤이데이만의 기획사를 차리기로 했고 오픈이 코앞입니다. 앞으로 새로운 헤이데이 잘 부탁드립니다.

참, 이 이야기는 여기서 처음으로 하는 겁니다. 기사화 하셔도 무방하고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피디와 작가의 손이 빨라졌다. 아마 방송국 연예부장이나 기자에게 제보하느라 바쁜 것일 거다. 이런 빅 뉴스를 놓칠 수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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