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님은 아이돌 매니저 83화
“네, 헤이데이 매니저 조명수입니다.”
누구일지 짐작이 갔기에 얼른 전화를 받았다. 아마도 자연인 박주영 쪽 사람일 것이다. 해주기로 한 일이 있으니까.
-조명수 씨? 이제야 전화를 받으시는군요. 후~
상대방은 자기소개보다는 안도의 한숨을 먼저 쉬었다. 그리고는 순간 화들짝 놀라며 통성명을 했다.
-아, 저는 박주영 이사님 개인비서 목상현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전화를 여려 차례 주셨더라고요. 안 그래도 전화를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러셨군요. 저희 이사님께서 헤이데이에 관한 몇 가지 일들을 지시하셔서 전화를 드렸는데, 도통 연락이 안 돼서··· 헤이데이가 쓸 사무실과 숙소 그리고 밴을 준비하라 셨거든요.
“죄송합니다. 제가 어디를 좀 다녀오느라···”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연락이 닿았으니 됐습니다. 그런데 원하시는 동네나 평수 같은 걸 상의하지도 못하고... 제가 임의로 준비를 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그럼 준비가 다 됐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완전히 준비가 끝났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공식적으로는 토요일까지 숙소와 밴을 사용해도 되지만, 그래도 빨리 나오는 것이 맞았다.
“잘 됐네요. 사실 회사에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하고 나오는 길이라 숙소가 당장 필요했거든요. 그럼 바로 새 숙소로 옮겨도 되나요?”
-네.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바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서류 문제도 깔끔하게 처리되었고 필요한 가구며 집기류도 다 구비돼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저희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못 돼서 아마 마음에 쏙 들 겁니다.
내 입에서 숙소라는 말이 나오자 모두의 눈이 커졌다. 멤버들은 작은 소리로 서로 소곤거렸다.
“우리 숙소가 준비됐나 봐.”
“오, 역시. 명수 형이다.”
“도대체 저런 수완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나는 목상현과 통화를 계속 이었다.
-가급적이면 빨리 일을 매듭짓죠. 이사님이 한시도 지체하지 말고 편의를 봐드리라고 하셨거든요. 혹시 오늘 언제쯤 시간이 되실까요?”
“음, 지금 숙소로 가서 짐 정리하고 하면... 한 2시간 후쯤.”
-네, 그럼 제가 2시간 후에 헤이데이 숙소로 찾아뵙겠습니다.”
“저희 숙소를 알고 계신가요?”
-제가 알고자 하면 모르는 게 없습니다.
“정보력이 좋으시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도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중에 뵙죠.”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내려놓기 무섭게 멤버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형, 누구야? 이사님은 또 뭐고?”
“우리 사무실이랑 숙소 생겼어?”
“지금 들어가서 바로 짐 싸는 거야?”
“오늘 새 숙소 들어가?”
“이사님이란 사람이 숙소 준비해 주시는 건가?”
모든 것이 결정된 마당에 더 이상 숨길 것이 없었다. 멤버들에게 모든 것을 다 밝힐 차례였다.
“응, 이사님은 우리에게··· 아니 정확히 말하면 크레이즈에게 빚진 분이셔.”
일단 크레이즈를 보면서 실마리를 풀었다.
크레이즈가 내 도움을 받고 산삼을 캐기는 했지만 산삼을 캔 주인이 맞고, 박주영 이사는 그 산삼 값을 지불하는 것이니까.
“크레이즈에게 빚을 졌다니 무슨 말이야?”
“와아, 크레이즈 너 이사님도 알고?”
“형. 그런 이사님도 알아?”
“크레이즈. 말해 봐. 누구야?”
멤버들은 다짜고짜 크레이즈를 졸랐다. 전혀 영문을 모르는 크레이즈는 손을 내저으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아냐. 아냐. 난 모르는 일이야. 내가 돈이 어딨다고 돈을 빌려 줘? 리오한테 빌린 3만 원도 아직 못 갚고 있는데.”
“기억은 하네.”
“당연하지. 곧 갚을 예정이야. 그건 그렇고 명수 형 도대체 무슨 말이야?”
바로 말해주는 것보다는 실체를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누구의 도움으로 회사가 설립되는 건지 멤버들도 알 필요가 있었다.
“음··· 동일아, 여기서 우회전해서 강남역 역삼로로 가자.”
“강남역으로요? 네, 알겠습니다.”
“강남역에 가면 이사님이 누군지, 왜 크레이즈에게 빚졌는지 수수께끼가 풀릴 거야.”
나는 멤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밴은 금방 강남역에 도착했고 우뚝 솟은 NC 타워가 바로 보였다.
“저기 있다.”
내가 손가락으로 NC 타워를 가리키자, 멤버들 모두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 NC 타워 꼭대기에 간판 있지. 익스플로 파이넨셜. 간판 끝에 로고도 보여? 크레이즈랑 재경이 기억나는 거 없어?”
익스플로 파이넨셜이라는 글자 옆으로 돛 세 개 달린 범선이 항해하고 있었다.
“어, 저거···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나도. 저···돛 세 개. 범선!”
크레이즈와 재경이가 이마를 찡그리며 생각해 내려 애썼다.
“자연에 살으리랏다!”
“자연인!”
그러다 둘은 동시에 소리쳤다.
“자연에 살으리랏다 촬영 때 봤던 그 범선이야!”
“자연인 아저씨가 마당에 조각해 놓았던 범선. 그 범선 명수 형한테 선물로 줬었잖아.”
“맞아.”
모두들 범선 로고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퍼즐 조각을 맞춰보려 애썼다. 자연인과 범선 그리고 익스플로 파이넨셜. 이 셋의 조합은 뭘까?
나는 더 이상 돌리지 않고 속 시원하게 정답을 발표했다.
“그때 그 자연인이 익스플로 파이넨셜의 박주영 이사님이셔.”
“이야.”
“무슨 그런 일이.”
“역대급 반전이다.”
멤버들은 너무나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때 이튿날 아침에 약초 캐러 가면서 자연인 아저씨가 몇 천억 아니 수 조를 다뤘다고 했었잖아. 그 말이 그 말이었네.”
“오바해서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맞아. 자연인 아저씨는 진짜 그런 사람이었어.”
“와우.”
“크레이즈가 삼백 년 된 천종삼을 자연인께 양보했잖아. 자연인 아니 박 이사님 그 산삼 다려 드시고 병이 다 나으셨어. 지금은 아주 건강하셔. 이 겨울에 반발 티만 입고 다닐 만큼.
그래서 이제 산삼 값을 지불하고 싶으시다고 하셨어. 난 회사 차릴 최소 비용 5억 원만 달라고 했는데, 이사님이 거기에 얹어서 사무실, 숙소 그리고 밴까지 선물로 주시는 거야.”
촥촥촥촥촥
짝짝짝짝짝
와와와와와와
멤버들은 박수를 치면서 기뻐했다. 그동안의 근심 걱정이 눈 녹듯 녹아내리고 있었다.
“크레이즈 한 건 했네.”
“크레이즈 1년 까방권 획득했다.”
“좋아. 새 숙소 들어가면 크레이즈에게 제일 먼저 방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자.”
“그 정도 혜택은 줘야지.”
“좋지.”
“만약에 방이 3개면?”
“크레이즈가 독방 쓰고 우린 두 명씩 쓰고.”
“만약에 방이 2개면?”
“크레이즈가 하나 쓰고 나머지 네 명이 한 방 쓰는 거지, 뭐. 재경이 너 형들이랑 같이 자는 거 좋아한댔잖아.”
“아, 그렇지... 가끔. 가끔 그렇다고···”
밴 안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
숙소로 돌아온 멤버들은 바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왕 회사를 나가기로 한 이상 속전속결이었다.
다들 금방 짐을 싸고 거실로 모였다.
“난 참 이상해.”
재경이가 빌라를 둘러보더니 불쑥 말을 꺼냈다.
“뭐가?”
“왠지 약간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하긴··· 여기가 살기 편하긴 했지.”
“예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건... 약간 힘든 일이 맞아.”
멤버들은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있는 것 같았다. 편해지긴 쉬워도 불편해지는 건 쉽지 않으니··· 나는 멤버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새로 들어가는 숙소는 태양빌라 정도겠지?”
“그것보다는 조금 더 좋지 않을까?”
“자연인 아저씨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한 번에 사무실 숙소 밴을 해결해주는 거잖아. 쉽지 않을 거야.”
“우리 힘내자. 열심히 하면 이런 빌라 금방 다시 들어올 수 있어.”
“응, 좋지. 우리 힘으로 해내자.”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자.”
“응.”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딩딩동~ 딩딩동~
“목상현 비서가 왔나 보다.”
인터폰에는 똑떨어지는 양복차림에 샤프하게 생긴 한 남자가 서있었다. 목상현 비서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제가 나가 볼게요.”
“그럴래?”
“네.”
동일이가 현관문을 열어놓고 목상현이 엘리베이터로 올라오길 기다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목상현은 동일이를 보고는 깍듯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배동일 씨.”
목상현이 동일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인사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제 이름을 알고 계시네요.”
“네. 제가 인사 파일 확인을 좀 했습니다. 조명수 매니저님께서 매우 신뢰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아니, 아닙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나는 거실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다.
‘흐음~ 그런 사소한 것까지 다 알고 있단 말이야. 영민한 사람이군. 단단한 목소리에 신뢰가 가득해.’
“이리로 오시죠. 다들 기다리고 계십니다.”
동일이는 목상현을 정중하게 거실로 안내했다. 목상현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여유롭게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조명수 매니저님.”
나는 목상현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했다. 그런데 목상현의 눈이 나를 사로잡았다.
‘오호~ 보기 드문 고양이 눈이라.’
얇은 쌍꺼풀에 눈매가 가늘고 빼어나며 흰자위와 검은자위가 뚜렷하다. 이러한 눈을 가진 사람은 책임감이 강하고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 재능과 재주를 부릴 줄 알며 임기응변도 뛰어나다. 스스로도 주어진 일은 확실하게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기도 하고.
차분하고 조용하면서도 욕심이 많고 끈기와 의지력 또한 강해서 개인 비서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나와 인사를 마친 목상현은 멤버들을 돌아봤다.
“반갑습니다. 찬희 씨. 팀에 메인 보컬이면서 리더를 맡고 계시죠? 대결 노래방 음원은 저도 들었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현우 씨는 이번에 도승재 피디님 드라마 들어가시던데요.”
“네. 미치겠네 활동 끝나는 대로 드라마에 매진할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가 좋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네, 저도 시나리오 보고 반했습니다.”
“크레이즈 씨. 산삼을 저희 이사님께 양보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제가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요.”
“아이고, 아닙니다.”
“리오 씨는 춤만 추시더라고요.”
“네, 전 춤 말고는 관심이 없어서요.”
“재경 씨. 이번 주 뿜뿜 아이돌도 기대할게요.”
“우와, 저희 스케줄을 다 꿰고 계시나 봐요.”
목상현은 멤버들과 근황 토크를 해가며 한 사람도 소홀함 없이 인사를 나눴다.
“이사님께서 처음 회사를 차리면 힘든 일이 많을 거라고 제게 특별히 부탁을 하셨어요. 혹 제가 도울 부분이 있으면 말씀만 주세요. 성심껏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단은 새 숙소로 옮기고 짐부터 푸는 게 먼저겠네요.”
“네, 그렇겠네요. 그런데 숙소를 정하는 데 있어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한 점은 죄송합니다. 가서 보시고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숙소로 다시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웬만해서는 마음에 들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우리들은 태양빌라 정도만 돼도 합격이었다. 설마 박주영 대표가 태양빌라 보다 더 열악한 숙소를 주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럼 바로 숙소로 이동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밴도 빌라 앞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그 밴을 이용하시면 되겠습니다.”
목상현의 일처리는 한 발 앞서 있었다. 숙소보다 밴을 먼저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멤버들은 양손에 캐리어 하나씩을 들고 서둘러 빌라를 빠져나왔다. 막상 나오니 섭섭함보다는 시원함이 더 컸다. 별 매니지먼트와의 악연을 끊게 됐으니까.
“서··· 설마 이게 저희 밴인가요?”
빌라 1층에 주차된 새 밴을 보고는 동일이가 말을 더듬었다.
밴은 가우디 익스프레스 스프린터였다.